好學의 神學/[신학자들] 생애

토착화 신학

好學 2011. 12. 13. 20:51


토착화와 토착화 신학


김광식 교수(연세대,조직신학)


 

I . 토착화와 토착성의 문제

지난 6월 18일에서 20일(1992년)까지 일본 쿄토(京都)에 있는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모인 [동북아 신학교 협의회(NEAATS)] 총회에서 거론된 [아시아 신학과 신학교육]이란 주제 밑에 한.중.일의 신학자들은 토착화 신학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토의한 바 있다.

일본의 신학자들은 토착화 신학의 범신론적 성격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나타냈고 중국 신학자들은'토착화 신학이 일종의 혼합주의가 아니냐'는 질문을 제기했다. 전자의 관심은 주로 바르트 학파에 속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을 대표하나, 후자의 의심은 복음의 순수성을 굔지하려는 보수주의의 문제제기 였다. 천방지축 앞질러 나가는 한국 신학에 대해 중국 신학자들은 노파심을 가지고 염려한 다면, 일본 신학자들은 선진국의 입장에서 토착화와 민중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후의 일반적인 소감은 한국 신학 계가 놀랄만큼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화가 의심받고 냉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착화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토착적 성격 즉 토착성(性) 때문에 의문시되고 있다. 토착성은 교회 일치의 큰 조류에 어긋난다는 것이며, 복음의 순수성을 해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위험스럽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이러한 토착성에만 집착한다면 국수주의와 편파 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고 복음을 재래종교화 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토착화의 토착적 성격을 너무 강조한다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고 결국에는 사이비 기독교를 만들어내고 말것이다.

토착적 성격에만 집착하는 혼합주의내지 범신론이 신학적으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한마디로 토착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만큼 타종교와 이교철학과의 만남을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 그러니까 교회사는 복음의 토착화의 역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감히 토착화를 성령의 역사(役事)라고 부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해석학을 논의하면서 성령을 제외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바르트가 불트만의 신학을 바람(루아하:성령) 빠진 신학이라고 조롱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학적인 오류에 속한다. 어차피 신학이 종교 체험과 실재를 인간의 언어와 사유로써 모두 설명하거나 해석할 수 없다. 신학자가 성령의 역사를 말하지 않고 신학을 한다는 것은 매우 모험적이고 용맹스런 일이기는 하나 기독교적 경험과 현실을 합리주의의 틀 속에 묶어 놓으려는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 성령의 역사로서의 토착화는 결코 토착성에 입각한 인위조작적인 사태를 의미하지 않고 도리어 하느님의 은혜의 한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건이다. 토착화의 사건은 도리어 성육신의 사건의 부차적 반복이며, 구원 사건의계속적 시행이다. 따라서 토착화는 성령의 역사로서만 가능하고 인위조작적인 혼합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성령은 복음을 전유시키는 토착화의 사건의 주체이며 그 동력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토착화는 언제나 토착성 속에 함몰되어 복음을 변형시키거나 왜곡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구원받은 자로서 의인이 동시에 죄인인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좌우간 토착화는 어느 한 개인이나 어느 한 소집단의 사유물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종교적 과정이다.

그러니까 토착화의 사건과 토착성의 인위조작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특정한 문화와 종교가 기독교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와 종교와 철학을 동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착화는 개인적 사유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적 경험속에 일어나는 사건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토착성과 토착화의 구별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II . 토착화 신학의 과제

토착화가 성령의 역사라면, 토착화 신학은 토착화에 대한 해석학적 시도이다.

흔히 토착화와 토착화 신학을 동일시하거나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양

자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토착화는 이미 신약성서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관계는 토착화의 두가지

유형사이에 있던 문제점이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유대

인처럼 헬라인들 가운데에서는 헬라인 처럼 처신하였다. 이와는 달리 토착화 신

학은 최근의 특정한 유형의 한국신학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토착화 신학은

한국적 상황과의 관련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으로서 넓은 의미로는 민중 신학 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토착화 신학은 명백하게 한국적 신학을 목표로 삼는다. 일본의 마추나가 교수

는 소위 일본적 창의성(Japanese Originallity)이 일본의 과학 기술 속에 있듯이

일본 신학 속에서도 그러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고 한다. 숨어 있는 일본적 창의

성이 일본 신학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은 한국적 창의

성의 발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국적 창의성을 찾아서 신학적으로 결실하는 것이 토착화신학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일찌기 윤성범 박사는 한국적 창의성을 한국인의 [솜씨]에서

발견하려 하였다. 이 솜씨는 예술적으로 말한다면 조화미를 창출하는 기교를 의

미한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조화미를 멋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인의 멋은 곡선

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곡선은 자유를 상징하고 자유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멋으로 나타난 곡선의 자유는 성령의 역사라고도 한

다.

한국인의 솜씨는 두개의 소재 즉 감을 다루는 기교로서 두개의 소재를 무한히

접근시켜 곡선이 되도록 만든다. 이때에 솜씨는 화해도 해방도 아닌 조화미를 창

출한다. 이 조화미를 철학적으로 혹은 신유학(Neoconfucianism)적으로 표현한 것

이 '성(誠)' 이다. 성은 말씀(言)의 성취(成)를 의미하며, 이것은 성육신과 계시

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렇게 이해된 성의 개념을 기초로하여 성의

해석학을 시도했던 것이 바로 윤성범의 '한국적 신학(1972)'이었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다루었어야 할 문제가 단지 제목설명 정도로 끝나 버린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국적 창의성을 '풍류(風流)'에서 찾고자 하는 유동식 박사는 문화사적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한국 문화는 다양한 외래 문화들로 구성되지만, 무교는 그러

한 외래 문화들을 수용하고 독창적으로 재정립하는 기층 문화라고 한다. 무교가

종교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풍류도이고 이것이 다시 국가적 내지 군

국적 이념으로 발전된 것이 화랑도라고 한다. 좌우간 풍류도는 유불선(儒佛仙)

삼교를 포함하고 민중의 구원을 위하여 재해석 한다는 의미에서 한국적 창의성을

대표한다. 기독교의 복음도 풍류도에 입각하여 수용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이것을 일컬어 풍류 신학이라고 한다.

한국적 창의성의 원천을 솜씨와 풍류에서 보다는 민중의 역사와 종교 속에서

찾으려는 신학적 시도를 민중 신학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한국적 창의성의 원천

으로서의 민중의 이해는 넓은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의 한 형태임을 말해준다. 다

만 이 경우에 사회 정치적 문제를 중요시 한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그러니까

민중 신학도 한국적 창의성을 신학적 사유의 기초로 삼는 다는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에 속한다.

민중의 한국적 창의성을 찾기 위하여 동학 운동이나 증산교나 혹은 미륵 신앙

이나 혹은 탈춤을 연구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나 역시 솜씨와 풍류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숨어있는 한국적 창의성의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

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III . 토착화신학과 조화전개적 사유

토착화 신학이 한국적 창의성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것을 국수주의적 편파주의

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그러한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 문화의 창달에 필요불가결한 요

소이다.

한국문화, 한국적 기술, 한국적 창의성 등은 한민족을 세계의 일원으로 만드

는 기본 요건이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은 동양 문화 일반 속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인은 중국 문화가 중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일본인도 역시 자기네 문화가

동양 문화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동양 문화가 한국 문화에 있어

서 그 본연의 모습으로 발전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이 유도불(儒道佛:Yu Tao Fo)을 자기네 종교와 문화의 집약적 표현

으로 보지만, 한국인은 유불선에 대해서 말한다. 유교와 불교는 공통적이지만

한국의 선(仙)은 도교와 무교를 두루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본인은 선(仙) 대신에 신도(神道)를 내세울 수 있을 있을 것이다.유불선이

라는 개념은 동양 종교 내지 동양 문화를 하나의 유기적 전체(an organic whole)

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의 삼심급설을 여기에다 응용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는 동양 문화의 초자아로서의 기능을 담

당해 왔고 불교는 동양 문화의 자아로서의 기능을 담당해 왔으며, 선(仙), 즉 도

교나 무교나 혹은 신도 등은 동양 문화의 이드(Id)의 기능을 담당해 온 것이라고

할 만하다.

유불선으로 표시되는 동양종교내지 동양 문화는 한국민족에게 있어서는 하느

님 신앙 속에서 포괄되고 전개되고 완성되었다. 민족 신앙으로서의 하느님 신앙

은 유불선이라는 세가지 종교적 지평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 도교의 전무성(全無

性)이라는 지평과 불교의 기유성(幾有性)이라는 지평과 유교의 만유성((萬有性)

이라는 지평은 각각 인간성의 근원과 구조의 형식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단군신화

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혹은 환검)으로 묘사되어 있다. 좌우간 유불선으로 표

현되는 동양 사상은 서양의 분석종합적 사고와는 달리 조화 전개적이다. 다시 말

하면 유불선에 있어서는 소외하고 중재하는 사고나 혹은 분석하고 종합하는 사고

대신에 조화시키고 전개해 나가는 사유가 지배적이다. 동양 문화의 아프리오리는

조화전개적 사유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

만일 여기서 한국적 창의성을 찾는다면 아마도 유도불(儒道佛-中國)이나 혹은

유불신(儒佛神-日本)과는 달리 유불선(儒佛仙)으로 동양 문화를 포괄하고 전개하

고 완성시킨 민족 신앙으로서의 하느님 신앙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중.

일 삼국의 공통된 문화적 아프리오리는 조화전개적 사유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일찌기 최치원 선생은 풍류도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實乃色含三敎接化群生...{三國史記})

유동식 교수는 풍류도를 무교의 계몽된 형태로 파악한다. 그러나 [풍류]가

[부루] 즉 [鰑]사상의 한자 표시인 만큼(최남선[불함 문화론(不咸文

化論)]참조),풍류는 무교 신앙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신앙에 관계된 것

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무교는 도리어 선(仙)에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선(仙)

은 선도(仙道)를 의미하나 이것은 유교와 불교와는 달리 도교(道敎),선교(仙敎),

무교(巫敎)등 잡다한 종교 사상을 망라한 개념으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무교를 풍류도와 동일시 하는 것은 마땅하지 못하다.

어쨋든지 유불선으로 집약된 하느님 신앙에 고유한 사유형식은 조화전개적인

것이다. 한국인이 민족신앙으로서의 하느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특정

종교에 속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하느님 신앙이 이미 있었으므로 유

불선을 비롯한 외래 종교들이 우리 문화 속에 수용되어 있던 것이다.

기독교 선교도 이러한 차원에서 논의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 문

제를 논의함에 있어서는 한국적 창의성으로서의 하느님 신앙을 강조할 것이 아니

라 기독교 복음을 수용하는 민족 신앙으로서의 하느님 신앙은 한국인의 자기 이

해이지만 바로 이러한 한국인의 자기 이해를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고 있음을 유

의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복음 선포와 복음의 전유가 일어나는 사건이 성령의 역사로서 의

토착화이며, 이것은 한국인의 천재성이나 창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론적 주제

에 속한 것이다. 여기서 한국적 창의성은 부수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한국적 신학으로서의 토착화 신학른 한국적 창의성과 관계되어 있으

나 이것은 다시 동양의 문화적 아프리오리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며, 동양적 선

천성(先天性,Apriority)은 조화전개적 사유에 의하여 규정 된다. 이제까지의 서

양신학이 연역법, 귀납법, 변증법 및 역리법이라는 분석 종합적 사고에 입각하여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의 동양 신학 혹은 토착화신학으로서의

한국 신학은 동서양 사상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하고 동서 사상의 포괄적 통합에

비추어 전개하고 동서 사상의 대화로서 성취되지 않으면 않될 것이다. 결국 분석

종합적 사고와 조화 전개적 사유의 만남과 대화와 통합이 토착화 신학의 가장 긴

요한 문제제기가 될 것이다.


 

<감신대학보,1992.7.1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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