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인천]역사이야기

커피=양탕국…1885년 대불호텔서 첫선

好學 2011. 9. 16. 22:14

커피=양탕국…1885년 대불호텔서 첫선

  • 커피가 숭늉을 물리치고, 한국인의 음료로 자리잡은 지도 꽤 오래됐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사' 제44권은 커피의 도입과 관련, "1892년

    구미 제국들과 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커피를 전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왕가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러시아 공관에 있는 동안 익숙해져 아주

    좋아했다"고 전한다. 또 "1902년 손탁 여사가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자리에 서양식 호텔을 개업했고, 이곳에서 처음 커피를 팔았다."고

    밝히고 있다.

  •  

    '국사편찬위원회'의 이같은 기술은 우리 나라 최초의 호텔인 인천

    '대불(大佛)호텔’의 존재를 도외시한 오기(誤記)이다. 정확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아펜젤러 목사는 1885년 4월5일 개신교를 전파하기

    위해 인천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당시 인천의 상황을 기록한

    '캘리포니아 크리스찬의 주장'이라는 '보고서'(서울 정동교회 발간

    '자유와 빛으로' 19쪽)에서 "이곳에는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은 없고, 일본인의 것(대불호텔)만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호텔 방은 편안할 정도로 컸지만, 상당히 더웠다. 저녁 식사를

    위해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서양 음식이 잘 마련되어 있었고, 입에도 잘

    맞았다."고 전하고 있다.

  •  

    그렇다면, 대불호텔에 서양인만이 묵었을 리 없고, 서양 음식의 '커피'는

    한식에 따르는 '숭늉'과 같은 것이니, 서울보다 인천의 저자거리에 먼저

    '양탕국(커피의 별칭)'이 소개되었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물론 이 때의 커피는 설탕덩이 속에 커피가루를 넣은 '설탕 조합

    커피'였다.

    그럼에도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문화(食文化)

    관련 서적에는 '커피의 인천 도입사'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명백한

    중앙집권적 역사관에 의한 지역사 천시 현상의 한 예이다.

    그런 면에서 지역사 연구의 중심 센터가 될 인천대 부설 인천학연구원의

    발족은 경하할 일이다. 인천학연구원이 그 같은 연구를 위해 조급한

    연구물의 양산이나 전시성 행사보다는 그 기반이 될 관련 고문헌의

    발굴과 번역,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각종 자료를 확보하는 데

    최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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