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인천]역사이야기

인천이야기 - 담배

好學 2011. 9. 16. 22:10

인천이야기-담배

  • 담배를 맨 먼저 피운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고 한다. 1492년 지금의 아메리카를 찾아갔던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담배란 뜻의 타바코(Tabacco)는 원래 원주민의 끽연 도구를 가리켰다는 것. 그 '타바코'가 일본식 발음 '다바꼬'로 바뀌었고, 그것이 다시 '담바고'에서 '담배'로 변천했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담배는 남령초(南靈草)라고 하는데 근세 왜국(倭國)에서 비로소 나왔다"고 했고, 인조 때의 학자 장유도 '계곡만필'에서 담배가 왜국에서 들어왔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측은 그 반대로 풍신수길의 부하들이 조선에서 흡연법을 배워 와 일본에 전파했다고 여러 자료에서 기술하고 있어 경로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던 담배가 서양인들의 동양 진출과 함께 유입된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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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에 들어온 담배는 신분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가령 상민은 장죽(長竹)을 사용할 수 없다든지 하는 예가 그것이다. 하지만 '담바고 타령'에서 보듯 담배는 반상이 차별 없이 즐겼던 상등 기호품(嗜好品)이었으며, 의약용으로 사용된 경우도 많았다. 배앓이, 치통 완화제, 화농 방지제, 지혈제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담배의 형태와 흡연 방법 등이 일거에 서양식으로 바꿨는데, 그 까닭은 1890년대에 멕시코에서 지궐련(紙卷煙)을 마는 기술이 개발됐고 '안전 성냥'까지 발명돼 개화기에 대량 수입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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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뒤인 1901년, 그리스 사람 '밴들러스'가 인천에 와 지금의 중구 사동(沙洞)에서 '동양연초회사'를 설립한 일이 있다. 이 회사는 1903년 수입 담배에 밀려 문을 닫고 말았으나, 지배인이었던 미국인 해밀톤이 바톤을 이어 선린동에 '제물포지궐련·연초회사'를 열고 '산호표' '복표' 같은 담배를 계속 생산했다. 그러나 1921년 조선총독부가 연초 전매법을 시행하면서 인천 담배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 담배가 올해 초부터 수난을 맞고 있다. 정부가 각급 교육 기관, 의료 기관, 관공서 등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을 일체 금하겠다는 법을 공포한 것이다. 위반하면 벌금 10만원이 부과된다. 이웃 일본에서는 한술 더 떠 길거리 흡연에까지 벌금을 물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엄동설한에 한데로 내몰린 이 땅의 골초들에게는 중대한 결단의 시점이 다가온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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