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새생명기도회6-똑똑한 여자는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잠언4:1-18)

好學 2011. 9. 10. 07:38

새생명기도회6-똑똑한 여자는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잠언4:1-18)

 


잠언 4:1 아들들아, 아비의 訓戒를 들으며 明哲을 얻기에 注意하라  
잠언 4:2 내가 善한 道理를 너희에게 傳하노니 내 法을 떠나지 말라  
잠언 4:3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幼弱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잠언 4: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命令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잠언 4:5 智慧를 얻으며 明哲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잠언 4:6 智慧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保護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잠언 4:7 智慧가 第一이니 智慧를 얻으라 !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明哲을 얻을지니라  
잠언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萬一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榮華롭게 하리라  
잠언 4:9 그가 아름다운 冠을 네 머리에 두겠고 榮華로운 冕旒冠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잠언 4:10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生命의 해가 길리라  
잠언 4:11 내가 智慧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正直한 捷徑으로 너를 引導하였은즉  
잠언 4:12 다닐 때에 네 걸음이 困難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失足하지 아니하리라  
잠언 4:13 訓戒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生命이니라  
잠언 4:14 邪慝한 者의 捷徑에 들어가지 말며 惡人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잠언 4:15 그 길을 避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잠언 4:16 그들은 惡을 行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잠언 4:17 不義의 떡을 먹으며 强暴의 술을 마심이니라  
잠언 4:18 義人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漸漸 빛나서 圓滿한 光明에 이르거니와  
잠언 4:19 惡人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언 4:20 내 아들아, 내 말에 注意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언 4: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잠언 4:22 그것은 얻는 者에게 生命이 되며 그 온 肉體의 健康이 됨이니라  
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生命의 根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4 詭譎을 네 입에서 버리며 邪曲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잠언 4: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잠언 4:26 네 발의 行할 捷徑을 平坦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잠언 4:27 右便으로나 左便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惡에서 떠나게 하라.

  

  오늘은 새생명기도회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똑똑한 여자는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애국(N), 순종(O), 성경(B), 사랑(L), 교육(E), 오늘은 FAITH의 F-FAMILY, 가정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잠언 4장은 지혜가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수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혜란 영감의 뿌리, 근본, 궁극적인 것, 통합시키는 능력,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를 살펴보면 구약에서는 지혜라고 표현했고 신약에서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많이 표현했습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믿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믿음 계속 전수되기를 원하시는데 그 다음 세대에 전수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가정은 복음전수의 센터

  그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1절부터 4절까지를 보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서 받은 것을 아들에게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32장 46절을 보니까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부모의 책임은 자녀에게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스라엘의 생명은 다음 세대에게 말씀을 심겨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허사가 아니라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 말씀을 지켰으면 참 좋았을 터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에 혼동이 왔습니다. 사명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신 능력, 은혜, 믿음 이 모든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지 아니하면 너희 날이 ‘장구하리라’가 대신 ‘끝이나리라’ 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생명같이 중요한, 그다음 세대에 믿음의 전수해 주는 일, 이 사명을 가정에 맡기셨습니다. 지혜의 전수를 위해서 특별한 교육제도를 만들거나 특별한 단체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신앙전수의 책임을 가정에 맡긴 것입니다. 가정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애들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전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일학교제도에 익숙해져 있어서 중․고등부도 주일학교를 없애버리고 진제도로 흡수해버리니까 벌써 반발이 심해요. 왜 그런 것을 없앴느냐고 하고 이상하다고 하는데 사실 주일학교 제도는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12살짜리 애들이 공장에 노동자로 끌려왔습니다. 글자도 모르고 잘 먹지도 못하고 교육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모인 것이 주일학교입니다. 주일학교 교육의 역사는 길어야 200년, 많이 잡아야 25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는 카테키즘(Catechism)이라고 해 가지고 교회 안에서 주일저녁에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교인 전체가 다 모여서 교리공부를 했습니다. 교리공부의 내용은 질문과 대답 형식이었습니다. 소요리문답 같은 것이지요. 묻고 대답하는 Q&A방식의 교육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온 가족이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사실 예배보다 중요한 교육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20세기 들어와서 자꾸 이것을 복잡해 졌는데 신앙의 전수는 구전과 예배예요. 또 한번 강조한다면 믿음의 명문들은 다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정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예배드리는 것, 같이 현장에 나가는 것 이것이 신앙전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새생명기도회를 하면서 우리 다음 세대에 믿음이 전수가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성경적인 방법을 다시금 찾아야 합니다.
  지금도 믿음의 전수가 잘되는 가정을 보면 가정예배 드리는 가정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가정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다보면 자기가 얻은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신이 얻은 믿음의 중요한 가치, 이것을 말로 전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저의 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라.’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고 위기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결단하는 방법들…… 제 개인적인 경험들을 얘기해 줍니다.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우리 부모님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명문가정입니다. 신앙을 전수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솔로몬과,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서 죽는 아도니야라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 두 아들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십시오. 두 아들의 차이점을 부모의 차이입니다. 특별히 어머니의 교육의 차이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밧세바의 아들이지요.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였고 다윗과 간음을 해서 별로 좋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의 강점은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똑똑한 여자라는 것입니다. 용의주도한 여자였고 야심에 찬 여자였습니다. 밧세바가 괜찮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솔로몬을 말씀으로 키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잘못된 것도 있었겠지만 왕으로 설 때까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말씀으로 양육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도니야는 열왕기상 1장6절을 보니까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교육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망할 놈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꼭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신앙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가정에서 신실하게 믿음의 전수해 주는 것입니다.
 

2. 교육은 미래지향적인 믿음의 길을 제시하는 것

  두 번째 살필 것은 교육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핵심은 미래지향적인 믿음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10장부터 19절까지를 보면 두 가지 길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길, 악인의 길, 지혜로운 길, 사특한 길을 대비하고 있는데 그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의인은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고 악인은 당장 재미있고 손에 잡히는 일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16절과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그렇게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그만큼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남을 해코지하면서 희열을 맛본 적이 있습니까? 묘한 희열이 있어요-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당장 무언가 손에 잡히잖아요. 악한 길은 반드시 우리에게 손에 잡히는 것, 뭔가 이루어지는 것을 제시합니다. 반면에 지혜의 길은 멀어보이고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혜의 길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잡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신앙교육이 아닙니다. 영혼을 걸 수 있는 일에 우리의 영혼을 걸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7절에 보니까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보이지 않는 그다음 세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확실한 것, 성경에 나오고 조상들이 검증한 것, 예배, 전도, 기도…… 이런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쏜살같이 달리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성경에 있고 너의 조상 때부터 이것이 진리라고 얘기하는 것을 왜 너의 시대에 다시 검증하려고 하니, 이런 것은 쏜살같이 가버려라.’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도전이 있지 않습니까? 인터넷의 문제, 가치를 부여하기 힘든 상황들에 대해서는 기준들을 가르쳐 줍니다. 몇 가지 기준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그 길 닦아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 같은 데서 배 한번 타 보았습니까? 암초 같은 것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배가 빨리 달립니다. 그러나 항구 쪽에 와서는 암초가 있거나 걸릴 것이 있는 것 같은 데에서는 굉장히 천천히 규칙대로 갑니다. 바다에도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길대로 천천히 갑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이 방법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확하고 확실한 안전한 길이 있습니다. 그때는 머뭇거릴 것이 없습니다. 최고속도를 내어서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지대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씩 하나씩 원리원칙대로 따져가면서 정확한 길로 가야합니다. 그것이 신앙교육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두 가지 일을 발견하면서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전진해나가는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신앙을 붙드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대에 전수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산만 남기려고 하는데 믿음전수를 해야 합니다. 믿음 전수의 센터는 가정입니다. 가정이 미래지향적인 믿음을 온전하게 전수하는 능력의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우리 가정이 명문가정이 될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간구하는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하나님의 앞에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