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새생명기도회4- 사랑의 섬김으로 세상을 당혹하게 만들라(요한복음13:1-17)

好學 2011. 8. 27. 22:17

새생명기도회4- 사랑의 섬김으로 세상을 당혹하게 만들라(요한복음13:1-17)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요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요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요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요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요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요 13:12) ○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사랑의 섬김으로 세상을 당혹하게 만들라 》 

  새생명기도회 네 번째 시간입니다.
  「사랑의 섬김으로 세상을 당혹하게 만들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NOBLE FAITH, 네 번째 시간입니다.
  애국(N), 순종(O), 성경(B), 네 번째가 사랑(L-LOVE)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말씀을 증거해 주신 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몸으로 친히 보여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사랑은 낮아지는 겸손

  첫째, 사랑은 자기의 위치를 버리고 낮아지는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주장할 수 있는 위치를 버리고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오늘 3절을 보니까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격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 분이 수건을 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이 있어야 복음의 능력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겠지요. 당시 사람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는 것은 노예들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되신, 주되신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당혹감일 것입니다. 어제 수요예배 때 말씀드렸듯이 세상 가운데 감동을 주는 교회의 모습이 되려면 반드시 당혹감을 주어야 되고 감동을 주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지금 능력을 잃어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에 전혀 당혹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바로 이런 모습,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으로 내려가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리지요. ‘예수님, 내 발을 씻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세 가지 유형을 알 수 있는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받고도 배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사랑을 받고 배신하는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겠지만 여기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고 하고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내 힘으로 하겠다, 스스로 개척하겠다, 주님의 도움이 전혀 필요없다, 이런 자세입니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해서 주님은 질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가 나오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하게 쓰고 돌아옵니다. 돼지우리에서 살다가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라도 받아주십시오’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품꾼이 아니라 아들로 맞이합니다. 송아지를 잡고 금목걸이를 걸어주고 신을 신기고 좋은 옷을 입힙니다. 염치는 없지만 아버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 아버지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아들됨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베드로의 약점은 끝까지 우기면서 내 몸은 씻길 수 없습니다, 내 발은 씻길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자체가 자존심이고 교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허물 많은 죄인이고 나는 목욕까지 필요한 더러운 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체험한 사람만이 비로소 세상에 나가서 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죽이면서 섬길 수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실제적으로 목회현장에서 많이 경험합니다. 누가 다른 사람을 제일 잘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누가 다른 사람을 가장 크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용서를 가장 크게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능히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 뿌리가 예수님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당혹하게 만들고 감동 가운데 빠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성도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잘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은 빚진 자의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

  두 번째로 사랑이라는 것은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항상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14절을 보니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은혜를 입었으니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에게 갚지 말고 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14절을 보니까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빚진 자 의식을 가진 사람은 특징이 있습니다. 일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일을 많이 하고 난 다음에 자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어마어마하게 빚진 자이기 때문에 내 공로다라는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성도의 삶은 섬기는 삶, 희생의 삶입니다. 자랑이 없습니다. 오직 자랑이 있다고 하면 나에게 은혜와 권능을 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자랑할 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섬김을 받았던 사람들은 항상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서 헌신하지만 자랑이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은 주도권을 잡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놓치고서 끌려가는 인생이 왜 나쁘냐 하면 그것은 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지 세상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질서는 어떻습니까? 높은 사람이 큰소리치고 자기의 권력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질서에 편입되어 가지고 그 안에서 한 자리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성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닙니다. 주도권을 다 놓쳐버린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누가 크냐는 논쟁이 벌어졌었지요. 그럴 때 세배대의 아들들 요한과 야고보 어머니가 와 가지고 ‘한명은 주의 좌측, 한명은 우측의 자리를 주십시오.’ 하는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순간 긴장된 분위기가 벌어졌습니다. 제자들끼리 시기심, 질투심으로 팽팽하게 서로 견제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자기 몫을 챙기려고 할 때의 분위기를 보면 팽팽한 긴장이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도 누가 상좌에 앉을 것인가에 대해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주보에 이름 나오는 것을 보면 ‘내가 선임인데!’ 하면서 이름이 앞에 있느냐 뒤에 있느냐 그것 때문에 신경 쓰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나 그런 일이 다 있습니다. 세속의 질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질서 가운데 주도권을 잡으시고 가장 크신 분이 가장 밑에 내려가서 수건 들고 물 갖다 놓고 발을 닦습니다. 그러자 그 질서가 다 깨져버리지 않습니까? 서로 낮아지고 섬기려는 분위기가 됩니다.
  저는 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만 대야에 물 떠 수건 들고 와서 발 씻겠다고 나서면 그 안에 교만한 분위기가 절대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서로 내가 크다고 하는 분위기는 절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만 나오면 전체의 질서를 다 바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세상은 사랑의 힘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고 새로운 질서가 생기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한탄하고 정죄합니다.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 이 교회는 기도가 없다, 말씀이 없다, 찬송이 없다, 전도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이 교회의 가장 큰 대적이 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충만한 능력을 받은 자로서 주도권을 쥐고 사는 존재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할 때 한 사람만 나타나서 정말 헌신적인 사랑을 해 보십시오. 전체의 분위기가 다 바뀌어버립니다. 기도가 없다고요? 한사람만 와서 생명 걸고 기도하면 전체가 기도의 분위기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이 없다고요? 고통 가운데 찬양하는 사람이 한명만 나오면 전체 분위기가 다 바뀌어버립니다.
  저는 우리 주변에서 그런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이기적으로 빠지려고 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한 형제, 새로 온 형제가 헌신적으로 자기 것을 다 내어 놓으면서 섬기려는 분위기를 보입니다. 그러니까 오래 믿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렇게 변화가 안 되던 사람, 권면해도 안 되던 사람이 한 사람의 주도적인 헌신을 통해서 변화가 되더라니까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사랑의 주도권을 가지고 먼저 섬기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추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얘기입니다.
  사랑은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낮아지는 겸손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세상의 질서 앞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 도전이 무엇이냐,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새로운 질서를 깨우도록 사랑 먼저하고 기도 먼저하고 말씀 먼저 외치고 찬양 먼저 하는 모습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랑의 주도권을 가지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믿음의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질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랑의 질서를 새로 세우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이 시간에 가정에서, 직장에서, 캠퍼스에서 사랑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게 해 달라고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