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새생명기도회5-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할 이유(사무엘상2:18-26)

好學 2011. 8. 27. 22:18

새생명기도회5-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할 이유(사무엘상2:18-26)

 

 

 

(삼상 2:18) ○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삼상 2:19)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삼상 2:20)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삼상 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삼상 2:22) ○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삼상 2: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삼상 2: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삼상 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 》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열 가지 주제를 살피고 있는데 NOBLE FAITH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가 애국(N)이었고 두 번째가 순종(O), 세 번째가 성경(B), 네 번째가 사랑(L), 다섯 번째가 교육(E-Education)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명의 실패한 지도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엘리입니다. 그가 왜 실패했습니까? 가정교육, 자녀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 인생이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가정교육, 신앙교육이 잘못되니까 한 사람의 무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엘리의 가문 전체가 다 무너지게 되었고 엘리는 지도자였기 때문에 엘리 가문의 무너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 경각의 위기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교육이라는 것은 한 가정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한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교육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 12절에 보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어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다’ 이런 뜻입니다. 구약에서의 벨리알이라는 묘사는 마귀거든요. 속된말로 하면 마귀자식이라는 뜻이에요. ‘엘리의 아들들은 마귀자식들이다’ 이런 식의 표현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신앙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명문가정이 되기 위한 조건을 세 가지 정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으로 양육하라

  첫 번째는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12절을 다시 보시면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이지요. 지금 식으로 하면 목사인데 목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불량자가 된 것이지요. 
  우리가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자녀들을 낳고 난 다음에 ‘마귀자식 되라. 벨리알의 아들, 벨리알의 딸이 되라’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불량자가 되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면 누구나가 다 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적인 시각으로 보면 인간이 다 죄인이라는 것 아시지요?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다 깨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길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할 때 인간성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우리 삼일교회에서도 성도들을 보면 충만히 예배드리고 난 다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 집에 돌아갈 때 보면 정말 인간이 멋있지요. 양보하고 얼굴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이런 거구나하고 느끼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동안 예배를 안 드리면서 술 퍼마시고 다닐 때 겉으로는 똑같은 사람이고  많이 배우고 지식도 있고 교양도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어느 순간인가 보면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불량자, 벨리알의 아들들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사람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사실 무너지는 것도 아니지요. 그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의 포기는 불량자를 만드는 것과 똑같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모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량자가 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이제까지 속이고 있을 뿐이지 그것이 본질입니다. 한 명의 사람을 온전하게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씀밖에 없다는 것을 붙들고 주의 은총 가운데 서 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전에 있던 교회에서 경험했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떤 집에 심방을 갔더니 잘생긴 아들이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리더십도 있고 거기다가 얼굴까지 잘생겼습니다. 되게 기분 나쁘더라고요. (성도들 웃음) 그러면서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가 ‘이놈은 큰일 할 놈이에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동의했습니다. 정말 큰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토를 달기를 ‘그런데 교회를 안 나가는데 어떻게 하지요?’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 교회를 안 나가서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너무 할일이 많아서 천천히 교회 갈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놈은 큰일 할 놈이 아니라 큰일 낼 놈입니다.’ 그렇게 하고 왔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저하고 냉전이 있었는데…… 잘 보십시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러면 큰일 낼 놈 아닙니까? 결국  그 말로가 별로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고 지혜의 근본입니다. 다른 것 다 못 가르쳐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 하나만 배우면 평균 이상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육이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자손만대까지 우리 민족이 제대로 서고 가정이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말씀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에 생명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명문가문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2. 엄하게 징계하라.

  두 번째는 엄하게 징계해야 합니다.
  13절과 14절을 보니까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지금 식으로 하면 헌금 도둑질했다는 것 아닙니까? ‘헌금통이 있는데 양면테이프를 붙여가지고 딱 꺼내더라, 딱 찍어서 꺼내가더라.’ 는 것이지요. 헌금을 훔쳐가더라. 우리 헌금통은 그런 것 못하도록 지그재그로 되어있어요. (성도들 웃음) 15, 16절을 보니까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모든 기름은 고기는 여호와께 드리는 것인데 기름을 빼면 맛이 없으니까 기름을 빼기 전에 탈취하는 것입니다. 나쁜 놈들이지요. 성경은 이 사람들을 뭐라고 평가합니까?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합니다. 죄라는 것은 한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죄를 놓아두면 점점 깊어지고 깊어지고 더 깊어집니다.
  부모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브레이크를 한번 걸어주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징계해야 됩니다. 히브리서 12장에도 나옵니다. 참아들은 징계한다고…… 엘리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엘리는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자식이 되게 예뻤나 봅니다. 자기 자식이니까 예뻤겠지요. 그래서 잘못을 해도 별로 욕하지 아니하고 계속 그냥 품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오냐오냐하면서……
  성경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하느냐 하면 산상수훈에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내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든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철저합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순종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런 의식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잘못을 고치는 것은 쉽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쓴 뿌리잖아요. 작은 나무의 뿌리를 뽑는 것은 쉽습니다. 어려울 것 없잖아요. 조금만 잡아당기면 빠지니까요. 그런데 큰 나무의 뿌리는 못 뽑습니다. 소나무 뿌리 뽑겠다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말이 그렇지 잘 안 뽑힙니다. 묘목 같은 같은 것 뽑고 오는 것이지요. 뽑히면 소나무도 아니지요.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징계하면 쓴 뿌리가 잘려 나가는데 나중에는 뽑지 못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엘리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24절) 소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치십니다. 하나님이 죽이잖아요. 여러분, 정말로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징계할 것을 맡기셨거든요. 부모가 철저히 징계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돌아오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부모가 감싸면서 죄를 품고 품으면 나중에 하나님이 치십니다.
  기독교 명문가정이 되는 비결은 여기에 있습니다. 철저히 사랑에 바탕을 두고 징계할줄 아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3. 부모 세대가 본을 보이라.

  세 번째 기독교 명문 가정의 특징은 부모 세대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밤낮 얘기해 보아야 소용 없습니다. 자녀들은 행동을 보고 알지 얘기하는 것 듣지 않습니다. 30절을 보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모습을 내가 먼저 보여주면 자녀들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엘리는 본질과 행동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이 다른 길로 가는 것 아닙니까? 보통 조폭들도 그것은 압니다. 폭력배들이 내부질서를 어떻게 잡는지 아십니까? 자기 위에 있는 보스에게 죽을힘을 다해 충성합니다. 목숨 걸고 충성합니다. 그것이 자기 밑에 있는 부하를 다스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철저하게 순종을 합니다. 그래야 밑에 있는 사람의 영(令)이 서니까요. 복음 밖에 있는 나쁜 짓하는 사람들도 그런 원리는 잘 압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권위가 제일 높아질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철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모습으로 서 있을 때 양떼들에게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그것을 잘 아시지요. 교사들의 권위가 언제 생기는지 아십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과 함께 죽을 수 있습니다.’ 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학생들이 다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권위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왜 권위가 있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충성하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백성들도 다윗을 따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 저버리고 갈 때 백성들의 권위도 떠나가 버리잖아요. 진정한 권위는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저의 어렸을 때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 부모들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지 자녀들이 다 압니다. 말로는 속일 수 있지만 본심이 뭔지를 다 알아요. 자녀들은 못 속입니다. 본심은 못 속입니다.
  저는 부모님 세대에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교회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 과일 같은 것이 귀할 때 명절이 되어 집에 사과나 배가 한 박스 있으면 우리 안 먹고 그것을 꼭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막내아들이 저랑 동갑이었거든요. 우리가 갖다 준 것 가지고 한쪽 먹어볼래, 안 먹어볼래 하면서 장난칠 때 제 속에서 불이 올라왔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저놈 나쁜 놈인데 왜 과일을 갖다 주냐고 하면서 혼자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우리 아버지가 했던 일의 모든 것을 다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마음 가운데 있던 인상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는구나’ 교회의 일이라고 하면 언제나 집안의 일보다 더 우선이었어요. 우선적으로 그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정말 헌신했고 목사님이라고 하면 최고로 잘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것들이 싫었어요. 지나친 것 아니냐, 왜 저러냐고 생각했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저한테 그것이 남아있더라고요. 저도 그대로 배운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이 되니까 주의 몸된 교회의 제일 일순위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여러분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아시지요? 담임목사가 무슨 생각하는지 교인들이 모르겠습니까? 말은 저러고 본심은 저거고, 괜히 저러고 난 다음에 무엇을 원하고…… 그 사람이 중심이 뭔지를 다 알아요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들의 중심을 모르겠습니까? 밥 같이 먹고 사는데요. 여러분들 자녀교육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예배드리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잘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예수 잘 믿으십시오. 
  교회가 이 땅 가운데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예수를 잘 믿는 것,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이 삽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이중플레이하지 않았습니까? 말로는 이렇게 하면서 실제로는 세상 것을 챙길 것 다 챙겼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실망합니다. 이제는 실망을 넘어서 짜증스러워 하잖아요. ‘너희들만은 진실하게 살기를 원했는데 왜 그렇게 사니!’ 짜증을 내잖아요. 
  우리가 다시금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스스로가 예수 잘 믿는 종으로 서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손들도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을 확신 가운데 걸어갈 수 있는 그런 능력있는 종들로 서는 믿음의 아들과 딸들이 될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국가가 살 길이고 가정이 살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게 양육하겠습니까? 말씀으로 교육하고 사랑을 근거로 철저히 징계할 줄 알아야 되고 우리 스스로가 본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우리 모든 가정들과 교회가 기독교 명문 가정들을 세우는 옥토와 같은 밭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 가정이 기독교 명문가정이 될 수 있도록 지켜 달라고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