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새생명기도회3- 오직 그 길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라 (열왕기상 18:1-4)

好學 2011. 8. 27. 22:15

새생명기도회3- 오직 그 길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라 (열왕기상 18:1-4)

 

 


(왕상 18: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왕상 18: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왕상 18:3) 아합이 궁내 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왕상 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인을 가져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 오직 그 길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라 》 

  오늘은 새생명기도회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직 그 길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NOBLE FAITH 세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가 애국(N), 두 번째가 순종의 삶(O) 세 번째가 Bible(B), 성경입니다.
 
  윌로크릭의 빌 하이빌스 목사님은 빌 클린턴 당시 한달에 한번씩 워싱턴에 가서 대통령과 행정부 요인들과 함께 상담과 예배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미국의 고위층들을 많이 만났던 사람입니다. 세계의 심장부에 항상 연결되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수년 동안 이 일을 하고 난 다음에 느낀 점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기는 이제까지 정치가가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치가는 국민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 정도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왔다고 합니다. 또 법관, 대법원 판사들이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본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일밖에 못하더라,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은 정치가나 법관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세상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더라, 오직 세상의 소망은 교회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와의 오랫동안의 교감을 통해서 빌 하이빌스가 깨달았던 깊은 것은 교회가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교회밖에 없다. 세상의 소망은 말씀 외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으로 변화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이 점점 짙어갑니다. 성도의 존재목적은 세상에 빛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원초적으로 개혁을 위해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은 존재입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첫째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세상에 나가기만 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깊은 훈련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1절 상반절을 보니까 엘리아에 대한 묘사를 이렇게 합니다. “많은 날을 지내고……” 많은 날 동안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보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많은 날의 교제의 경험이 없이는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사용하기 이전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시간을 갖게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그냥 세상 속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의 기나긴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요즘에 셀프리더십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동서남북 전 방향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지난번에 설명을 했지요. 남쪽리더십이라는 것은 양떼와의 관계, 동서리더십은 팀 리더십 수평적인 관계, 북쪽 리더십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것을 전 방향, 모든 방향 속에서의 리더십이고 이것을 다 이루어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정작 동서남북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느냐 물어보면 셀프리더십이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관리하는 것,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그 사역의 중간중간 항상 홀로 가셔서 기도하시고 묵상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절대로 도외시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일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오랜 시간의 교제가 있어야만 능력 있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8월을 넘어서면서 삼일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셀프리더십을 통해서 9월, 앞으로 닥쳐오는 많은 일들 가운데 세상에 나가서 능력 있게 사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강했던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경험이 세상에서의 강력함을 보증하는 능력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모세나 바울이나 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많은 날을 같이 보내는 깊은 영적인 교제의 시간을 갖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오직 그 길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두 번째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길은 ‘오직 그 길 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엘리아가 하나님과 오랜 기간의 교제를 통해서 생긴 의식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땅에 주밖에 없습니다.’ 그 생각을 품게 된 것입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변화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대안이 참 많아보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프로그램 통해서, 무브먼트를 통해서, 조직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데 빌 하이빌스 목사님도 그런 생각을 안 했겠습니까?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오직 그 길밖에 없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가 이 사회에 대한 것들을 굉장히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에 매달리고 말씀증거하는 일에 매달려보았습니까? 오직 그 길 밖에 없잖아요. 다른 길이 있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도 아이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앞에 6일 동안 매달리잖아요. 그것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그 길 밖에 없잖아요. 주님께서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애국자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1898-1959) 선생님을 참 좋아합니다. 묘소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돈이 준비되어서 했느냐, 독립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어서 했느냐? 아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어서 한 것이 아니냐……’ 이런 글이 써있습니다.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가능성 때문에 접근합니다. 돈이 있으니까 독립운동을 해보자, 이것을 5년 하면 독립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가능성으로 많은 사람에게 호소해서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받아내어서 무엇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봉암 선생님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가능성을 보고 했느냐, 타당성을 보고 했느냐, 이 민족이 독립 외에 무슨 대안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밖에 무슨 대안이 있겠습니까? 일본의 속국으로 영원히 살겠습니까? 민족 다 없어져버릴 것입니까? 살 길은 이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냐. 저는 가슴에서 나오는 이 고백이 무엇인지 압니다. 우리가 왜 힘이 없느냐 하면 너무 많은 대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힘이 분산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부흥 외에 무슨 길이 있습니까? 돈 더 벌면 이 땅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길, 모든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붙드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 길 외에는 이 민족과 사람들 가운데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강한 자들의 특징이 무엇 입니까? 항상 오직 이 길 밖에 없다고 외친 사람들이 일어설 때입니다. 종교개혁이 뭐지요? 솔라 피데, 솔라 그라티아, 솔라 스크립투라, 전부 솔라솔라솔라 아닙니까? only,only,only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얘기하면서 진리의 허리띠, 싱글포커스라고 했지요.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는 것, 그것이 가장 강한 것입니다. 무장하는 것의 첫 번째는 하나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오직 주밖에 없습니다.’ 그 고백이 내 가슴 속에 불과 같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부르짖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렇게 무장하고 난 다음에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2절을 보니까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드는 수도원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믿는 사람끼리 따로 모여서 게토(ghetto) 비슷하게 만들어 놓으면 사실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요한 멘털리티는 황무지를 향해서 가야 되고 세상을 향해서 가야 되고 죄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최고의 위기는 사실 핍박이 아닌 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호텔이 되기보다는 병든 세상의 죄인들을 품을 수 있는 병원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의사들이 모여서 바이올린 켜면서 음식 먹으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누가 대단하다고 여기겠습니까? 의사는 환자들 사이에 있을 때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목사가 믿는 성도들과 모여서 영광의 찬미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신자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를 향해서 나아가 담대히 말씀을 증거할 때 아니겠습니까? 그때 제일 아름답지요. 군인이 언제 아름답습니까? 번쩍번쩍하는 계급장 달고 훈장 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전장 속에서 나라를 지킬 때가 아니겠습니까?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빛으로 서있을 때 가장 강한 자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4절 보니까 오바댜 같은 사람들은 위협 속에서도 숨어서 엘리아를 돕는 헌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신하는 것이 두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체제 내에서 헌신하는 오바댜 같은 사람이 있고 또 엘리아 같이 이런 악한 체제와 싸우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가 옳습니까? 굳이 말하면 우열을 나눌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 옳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서로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쓰임받는 모양이 다른 것입니다. 엘리아 같이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합의 정권에 들어가서 그 안에 숨어서 돕는 오바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옳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안에서 잘 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바댜도 사실 많은 위협 속에서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각각의 현장 속에서 열심히 처절하게 뛰는 모습이 있어야 됩니다. 
  초야에 묻혀서 깨끗한 척 하지 마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 떠나서 깨끗한 척 하지 마시고 지저분하더라도 현장 속에서 싸워야 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현장에 가면 모순투성이입니다. 그런 지저분한 목회 현장에서 싸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이게 옳으니 저게 옳으니 훈수 두는 것은 누가 못합니까? 현장은 없고 이론만 있는데요. 저는 어제 그런 글을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교회의 입장만 있고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동성애문제라고 하면 ‘동성애는 악이야, 문제야, 안돼!’ 라는 입장은 있습니다. 교회는 입장만 가지고 있고 대안이 없어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 앞에 입장만 표명했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입장을 표명한다. 간음은 죄다’ 그렇게 입장표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들어가서 건져주는 대안이 있었잖아요. 교회는 입장표명하는 곳이 아닙니다.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을 가지고 지저분한 현장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건져낼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안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힘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대안이지요. 모든 죄인들을 품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시키는 것이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죄인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구원받았던 그 능력을 가지고 또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이끌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는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 성도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없이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뜻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몰라서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할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존재입니다. 주님 손에 붙들린바 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깨닫는 불길까지 타오르는 확신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직 주님 밖에 없다. 거기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불같은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서 지저분하지만 세상 속에 나가서 싸움을 벌일 때 주의 성령께서 항상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도 승리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깊은 아침, 새벽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땅에 대안이 오직 주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길 밖에 없다는 확신 가지고 교회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지저분하더라도 세상 속에서, 현장 속에서 싸우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