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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윽박질러 淸館 세워 ##
## 역사 무시한 ‘부활론’경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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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이나타운 부활론'이 일고 있다. 어느 교수는 "전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 화교 자본이 성공하지 못한 나라, 화교 수가
계속 줄고 있는 나라,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 화폐 개혁 등
그간 행해진 화교 정책이 졸렬했다는 견해도 곁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굳이 과거사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천에는 '쿨리'(苦力)를 비롯한 해외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살아 '이색 지대'를 이룬 서구식 '차이나타운'이
없었다. 다만 청국이 조선 정부를 윽박질러 차지했던 조계지
'청관'(淸館)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은 대국이고, 조선은
소국이라며 위세를 부렸다. 심지어는 인천전화국이 주화에 '대조선'이란
국호를 쓰자, '너희는 소국이니 이를 없애라'고 강요한 청국이었다. 결국
조선 정부는 '대' 자를 빼고, '조선'이라고만 표시한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국 망령'이 되살아났었다.
그 청나라가 조선 땅에서 차지한 '청관'과 '차이나타운'은 용어상의
차이를 뛰어 넘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에는 '이국적
문화'가 향기처럼 묻어 있지만, '청관'에는 굴욕적 역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청관'은 살인 강도가 숨어들어도 조선인 포졸이 쫓아
들어갈 수 없었던 '남의 땅'이었다. 그 곳에는 영사관, 순포청, 전보국을
비롯해 동순태(同順泰) 등 화상(華商)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들은
특유의 상재를 발휘해 인천 경제를 쥐락펴락했었다.
그런데 여러 지식인들이 이 땅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게 부끄럽다고들
한다. 상고사는 고사하고 최소한 한 세기 전의 제 처지조차 아랑곳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이와관련해서 이미 중구청은 유태인 뺨치는 화교
자본을 끌어들여 '차이나타운'을 복원하겠다고 나섰고, 인천광역시는
'차이나타운'을 송도에 신설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성급한 '차이나타운 부활론'은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현실'은
역사의 토대 위에 있으며, 그 역사는 잊거나 내다버릴 수 없는 것이다.
'청관' 역시 한중 관계에 걸맞게 화교들과 더불어 다듬어 나가야
하겠지만, '없는 문화'를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언제 적부터 중국을 '차이나'라고 불렀는지, 그리고 중국과 함께
풀어내야 할 역사적 매듭은 없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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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