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인천]역사이야기

박물관 도시로

好學 2011. 8. 27. 21:56

박물관 도시로

 

 

중일전쟁 때, 일본군이 중국군 포로들을 잡았다. 그들의 배낭에는 하나같이 기름에 튀겨 말린 국수 뭉치가 담겨져 있었다. '라미엔'이라는 비상 식량이었다. 일본인들이 '라미엔'을 '카피'해 1958년 간편식으로 개발한 것이 '일청'식품 주식회사의 '라멘'이었다. '라멘'이 '라면'으로 이름을 바뀌어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63년 9월15일. 삼양식품이 기술 도입을 해 '치킨 라면'을 생산하면서 우리 나라의 '라면 시대'를 열었다. 초기에는 '롯데라면', '닭라면', '뉴라면' 등이 등장하여 라면의 전국시대를 펼쳤으나, 오늘날에는 삼양, 농심, 한국야구르트, 빙그레, 오뚜기가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삼양라면은 1백g 한 봉지에 10원이었다. 1970년에 20원으로 인상되었다가 1981년에 이르러서야 1백원대로 올라섰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이 4백원이었던 당시의 살인적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보면, 라면은 값싼 국민식으로 일찌감치 자리잡았고, '기아로부터의 해방'에 크게 일조하면서 정부 관리 12개 생필품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부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그 기세를 몰아 1999년 8월 일본을 제치고 라면의 국제 식품 규격을 제창하였고, 1998년 세계 소비량 434억2천만 개 중 무려 28억9천만 개를 소비해 우리 나라는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유수한 '라면 왕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라면을 식품으로 정착시켰고, 이를 또 문화적인 차원에서 상품화에 성공한 것은 원조 중국과 소비 왕국 한국이 아니라,

'라미엔'을 '카피'했던 일본이었다. 출생 40여 년밖에 안 되는 '라면'을 주제로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상식의 허를 찌른 셈이었다. "아니, 라면으로 박물관이 돼?" 그러나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박물관이 된 '요코하마 라면 박물관'을 찾아가 보면, 우리의 고전적 박물관관이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60년대의 어려웠던 일본의 사회상과 정서를 인스턴트 식으로 압축해 놓은 '라면박물관'은 추억이 살아 숨쉬는 따듯한 삶의 공간이었다.


우리 나라 최초로 시립박물관을 세웠던 인천시가 최근 우편박물관과 성냥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기왕지사 '관광 인천'의 기치를 들 바에야 인천을 '박물관 도시'로 만들었으면 한다. 인천이 태생지인 '자장면 박물관'은 어떨까? 우리 나라 최초의 철도, 전화, 기상대, 서구식 공원, 전환국, 팔미도 등대, 개신교 전래, 해외 이민, 조약 체결, 천일 염전, 인천항 독, 경인고속도로 건설, 전철 개통 등 이 모두가 소규모의 특수 박물관 감인 것이다. '라면 박물관'이 타산지석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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