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새생명 기도회2 - 미련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라 (사무엘하 3:1-11)

好學 2011. 8. 17. 22:14

새생명 기도회2-미련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라 (사무엘하 3:1-11)

 

 

 

<사무엘하 3장 1-11절>

(삼하 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니라 
(삼하 3:2) ○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삼하 3: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세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삼하 3:4) 네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삼하 3: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삼하 3:6) ○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삼하 3: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 
(삼하 3:8)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삼하 3: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삼하 3:10)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삼하 3:11)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대답지 못하니라 





《 미련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라 》


  오늘은 새생명기도회 두 번째 시간입니다.
  「미련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열 가지 주제를 놓고 살피려고 합니다. NOBLE FAITH 첫 번째가 N이었는데 N은 애국심이었고, 오늘은 O, Obedience, 순종에 대한 것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철저한 순종

  성경 전체 중에서 순종에 관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들라고 하면 사무엘상 15장22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철저히 순종하라’ 사울의 범죄를 통해서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자라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미련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을 대비하고 있는데 사울의 집은 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불순종했고 다윗의 집은 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전체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떠나지 않는 가정이 되고 싶습니까? 다윗의 집과 같이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못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순종을 못하고 어떤 때는 다가오는 유혹이 너무 강렬해서 순종을 못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해서 순종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떠한 불순종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엄청난 재앙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보다 똑똑합니까? 우리의 판단이 하나님보다 더 낫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이전에 이제까지 내 판단대로 살아왔잖아요. 내 잘 도는 머리, 내 좋은 판단, 나의 종합적인 분석, 그래 가지고 이 정도로 파탄이 났으면 두 손 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 내 이성이나 내 경험의 판단을 가지고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 -사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순종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미련하게 믿고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18절을 보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를 증거할 때를 보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미련해 보이는 것이 설교하는 것,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이 30~40분 증거하는 말씀에 인생이 변화될 것 같습니까? 이것 가지고는 안될 것 같습니다. 책자로 두툼하게 묶어 주는 것이 나을 것 같고, 차라리 이 정도 읽어보라고 하면서 쪽지로 나누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지 증거하는 것 가지고는 안될 것 같이 보입니다. 분명히 미련해 보입니다. 그런데 내 머리 써 가지고 접근하는 것 가지고는 사람들이 변화가 안되는데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라는 그대로 증거하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처음 할 때 목회가 참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들기는 힘들지요. 머리를 많이 써야 되고…… 보통 신학생들이 그런 것 많이 말하잖아요.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행정의 전문가도 되어야 되고…… ‘목사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사람들의 기를 죽이곤 하는데 저는 진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뒤집어놓고 보니까 세상에 목회만큼 쉬운 것이 없더라고요. 속된 말로 하면 점점 생각이 없어집니다. 생각을 해봐야 그대로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찌 보면 목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 증거하신 그대로 믿고 그 길로 한번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 다 알고 갑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 다 알고 가는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여러분 결혼생활이 뭔지 알고 갔습니까? 직장생활이 뭔지 알고 갔습니까? 초등학교 때 중학교가 뭔지 알고 갔습니까?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개 믿고 가는 것입니다. 믿고 가다 보니까 승리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것은 미련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윗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삶의 고난 가운데서 굉장히 영리하고 판단을 잘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윗의 매순간의 시점으로 한번 들어가 봅시다. 다윗만큼 미련한 사람이 없습니다. 미련하게 믿은 사람입니다. 거인 골리앗이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판단을 하지요. ‘전력(戰力)적으로 상대가 되느냐’ 저 같으면 ‘뒤에 가서 기습공격을 하든지 해야 된다’ 이렇게 판단할 것 같은데 다윗은 거인 골리앗 앞에서 미련하게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 나가잖아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그것이 작은 것입니까? 우리는 별것 아닌 것 같이 생각하지만 칼이 정말 별것 아닙니까? 어제 제가 식사하면서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가끔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역자들이 실제로 싸움은 못해도 말은 잘하잖아요. 그런데 5cm 되는 칼을 들고 눈앞에 딱 나타나기만 해도 마비가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영화 같은 데를 보면 툭 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온몸에 힘이 빠져버리고 또 어떤 교역자의 표현에 의하면 심장 약한 사람은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오줌을 누는 사람도 있답니다.
  칼이 만만한 것입니까? 게다가 골리앗이 들고 있는 칼이 만만한 칼입니까? 무지 큰 칼이었겠지요? 그런 것을 들고 있을 때에 칼과 창과 단창 -얼마나 무장을 많이 했는지- 그것이 만만한 것입니까? 그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미련하게 나가잖아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 그것을 통해서 승리를 주십니다. 자신의 대적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여러 번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정말 미련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죽일 수 없다’고 하고 놓아주잖아요. 미련하지요. 지내놓고 보면 어차피 죽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말 미련하게 믿었지요. 미련하게……
  그 후 사울이 죽어서 이스라엘 권력의 공백기 상태가 왔습니다. 그러면 올라가서 점령하면 되는데 헤브론 앞에서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 만날 묻잖아요. 뻔한 답을 가지고 묻잖아요. 당연히 가야 될 것인데 그것을 또 하나님께 묻습니다.
  저는 다윗의 삶의 강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매순간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상식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의 판단과는 관계없이 말씀이라고 하면 무조건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의 삶을 한마디로 묘사한다고 하면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번 새생명기도회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순종이 약화되고 판단이 강해져서 방황하는 인생이 있다고 하면 ‘우리도 다윗과 같이 미련하게 믿게 해 주십시오. 미련할 정도로 철저히 믿는 그런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철저한 충성

  또 한 가지 우리가 살펴야 될 사람이 아브넬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을 통해서 배울 것은 배신하는 인생을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망령된 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라는 사람이지요. 아브넷은 원래 사울의 부하였습니다. 사울이 죽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내세워서 모든 권세를 누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불한당 같은 기회주의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나 하나님을 배신한 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보니까 바울을 배신했던 알렉산더, 후메네오 다 버렸습니다. 돈 때문에 나라를 배신한 발람 선지자를 버렸습니다. 심지어 악한 주인이라 할지라도 주인을 배신하는 자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브넬의 예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아브넬은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립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이스보셋을 세웁니다. 말씀을 저버렸지요. 7절을 보니까 자신의 주인인 사울의 첩을 범하잖아요. 자기 주인을 배신한 것이지요. 8절을 보니까 이것을 책망하는 이스보셋에게 도전하면서 협박합니다. 또 한번 변절합니다. 변절, 변절, 배신…… 기회를 보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양다리 인생이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셨습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니까 땅 팔아서 헌금한다고 하면서 돈 숨겨놓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를 죽였습니까? 모두가 다 이런 식으로 죽어야 될 것 같으면 우리는 벌써 다 죽었겠지요.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영적인 칭찬도 얻고 금전적인 유익도 얻으려고 하는 요즘 말로 얘기해서 양다리 걸치는 인생, 이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충성스러운 인생, 그런 모습으로 서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주십니다. 우리 민족의 죄악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 민족이 참 묘합니다 우리 민족은 의의 민족이라고 하지요. 조금만 기회가 주어지면 모든 국민이 의를 위해서 헌신합니다. 그런데 또 조금만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쉽게 비굴해지는 민족입니다. 너무 비굴해집니다. 지나칠 정도로 비굴해지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신앙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종이 될 뿐만 아니라 보통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충성스러운, 배신이 없는 그런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로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믿음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미련할 정도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말씀대로 미련하게 순종하는 종이 되게 해 주십시오.
  또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배신하는 인생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종으로 우리 인간관계 가운데 증명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 달라고

  하나님, 두 번째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 순종하는 삼일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켜달라고 이 시간에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