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믿음(8) "믿음이란 만가지를 바리고 한가지를 붙드는 것이다"

好學 2011. 8. 17. 22:01

본문말씀 : 히브리서 11: 21
설교제목 : 믿음(8) "믿음이란 만가지를 바리고 한가지를 붙드는 것이다"

오늘은 야곱의 삶을 통해 믿음의 양상이 무엇인지 보기로 함.


Ⅰ.믿음은 만가지를 버리고 한가지를 붙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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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교묘한 사람, 속이는 사람, 협상에 능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음. 자기 이익을 위해 어떤 규정도 무시하는 사람임. 에녹처럼 헌신적인 사람도 아니었으며 아브라함처럼 경건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삭처럼 기다리는 사람도 아니었음. 대신 속이고 속는 인생이었음. 잔머리 쓰는 인생, 남에게 사기치고 자기도 사기 당하는 인생이었음. 그래서 사기결혼 당하고 품삯도 사기 당하였으며 나중에 자신의 아들로부터도 속임을 당하였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훈련시킬 때 나보다 더한 사람 보내서 지긋지긋하게 만듦으로 훈련시킴. 히브리 기자가 야곱의 일생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그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추구한 인생이었다는 것임. 이점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게 하였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였고 하나님 자체를 추구하였음.  신약으로 말하면 야곱은 행위를 추구한 것이 아니고 은혜를 추구한 사람이었음.

시편 53편 2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를 찾는다 말씀하시고 있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그 한가지를 기뻐하심. 히브리 기자는 야곱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권을 추구하는 야곱의 그 한가지 모습을 를 강조하였음. 인간은 다 잘할 수 없음.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가지 추구하는 것을 원하심. 베드로의 믿음, 바나바의 섬김, 요셉의 신실함을 인정하셨음. 사람마다 한가지 아름다운 부분 있음. 예수 믿는 사람은 한가지로 사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자는 만가지로 사는 사람임.

그러므로 한가지를 붙들라! 야곱은 하나님 축복 하나 붙잡았음. 오늘 말씀 11장 21절에서 “각 아들에게 축복함으로” 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그는 바로왕을 만나 다른 모든 일을 생략하고 아들을 축복하였음. 그는 어려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추구하였고 이후에는 아들을 축복하였음. 창세기 47장 7절에서는 바로왕을 만나서 그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옴.

그의 일생은 축복과 축복으로 일관하고 있음. 자신도 축복을 추구하고 남도 축복하였음.  이렇게 축복 그 한가지를 붙들었음. 우리 인생도 함사람 한사람 보면 만가지가 다 부족함. 그러나 이렇게 부족함을 주신 이유는 한가지를 붙들라는 의미임. 이와 같은 믿음으로 쓰임 받는 성도가 되길 원함.



Ⅱ.믿음이란 하나님 인정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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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이란 하나님 뜻을 받아들이고 경배하는 것임. 경배란 이제까지의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임. 그는 노년에 들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음. 창세기 48장에서 그이 아들을 축복할 때 오른쪽에 므낫세 왼쪽에 에브라임이 앉게 되었음. 요셉이 그렇게 위치시켰음. 그런데 야곱은 두 팔을 어긋나게 해서 축복하였음. 요셉이 그렇게 하지 마소서!라고 말하였으나 야곱은 듣지 않았음.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임. 야곱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였음. 이것이 믿음임. 믿음은 하나님의 뜻, 명령이라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임. 야곱은 지금까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순종하였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음.

그는 머리 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음.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음. 하나님의 모든 뜻을 받아들였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인간 이성이 최고라는 계몽주의 시대의 배경하에 쓰여졌음. 이 책에서 교만의 극치인 나폴레옹이 등장하나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뜻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

나폴레옹에 대비하여 러시아의 쿠트조프 장군이 등장함. 쿠트조프 장군이 한 일은 “후퇴하라 후퇴하라”는 것 밖에 없었음. 그러나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들어갔을 때 추위와 굶주림만이 기다리고 있었음. 결국 퇴각하였으며 쿠트조프 장군은 퇴각하는 병사를 전멸시키지 않았음. 이들로 하여금 돌아가서 러시아를 정복시킬 수 없음을 입으로 전하게 하였음. 쿠트조프 장군은 역사의 흐름을 따랐으며 하나님 편에 섰음. 야곱은 초반부 인생을 바로 나폴레옹 같은 삶을 살았음. 그러나 나중에는 후퇴하는 것조차 하나님의 뜻을 좆은 쿠트조프 같은 인생을 살았음.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가 나옴. 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왕과 살렘왕 멜기세덱이 맞이하였음.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노략한 물질은 네가 가지고 사람은 포기하라고 말하였음. 영혼 대신 물질을 추구하는 물질주의의 모습 보여줌. 그러나 살렘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음. 이는 “찬송할지라 네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라 영광 돌리라"는 뜻임. 신약에서 살렘왕을 구약에 등장하는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였음.

우리도 승리한 이후 두왕이 기다리고 있음. 소돔왕과 멜기세덱이 앞에 있음. 아브라함과 같이 멜기세덱 받아들여야 함.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살렘왕에게 드렸음. 십일조는 하나님 찬송하는 것의 표현임. 내 승리는 나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이며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표현임.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선언임.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임.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야곱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