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創造論]창조.신학.과학

갈릴레이에 대한 오해 (The Galileo 'twist')

好學 2011. 8. 3. 21:38

갈릴레이에 대한 오해 (The Galileo 'twist')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은 갈릴레이 시대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범했던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고 (창조과학자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크리스챤들에 의해) 자주 비난 당한다. 그 당시 제도권 교회들은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것으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 반대가 사실임이 갈릴레이에 의해서 밝혀진 후, 신자들은 성경 내에서 그들의 믿음에 어떠한 문제 없이 이 새로운 사실이 편안하게 수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갈릴레이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의 창조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과 오래된 연대의 지구를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야만 한다.

배경

2천년이 넘는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지구가 완벽한 우주의 중심이고, 별들은 끝없이 원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AD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천동설로 알려지게 된 생각으로 이것을 확장하였다. (아래의 박스 글을 보라). 그리고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는 지구와 행성들이 태양 둘레는 돈다는 더 나은 설명을 가정했다.1,2



17세기에, 갈릴레이(Galilei Galileo, 1564–1642)는 망원경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반박하고,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반복 가능한 관찰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태양의 흑점이 표면에서 움직이는 것을 관측하여, 태양이 완전하지 않으며 스스로 회전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는 금성의 상(phases)들을 관측하였고, 이것으로 금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음이 틀림없음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는 목성의 4개의 위성들이(지구가 아니라) 목성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618년에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투명 구체(crystalline spheres, 행성들과 별들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를 통해 쉽게 통과하는 3개의 혜성들을 관측함으로서, 이 구체가 상상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주었다.

태양중심설 또는 코페르니쿠스설(지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 당시의 천문학자, 철학자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갈릴레이의 글들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파괴하며, 적의를 가지고 반대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성경은 천동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갈릴레이의 주장은 성경과 모순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발견을 부인하기 위해서 갈릴레이를 죽음의 고통으로 밀어 넣을 만큼 맹렬히 반대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이것은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세계관의 과학적 기저를 이루고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이교 철학자들의 믿음 체계를 교리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의 지식을 평가하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갈릴레이가 반복적이며 과학적인 관측을 근거로 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관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와 같은 ‘소수의 견해’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

3. 그들은 성경이 지구 둘레를 태양이 돌고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한 몇몇 구절들을 성경에서 선택해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기록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실패했다. 모세가 “해가 돋았더라 (risen) (창19:23)” 그리고 “해가 진지라 (set) (창28:11)' 라고 기록했을 때, 그의 목적은 천문학적 관점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표현으로 언어를 사용하였다.3 그리고 가장 편리한 기준 틀(reference frame, 이 경우에서는 지구)로 상대적 운동을 기술하는 것은 물리학에서 완벽하게 유효한 것이었다. (다음의 글 Sunspots, Galileo and heliocentrism 을 보라)

그 이후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서 시의형태로 쓰여졌거나, 시가서의 구절들은 문학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 그들은 산문으로 쓰여 졌거나, 글자 그대로의 역사를 의미하는 성경의 구절들까지도 시로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교훈

창조과학자들은 교회가 17세기에 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실수를 (즉 성경이 사실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교회는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성경을 지지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아직도 권위적인 대중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갈릴레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실수로 성경이 지구중심설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할지라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한 다른 교리가 없었다.

이에 비해, 진화론은 기원에 대한 무신론적 설명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이론이다. 또한 하나님을 죽음과 고통의 저자로 만들고 있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창세기의 날들을 지구의 일상적인 날들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다른 많은 성경 구절들과 교리들을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녹색 식물들(창1:30), 안식일의 계명(출20:9-11),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19:4), 최초의 남자와 여자에 기초한 결혼에 대한 가르침(마19:3-9), 아담이 글자 그대로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15장)...등등

따라서, 갈릴레이로부터의 교훈은 교회가 진화론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론을 반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화론을 입증하지 못했고, 오히려 진화론은 과학에 반대됨이 입증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도 명백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 End notes : Thomas Schirrmacher 박사의 글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CEN Technical Journal 14(1):91–100, 2000 (download PDF file)”은 전설과는 반대로,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교회 공직자들에 의해서 매우 존중되어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오만, 동료들의 시기, 그리고 교황 어반 8세의 정책 등에 의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는 성경을 비판한다고 고소당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당했다. 또한 Danny Faulkner 박사의 글 Geocentrism and Creation 과 Q&A의 다른 글들을 참고하라 Q&A: Galileo and Geocentrism.

 


출처 : Creation 19(4):30–32, September 1997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4/galileo.asp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