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믿음(3) "믿음이란 작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다"

好學 2011. 8. 2. 21:22

믿음(3) "믿음이란 작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다"


Ⅰ.믿음이란 자극에 반응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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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김봉두”라는 영화가 있음. 돈을 좋아하는 선생이 있었는데 그러다 문제가 되어 산골로 전보조치되었음. 거기서도 돈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어 어린 학생 하나가 학교에 가지 않고 산에 가서 약초를 캐어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어 선생에게 드렸음.

이 상황이 된 선생이 “내가 언제 돈을 원하더냐”며 울며 회초리로 그 학생을 때렸음. 학생을 때렸지만 이는 자신에 대한 매질이었을 것임. 인간의 내면의 변화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음.

변화란 작은 자극에도 반응함을 이루어짐. 우리는 믿음이란 결과 뿐만 아니라 동기와 과정 등 모두 순수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 그러나 부족할지라도 자극이 올 때마다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믿음임. 사람들은 술자리에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음. 별로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임. 그

러나 교회에서는 완벽한 것을 기대함.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결과 못하는 것에  상처받기 쉬음. 로마서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은 기대할 것이 전혀없는 모습임. 믿음이란 깨끗한 동기와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님. 그렇고 그런 인간에 대해 하나님이 자극을 주셨을 때 바르게 반응하는 것임.

우리는 노아를 완벽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음. 창세기 6장 9절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말씀에 주눅이 들 수도 있음.그러나 로마서 3장 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음. 단지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반응했기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음.

누구든지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 노아는 포도주 먹고 옷을 벗어 던지는 술주정을 부렸음. 그 모습을 본 그의 아들 함이 그를 비난하자 노아는 다시 그 아들을 저주하였음. 이같이 둘이 서로 싸우는 모습 보여주고 있음.  노아도 이같이 죄인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임.

그러나 믿음이란 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임. 히브리서 11장 7절에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 물로 인간을 심판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였음. 홍수가 무엇인지 모르든 시절에 홍수로 인간을 심판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음. 그리고 지금 당장 심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120년 후 심판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이에 반응하였음. 그 말씀 믿고 방주를 준비하였음.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그때 그때 자극할 때 반응하는 것임. 전통적인 신앙적 표현으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

오늘 저녁예배에서 말씀을 전해 주실 최영기 목사님이 시무하는 휴스턴 침례교회에 세상적으로 아주 성공한 성도가 있었는데 최근 영적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함. 최 목사님이 어느 주일에 실물을 들고 설교하였다 함.  활짝 핀 장미꽂을직벚 들고 와 우리도 장미꽂처럼 가장 아름답고 전성기일 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이 더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는 설교를 했음.

이 말씀을 들은 그 성도는 자신도 인생의 가장 전성기인 지금 하나님께 헌신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변화하였다고 함. 이같이 믿음이란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는 것임. 쉽게 들을 수 있는 설교이지만 그는 자그만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었음.

볼티모어시 존스 홉킨스 병원에 아동병원이 있음. 그 앞에 “브룩스 라빈슨을 기념하여”라는 현판이 있음.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브룩스 라빈슨은 우연히 치료차 그 병원에 들렀다가 아동병원에서 암투병을 하고 있던 어린이를 조우하게 되었다 함.

그는 그 아이들을 격려하며 말하기를 “나는 멋지게 홈런을 치며 파이팅을 벌일 테니 너희도 암투병에서 멋지게 승리하길 원한다”는  격려의 말을 하였음. 그 약속 이후 그는 멋지게 경기하고 실력도 향상되어 오른 연봉으로 그 아동병원에 희사하였다 함. 브룩스 라빈슨도 우연히 그 병원을 지나가다 암투병하던 어린이를 보고 지나치지 않고 반응하였던 것임.

신앙이란 자연스러운 삶임. 내가 일하는 직업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그안에서 노력하는 것임. 선생 김봉두나 노아, 그리고 브룩스 라빈슨 이 모두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다 하나님 또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 사람들임.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가 이땅을 살아감에 있어 자극을 주실 때 정당하게 반응하여야 함.

그러면 자극에 반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반응이 없을 때는 죄의식,무력감,그리고 정서적인 죽음인 권태가 주어짐. 디모데전서 4장 2절에서는 이를 양심에 화인맞은 자라고 묘사하고 있음. 자극에 반응하지 않을 때 일상의 삶이 권태에 빠짐. “이상” 시인이 쓴 “권태”라는 시가 있음. “맛도 없는 밥알을 배에 집어 넣으며~~~”라고 쓰고 있음.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권태를 느끼게 만들고 있음.

그러나 사명을 가진 사람의 삶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 찬양하는 삶임. 그러나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권태와 죽음 그 자체의 모습을 보임.  우리는 하나님이 주는 여러가지 자극에 반응하여야 함. 살아 있다는 것은 젊음을 의미하며 운동하며 일어나는 것임.


Ⅱ믿음이란 열린 마음으로 사는 삶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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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당시 썪어빠진 인간들과 결코 분리되어 살지 않았음. 베드로후서 2장 5절에서 “이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말씀하고 있음. 그는 이같이 세상과 단절된 인생을 살지 않고 사람과 관계를 가지며 사람 속에서 살았음. 사람들이 “왜 방주를 만드는가?”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음. 그것이 전도임.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음. 이는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물어보게 하는 인생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음.

모든 사람이 원망하고 좌절할 때 우리는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함. 우리교회에서 간증한 이지선 자매가 3도 화상을 입고도 하나님 감사하며 기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 감사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 할 것임.

이같이 우리들도 세상사람들이 감사의 근거가 무엇인지 물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함. 성도의 삶은 기준 가지고 세상과 접촉하며 사는 삶임. 예수님은 모든 벽과 담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인데도 사랑을 나누는데는 실패하는 사람이 있음. 불신앙을 자기 성격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있음. 그러나 믿음이란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임.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옴. 제사장과 레위인은 닫힌 마음의 사람임. 누가복음 10장 34~35절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눈이 열린 사람이었음. 또한 그는 열린 가슴과 열림 발과 열린 손을 가진 사람이었음. 영어로 Open된 사람었음. 반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Close된 사람이었음.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바, 이는 열린 사람이 되라는 것임. 성격과 취미의 문제가 아님. 영혼의 햇빛이신 주님께 나아오는 것이 예배임.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는 인생 되어야 함. 그 결과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될 수 있음.

결론적으로 다시한번 요약하면 믿음이란 자극을 줄 때 반응하는 것임. 그 자극은 영화일 수도 있고 친구의 말일 수도 있고 질병이든 삶의 구체적인 문제일 수도 있음. 믿음은 이러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임.

또한 믿음은 닫힌 문을 여는 것임. 예수님도 담을 헐고 벽을 헐기 위해 이땅에 오셨음. 여러분들도 벽들을 넘어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