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믿음(1) "건강한 믿음은 어울리는 믿음이다"

好學 2011. 8. 2. 21:20

믿음(1) "건강한 믿음은 어울리는 믿음이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말함.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 보기로 함. 오늘은 그 첫번째로 아벨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 살펴 보기로 함.

믿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임. 그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특징은 어떠한지 보기로 함.


Ⅰ.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에 순종하는 것
-----------------------------------

창세기 4장 1절에서 5절에 걸쳐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기사가 나옴. 가인과 아벨은 모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으셨음. 둘다 제사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은 당시 제사에 대한 공유된 지식이 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음.하나님은 제사에 대한 규례와 기준을 이미 가르쳐 주셨음.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며 제사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음.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였느니라" 며 피가 죄를 사함을 말씀하고 있음.

이같이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함.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도 짐승의 희생을 의미하며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뿌려졌을 때 죽음이 그 집을 넘어갔었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음. 이같이 구원은 피흘림이며 이것없이는 구원이 없음.

로마서 10장 2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고 있는바, 다같이 들었으나 아벨은 순종했고 가인은 순종하지 않았음.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결과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은 불순종했기에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않았음. 가인은 자기 방식 자기 기준 붙잡는 결과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셨음.

가인은 피흘리는 것만이 제사가 아니디고 생각하여 피흘리는 제사의 불합리를 생각했을 수도 있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방식은 불합리하다는 생각하고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였음.

내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과의 싸움에서, 유혹이란 하나님의 방식 버리고 좀더 합리적인 방식 택하라는 것임. 그래서 사탄은 내용없는 믿음을 강조하여 무엇이든 믿기만 하면 된다고 우리를 유혹함. 21세기 최고의 창작품은 종교 다원주의임.이는 어떤 종교이든 진실하게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주장함. 종교 다원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미래의 해결 같아 보임.

그 내용을 보면,

먼저 관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음. 그래서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다원주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함. 일견 성숙된 모습같아 보임.

다음으로 우리 조상들의 구원에 관한 문제임. 예를 들어 고려시대 우리 조상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었는데 불교든 유교든 잘만 믿었다면 구원이 주어졌다고 주장함.

마지막으로 다원 가치와 상호 부응함. 그래서 절대가 어디 있느냐?며 모두가 맞다고 주장함.

이상의 종교 다원주의의 주장은 기준없는 믿음이며 내용없는 믿음으로서 사기에 불과함. 이는 약장사가 이 약을 먹으며 모든 병이 낮는다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것과 같음.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음. 십자가의 유일성, 예수님의 유일성을 말씀하고 있음.

참된 영과 적그리스도의 구분 기준은 그리스도를 시인하느냐 않느냐임. 그런데 종교다원주의는 시인하지 않음. 우리는 십자가의 유일성을 시인하는 기준 잡아야 함.

기준 붙잡고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순종하는 것임. 출애굽기 14장 15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라고 말씀하시며 순종하라!  action하라! 명령하셨음.

교회에서 예배하고 말씀 듣는 것은 기준 듣는 것임. 이는 신앙을 배우는 것임. 배웠으면 다음은 신앙 "생활"하는 것임. 신앙"생활"은 직장과 캠퍼스라는 삶의 터전에서 행하는 것임, 이같이 신앙"생활"하는 것이 믿음임.

기준듣고 삶의 터전에 나가 순종하는 것이 믿음임. 예배를 통해 기준을 듣고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람.


Ⅱ.어울리는 태도 가지는 것
-------------------------

창세기 4장 9절에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함. 하나님이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은 것은 가인의 죄를 물은 것임. 이때 그는 회개했어야 했음.그런데 그는 거짓말하고 반항하고 빈정대었음.

우리 가운데도 이런 사람 있음. 자기 방어하고 벽을 쌓는 사람임. 이런 사람과는 진실을 나눌 수 없음.  빈틈없고 완벽한데 기쁨이 없고 생명이 없는 사람임. 자기 방어적인 영성은 바리새주의이며 정죄하는 사람임.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음. 문제를 끌어내고 문제를 품고 문제를 해결하셨음. 예수님은 정답권을 버리고 창기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셨음. 그러나 바리새인들과는 어울리지 않으셨음.이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가짜였기 떄문임.

내가 내 자신이 될 때 어울릴 수 있음. 예배는 나의 죽음을 의미함.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 그런데 우리와 어울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종의 형체로 오셨음. 어울리기 위해서는 죄인의 자리로 내려와야 함. 성육신은 어울리는 영성이 되라는 말씀임.

믿음이 좋아지면 기준 붙들고 순종하게 됨.그리고 믿음이 좋아지면 또한 어울림이라는 인간적인 매력이 생김. 잘 어울리고 낮아지고 그래서 본연의 나의 모습이 됨.

기준 붙잡고 순종하며 가식 버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런 믿음의 회복이 있는 성도가 되기를 기원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