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첩보원' 박지원

好學 2011. 7. 23. 22:51

[만물상]'첩보원' 박지원

 

 

 

조선은 황금이 풍부해 옷 장식까지 금을 입힌다. 장례식은 매우 호화롭고 부장품을 많이 묻는다.’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 뒤 알드가 1741년에 쓴 ‘조선전(傳)’은 조선을 황금이 넘치는 나라로 소개했다. 서구 모험가들에게 약탈의 유혹을 일으킬 내용이었다.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 도굴을 시도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훗날 여행기를 쓰면서 뒤 알드의 기록을 숱하게 인용했다. 신부들의 선교여행을 위해 쓴 책이 도굴범을 부르는 ‘첩보’가 된 셈이다.


▶1884년 영국 영사로 부임한 칼스는 본업인 외교활동보다 평안도와 함경도, 강원도의 지하자원을 탐사하는 데 열을 올렸다. 45일 동안 1200㎞를 답사한 적도 있었다. 미국공사관 무관 버나도, 독일공사관 곳체 박사도 광산과 식물자원을 조사한다며 전국을 뒤졌다. 외교관들이 수집한 자원 정보는 조선 약탈의 ‘보물지도’가 됐다.


▶’벽돌 가마는 쇠북을 엎어 놓은 형상인데 나선형으로 만들었다. 연기가 나오는 굴뚝은 그 정수리 부위에 내놓았다.’ 박제가는 1778년 첫 중국행인 연행(燕行)길에 벽돌공장을 찾았다. 그는 공장 주인을 취재한 끝에 가마에서 한번에 벽돌 8000~9000개를 구울 수 있고 여기엔 수레 두 대분 수수깡이 든다는 ‘계산서’까지 뽑았다. 박제가의 ‘북학의’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구체적으로 담은 보고서였다.


▶’북학의’처럼 중국을 방문한 조선 사신 일행이 남긴 여행기는 200편이 넘는다. 북학파 선구자 홍대용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1765년 북경의 남(南)천주당을 찾은 그는 파이프오르간에 눈길을 뺏겼다. ‘쇠통 50~60개를 장단(長短)이 층층하도록 가지런히 세웠는데 모두 백철(白鐵)로 만든 통이고 대금 모양이었다.’ 얼마나 꼼꼼히 살폈던지 ‘나라의 명령만 있으면 파이프오르간을 직접 만들 수 있다’고까지 했다.


▶엊그제 국정원이 공개한 안보전시관은 중국 문명기행문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을 대(對) 중국 정보수집활동을 펼친 ‘첩보원’으로 소개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숨겨 들여온 것은 ‘산업기밀 수집 성공사례’라고 했다. ‘억지 춘향’ 격으로 갖다 붙였다는 인상이 앞서 조금은 우습다. 박지원과 문익점이 이 말을 들으면 ‘고얀 놈들’이라고 호통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진문물을 하나라도 더 배우고 빼내 나라를 살찌우겠다는 옛 사람들의 열정을 되새기는 기회는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