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日常 기록의 힘

好學 2011. 7. 23. 22:48

[만물상] 日常 기록의 힘

 

 

 

쌀 한 가마 요즘 돈으로 76만원, 관상 보는 값 4만원, 군수자리 사는 뇌물 2억6400만원…. 110여년 전 한양(漢陽)의 사회상과 서민 일상을 보여주는 일기가 번역 출판됐다. 그릇을 납품하던 지(池)씨 성의 공인(貢人)이 인사동 등지에서 하숙하며 겪은 일과를 꼼꼼히 써둔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총각 처녀들이 청계천에 쏟아져 나와 고성방가하는 행태도 있다. 근세사에 또 하나 귀중한 자료로 주목된다.


▶1941년 30대 사내가 과수원 언덕배기에 기름종이로 싸 양철통에 밀봉한 신문 스크랩북 7권을 파묻었다. 1930~1940년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사모음이었다. ‘명년(明年)에 만호(萬戶) 이민’이라는 조선인 강제이주 기사 곁에 이 인물은 “몰린다, 쫓긴다, 이 백성은… 제 정신만 남아있다면야 그 아니 소망을 이룰까”라는 주석을 달아놓았다. 무명의 이찬갑(1904~1974)이 엮은 스크랩북이다. 이런 역사의식과 기록정신이 두 아들 이기백과 이기문을 빼어난 역사학자·국어학자로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하찮아 보이는 기록도 쌓이면 역사가 된다. 난중일기, 매천야록, 백범일지 같은 명망가의 기록도 있지만 때로 이름없는 서민의 기록이 정부문서보다 더 빛을 발한다. 달력에 적은 메모, 시시콜콜한 가계부, 연인끼리 주고받은 편지들이 훗날 모두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


▶기록을 하는 데엔 열정과 인내가 필요하다. 러시아 과학자 알렉산드르 류비셰프는 1916년부터 죽는 날까지 5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메모하고 일기를 쓰면서 일정을 철저히 관리했다. 보고서 작성 6시간25분, 참고서 읽기 55분, 학술 메모 3시간25분 식으로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갰다. 1939년 말엔 ‘계획의 28%가 미진했다’고 결산하고 ‘사람들과 접촉이 너무 많았다’고 반성했다. 이렇게 해서 평생 79권의 책과 1만2500장의 원고, 1만3000마리의 곤충표본을 남겼다.


▶이렇게 훗날 역사연구에 기여까지는 못한다 해도 일기 쓰기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어렸을 때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나이 들면 화살처럼 날아가는 것은 기억능력과 관련이 있다. 흩어져 사라지는 나날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노년에 돌이켜볼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생을 몇 곱절 더 사는 셈이 된다. 무엇을 쓰느냐고? 로마 문인 플리니우스 2세는 말했다. “너는 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쓸 일이 없다는 것을 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