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피플 파워 피로症’

好學 2011. 7. 23. 22:49

[만물상]‘피플 파워 피로症’

 

 

 

“총칼 앞에 분연히 일어선 조선인들을 보라! 우리는 이렇게 앉아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경만 할 것인가.” 중국 지식인 진독수(陳獨秀)는 1919년 3월 정치평론지 ‘매주평론’에서 “3·1운동이 세계 혁명사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며 중국인의 무기력을 한탄했다. 두 달 뒤인 5월 4일 베이징 대학생 3000여명이 천안문광장에서 터뜨린 항일운동은 전국으로 번졌다. 3·1운동은 중국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꼽히는 5·4운동의 한 발화점이었다.

 

▶1986년 필리핀 민중은 20년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내고 코라손 아키노를 새 지도자로 세웠다. 당시 한국 신문들은 부러움을 담아 필리핀 ‘피플 파워’를 크게 보도했다.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간접 비판이었다. 이듬해 6월 항쟁은 필리핀 ‘피플 파워’가 빚어낸 시대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아시아의 대중운동은 서로 힘과 용기를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필리핀 ‘피플 파워’가 또다시 꿈틀대고 있다. 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민중 시위가 2차 ‘피플 파워’였고, 이번 3차 ‘피플 파워’는 2차 ‘피플 파워’로 대통령이 된 아로요가 청산 대상이다. 아로요의 우상인 아키노까지 부정선거와 비리로 궁지에 몰린 아로요에게 등을 돌렸다고 한다.

 

▶‘피플 파워’의 한계는 필리핀 정치가 몇몇 대지주 가문끼리 정권을 주고받는 ‘그들만의 게임’이라는 데 있다. 아로요는 1960년대 대통령을 지낸 마카파갈의 딸이다. 아키노도 마르코스도 정치명문 출신이다. 배우 출신인 에스트라다가 취임 초기 농민과 빈민층에게서 받았던 폭발적 지지는 정치명문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 에스트라다도 필리핀의 고질병 부패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20년에 걸쳐 반복되는 필리핀의 정치 혼란은 이제 ‘피플 파워 피로증(People Power Fatigue)’이라고까지 불린다. ‘피플 파워’를 보는 바깥 세상의 시선이 그만큼 차갑다는 얘기다. ‘피플 파워’는 민주적으로 뽑힌 대통령을 시위로 쫓아내는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필리핀은 60년대 한국이 따라잡아야 할 경쟁 상대였다. 한때 우리가 부러워했던 ‘피플 파워’마저 퇴색한 채 제자리 걸음을 하는 필리핀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자니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