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37과 신명기(5): 모세의 두 번째 설교(4)(19-26장) 7

好學 2011. 5. 2. 21:22

제37과  신명기(5): 모세의 두 번째 설교(4)(19-26장) 7

 

 

4. 사랑, 자연 질서 준수, 성적 순결에 대한 규례들(22:1-30)

 4-1. 이웃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1-4)


  이스라엘은 주로 가축들을 방목(放牧)을 했기 때문에 양들이 무리를 이탈하여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삼상 9:3). 이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못 본 체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이 말은 이웃의 곤경이나 손해를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길 잃다'(나다호)는 말은 본래 '미혹되다'는 뜻으로, 외부의 힘에 의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발생하는 방황을 말한다. 성경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할 것을 명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성도들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이 곧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약 4:17). 길 잃은 양을 찾아서 돌려주라고 한 명령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모세 법전은 이처럼 적극적인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까지도 성문법(成文法)으로 명시하고 있다.

 

  만일 잃은 양의 주인을 알지 못할 때에는 그들을 집으로 끌고 가서, 보관하였다가 그 주인을 찾게되면 그때에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이 말은 가축의 주인을 모를 때에라도 가능한 원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것이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습득자는 대중이 모여드는 공공 장소에서 그 물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너 차례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그 결과 원주인이 나타났을 경우, 그에게 습득물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백방으로 노력해도 결국 원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원칙상 습득자가 그 물건을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난한 자에게 주었다. 여기서 '나귀'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대표하고, '의복'은 생명이 없는 모든 물건을 대표한다. 따라서 이것들은 '이웃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귀나 소는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며 수레를 끌고 기타 농사일에 사용되는 모든 가축을 대표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 적 용 >
1. 하나님은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본문의 예는 그 정신과 원리가 잘 나타나있는 규례이다.    
2. 하나님은 부정적으로 죄를 짓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선을 행할 줄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고 한다.
3. 하나님은 이웃들이 서로의 생명과 그 밖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관심을 갖고 서로 도우며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만일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4-2. 자연 질서 준수에 대한 규례들(5-12)

 
<사례 1> 남녀의 의복을 바꾸어 입지 말라(5).
  남녀가 의도적으로 의복을 바꿔 입는 일은 남녀를 구분하여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혹자는 주장하기를, 이처럼 남녀가 의복을 바꿔 입는 풍습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는 없던 것으로 후대 가나안 인들의 풍습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한다(Spencer). 여기에서 말하는 의복(켈리)은 '준비하다'는 뜻의 '카라'에서 파생된 말로, 곧 '준비된  어떤 것'을 의미하며 이 말은 단순히 옷뿐만 아니라 각종 장신구(accessory)나 기구, 그릇 따위 등의 모든 기물을 일컫는 단어이다. 또한 '가증하다'에 해당하는 '토에바'는 특히 우상 숭배 행위와 관련하여 몹시 혐오스러운 것, 구역질나는 것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서(7:26;18:9), 하나님께서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우상숭배만큼이나 싫어하고 역겨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적   용>
1. 하나님께서는 남녀가 창조 원칙을 따라서 경건하고 구별되게 살기를 원하신다.
2. 무엇에든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리를 바꾸거나 거스리는 일은 악한 일이다.

 

 <사례 2> 어미 새와 알을 동시에 취하지 말라.(6-7)


  이것은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새를 지으신 것은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새에 대하여 잔인하게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으니, 곧, 이와  같은 법규는 사람들에게 자비의 덕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자연계를 정복하고 주관할 수 있는 특권이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 할지라도(창 1:28),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근거하여 자연계를 관리하고 보전해야 한다(출 23:19; 레 22:18). 그러므로 본 규례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 두 가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거해 살아가는 인간은 그 은혜를 또한 자연계에 돌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인해 동물계에 형성되어 있는 어미와 자식간의 사랑 어린 애정 관계는 신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계에 대한 자비를 베풀 때에 부모 공경을 할 때에 주시겠다고 하셨던 축복인 장수의  축복(5:16;출20:12)을 약속하셨다. 자연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곧바로 인간의 복지와 연결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연계를 잘 돌볼 때에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피조물인 우리들을 자비롭게 대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적 용 >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연계에 대하여 사랑과 애정으로 대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계에 대하여 자비롭게 대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자비롭게 대해 주신다.
2.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거나 자연에 대하여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와 같이 자연을 잘 돌보아야 한다.
 

 

 <사례 3> 집을 건축할 때의 유의사항(8-).
  팔레스타인의 가옥은 대개 지붕이 슬라브 형식으로 평평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지붕은 종종 휴식이나 취침, 또는 기도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삼하 11:2; 느 8:16; 행 10:9). 따라서 자칫 실수할 경우에는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떨어질 위험성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지붕에 난간을 설치하라고 지시하셨다. 결국 이 규례는 자신의 사소한 부주의나 태만, 또는 실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을 말한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난간의 높이는 대략 1m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매우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는 매사에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 적 용 >
*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귀중히 여기시며, 우리가 부주의하여 남의 생명에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피의 대가를 우리에게서 찾으신다.

 

 <사례 4> 혼잡하게 하는 것의 금지(9-11)


  하나님께서는 한 밭에 두 종자를 함께 뿌리는 것이나. 소와 나귀를 함께 겨리 하는 일이나, 양털과 베실을 섞어서 짠 옷을 입지 못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둘 다 얻기 위하여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둘 모두가 혼잡케 되어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상태가 순수하게 유지되길 원하신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으로 적용하면, 성별(聖別)된 공동체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는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생활 속에서 원형(原型) 그대로 유지시켜 나가되, 이방의 이교(異敎)적 풍습과 타협하여 그 신앙의 순수성이 혼합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레 19:19). 혹자는 이러한 풍습은 고대 가나안인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것이라 한다(Lange).  또한 소와 나귀는 보폭과 힘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짐승을 한 멍에에 묶는다면 상당한 부조화를 초래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신자가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고전 7:14-16).

                                     < 적  용 >
1.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유지하시기를 원하신다.
2. 신자는 불신자와 함께 결혼하거나 귀신을 섬기는 이방인과 타협하여 같이 일을 하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  

  

 <사례 5> 겉옷에 술을 만들라.(12)


  히브리인들의 겉옷은 대개 통으로 되어있고, 그 앞뒷면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네 개의 모서리(귀)가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네 모서리(귀)에 '술'(fringes)을 달도록  지시하셨다. 이처럼 겉옷 네 귀에 술을 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앞에서 거룩하게 살 것을 다짐하는 일종의 의식(儀式) 행위였다. 왜냐하면 겉옷에 다는 '술'은 한 눈에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임을 나타내 주며, 또한 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민 15:38-40). 한편 후대 유대인들은 8가닥의 실을 5개의 매듭으로 묶어 이 술을 만들었는데, 이는 13이라는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각 문자마다 고유 숫자(number)를 갖고 있는 히브리어에 있어서, 이 '술'을 뜻하는 '치치트'는 그 합계 수치가 600이다. 그러므로 '술'의 모양과 '술'이란 문자가 지닌 상징적 숫자를 합한 수는 모세 율법의 총 조항수인 613과 일치한다. 이것은 분명 그 옷 술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맞춘 것임에 틀림없다. 훗날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은 '술 의식'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옷 술을 크게 만들어 달고 다님으로 예수의 책망을 면치 못했다(마23:5).

                                     

 < 적 용 >
* 하나님께서는 의복의 제작에 있어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한 표시를 달라고 함으로서, 매사에 여호와를 경외할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