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37과 신명기(5): 모세의 두 번째 설교(4)(19-26장) 3

好學 2011. 4. 29. 21:43

제37과 신명기(5): 모세의 두 번째 설교(4)(19-26장) 3

 

2. 전쟁에 대한 규례(20:1-20) 

 

2-1. 전쟁에서 제사장의 역할(1-4)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나라로서 지켜야 할 전쟁에 대한 원칙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신정국가의 공의는 나라 안의 형사법의 실시에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경 너머 나라와의 전쟁 수행과정에 있어서도 지켜져야 한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할 때에도 제사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2-). 본문에서 말하는 제사장은 제사직만 수행하는 일반 제사장과는 달리 비느하스(민31:6)처럼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참여하는 제사장을 말한다. 이는 오늘날의 군목(軍牧)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유대 랍비들은 이를 가리켜 특별히 '전쟁을 위해 기름 부음 받은 자'(메쉬아흐 함밀하마)라고 불렀으며, 대제사장 다음 가는 높은 작위를 주었다(Talmud, Keil). 이들의 일은 전쟁터에 나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군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3,4절)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이었다(Pulpit).

  이스라엘의 전쟁은 자신의 영토확장이나 사적인 이권다툼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의를 위해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원칙상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었다(1,4,13).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대적은 항상 하나님 나라의 원수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편에 서셨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은 대적의 군대가 많고 강해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겁내다'('라카크')는 말은 원래 '부드럽게 되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어떤 현상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상태를 말하며(왕하 22:19), '두려워하다'('야레')는 말은 어떤 대상에게 압도되어 그를 숭상할 정도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말한다. 또한 떨다'('하파즈')는 말은 갑작스레 나타난 대상을 보고서 갖는 순간적인 공포를 의미하며, '놀라다'('아라츠')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꺾이는 상태를 가리킨다(NIV).
 

 2-2. 전쟁 면제자에 대한 규례(5-9)
  둘째로 여호와의 군대는 전적으로 그 일에 전심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전심하지 못할 사람들을 제외시키셨다. 본문에서 제시된 군대 복무 면제 자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새 집을 건축하고 미처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5절).
 2) 포도원을 만들고 미처 그 소산을 먹어 보지 못한 자(6절).
 3) 여자와 약혼하고 미처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한 자(7절).
 4) 그리고 겁이나 두려움이 많은 자들은 아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켰다(8절).

  한마디로 이들 모두는 전쟁을 위해 전력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수효에 관계없이 자원자들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이스라엘의  전쟁에서의 승패는 사람의 힘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이스라엘은 군사들의 수효가 적을지라도 문제도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찾는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기드온의 군대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삿 7장). 이 말씀은 신약 시대의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예수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눅 9:62, 마8:20-22)


 2-3. 일반적인 전쟁 규례(10-15)
  하나님께서 주신 전쟁에 대한 세 번째 규례는 평화의 원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위해서 인간들을 심판하시기는 하지만 아무도 형벌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어서 뉘우치고 돌아오면 항상 그들을 용서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대적을 치기 위하여 그 성에 갔을 때에 먼저 그들에게 전쟁을 하지 말고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라고 하셨다. 만일 거기에 적국이 화친을 청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싸우지 말고 그들을 용서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제의를 거절할 때에는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셨다.     


 2-4.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규례(16-18)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만은 모두 다 죽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멸종을 선언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민족들이 멸절 되어야 하는 이유는 정당했다. '기업'이란 말은 '물려받다'는 말의 '나할'에서 파생된 말로 '유산', '상속물','점유물' 등을 뜻한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언약(창12:7)을 따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유산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고 하신 것은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이다.

 1) 가나안 족속은 갖가지 극심한 죄악으로 인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멸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작정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9:4,5; 창 15:16).
 2) 가나안 족속은 특히 가증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남겨 둘 경우,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3) 가나안 땅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거룩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세우기로 작정한 성별(聖別)된 곳으로서, 그 곳에는 어떠한 죄악의 요소도 남겨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2-5. 필요 없는 자연 파괴 금지(19-20)
  이스라엘은 성읍을 진멸시키기 위한 전쟁이라 할지라도 필요 이상의 파괴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열기 속에서도 나무를 함부로 베는 것을 금지하셨다. 비록 전쟁에 있어서는 노략질 강탈이 합법적이지만, 이스라엘은 전쟁 중에서도 할 수 있는 한 미래를 위해 황폐하지 않도록 배려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원수들로부터 물건은 빼앗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나무는 오래 있어야 열매를 맺기 때문에 후손을 위해서 해치지 말고 남겨두라고 지시하셨던 것이다. 또한 아무에게나 공격받도록 노출된 나무를 마치 사람을 상대하여 싸우듯이 싸워서는 안된다. '마초르'는 포위보다는 방벽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하는 나무를  칼을 들고 가서 힘 자랑하는 사람들의 우매와 광기를 간접적으로 꾸짖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과실나무가 아닌 것은 잘라서 방벽, 방어 울타리 및 포위용 기구를 만들 것을 허용하되, 일시적인 전쟁의 열기 때문에 그 땅의 과목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셨다. 하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과실  나무도 베는 것을 완전히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증오와 분노의 충동에 이끌려 모든 것을 파괴하고 황량하게 만드는 것을 견제하고 있을 뿐이다(칼빈).

                                   

 < 교 훈 >
1.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쟁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2.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나 의를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편에 있기 때문에 대적들의 숫자나 강함을 보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3.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있어서 전심을 다해 헌신하는 자들을 원하신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원하는 자들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죄인도 형벌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회개의 기회를 끝내 놓쳐버리고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공의대로 처벌하신다.
5.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전쟁에 있어서도 필요 없는 자연 훼손을 금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