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36과 신명기(4): 모세의 두 번째 설교(3)(12-18장) 7

好學 2011. 4. 23. 20:59

제36과  신명기(4): 모세의 두 번째 설교(3)(12-18장) 7

 

 4. 면제의 해와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초태생 가축의 구별(15:1-23)

 4-1. 면제년의 규례(1-18)

 * 면제년의 규례(1-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칠 년에는 빚은 진 형제들에게 강제로 빚을 독촉할 수 없었다. 이 해는  '안식년'(安息年,the Sabbatical  year)이라고 불렀으며, 땅을 경작하지 않고 묵혀 두었다(레 25:4,5). 채무면제(債務免除)의 규례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부채의 완전 탕감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Lange, Matthew Henry). 둘째, 안식년에만 국한된 빚 독촉의 면제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Philo, Calvin, Keil,  Pulpit  Commentary). 전체적인 내용들을 고려해 볼 때에 두 번째 견해가 훨씬 받아들이기가 쉬운데, 그 이유는 매 안식년마다 모든 채무가 완전 탕감되어 버린다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게 때문에 금전을 빌려주는 일이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면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어근 '솨마트'는 '쉬게 한다', '묵여 두다'(출23:11)는 뜻으로 어떤 일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시적인 중단을 의미하고 있는 말이며, '그것을 면제하고...독촉하지 말지니'(2절)라는 말도 빚 탕감보다는 오히려 그 해당 연도에 빚 독촉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지지해 주고 있다. '독촉하다'에 해당하는 '나가스'는 '거세게 몰아치다', '강제로 징수하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면제년'은 직역하면 '여호와를 위한 면제'이다.

이는 곧 안식년(安息年)동안 백성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빚 독촉을 면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근거한 것으로서,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안식년의 채무 면제 기능에서부터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이란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는 안식년에도 빚 독촉하는 것을 허용하셨다(3). 여기에서 '이방인'에 해당하는 '노크리'는 '게르'(출 12:49)와는 달리 이스라엘과는 종교적으로 전혀 무관한 순수 외국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의 율법과는 무관하게 안식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여 계속 소득을 거두어들이는 자들이었으므로(Keil), 안식년 채무 면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예외 규정이 내려진 이유는 율법을 무시하는 자들이, 안식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 특권을 자기 선민에게만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면제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규례를 지키면 가난한 자가 없게 하며, 꾸어줄 것이 있고, 다른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대로 지켜 행한 사람들에게 크게 축복하실 것이다(4-6). 칼빈은 문장을 더 간단하게 하는 뜻에서 (에페스 키)라는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희 가운데 거지가 생기는 것을 허용치 말아라"고 해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이 규례를 지키지 않게 될 몇 가지 사례들을 제시하셨다. 첫째로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손을 움켜쥐는 일이 금지되었다. '강팍히 하다'('아마츠')는 말은 '요새화 하다', '완강하게 하다', '딱딱하게 하다'는 뜻으로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심을 고의적으로 억제하여 마음을 굳게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손을 움켜쥔다'는 말은 이웃에게 동정의 손길을 베풀기를 거절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마음을 강퍅히 한 결과이다. 모든 재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채 자신의 재물을 움켜쥐는 완악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악한 마음을 품고 면제 년이 되었다고 형제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된다(9절(상)).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안식년 제도를 기뻐하지 않는 불 신앙이다. 채권자가 빚을 받지 못하고 마침내 안식년이 되어 탕감해 준다고 해서 그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가난한 자가 여호와께 호소할 것을 기억해야 했다(9절(하)). (잠 21:13)는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다. 셋째로 그들은 인색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10).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형제들이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주라고 하셨는데, 넉넉히 꾸어 주라는 말은 부족함을 충분히 채워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라는 뜻이다. '아끼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상하게 하다', '괴롭히다', '상처 입히다'등의 뜻이다. 이는 구제하면서도 자신이 큰 손해를 본다는 식으로 언짢아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됨을 시사해 준다. 진정한 구제의 자세는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9절)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에서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다(고후 9:7). (잠 11:24)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하였다. 도한 그들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11). (잠 22;2)에는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다.

 

 *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12-18)


  면제년에는 종 되었던 자들이 해방되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된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종이 된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마땅했다(출22:21; 23:9; 레19:34). 그러나 히브리 종들 중에 주인의 호의를 입어 결혼함으로 처자(妻子)를 거느리게 된 사람들은 면제년에 자유의 몸이 되기를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해방되면 사랑하는 처자는 주인의 소유이므로 두고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출 21:4-5). 이 경우에 주인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종을 재판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 사실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그 종의 귀를 주인집의 대문이나 기둥에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었다. 이는 귀를 예속과 복종의 기관으로 간주했던 고대 근동의  관습으로, 이 의식은 이제 그 종이 주인과 주인의 집에 영원히 예속(隷屬)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이러한 의식(儀式)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잔인한 의식으로 보일 지 몰라도 당시의 관점에서는 결코 잔인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다른 이방 족속들은 노예를 자신의 소유로 삼을 때, 이마나 어깨에 화인(火印)을 새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종들은 대개 귀걸이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귀에 구멍을 뚫는 것은 그토록 고통스런 행위는 아니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이 의식을 치른 후 그때 사용한 송곳을 주인집의 문이나 문설주에 꽃아 놓음으로써, 그 종이 죽을 때까지 그 집의 종임을 가시적(可視的)으로 입증하였다.

 

  여종이 아내나 첩으로가 아니라 단순하게 일만 하다가 제 7년을 맞이한 경우에 남종과 마찬가지로 해방될 수 있었다. 집주인이 남종이나 여종을 놓아주는 것은 수리적(數理的)으로 따져 보아도 마땅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해진 낮 시간에만 일하는 품꾼에 비해 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기 때문에, 품삯으로 계산하면 동일한 임금을 받고도 품꾼의 두 배 이상의 일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약 주인들이 그들의 노예를 마지못해 해방시킬 경우, 그들의 인색하고 천박한 교만을 꾸중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교 훈 >
1. 하나님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답게 형제의 빚에 대해서도 관대함을 보일 것을 요구하셨다.
2. 자원하는 종은 그 집에서 평생 거할 수 있었는데, 사도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던 것이 이러한 종의 원리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면제년에 형제에게 악한생각이나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하나님은 금지하셨다.

 

4-2. 초태생 가축의 구별(19-23)


  초태생은 난지 8일 이후부터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초태생을 중앙 성소에서 하나님께 화목 제물로 드린 후에, 제사장의 몫(레 7:30-34)을 제외하고 경배자가 가족과 더불어 성소 뜰에서 먹으라고 지시하셨다(20).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법을 제정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의 장자들과 처음 난 짐승들을 살려 주셨기 때문이다(출 11:4-7, 12;29-30). 그 때에는 제물의 고기를 회막 뜰에서 먹었는데, 그 먹는 것도 역시 제사 의식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속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에 대한 상징이었다(레  6:16, 7;15-18). 비록 초태생이라도 흠이 있는 경우에는 제물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식용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피'는 속죄(贖罪)의 상징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이러한 최고의 종교적 성물(聖物)인 피의 식용(食用)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기는 자는 극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창 9:4,5; 레 7:27;17:10). 짐승의 피를 마치 물을 쏟아 붓듯 땅에 쏟아야 할 이유는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본래 그 생명이 비롯되었던 흙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며(창 3:19; 전3:20),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교   훈>
1.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2.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하며,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