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22. 산업혁명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

好學 2011. 4. 10. 23:07

22. 산업혁명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신석기혁명 이래 최대의 변화를 경험했다. 농업사회를 벗어나 산업사회가 되면서 인구가 늘고 자본가(資本家)와 노동자(勞動者)라는 새로운 계급이 나타나 충돌했다.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콜베르는 프랑스의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곳에 공장을 세웠다. 수백 명의 수공업자들이 공장에 모여 양탄자, 실크, 벽지, 도자기를 만들었다. 반면 전통적인 수공업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 했다. 옷 한 벌을 만들 때도 치수를 재고 옷감을 자르고 꿰매고 안감을 대는 일을 모두 한 사람이 했다.
 
공장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나누어 했기 때문에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國富論)>에서 바늘공장을 예를 들어 분업(分業)의 효율성에 대해 설명했다.
 
『솜씨가 서툰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에 기껏해야 바늘 한 개를 만드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바늘공장에서는 노동자 열 명이 같은 시간에 48,000여개의 바늘을 만든다. 한 사람당 4,800개의 바늘을 만드는 셈이다. 이 공장에서는 바늘 만드는 일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노동자들이 각각 한 단계씩 맡아서 일한다. 첫 번째 사람은 철사를 가져오고 두 번째 사람은 철사를 똑바로 펴고, 세 번째 사람은 철사를 자르고, 네 번째 사람은 철사 끝을 뾰족하게 하고, 다섯 번째 사람은 바늘귀를 만들 수 있도록 윗부분을 뭉툭하게 간다.』
 
작업을 분리하고 전문화함으로써 노동자 한 사람의 생산력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처럼 초기의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분업만으로도 전통적인 수공업적 제조방식보다 훨씬 빠르게 많은 물건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에 기계(機械)가 도입되면서 제조방식에 혁명이 일어났다.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大量生産)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인간은 동물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 인간은 곰보다 약하고 사슴보다 느리며 고양이보다 민첩하지 못하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어 자연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줄 알았다. 인간은 황소로 쟁기를 끌었고 말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했고 바람과 물의 힘으로 방앗간과 제분소를 움직였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통해 얻는 힘은 말과 황소의 힘이나 물레방앗간의 물줄기처럼 제한적이었다. 더욱이 말과 소 같은 가축은 사료가 부족해 많이 기르기 어려웠다. 사람이 먹을 밀을 키우는 땅에 말을 먹일 귀리를 심을 수는 없었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나 소는 지속적으로 많은 원료를 주어야 힘을 얻는 ‘살아 있는 기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가축에게 줄 먹이를 기를 땅이 없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기계를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1765년에 영국인 제임스 와트가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蒸氣機關)’을 발명했다. 와트는 원래 있던 증기기관의 약점을 보완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증기기관은 석탄으로 물을 끓여 증기의 힘으로 증류기를 움직였고, 증류기는 피스톤을 작동시켜 연결된 바퀴를 구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증기기관을 이용해 광산에서 석탄을 캐고 실을 만드는 방직기와 옷감을 짜는 역직기를 움직였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신석기혁명 이래 최대의 변화를 경험했다. 유럽에서는 농업사회를 벗어나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인구가 늘고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다.
 
1810년경 영국 랭커셔의 고장에 처음으로 실을 뽑아 천을 짜는 방직기계가 들어왔다. 기계를 쓰려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인건비를 줄이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값을 지불하고 기계를 사야 했다. 즉 공장주는 기계를 사서 물건을 생산해 팔기 위해 먼저 많은 돈, ‘자본(資本)’이 있어야 했다. 이렇게 산업혁명 시대에는 돈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자본가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자본주의(産業資本主義)’가 확립되었다.
 
초대형 직물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온 도시가 공장지대로 변했다. 공장 근처에는 새로운 마을이 생겨나 농촌에서 온 사람들을 흡수했다. 랭커셔의 인구는 불과 80년 동안 열 배나 늘었다.
 
또 산업혁명의 결과,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다. 산업혁명 이전의 수공업자나 날품팔이를 대신해 자신의 노동력(勞動力)을 팔아 돈을 버는 노동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공장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노동자였다. 독일의 사회주의자(社會主義者)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노동자들을 ‘단순운동(單純運動)을 반복(反復)하는 기계(機械)’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 세워진 것은 공장만이 아니었다. 새 기계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석탄을 캐는 광산, 노동자들이 살 집, 물건을 운반하기 위한 도로와 기차가 만들어졌다. 1825년에는 영국 중부의 스톡턴온티스와 달링턴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어 처음으로 화물열차가 달렸다. 1830년에는 승객을 태운 최초의 기차가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를 운행했다.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급격하게 변했고 엄청난 부(富)가 생겨났다. 하지만 동시에 산업혁명은 오늘날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많은 사회(社會)문제와 환경(環境)문제를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