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9.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

好學 2011. 2. 3. 11:20

19.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콜베르는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늘려서 국내산업(國內産業)을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보호주의(保護主義) 무역(貿易)은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어렵게 만들었다.
 

뛰어난 사업가였던 푸거가 사람들은 뼈저린 경험을 통해 왕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왕들은 항상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려고 했다. 전쟁 비용과 체면 유지 등 비생산적(非生産的)인 이유들 때문에 많은 돈을 낭비했다.
 
그러면 왕에게 돈을 빌려 준 기업이나 상인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므로 둘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의심했다.
 
국가와 기업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네덜란드에서 나왔다. 네덜란드 정부는 동인도회사의 사업에 개입하지 않았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식민지에 군대를 보내 보호해 주었다.
 
국가가 그렇게 한발 물러선 것은 네덜란드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에스파냐 왕의 정치, 종교, 경제적 억압에 힘겹게 맞서 싸워 자유를 되찾았다. 그런 경험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정부가 경제와 사회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전혀 다른 방법을 택했다. 프랑스에서는 ‘나라에 돈을 적게 바친 사람은 다른 것이라도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이 철칙(鐵則)으로 받아들여졌다. 17세기에 프랑스는 ‘절대왕정(絶大王政)’을 이루고, 국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누구도 왕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제창했다.
 
프랑스 왕은 귀족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한 후,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 땅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에 끼어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30년 전쟁은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이었지만 프랑스는 이 전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힘이 약화된 틈을 타 유럽의 새로운 맹주자리에 오르려는 속셈이었다.
 
결국 프랑스는 30년 전쟁으로 독일과의 경계에 있는 알자스 지방을 차지하며 국력을 키웠고,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 왕위에 오른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유럽의 대표적인 절대주의 국왕이 되었다. 그의 화려한 베르사유궁전은 유럽에 새로 짓는 많은 성의 본보기가 되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말로 국가와 자신이 하나임을 강조했다. 그에게 왕의 재산을 늘리는 것은 나라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루이 14세의 온갖 사치스러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농민이 바치는 세금이나 은행에서 빌리는 돈으로도 부족했다. 루이 14세는 더 많은 세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미 나라에 너무 많은 세금을 바치고 있어서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지나친 세금에 항거하는 농민봉기(農民蜂起)가 자주 일어났다.
 
루이 14세의 신하들은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일을 막고 세금을 잘 내게 하기 위해 국가적인 경제정책(經濟政策)을 세웠다. 그때까지 국가는 전쟁이나 나라 안의 질서, 국민의 안전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경제발전을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고, 국가의 경제정책은 프랑스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루이 14세는 똑똑한 시하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경제를 부강하게 만드는 정책을 계획적으로 펼쳐 나갔다. 이 정책을 후세 사람들은 ‘중상주의(重商主義)’라고 불렀다. 중상주의는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늘려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한편 원료를 구하고 국내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힘쓴 정책을 말한다.
 
가장 유명한 중상주의자이자 루이 14세의 재무장관(財務長官)이었던 장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는 국가를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큰 기업’이라고 보았다. 그는 국민들이 세금 부담 없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나라도 잘된다고 생각해 프랑스의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실시했다.
 
우선 콜베르는 인구증가(人口增加) 정책을 썼다. 국민이 많으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열 명인 가족의 가장에게는 세금을 납부할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단, 자식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신부나 수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콜베르는 상품을 운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곳곳의 검문소를 없애고, 프랑스 남부에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미디운하(運河)를 만들었다. 또 큰 공장을 만들어 수백 명이 중앙본부의 지휘를 받으며 공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공장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분담했기 때문에 혼자 일할 때보다 훨씬 빠르게 많은 물건을 만들어 냈다.
 
콜베르는 공장에서 만드는 상품의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그가 재무장관으로 일하면서 남긴 많은 업적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를 유럽에서 사치품 생산에 있어서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양탄자, 가구, 실크, 고급 의상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를 본받아 국가가 나서서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콜베르는 경제에 대한 규제(規制)를 너무 강화해 새로운 발전을 어렵게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프랑스 경제는 20세기까지도 국가의 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콜베르의 주도면밀한 경제계획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도 적용되었다. 그는 각 나라가 기업처럼 소득과 지출을 통해 외국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국민들이 물건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파는 것이 ‘수출(輸出)’이고, 돈을 내고 외국에서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수입(輸入)’이다.
 
국가의 수입과 수출은 기업의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처럼 무역수지(貿易收支)를 통해 관리되었다. 무역수지는 물질적인 상품의 수출과 수입의 금액차이를 말한다. 무역수지가 흑자라는 말은 수입보다 수출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무역외수지(貿易外收支)는 그 밖의 경제활동에서 생겨난 금액차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해외여행에서 쓴 돈은 우리나라의 무역외수지에 수입이 된다. 무역수지와 무역외수지를 합한 것을 경상수지(經常收支)라고 한다.
 
콜베르의 목표는 되도록 수출은 많이 하고 수입은 적게 해서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내는 것이었다. 콜베르는 그렇게 생긴 흑자를 국가에 비축해 왕을 부자로 만들려고 했다.
 
콜베르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수출이 잘될 만한 상품의 생산을 장려하고, 수입을 어렵게 하기 위해 관세(關稅)를 매겼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관세라는 이름의 세금을 무겁게 매겨 물건 값을 올리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 만든 옷감을 수입할 때, 1미터의 옷감가격이 10리브르라면 관세를 100퍼센트 부과해 실제 거래가격을 20리브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옷감은 프랑스 제품보다 값이 비싸져서 프랑스인들은 네덜란드 제품을 사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콜베르의 정책은 프랑스에 매우 도움이 되는 현명한 정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그런 식으로 무역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네덜란드가 프랑스의 직물에 100퍼센트의 세금을 부과한다면 네덜란드 사람들 역시 프랑스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고 결국 국가 간 무역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실제로 프랑스와 무역을 하는 나라들은 콜베르의 중상주의 경제정책을 좋게 보지 않았다. 1667년에 콜베르가 네덜란드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세 배나 올리자 네덜란드는 프랑스 제품의 수입을 금지(禁止)했다. 프랑스는 네덜란드에 군대를 보냈지만 네덜란드가 둑을 열어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오는 길을 막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중상주의는 바로 눈앞의 일밖에 보지 못하는 정책이었다. 중상주의로 외국과의 무역에서 많은 금과 은을 벌어들여 봐야 프랑스 안에서 프랑스인들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것만으로는 제자리걸음 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에 도는 돈은 많은데 사고팔 물건의 양은 그대로여서 물가가 크게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메리카대륙 발견 이후 에스파냐가 겪었던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우이다. 금과 은을 잔뜩 모으기만 해서는 외딴섬에서 혼자 금을 캐 모으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콜베르의 중상주의는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중상주의적인 사고가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버는 수출은 좋고 돈을 쓰는 수입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힘든 시기가 되면 자기나라의 경제를 보호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중상주의에 따른 보호주의(保護主義) 무역(貿易)은 외국과의 교류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