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8. 네덜란드를 휩쓴 튤립 투기 소동

好學 2011. 2. 3. 11:18

18. 네덜란드를 휩쓴 튤립 투기 소동

 

주식(株式)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은 다른 물건에서도 시장상황에 따른 가격변동(價格變動)을 노려 돈을 벌려고 했다. 튤립처럼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물건도 투기(投機)의 대상이 되었다.
 

요즘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전화, 팩스, 전자우편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고 통신수단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인들은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정해진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만나야 했다. 농부나 수공업자들이 시장에 모여 물건을 사고판 것처럼 상인들은 크리스트교 축제기간 동안 큰 도시에서 열리는 박람회(博覽會)를 통해 만났다. 라이프치히와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박람회는 특히 유명했다.
 
13~14세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브뤼헤는 교역의 중심지로 이름이 높았다. 브뤼헤에는 박람회에 참가하려는 상인들을 위한 ‘뵈르제’라는 숙박시설이 있었는데, 상인들은 뵈르제 숙박소에서 만나 새로운 물건이 나왔는지, 어떤 상인이 신용이 좋은지 등에 관한 정보를 교환했다. 그래서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뵈르제 숙박소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1531년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모든 나라의 상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증권거래소(證券去來所)’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상인들은 증권거래소에 팔 물건을 직접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증명서를 가지고 나왔다. 물건을 일일이 가지고 다니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운송료도 비쌌기 때문이다. 서류로만 거래를 하면 물건을 직접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리했다. 그래서 증권거래소에서는 실제로 손에 잡히는 물건보다 어음처럼 사고파는 상품이 될 수 있는 서류들을 주로 다루었다.
 
증권거래소에 모인 사람들은 위험한 항해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많은 상인들이 지중해나 아프리카의 해안까지 가는 장거리 항해에 돈을 투자했다. 그렇게 건 돈에 대한 증명서는 다른 사람에게 되팔 수도 있었다. 항해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돈을 모아 공동소유로 배를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배를 사서 아프리카나 아시아까지 보낼 때 상인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은 상당히 컸다. 코르넬리우스 하우드만은 네덜란드 사람 중에서 처음으로 지금의 인도네시아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네덜란드를 떠날 때 249명이었던 선원이 돌아올 때는 고작 89명뿐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항해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위험부담이 크기는 했지만 일단 배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투자에 참여한 사람들은 큰 이익(利益)을 보았다. 또 여러 사람이 함께 투자를 하면 배가 침몰하거나 해적이 공격을 받더라도 각자가 감당해야 할 손해(損害)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배에 투자한 사람들 중에는 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불안해서 자기 몫을 미리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투자한 사람이 투자의 성공을 의심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배가 돌아오면 받기로 한 것보다 적은 금액을 받고 팔았다. 그러나 일단 자기 몫을 팔면 항해가 실패했을 때 더는 손해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사는 사람도 그런 위험을 알고 있었다. 또 다행히 배가 무사히 돌아오면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배에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위험 요소가 무엇이고,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알아내려고 늘 애를 썼다. 미래를 예측하면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대상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투자를 받는 사람과 투자를 하는 사람 간의 신뢰(信賴)는 투자를 받는 사람이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했다. 나라에서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處罰)함으로써 투자에 안전장치를 했다.
 
1602년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배에 돈을 투자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여러 상인들이 함께 투자해 배를 사고 물건을 실어 동양으로 보낸 것까지는 이전과 같았다. 그런데 배가 돌아온 다음, 전처럼 이익을 분배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동인도회사는 회사의 자본을 구성하는 ‘주식(柱式)’을 발행해 여러 사람으로부터 자본을 조달받았다.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최초의 ‘주식회사(株式會社)’가 만들어 진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에서 인도까지 항해할 권리를 동인도회사의 독점권으로 인정했다. 회사 설립에 들어간 돈 650만 굴덴은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에서 모였는데, 그 중 절반은 암스테르담 사람들이 낸 돈이었다. 동인도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의 주식은 암스테르담의 증권회사에서 관리했다.
 
주식을 발행함으로써 네덜란드 정부는 해외식민지 개발의 위험부담을 동인도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에게 미룰 수 있었다. 한편 혼자 힘으로는 배를 살 수 없었던 투자자들은 주식을 통해 선박항해로 벌어들이는 이익금의 일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푸거가의 은행이 그랬던 것처럼 증권거래소도 자본이 필요한 사람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해 주었다. 게다가 여러 명의 투자자에게 위험부담이 나뉘었기 때문에 훨씬 더 안전했다. 주식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더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주식의 가격을 ‘주가(株價)’라고 하는데, 당시 주가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동이 심했다. 1604년에 동인도회사의 첫 배가 닻을 올렸을 때 주가는 처음 발행 때보다 3분의 1정도 더 비싸졌다. 그러나 배가 침몰했다거나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 주가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다. 도인도회사가 생긴 지 100년쯤 지난 후, 경기가 한참 좋을 때는 주가가 열 배로 뛰기도 했다. 주가의 변동을 잘 살펴서 주가가 급격히 떨어졌을 때 주식을 사서 값이 올랐을 때 되팔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주식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이익을 얻게 되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물건에서도 시장상황에 따른 가격변동을 예상해 돈을 벌려고 했다. 우스꽝스럽게도 사람들은 도저히 돈벌이가 될 것 같지 않은 물건에도 큰돈을 투자했다. 대표적인 것이 튤립 뿌리이다. 
 
튤립은 16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었다. 꽃잎이 터번처럼 생겼다고 해서 터키에서는 이 꽃을 터번이라는 뜻의 ‘툴리반드’라고 불렀다. 유럽인들은 튤립을 이국적이고 비싼 꽃이라고 생각해 앞다투어 정원에 튤립을 심었다. 튤립은 점점 부의 상징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튤립을 사고 싶어 했다.
 
그즈음 주식으로 사람들의 살림이 넉넉해지자 튤립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지금 튤립 뿌리를 사 두었다가 나중에 튤립 값이 올랐을 때 되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자 튤립 뿌리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주식과 달리 튤립 뿌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어서 귀족이나 상인뿐만 아니라 수공업자, 농부, 하인들까지 모두 투기 열품에 휩싸였다. 증권거래소에서는 튤립 증권이 거래되었고, 온 국민이 손가락 하나 꼼짝 않고 부자가 되기를 기대했다. 가격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는 튤립 뿌리 하나가가 2,500굴덴이나 했다. 그 돈이면 호밀 두 수레, 살찐 황소 네 마리, 큰 돼지 네 마리, 양 열두 마리, 맥주 네 통, 포도주 두 통, 치즈 1,000파운드, 침대, 은으로 만든 잔과 양복을 살 수 있었다.
 
이런 튤립 열풍은 3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637년 어느 날, 몇몇 사람들이 생각처럼 높은 값에 튤립 뿌리를 팔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기겁을 한 사람들은 가장 유리한 가격에 자기가 가진 튤립 뿌리를 모두 팔아 치웠다. 그제야 사람들은 튤립 뿌리가 정원에 심는 용도 말고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혼란에 빠져 들었다. 팔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사려는 사람이 없어 튤립 뿌리의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특히 나중에 돈을 벌면 이자를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빚을 얻어 튤립 뿌리를 산 사람들의 피해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파산했다.
 
역사 속에서 투기 열풍은 늘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진행된다. 처음에 누군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면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참여하고 뒤이어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끼어든다. 그러나 비누 거품이 사라지듯 열기가 식으면 시장은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은 파산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