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종합]인물.말씀.강연

민족,민주,민중과 함께 사는 새로운 길을 향하여 - 6. 하나가 되어 1

好學 2010. 11. 13. 12:02

민족,민주,민중과 함께 사는 새로운 길을 향하여 - 6. 하나가 되어 1

 

6. 하나가 되어

1)교단,교파를 초월한 연합사업

해방이후 여러 이유로 분열되어 이웃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가 싸움과 분열만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받아온 이래,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께 하자는 주장이 점점 확산되어 갔다.

그리하여 그러한 주장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 구체적으로 초교파 모임인 한국교회 여성연합회나 한국 여교역자 여신학자협의회 등의 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1) 교회여성연합회


우선 교회여성 연합회는 1966년 아세아교회 여성연합회 총회에 참석했던 한국 대표들이 돌아와서 한국에도 교회여성연합회를 조직하기로 합의하고 그들이 준비위원이 되어 이를 추진하였다. 1967뇬 4월 15일 창립총회를 영락교회 기념관에서 개최하였는데 그당시 가입교단은 예장 여전도회(통합),감리교 여선교회,기장 여신도회였다. 그후 구세군 가정단,성공회 어머니회,루터교 여신도회가 가입하여 총 6개 교단이 회원 단체로 되어 있다.

조직은 기획위원회,세계기도일위원회,적은 돈위원회,섭외위원회,교육위원회,교회와 사회위원회,인권위원회,재정위원회들의 여덟개 위원회와 실행위원회로 되어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들은 각 교단의 전국 연합회에서 파송한 대표들로 이루어진다. 이 회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구현하는 교회 여성들이 연합하여 사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성령의 도움을 받아 이웃과 사랑하며,화해의 도구가 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여

 

첫째, 교회여성들로 하여금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공동관심사에 대해

        함께 발언하고 행동하도록 한다.

둘째, 교회여성들로 하여금 사회에 공헌하게 하고 신앙에 적합한 삶을 개발하도록 하며

        새로운 형태의 복음증거와 봉사를 하도록 한다.

셋째,교회여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여성들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지위를 향상시키도록 노력한다.

네째,타 단체 및 세계의 교회여성들과 협력하여 전인류의 공동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고취한다는 것들을 취지로 삼고 있다.

 

교회여성연합회는 교회,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여성문제를 제시하고 홍보하여 각 교단의 여성들이 이런 문제들을 의식하고,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간의 사업내용은 대체로 비인간화된 여성의 인간회복과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여성신학 연구 및 성서연구에 역점을 두고, 이런 바탕 위에서 갖가지 사업을 했다. 우선 여성문제에 있어서 교회 내의 남녀평등을 위해서 1974년 국제여성의 해를 기하여 NCC총회에 40% 여성대표를 참석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보냈고 1977년에는 NCC에 여성분과를 개설하고 NCC 실행위원에 여성대표를 넣어 달라는 청원을 NCC실행위원회에 보냈으며 1980년에는 NCC 모든 위원회에 여성대표를 참석시켜 달라는 건의문을 NCC 실행위원회에 냈다.

 

1980년 2월 25일 제29차 NCC총회에 드리는 건의문을 보면 "1...교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적어도 총대수의 사분의 일을 청년 및 여성대표로 할 수 있기를, 2.NCC실행위원회가.... 사분지 일은 청년 및 여성대표로... 되기를 3.....상임위원회 역시 구성원의 반수가 전문가 및 여성 청년 대표로.."하기를 원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여목사,여장로 안수문제에 대한 호소문을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 계속적으로 보냈다. 교회여성연합회는 교회여성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독자적 과점에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즉 다른 여성단체들과 함께 1980년 7월 9일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미스코리아와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반대하는 운동을 폈다. 이유는 여성을 존귀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듯 감상하는 상품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주로 건의문을 내고 근로자들을 돕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 동일방직여공 돕기, 남영나이론 여공 14명의 해고및 구타사건의 가해자인 남자직원들을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문, 방림방적 노동자들의 사내시설, 임금, 노동시간 등에 대한 14개 조항의 시정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여성 근로자들에게서 받고 건의문을 사장 앞으로 보내고 직접 상무와 면담,삼고사 해고 노동자돕기,해태제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건의문,Y.H 무역회사 근로자 돕기 등을 하였다.

 

또한 농촌여성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서 농림부장관에게 추수수매가의 현실화를 위한 진정서를 보냈다. 이 진성서에서는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우리나라 농업을 파멸시킬 뿐 아니라 식량문제의 대외적 의존을 국가안보와도 연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1973년 6월에는 매춘관광 실태조사를 하고 매춘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농촌여성 문제 해결과 동시에 식품공해추방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무공해식품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농산물 직거래 사업도 하였다. 그 외에도 자본주의 사회제도와 가부장제 사회의 이중적인 희생자인 윤락여성,매춘,기생관광의 문제를 중점적인 사업으로 하고,탈선관광사업에 대해서 한일교회협의회와 교통부장관,보건사회부장관에게 건의문을 내고 "관광객과 윤락여성 문제" 세미라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73년 12월 3일에 발표된 성명서에는 "경제 제일주의의 개발정칙이 우리나라를 일본의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 진흥이라는 명목하에 우리나라의 여성들을 상품화하고 있다.이와같이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한국을 일본남성의 유곽지대화하는 매춘관광사업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매춘관광에 대한 입장은 윤락여성의 문제를 개인적인 성적 타락의 차원에서가 아니가 잘못된 사회제도의 차원에서 보았다는 점에서 교회여성들의 의식의 향상을 볼 수 있고 이는 일제하에서 기독교 여성지도자들이 힘없는 여성들을 정신대로 보내 숱한 고난을 겪게 한 과거의 죄를 정말로 소외된 여성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업은 계속되어 1980년 2월에는 기생관광 조사를 제주도,부산,경주,서울지방에서 하였고 그 작업의 결과는 1983년 7월 한국 교회 여성연합회 자료 제1집,기생관광 전국 4개 지역실내 조사 보고서로 출판되어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 소책자에서는 "관광사업이 국가의 3차산업으로 정해진 이후 우리 정부는 이의 육성을 위해 전략사업의 차원에서 온갖 행정적인 지원과 특혜를 아끼지 않아 관광산업은 날로 부상하였다"고 하면서 "여성국민의 정조를 상품으로 하여서까지 외화를 벌어 들인다면 5억불이 아니라 50억불을 벌어 들인다 하여도 그 시비는 마땅히 역사와 민족의 얼 앞에서 가려져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68)

 

또한 일제 식민지 지배의 직접적 피해자인 재일교포문제와 피폭자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피폭자들의 문제를 사회에 환기시키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치료비,학비 등의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외 수재민,철거민 등을 위한 사업을 하였으며, 모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한 70년대의 기독교 인권 운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69)

 

앞에서 열거한 사업들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교회여성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초교파적으로 힘을 모아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특히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약한 자들이 당하는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사회구조적인 산물로 보고,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변혁시키려고 초교파적,전교회적으로 집약된 힘을 사용하려 한 시도는 앞으로 교회여성들의 활동에 귀한 경험으로 축적되어 갈 것이며, 이는 사회변혁의 저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여성연합회의 조직 자체가 창립 시기부터 볼 수 있듯이 밑으로부터 올라온 교회여성의 힘의 축적이 아니라 전국연합회라는 상부조직과 관련된 위원중심인 단체이기 때문에 많은 제한이 있다. 즉 교회여성연합회의 사업은 각 교단의 사업내용에 반영될 때 실효를 거두는 것인데 그간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교회여성 전체의 의식수준이 높아질 때 교회여성연합회의 사업도 활발해질 것인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여성연합회의 사업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프로그램보다는 홍보와 의식화 교육에 치중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여성연합회는 앞으로 조직 기반을 형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972년부터 3회에 걸친 강습회,세미나를 통해서 준비작업을 한 후 1974년 한국여교역자회는 창립되었다. 이 회에는 창립총회시 감리교,예수교장로회,기독교 장로회 3교단 65명이 참석하였고 해마다 교단별로 돌아가면서 수련회를 개최하였다. 이 수련회를 통하여 여교역자들은 교단은 다르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풀어나가려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교역자들은 너무나 바빠서 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려워 회는 활성화되지 못하였다.70)

 

그러다가 1980년에 탄생된 여신학자협의회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 두회의 임원 내지는 다수의 회원들이 동일한 사람들임을 감안하여 또 회의 자체의 성격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1981년 제8회 총회시 여신학자협의회와 병합하기로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따라서 8년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