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마당] 입장유감(立場遺憾) |
"거시기식당이 꼬막을 기냥 거시기하게 해부리니께, 거시기식당에 가서 거시기들 허더라고…." "오늘 날씨도 거시기한데 소주 한잔 합시다." "어째 기분이 거시기하네요."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을 게다. 거시기는 `말하는 도중에,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거나 말이 막힐 때 쓰는 대명사 또는 군말형 감탄사`다. 하지만 인용문의 거시기는 이보다는 `근사하게` `즐겨라` `우중충하다` `우울하다` 등 카멜레온처럼 여러 가지 의미로 변하면서 이심전심으로 말하고 알아듣는 정감 어린 호남 사투리다. 사투리가 아닌데도 거시기처럼 부여된 의미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쓰이는 단어로 `입장`이란 게 있다. 사전을 뒤져보자. 일제 때 들어온 왜색 한자어로 순화 차원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하지만 굳이 쓰려면 `처지`의 동의어 정도로 쓰라고 제한한다. 하지만 이놈의 `입장`이 종횡무진 무소불위로 날뛴다. 신문기사를 몇 개만 발췌해 보자. 1.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정했다. 2. ○○○ 장관은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3. 여야는 이번 사태 해결책에 대해 커다란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4. 북한의 입장 변화가 감지됐다. 5. 그 문제에 대해 말할 입장에 있지 않았다. 6. 그때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 입장을 처지라는 단어로 대체해 보자. 어색하다. 그 자리에 방침, 생각, 의견, 태도, 지위, 상황과 같은 다양한 단어가 각각 들어서야 적확한 뜻이 전달된다. 입장의 의미가 이처럼 확장돼 우리말의 다양한 표현력을 유린하고 분탕질하는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호한 표현을 즐기기 때문이거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 저지르는 무지의 소치다. 이제 우리의 말글살이에서 입장이란 놈의 바람끼를 잠재우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특히 식자층인 정치인 관료 언론인들이 입장 좋다고 남용 말고 입장 모르고 오용 말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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