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행복론]Seneca

행복론 제 23장 6.

好學 2010. 10. 26. 21:31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3장 6. 


 

 

그런데 비탄에 빠지는 것은 죽은 친구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인가?
친구는 죽어서 행복을 누리고 있거나 ,
아니면 완전히 무로 돌아가 있을 터인데, 이에 대해
흐느껴 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자의 경우라면 친구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허무에 대해 눈물을 짜는 것이므로
이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애도사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흔히 볼 수 있다.

“다시 그대와 만나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를 위해서라면 천하의 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겠네.
그대와 어룰려 세상의 쓸쓸함을 모르고 지냈으며,
그대를 만나면 언제나 내 마음엔 기쁨이 솟았네.”

그런데 이 경우에 말할 수 있는 것은
“ 손실이 클수록 이를 극복하는 덕도 크다” 는 것이다.
비탄에 잠겨도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오직 슬퍼만 하는것은 어리석은 시간 낭비다.
한 사람의 친구에게 내려진 죽음은 결국 만인에게도 내려지므로
이를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세계가 모두 하나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마당에,
그가 먼저 가고 이어서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그를 애도할진대,
뒤따라가는 자에게도 애도의 뜻을 표함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친구는 죽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간 것이다.
친구는 그처럼 모든 것을 버렸지만 이쪽에는 모든 것이 남아 있어
분노, 선망, 질투, 그 밖에 여러모로 두려운 것들 투성이다.
친구는 모든 것을 벌써 원치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살아 남은 비참한 친구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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