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행복론]Seneca

행복론 제 23장 3.

好學 2010. 10. 9. 21:00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3장 3. 


 

그렇다, 눈물에도 어느 정도의 예절이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울고불고 하는 것은
너무 깔깔거리며 웃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간이 함부로 울어도 무방하다면,
소중히 가꾸는 나뭇가지에서 잎사귀가 떨어졌을 때에도 ,
상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울어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그 아끼는 나무가 계절의 추이에 따라 다시 새 잎사귀가 돋아났을 때
이것은 작년에 땅에 떨어진 잎사귀와 같은 잎사귀가 아니라고 해서 울고,
또 잎사귀가 작년에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잎사귀가 돋아나지 않았다고 해서 울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탓할 수는 있어도 운명을 변경할 수는 없다.
운명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닥쳐오고 결코 시정되지 않으며,
우리가 호령을 하건 통곡을 하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눈물을 너무 많이 쏟아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죽는 경우는 있어도,
죽은 자를 눈물로써 소생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이성의 힘으로 자기의 비애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면,
운명에 대해서는 더욱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가난에 시달리고 어떤 사람은 야심에 괴오움을 당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일찍이 탐낸 부를 두려워 한다.
이와 같은 일들로 운명이 어떻게든 완화시켜주리라 생각할 수 있을 까?
아니다, 역시 자기 이성의 힘으로 적당히 대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식이 죽어서 한탄하고,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지 못해서 한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탄할 일은 실로 얼마든지 있으므로 번번이 울기만 한다면
드디어 눈물은 고갈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을 위해
눈물을 절약할 필요가 있다.
내 경우를 말하면, 친구가 죽었을 때에는
불안한 나머지 나도 죽을것 같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기보다 오히려 의지적인 감정이다.
즉 나를 슬픔에 잠기게 하는 감정은
실감을 토대로 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애를 못 이긴 것이 아니라 비애를 자기의 상전으로 모시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만
혼자 있으면 침묵을 지키다가,
누가 오면 다시 눈물을 터뜨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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