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2 장 7.
큰 정신의 소유자는 처음부터 신을 섬기고,
무슨 일이든 신이 부여한 것은 우주의 대법칙에 순응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기꺼이 받아 들인다.
저 마음 좋은 바커스 할아버지는 한쪽 발을 무덤 속에 들여놓은듯 싶은
쭈글쭈글한 노인이었이 었지만,
언제나 얼굴에 웃음을 띠고 유쾌한 기분을 견지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죽음을 마치
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정도로 생각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든 것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오랬동안 공부했으나,
도저히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노인처럼 오랜 수명을 누린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죽을 시간이 멀었을 때는 어딘가 희망이 남아 있다.
병에 걸리면 회복을 바랄수 있고,
불길에 타서 죽어야 할 경우라면 그 불길이 곧 사라지기를 바랄 수도 있으며,
집이 무너져 깔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지렛대로 짐을 들어 올려 몸을 뺄 수도 있고 ,
심지어 단두대 위에 올라서까지 목이 도끼날이 날아들려는 찰나에
상부에서 사면장이 내려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노인이 죽을 경우에는 전혀 희망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육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마치
하룻밤을 여관방에서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는 것쯤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때때로 죽음에 대하여 명상하고 있으면,
우리는 이 불가피한 일에 대해 성벽을 쌓아 올릴 수 있다.
가난에 대해 성벽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며,
고통에 대하여 성벽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은 건강을 얻을 수 있고,
친구의 죽음에 대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친구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자기의 죽음에 대해
성벽을 쌓아 올리고 불사신이 되는 일이다.
이것은 실로 모든 덕을 행할수 있는 기회를 가장 분명히 붙잡는 것이 된다.
현자가 언제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 동기와 행동이다.
그는 오래 살기보다는 잘살기를 바라며,
빨리 죽고 더디 죽는 것은 문제시하지 않는다.
“ 죽음은 나에게 불멸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므로
그는 언제나 훌륭한 최후를 마치지 못하고,
고약한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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