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행복론]Seneca

행복론 제 21장 3

好學 2010. 10. 2. 22:49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1장 3  
 
어제 우리집 노예 한 사람이 죽음을 태연스럽게 맞이 하였다. 
죽음의 고통 같은 것은 결석증으로 인한 발작과 견주어보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설사 그 고통을 참는다고 하더라도 별것이 아니며, 
또 설사 그것이 참기 어려운 정도로 괴로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순간의 일이다. 
요컨대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책무 중에서 
죽음이 가장 손쉬운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려면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리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실로 잠깐이다. 
우리 생애에서 어느 때 죽든지 그것을 부당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실로 신체와 영혼의 작별은 1분이면 족하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끝마치는 일을 오랫동안 두려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죽음의 공포를 이긴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이 못된다. 
보라 죽음은 우리 주변의 큰 인물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이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닥쳐오지 않는가. 
오락장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 자기 시신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 
막대기로 자기 몸을 찔러 질식해버린 사람도 있고, 
같은 이유로 같은 장소에서 호송차위에서 잠들어 고개를 숙인 체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수레 사이에 처박고 목이 달아나게한 예도 있다. 
일찍이 칼리굴라 왕은 간신 카니우수 줄리어스와 의논한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뽐내지 마오. 경을 사형시킬 수속을 밟으라고 지시했으니까.” 
그러자 줄리어스는 말햇다.
“자비로운신 폐하께 감사하옵니다.” 
이 폭군의 폭정 아래서는 죽는 것이 실로 자비임을 
왕이 깊이 깨닫도록 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당시에 칼리굴라 왕으로서는 한칼에 목을 자르는 것보다 
더 큰 선을 행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형리가 그를 형장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는 태연히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단두대에 오르자 지휘관을 돌아보고 말했다. 
“유희는 내가 이겼으니, 내가 죽으면 그 증인이 되어주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은 사람으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몹시 애도했다. 
그는 세상을 작별할때, 많은 친구들에게 겸양의 덕을 주장했다. 
“ 자네들은 영혼 불멸론으로 상당히 논쟁을 거듭했지만, 
지금부터 나는 실제 답사를 떠나 진상을 배우게 되었네. 
이 점에 대해 어떤 발견이라도 하면 꼭 자네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네.” 
이 정도의 거물이 아니더라고 가장 비겁한 동물까지도 
더는 도망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위험에 몸을 내맡긴다. 
절망이 용기를 주고 필요가 공포를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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