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여수(麗水)
바다와 가장 가까이 철로가 달리는 곳이 정동진이라고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익산에서 호남선과 갈라진 전라선 열차가 헐떡이듯 덜커덩거리며 지리산 자락을 굽이돌아 내려온 남쪽 끝. 종착역을 앞두고 숨을 고르던 열차가 산모롱이를 돌자 갑자기 빠져들 듯 바다를 만난다. 그리곤 바다와 맞닿은 언덕을 따라 축대를 쌓아올린 철로로 달린다. 열차도 사람도 그야말로 바다 위를 붕 떠 가는 기분이다.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안도현 ‘인생’)던 전라선의 종착역이 여수다. 여수역은 항구 복판에 들어앉았다. 동백과 시누대(竹)의 섬 오동도가 코앞이다. ‘봄날에 서울에서/ 여수행 기차를 타면/ 여수역에 도착했는데도 기차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바다를 향해 달린다/ 객실마다 승객들이 환하게/ 동백꽃으로 피어나/ 여수항을 지나/ 오동도를 지나/ 수평선 위로 신나게 달린다’(정호승 ‘봄기차’).
▶이 인상적인 종착역을 안고 있는 항구가 여수 신항이다. 반도 서쪽의 비린내 물씬한 선창 ‘구항’과 달리 화물항인 신항에 서면 여수가 왜 아름다울 ‘麗(려)’에 물 ‘水(수)’자를 쓰는지 실감난다. 방파제 겸해 오동도를 잇는 연륙교에 갇혀 잔잔한 바다가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곱다. 이 미항(美港)에 여수 사람들이 부려놓고 싶어하는 꿈이 있다. 2012년 세계 엑스포를 들이는 꿈이다. 신항은 엑스포단지와 전시관들이 들어설 곳이다.
▶여수는 3년여 전 4차례 투표 끝에 2010엑스포를 상하이에 뺏겼다. 여수 사람들은 접전 끝 아까운 패배보다 당시 나라의 무관심을 더 아프게 기억한다. 98개국이 투표로 개최지를 가리는 엑스포여서 유치전은 곧 외교전이지만 대선을 눈앞에 둔 정치권과 정부는 나 몰라라 했다. 재도전에 나선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2년 전 ‘국가계획’으로 정해놓기만 한 채 투표가 내년 말로 다가오도록 정부나 국회의 유치위원회와 지원기구 구성은 감감소식이다.
▶여수는 겨울 다 가도록 눈다운 눈 보기가 힘들다. ‘밀려온 진눈깨비조차/ 참 따뜻한 나라라고, 적시자 녹아 흐르는’(김명인 ‘여수’) 곳이다. 오동도 서쪽으론 1700개 섬이 이루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동쪽으론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하는 천혜의 관광지다. 한때 수산업도 성했지만 이젠 그 흔한 고속도로 하나 닿지 않는 ‘변방’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여수가 다시 또 외로운 싸움을 벌이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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