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과학기술인' 서호수
‘1등성은 크기가 지구(地球)의 68배, 2등성은 지구의 28배, 3등성은 지구의 11배….’ 1770년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의 ‘상위고(象緯考)’편은 항성 등급에 따른 별의 밝기를 크기로 표현하고 있다. 1등성은 2등성의 2.43배, 2등성은 3등성의 2.55배다. 영국 천문학자 J 허셜은 1830년대에 와서야 1등급 차이의 밝기비가 2.51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선의 천문학 수준이 서양보다 60년쯤 앞섰던 셈이다. 이 ‘상위고’를 펴낸 이가 규장각 직제학을 지낸 서호수(徐浩修·1736~ 1799)다.
▶정조 때 최고의 천문학자로 꼽히는 서호수는 18세기 후반 나라가 진행한 천문·역산(曆算)사업 대부분을 책임진 과학기술가다. 그의 주도 아래 국가의 표준시간 체계를 정비하고 측우기를 통한 강우량 측정과 보고 체계를 세웠다. 역관(曆官) 김영, 성주덕과 함께 1796년 편찬한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는 당대의 천문역산 개혁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그가 쓴 ‘해동농서(海東農書)’는 우리 실정에 맞는 농업기술서로 평가받는다.
▶서호수의 집안은 대대로 고관을 배출한 명문이면서 독특하게도 천문학과 수학, 농학, 건축학까지 과학기술을 중시했다. 대제학을 지낸 아버지 서명응은 박제가의 ‘북학의’ 서문을 썼고, 천문·역법까지 망라한 ‘보만재총서’를 펴냈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는 천문·역법 책 500권을 사 들고 돌아왔다. 이런 가풍(家風)이 서호수를 천문학자로 키웠다. 서호수의 둘째 아들 유구는 농업기술서 ‘임원경제지’를 썼고, 19세기 여성 백과사전 ‘규합총서’를 낸 빙허각 이씨가 맏며느리다.
▶서호수도 아버지 뒤를 이어 두 차례 연행(燕行) 길에 올랐다. 이때 청나라 문인은 물론 안남국(베트남) 고위 관료와 시문(詩文)을 주고받았다. 그중 1790년의 여행을 정리한 일기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연행기’다. 이런 경험은 그가 성리학에만 몰두하는 우물 안 지식인에서 벗어나 실용적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닫는 기회였을 법하다.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한림원이 이휘소·장기려와 함께 서호수를 2005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로 발표했다. 정부는 2002년부터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과학기술인을 뽑아 서울과학관 내 명예의전당에 모셔왔다. 서호수의 자취를 더듬자니 “조선 사대부 중에 이런 실용적 학자가 있었구나” 감탄하게 된다. 이래저래 과학기술계가 뒤숭숭한 요즘, 그의 진취적 탐구정신에서 새삼 힘을 얻고 마음을 다잡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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