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인문학이 희망이다

好學 2010. 8. 21. 18:33

 

[만물상] 인문학이 희망이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선 일주일에 사흘씩 노숙인을 위한 강좌가 열린다. 으레 재활과 사회 복귀를 위한 생업이나 기술을 가르치려니 하겠지만, 강의 과목은 딴판이다. 철학, 예술사, 작문…. 38~60세 노숙인 학생 17명은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미술 전시회도 보러 다닌다. 새 학기엔 문학과 역사 강좌가 기다린다. 당장 먹을거리와 잠자리가 다급한 사람들에게 철학과 예술이라니.

▶성공회 ‘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는 노숙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다시 일어서게 하는 방법으로 인문학이 가장 근원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작년 9월 개설한 것이 이 ‘성 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강좌’다. 1학기를 마친 수강생 가운데 10명은 이미 쪽방이나 고시원, 월세방을 마련해 자활에 나섰다. 나머지 7명도 상담보호센터를 이용하면서 노숙을 청산했다. 무료 급식을 꺼리고 일주일에 몇 끼라도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거나 사먹으려 한다.

▶이 노숙인 강좌의 모태(母胎)는 미국 작가 얼 쇼리스가 세운 ‘클레멘트 인문학 강좌’다.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요.” 10여 년 전 쇼리스는 살인죄로 복역 중인 여죄수에게 물었다.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지요.” 뜻밖의 대답이어서 그는 “정신적 삶이라뇨?” 하고 되물었다.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것이지요.” 이 대화가 쇼리스의 삶을 바꿨다.

▶쇼리스는 1995년 노숙자·마약중독자·전과자·빈민 31명을 뉴욕 복지시설 ‘클레멘트 가족보호센터’에 모았다. 문학, 역사, 예술, 논리학, 윤리철학을 가르쳤다. 1년 과정을 마친 1기생 17명 중에 치과의사 둘, 간호사 하나가 나왔다.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거나 마약중독자 재활센터 상담실장이 된 졸업생도 있다. 클레멘트 인문학 강좌는 북미, 호주, 아시아로 퍼져 53개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쇼리스가 빈민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역설하러 한국에 왔다. 성 프란시스대학 노숙인들도 만난다고 한다. 그는 “인문학을 통한 성찰(省察)적 사고가 자율적 판단력을 길러주고 비참한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했다. 인문학이 자유로워지기, 일상을 새롭게 생각해 보기, 과거에 짓눌리지 않기, 되풀이하지 않기 같은 것들을 시작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필요한 것은 노숙인만이 아니다. 틀에 박힌 일상에 갇혀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불평만 하는 학계부터 인문학을 다시 생각하고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