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 218

[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3] 전쟁을 부추기고 이용한 모택동

[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3] 전쟁을 부추기고 이용한 모택동 國共내전때 北韓 도움 받은 모택동 "만주에 우리 있으니 걱정마라" 남침 1년前 김일성에 派兵 약속 "60개사단 규모 무기 지원을" 모택동, 스탈린에 요청… 속셈은 낙후된 중공軍 현대화 모택동의 의도 알아챈 스탈린 "16개 사단 규모만 지..

[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2] 자유세계 지켜낸 트루먼과 맥아더

[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2] 자유세계 지켜낸 트루먼과 맥아더 트루먼 "對히틀러 유화책이 2차대전 불렀다" "한국은 유엔결의로 탄생한 국가" 즉각 파병 결정 맥아더… 美합참이 인천상륙작전 극구 반대하자 "敵도 그렇게 생각… 그래서 성공할 것"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미국의..

[대한민국 제1호] 1962년 첫 산아(産兒)제한 정책

[대한민국 제1호] 1962년 첫 산아(産兒)제한 정책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2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산아제한 정책이 담긴 가족계획을 발표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설립하고 산아 제한 슬로건도 발표했다. 그 시절엔 달력 모양을 한 ..

[대한민국 제1호] "인재를 키우자"… 1949년 국비유학 보내

[대한민국 제1호] "인재를 키우자"… 1949년 국비유학 보내 "1949년 8월 30일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제때 뜨지 않아 6개월이나 마음 졸이며 기다린 후였다. 여의도비행장에서 비행기에 오를 땐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듯했다."(심종섭 박사) 정부수립 해인 1948년 가을, ..

[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1] 전쟁 배후조종한 스탈린

[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1] 전쟁 배후조종한 스탈린 北 휴전요청에 "잃을 건 사람 목숨뿐… 계속 싸워라" 압박 유럽서 美군사행동 우려 "한반도에 미군 묶어놔야"… 스탈린 사망後에야 휴전 美 방위선서 南 빠지자 1950년 1월 남침 승인… 소련 전쟁영웅 北 보내 전쟁 계획 함께 점검도 6·25 전쟁은 ..

[나와 6·25][미니 戰史] (26) 휴전협상 속의 고지

[나와 6·25][미니 戰史] (26) 휴전협상 속의 고지쟁탈전 휴전협상은 1951년 7월 10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2년 넘게 지속됐다. 협상 중에도 유엔군과 공산군은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다. 양측은 회담장에서는 '설전(舌戰)'을, 중·동부를 중심으로 한 전선에서는 '혈전(血戰)'을 벌였..

[나와 6·25 ][미니 戰史] (25) 휴전협상 개시

[나와 6·25][미니 戰史] (25) 휴전협상 개시 서울을 재점령하려는 중공군의 제5·6차 공세가 국군과 유엔군의 적극적인 반격으로 저지된 뒤, 1951년 중반 전쟁은 어느 일방도 결정적인 승세를 확보하지 못한 채 휴전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휴전협상은 양측의 정치·군사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시작..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약탈 문화재 일본서 첫 환수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약탈 문화재 일본서 첫 환수 1966년 5월 27일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가 김포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도자기·석조미술품·고문서 등 모두 1326점이나 됐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수탈당한 문화재들이 해방 21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최순우 당시 국립박물관 ..

[대한민국 제1호] 국내증시 전산거래 1979년 도입

[대한민국 제1호] 국내증시 전산거래 1979년 도입 지난 7월 한국거래소는 라오스 정부와 각각 49%, 51%씩 지분을 출자해 라오스 증권거래소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증권시장이 없는 라오스에 증권 거래를 위한 IT시스템과 제도를 이전해 주는 내용이다. 지난 3월엔 캄보디아와도 비슷한 계약을 맺었고 200..

[대한민국 제1호] 한국산(産) 첫 아파트… 1958년 종암아파트

[대한민국 제1호] 한국산(産) 첫 아파트… 1958년 종암아파트 해방 당시 38선 이남에는 약 300만채의 주택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05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은 1250만채로 4배 이상 늘었다. 숫자만큼이나 국내 주거 문화도 빠르게 변했다. 초가집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