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지하상가 [대한민국 제1호] 지하상가 1967년 을지로 1가에 처음 문열어… 우리나라에 지하상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7년 12월 20일이다. 이날 서울시청 앞 을지로 1가에 '새서울 지하상가'가 문을 열었다. 서울 한복판에 길이 480m, 폭 9m 규모로 들어선 지하상가는 멋쟁이들이 한 번씩 들르는 '첨단 상가'로 부상했다..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1.01.29
[대한민국 제1호] 휴대폰 [대한민국 제1호] 휴대폰 삼성전자, 1988년 첫 개발… 무게 700g 22년 전 우리나라 업체가 처음으로 만든 휴대폰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휴대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삼성전자가 1988년 처음 개발한 'SH-100'<왼쪽 사진>이라는 휴대폰은 길이가 요즘의 두 배가 넘는 20㎝였고, 무게는 6배 가까..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1.01.23
[대한민국 제1호] 영화계 [대한민국 제1호] 영화계 컬러 시네마스코프(초대형 스크린) 시대 개막 1961년 설을 앞두고 영화 '춘향전'과 '성춘향'이 맞붙었다. '춘향 경작(競作) 소동'으로 불린 이 경쟁은 여러가지로 큰 화제였다.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과 '성춘향'의 신상옥 감독은 당대 최고의 연출자였으며, 주연여배우는 각각의..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1.01.23
[대한민국 제1호] 법조계 [대한민국 제1호] 법조계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 1기 16명 합격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미 군정의 '임명사령 제12호'에 따라 한반도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일본인 판·검사 전원이 모두 공식 면직됐고, 그 자리에는 전부 조선인 판·검사들이 임명됐다. 일제 식민지의 껍데기를 벗어내기 시작한, 한국 법..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1.01.23
[대한민국 제1호] 신도시 [대한민국 제1호] 신도시 서울에 들어선 첫 신도시는 여의도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너의 아파트." 가수 윤수일의 명곡 '아파트' 가사에 등장하는 이 아파트는 어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일까. 정설(定說)은 없지만, 다리를 건너야 하고 한때 갈..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1.01.23
새해 새해 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속에 주님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가득한 새해되기를.... 마음의 소원과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KINGDOM 올림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1.01.01
[대한민국 제1호] 국산 텔레비전 [대한민국 제1호] 국산 텔레비전 최악의 여론 속에 태어난 흑백 TV 1호 국내에서 처음으로 TV 생산이 추진된 것은 1963년 무렵이다. 1961년 12월 국영 KBS TV가 개국한 지 1년여 뒤다. 당시 정부는 TV 수상기 보급을 확대해 경제개발계획을 홍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금성사(현 LG전자)에 TV 생산을 권고했다. 이..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0.12.04
[대한민국 제1호] 1969년 명동성모병원 국내 최초 신장 이식 [대한민국 제1호] 1969년 명동성모병원 국내 최초 신장 이식 장기 이식1969년 3월 25일 오후 6시, 서울 중구의 명동성모병원 수술실에서는 대한민국 의학사에 한 획을 긋는 수술이 시작됐다.국내 최초의 신장 이식이었다. ▲ 국내 최초의 신장 이식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재미교포 정재화(33)씨. 그는 미국..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0.12.04
[대한민국 제1호] 기상 재난, 58년 태풍 '그레이스' 이재민 1만3천여명 [대한민국 제1호] 기상 재난, 58년 태풍 '그레이스' 이재민 1만3천여명 지난 4일 수도권에 기상관측 사상 최대의 '눈폭탄'이 쏟아져 극심한 교통대란을 빚고 일부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재난(災難·disaster)은 태풍·호우·폭설 같은 자연재해와 화재·붕괴사고 같은 인위적·사회적 재..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0.12.04
[대한민국 제1호] 1950년대 첫 한전(原電) 유학생들 [대한민국 제1호] 1950년대 첫 한전(原電) 유학생들 ▲ 윤세원(왼쪽)·이창건(오른쪽) 1958년 문교부 원자력과장을 맡고 있던 윤세원 박사(전 선문대 총장)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의 호출을 받았다. 외환의 경우 단돈 10달러를 쓸 때도 이승만 대통령의 결재를 받던 시절, 한 해 수천달러가 들어가.. 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201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