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創造論]창조.신학.과학

1. 창조가 과학적이고, 진화는 종교적이다

好學 2010. 7. 15. 21:32

 

1. 창조가 과학적이고, 진화는 종교적이다

 

 


'진화론은 과학적이지만, 창조론은 종교적이다!'

당신은 종종 이런 말을 진화론자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창조론을 주장하는 동기가 종교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종교적(religious)’ 이라는 단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라고 정의된다면, 어찌됐든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맥락에서, 진화론 역시 그들 자신의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기원(origin)에 관한 학문의 목적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거나, 그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기원에 과한 이론은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될 수 없기 때문에, 두 믿음 다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다.

하지만 창조론이 더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알려진 과학 법칙들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화론은 훨씬 더 큰 ‘신앙(faith)’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열역학 법칙들을 위반하며, 확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초 안에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생체 시스템과 그것을 복제해보려는 인간의 시도가 비교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단백질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한 팀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많은 양의 비싼 화학 시약들, 수백 개의 반응 단계들, 자동화된 실험 장비들, 그리고 수개월에 걸친 계획 등이 요구된다.

진화론를 기초로 한 예측들은 현실성을 반영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화석과 지층들은 잘못된 위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어떤 동물의 DNA 함량은 진화론적 패턴을 따르지 않으며, 생물체들 사이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은 진화론적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진화 이론이 사실이었다면, 매우 많은 전이형태의 중간 생물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이것은 생물체들을 분류하는 데에 어려움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동물들은 번식(breeding)이라는 장벽에 의해서 유전적인 구분되어지는 분명한 “종류(kinds)”들로 분류되어진다.


진화론자들을 향한 기독교인의 자세

창조와 진화의 논쟁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조심해야하며 기도해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나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알 필요가 없다. 나는 단지 그가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고 말하며, 이 논쟁을 무시하는 자세를 선택한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의 자세는 별 문제는 없지만, 불신자들 특히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로서 진화론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늘 항상,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할 때, 많은 시간을 진화론적 논쟁들과 부딪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진리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타당한 자료와 생각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다가 많은 손해를 본다. 그러한 주장(이론)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좋은 신학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눠지게 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결과적으로 “가짜 과학 (진화론)”과 타협하면서 많은 이상한 교리와 이교(cults)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성숙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남아있는 이러한 이교적 자세는 진리에 대한 또 다른 방해물이 된다. 만약 한 사람이 도덕주의적이고 심판자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그는 즉시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것은 매우 민감한 과정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매우 귀중하고 엄청난 가치가 있으며, 금이나 은보다 훨씬 더 귀중하다는 자세를 포함하고 있다.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자세는 금이나 은을 쓰레기 속으로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결코 논쟁(debate)에서 '이기려고(win)' 노력하거나, 진화론자들을 개인적으로 비난(condemn)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을 잘못된 학설로부터 분리해내는 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종종 기독교인들은 자기방어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주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그리고 어둠의 주관자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진화론이라는 속임수를 미워하지만, 그것에 기만당한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랑해야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남을 박해하는 기독교인은 결코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를 이해하기

진화론자들의 동기 부여(motivation)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하나님'은 '인간 자신'인 것이다. 그들의 교리는 바로 인간이 진화의 생존 경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있다는 것이고, 인간은 스스로가 그들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로, 한 화학교수의 연구실 문에서 들은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한 학생이 교수에게 인류를 더 낫게 하는 과학을 공부하길 원한다고 말하자, 교수는 학생에게 자선단체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는 것이었다.

'과학은 자존가(egotist)를 필요로 한다. 과학 자체를 사랑하는 진정한 자기중심주의자'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에 매료되어 있는 듯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발견해내는 것이 더 많을수록, 과학자들은 스스로가 신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때문에, 그러한 생각과 대립되는 이론이나 사실들을 외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 유명해진 이유는 과학적 증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밀어내는 데에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운행되도록 하신 후, 간섭하시지 않고 포기하여 버린 기계론적 우주론을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밀어낸다. 조지 심슨 (George Gaylord Simpson)은 그의 책 '과거의 삶(Life of the Past)'에서 이러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쓰고 있다.

'인류는 독특한 이해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길고 무의식적이고 비인격적인 물질 과정으로 생겨난 독특한 생성물이다. 인간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며, 그 자신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으며 감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창조된 창조물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주인인 것이다. 그는 그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룰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진화론은 과학자들의 자기 경배(self­worship)를 강화시켰다. 만약 인류가 '진화의 길고 무의식적이고 비인격적인 물질 과정'의 산물이라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며,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왜 내가 하나님을 필요로 해야 하는가? 나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 사람이다!' 이것이 그들의 이유이다.

진화론이라는 종교는 자신의 교리, 전통, 생활방식, 그리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회학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은 진화론의 논리적인 확장으로서, 많은 다른 철학과 종교들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

* “당신 자신의 것을 행하라' 는 철학
*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최적자' 라는 사고방식
* 자본주의의 '고달픈 개인(rugged individual)'의 형태 (Ayn Rand와 같은)
* 뉴 에이지 운동 (New Age movement)
* 신비주의 (Rosicrucianism)
* 신지학 (접신학, Theosophy)
* 심령술 (Spiritism)
* 악마숭배주의 (Satanism)
* 마르크스주의 (Marxism)
* 사회주의 (Socialism)
* 민족우월주의 (Racism)
* 나치주의 (Nazism)
* 낙태 (Abortion)

기독교를 믿으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사탄은 창세기에서부터 강력하게 공격한다. 지난 150 여년 동안 공들인 진화론은 그에 반하는 압도적인 과학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웠고 유지되어 왔다.

만약 창세기가 의심스러운 기록이라면, 인류의 타락과 구속도 역시 의심스러운 일인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의문은 주변적인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적인 논쟁인 것이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타락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로마서 1:18~20 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통해 이미 그의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핑계치 못한다는 것이다. 불신앙에는 핑계가 없다. 그들의 생각은 허망하여지고, 그들의 미련한 마음은 어두워졌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있다 생각하나, 우준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를 경배하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정욕대로 내어버려두셨고, 그들은 자신 스스로 죄의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사람들에게 설명함에 있어서 공격적이어야 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첫 번째 표시임을, 성경은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만약 창세기가 사람들에게 정말로 사실로서 이해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돌아올 것이다. 만약 그들이 더 이상 의심 없이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들 안에서 일하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