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創造論]창조.신학.과학

하나님의 창조 2

好學 2010. 4. 12. 20:54

 

하나님의 창조 2

 

4강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강의한 것은 우리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세 시간이나 공부하셨던 분, 우리의 근본이 뭐였습니까? 바로 내 몸이죠. 나의 몸. 나의 몸이 우리의 근본이었습니다. 순서가 몇 개 있었습니까? 열 개 있었죠. 열 계단 있었죠.

 

첫 번째, 층계는 뭐냐 하면, 바깥에 온 근본, 우리 몸 말고 다른 근본은 어떻게 됐어요? 모른다에요. 우리 몸, 내 몸이 근본이에요. 그 외에 다른 근본은 모른다에요. 두 번째 뭐였습니까? 알고 싶지 않다. 상당히 이것도 참 중요하다 했지요. 알고 싶지 않아요. 왜 알고 싶지 않느냐 하면, 내 몸이 그런 거 몰라도 된다고 자꾸 이야기해요. 내 몸이. 니 몸 편하면 되지, 뭐 때문에 그런 거 알려고. 알고 싶지 않다.

 

세 번째 단계가 뭐였습니까? 사람은 뭐에 따라 산다? 외롭다. 이상하게 근본은 모르면서 혼자 살면 되는데, 외로움을 못 견딘다. 뭔가 옆에 있어야 돼요. 외로움을 못 견디니까 이건 뭐냐 하면, 정이 그립지요. 인정, 애정, 우정. 인정, 애정, 사랑이죠. 우정. 이렇게 정, 쵸코파이 있지요. 정이 그립다. 근본은 내 몸 이외의 다른 근본은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혼자 있으면 내 몸이 혼자 있으면 내가 근본인데도 외로워요. 외롭기 때문에 그 다음에 찾는 것은 뭐냐 하면, 정이 메말라요. 누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없는가? 누가 내 친구 될 수는 없는가? 내 말동무 될 사람 없는가? 인정스러운 이웃이 안 찾아오나. 못된 이웃 말고. 이렇게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이웃이 없는가? 정을 그립습니다.

 

정을 그리려면 서로 의사소통이 돼야 되니까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뭐냐 하면, 같은 신을 믿는다. 신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불교 같으면 같이 불교라도 괜찮고. 그 사람과 자꾸 친해져야 쉽게 말해서 친하게 산다 이거에요. 친하게 사는 거예요. 나의 몸의 근본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못 견디고, 인정이 그립고, 같은 무조건 생각을 같이 하는 거죠.

 

여섯 번째 뭡니까? 그러면 어떻게 돼요. 한 마음 되죠. 한 마음 될 때 인정이 된다는 거예요. 한 마음 되니까 그 다음에 뭡니까? 여섯 번째가 한 마음이고, 일곱 번째가 뭐예요? 이것이 한 마음 되는 거, 한 마음으로 화목 하는 거, 이것이 뭐냐 하면, 화목이 곧 진리죠. 진리가 될 때 이건 뭐가 돼요? 진리가 곧 뭐가 돼요? 나의 절대 종교가 되고, 종교가 딱 보장되면 그 다음부터 종교에 의해서 내 미래 보장 받죠. 이것이 나의 My way. 나의 운명이다. 나의 길. 나의 운명입니다. 이것이 나의 몸이 근본이 될 때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거 세 시간 동안 한 거예요. 다른 근본은 모른다. 내 몸 밖에 모르죠. 알고 싶지도 않아요. 외로움을 탄다. 혹시 나한테 정 붙일 사람 없는가? 정이 그립다. 교회 가면 교회 나와 주고, 성당가면 성당 나와 주고, 절에 가면 절에 나와 주고. 왜냐하면 정에 목말라 하니까. 같은 식구끼리 종교로 찢어지고 이런 것도 싫고. 한 식구는 같은 종교를 가져야 한 마음이 화목 되니까. 이렇게 안 싸우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 안 싸우고 친하게 지내면 내 몸이 외롭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 이것이 내가 기대했던 내가 원했던 이게 바로 진리다 이 말이죠.

 

그러면 구원이라든지, 뭐 천국이라든지, 지옥이라든지 종교에 관한 용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이게 전부다 뭡니까? 화목케 하면 이것이 나에게 선이 되고, 이러한 한 마음을 화목을 깨면 이게 뭐가 돼요? 악이 돼요. 선한테는 복을 받고 악인은 저주 받죠. 그래서 어떤 이웃이 와서 우리 가정을 더욱더 화목케 하면, 아이고, 천사 양반. 복 받겠네. 이카지요. 그런데 이웃이 왔는데 맨 날 우리 부부 사이를 갈라놓게 하면, 아이고, 이 못된 것. 갖다 저주나 지옥에나 가라. 이런 마음이 든다 이 말이죠.

 

이게 다 어디입니까? 근본이 뭐예요? 내 몸이 근본이죠. 외로움을 잘 타는 내 몸이 근본이기 때문에 진리라는 것, 이것은 내 몸 위주로 그렇게 진리가 구축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곧장 어디 이어져요. 이 진리가 나의 절대적인 종교로, 인생관, 뭐 세상관 절대적인 종교로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교회 가든, 절에 가든, 성당에 가든 진리라 하는 것은, 자기가 따로 꼬불쳐 논 거예요. 목사가 신부가 중이 무슨 소리 하든지 관계없어요. 이미 내 진리는 우리 집 화목을 깨는 것은 무조건 나쁜 악마고, 우리 집 화목을 편하게 하면 이것은 천사다. 이래 확정돼있어요.

 

이것이 교회로 이동하면 마찬가지에요. 교회라 하는 것은 인정이 넘치고, 서로 우정이 넘치는 곳인데 어느 나쁜 놈이 와서 이 교회 이단이라 하면, 이놈은 우리 화목을 깨는 거니까 그놈은 악마고, 아이고, 이 교회부흥발전 되세요. 하면 갑자기 화목을 북돋워주니까 그 사람은 천사가 되고. 그러니까 내 몸 위주로 내가 소속된 내 몸 위주로 절대종교가 되고.

 

그 종교가 이거는 실제생활로 좋은 거, 나쁜 거 확인하면서 지금 내가 확인하면서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지금 2007년도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을 2005년도부터 2007년도, 2008년도 쭉 이렇게 점검을 해보는 거예요. 이 종교가 맞는가? 점검을 해보니까 대충 맞더라 이 말이에요. 맞으니까 내 죽고 난 뒤에 내 천당 갈 거 이것은 진리에요. 내가 해놓은 이런 절대 진리의 교리에 근거해서 내 미래를 보장 받는 거예요. 난 죽어도 좋아. 왜? 천국가니까.

 

어째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선하게 먹으니까 우리 가정도 잘 되고, 우리 교회도 화목하고 다 이렇게 잘 되고. 내가 마음을 나쁘게 먹으니까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려서 우리 가정도 분란이 일어나고 우리 교회도 분란 일어나니까. 됐어. 이젠 알았어. 뭐냐? 항상 뭔가 반듯하게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니까 그 종교에 내 미래를 맡기면, 나는 영원히 구원 받는다.

 

이게 뭡니까? 이것이 뭡니까? 나의 운명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나죠. 나의 운명이죠. 결국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돌아온다 이 말이죠. 이게 첫째 시간, 두 번째, 셋째 시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동그라미를 한번 쳐 볼게요. 이 전체를. 이 동그라미를 한번 쳐보면 이것은 다 누구 안에 들어 있느냐 하면, 이 나라고 하는 이 안에, 우람이처럼 파마했다. 전부다 풀렸다. 약을 이상한 거 써서.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담겨 있어. 이 전체가. 이게 나이가 먹어도 커서 스무 살 되고, 서른 살 되도, 오십 되도 마찬가지에요. 내 안에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강의 처음 할 때 근본은 어디 있다 했습니까? 골로새서 1장 16절, 17절. 우리가 일찍 온 사람 봤지요. 근본은 세상 모든 것은 내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누구 위주로 돼 있어요? 모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우리보다 먼저 계셔서 우리의 근본이 되시고, 우리의 원천이 되셔서 모든 것은 그분을 바라보면서 창조 되게 돼있다. 이래 돼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 둘째 날 저녁 시간에는 뭘 하느냐 하면, 이건 이미 아니까. 이 외부에 있는 근본이 이 내부까지 어떻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어떻게, How? 어떻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외부에 있는 근본이. 내가 근본 아닙니까. 내 몸이라는 근본이 나한테 꽉 차 있는데. 외부에 있는 근본이 창조의 원인, 근본이 어떤 식으로 우리한테 접근해 오는가? 그것을 이번 시간에 지금 강의를 하겠습니다. 이번 시간부터 약간 길게 하든지, 모자라면 내일 예배시간도 강의시간이에요. 티 입고 무슨 예배드리겠습니까?

 

강의식으로 낼 하겠는데, 외부 근본이 이렇게 나로 꽉 차있는 나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가? 그걸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필기할 준비를 해야 되겠지요. 먼저 온 사람들은 벌써 필기 다 했어요. 늦게 온 사람 이거 안 적어도 되는 모양인데, 나중에 또 여러 번 하겠습니다. 지워버려요. 모르면 옆에 사람 컨닝하세요.

 

여름밤이 되면 섬뜩한 일이 있어요. 비가 쫙 오는데 바깥에 소나기 치는데 창가에 책상 앞에 있으면 창가에 뭔가 획 누가 지나간 것 같아. 창문 열고 거기 누구 있어요? 없는데. 또 창가에 있다가 뭔가 이번에 이쪽에서 획 지나가요. 뭐 이런 게 다 있나. 뭐야? 이거.

 

애들이 공부할 때 제일 놀라는 것은 자기가, 창이 이렇게 있고 여기 책상이 이래 있고 공부를 하는데 뭔가 웬 아저씨가 시커멓게 해서 턱 해서 니, 잡으러 왔다. 이런 거. 다가왔을 때 화들짝 놀래죠. 밖에 누구요? 밖에 서 계신 분 누구요? 라고 놀라듯이 외치겠죠. 밖에 계신 분 누굽니까? 낯설게.

 

바로 지금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외부에 계신 분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어떤 인물로, 어떤 사람으로 마치 홀연히 불연 듯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는 겁니다. 근본이라 해서 뭐 깔개를 들고 오는 게 아니고, 그냥 어떤 사람이 와요. 하나님이 날개 짓해서 와서 나 하나님인데, 나 천산데 이래 오는 것이 아니고, 어떤 특이한 사람이 우리한테 와요. 그 근본이. 나는 널 창조한 자다. 이래 다가온다 이 말이죠.

 

그럴 때 우리는 깜짝 놀랍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몸이 근본이기 때문에 이 근본을 대체할 딴 인간, 딴 사람이 오게 되면 우리는 그걸 공격하게 돼있어요. 공격합니다. 저리 가! 귀신아, 저리 가! 귀신아, 저리 가! 어린 학생이 공부하고 있으면 어떤 아저씨가 비가 줄줄 맞고 하는 말이 애야, 니 책상 내가 대신 앉았다다다다. 저리가, 저리가, 저리가. 내 책상이야. 저리가. 니 책상 되게 편하게 생겼는데. 내가 한번 앉아 볼까. 이래 오면 저리가, 저리가. 하잖아요.

 

현재 우리가 깔고 앉아있는 이 내 몸의 근본 자리는 내 몸인데, 아까 했지요. 외로워서 못 살겠다. 정이 그립다. 그래서 하나의 화목한 가정과 화목한 식구 있으면 좋겠다. 그게 나의 전부고 나의 운명이다. 이래 생각하는데 갑자기 니 자리에 내가 한번 앉아 볼까? 하고 대체할 딴 인간이 비 오는 날 밤에 창가에 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식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목사님, 창가에 괴물 등장하는 게 성경 어디 나옵니까? 창세기 22장에 나와요. 함 봅시다. 그전에 창세기 21장에 2절에 한번 봅시다. 제가 읽습니다. 참, 읽기 전에 이야기 하나 더 빠졌는데. 비가 줄줄 떨어지는데 비 맞고 니가 앉아 있는 의자, 근본 의자 내가 한번 앉아 볼까? 눈 내리깔고 이렇게 해서 나는 왔다. 이러고 왔을 때 놀라지요. 이걸 알아야 돼요. 뒤에 기다란 쥐꼬리처럼 꼬리가 달려 있어요. 꼬리가 어디까지 연결 돼있는지, 하늘까지 꼬리가 좀 길어요. 나는 근본에서 왔거든. 이래서 꼬리가 길다고요. 길어서 네가 앉는 근분이라는 자리에 내가 너 대신 대체 인물로 좀 앉아야겠다고 찾아오는 겁니다.

 

그러면 안 돼. 이건 평생 동안 이것이 나의 운명이고, 열 단계를 통해서 나는 내 몸이 최고야. 내 몸 편하면 행복이고, 내 몸 불편하면 불행이야. 아는 건 그것 밖에 없어. 아이, 저리가, 저리가, 저리가. 싫어, 싫어. 내 자리 안 뺏겨.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찾아온다고요. 특이한 사건인데 그게 창세기 21장에 나옵니다. 제가 읽어볼게요.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뭐라고 하죠? 이삭이라 하죠.

 

이게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데 여러분 잘 아시죠.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마태복음 1장에 이래 돼있죠. 처녀가 잉태하여 뭘 낳습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지요. 여기는 창세기 21장에 보면, 이미 태가 죽어서 아기를 못 낳는 그 여인에게 난데없이 아들이 생깁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근본이 우리가 근본인데, 이번 시간에는 외부 근본이 나라는 인간이 꽉 차고 있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에게 어떻게 접근해 들어오는가? 그걸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냐 하면, 만약에 예를 들면, 어떤 애가 비 오는 날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사나이가 등장해서 그 사나이 뒤에는 어떤 고무줄로 해서 하늘나라에 연결돼있는 이 사나이가 니가 앉은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해서 들어가겠다. 이런 특이한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특이한 사건인데 제가 특이한 사건 하나를 뭘 이야기했습니까? 창세기 21장에 아기를 늙어서 아기를 못 낳는 사라라는 할머니에게 뭐가 생깁니까? 아기가 생기는 이야기했고, 두 번째 방금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이야기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뭘 낳습니까? 아기를 낳지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으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고 예수라고 정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처음부터 우리 자신이 우리가 근본이라고 여겼는데, 성령을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메시지가 왔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해봐야 계속해서 연결할까요? 하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 뒤에는 외부 근본과 내부 근본 사이를 영생으로 연결시키는 줄이 있어요. 그 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따라 해보세요. 약속이 하나님의 약속이 줄을 타고 와서 내 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겁니다. 그 약속 뭐였던가요? 이야기하지 말고. 그 약속이 뭐였던가요? 아, 첫 번째, 첫 번째 이야기 한건데. 그 약속이 뭐였습니까? 등산 갔다 오고 나니 다 잊어버렸나.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짓거리를 하더라도 우리 운명은 내가 한 짓거리하고 상관없이 누구 마음대로? 예수님 자기 마음대로다. 하는 것이 약속이라고 했지요. 아, 기억나나. 골로새서 1장에 17절은 그걸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짓거리를 하던지, 평생 동안 교회 한번도 안 나오든지, 십자가 강도처럼 나쁜 짓 하던지 간에 그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결정 난다는 것이 약속입니다. 그게 약속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새삼스럽게 경쟁해서 이길 필요 없어요. 이길 필요 없고 반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나는 왜 경쟁에서 져도 괜찮은 존재냐?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나는 왜 어째서 죄인의 괴순가? 그걸 알아가는 평생을 살아가야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얼마나 의를 모아야 마일리지처럼 얼마나 착한 일을 모아야 모아놓은 착한 일 가지고 착한 사람 모인다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렇게 자꾸 힘들 게 경쟁하면서 너는 얼마치 모았는데? 나는 오천 원어치 착한 일 모았다. 아이고, 나는 삼천 원어치 밖에 못 모았는데, 지금 죽으면 안 돼. 이천어치 더 모아야 돼. 이런 식으로 남하고 착한 일, 자기의 의 경쟁하지 마시고 반대로 사시면 돼요. 너 얼마나 나쁜 짓 했나? 나는 육천 원어치 나쁜 짓 했다. 아이고, 나는 육천 원 안 된다. 팔천 원어치 더 해야 된다.

 

내가 얼마나 내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에 이미 내 선에서 관계없이 이미 나는 합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인가를 알기 위해서 왜 내 힘으로는 그걸 통과할 수 없는 존재인가를 자기 자신이 왜 죄인의 괴수인가를 알게 하는 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오후 한 세 시쯤 되서 네 시쯤 되서 우리 십자가마을에 누가 글을 올렸기에 제가 리플 하나 달았어요. 제가 이랬습니다. 어떤 신학이 나를 죄인 중에 괴수되도록 확인하지 않는 신학은 신학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만약에 어떤 훌륭한 사람이 있다. 그럼 내가 그 사람한테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이래 돼버리면 훌륭한 사람이 있고,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하고 그럼 존경할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나는 얼마나 2% 착한 일이 남아 있잖아요.

 

그러면 그 존경할만한 사람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근본, 약속에서부터 멀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저 사람을 존경스러운 걸 내가 아니까 역시 내 속에는 착한 모습이 남아있구나. 이래 되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가 아니고, 그래도 2% 정도는 남아 있어.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사람은 3% 남아 있는 사람하고 경쟁, 게임에 해서 니가 잘났나, 내가 잘났나. 시합에 나가죠. 그런데 세상에 뭐 순교자니 어떠니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 딱 들어서면 어떻게 됩니까? 이유 없이 우리는 죄인 되죠. 왜냐하면 그분은 비 맞고 있는 우리 창문가에 서 있는 그분이거든요. 니 자리 내 놔라 하는 거죠. 내 뒤에는 약속의 끈이 있다 이 말이죠. 약속의 끈이 있으니까.

 

잠간만 기다려 봐요. 한번 보고요. 수련회 중인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약속의 끈이 내 자리를 이 약속이 주르륵 쏟아지면서 덮쳐요. 그러니까 끈이라 생각하지 말고 파이프라. 이만한 파이프가 있고, 이 파이프를 통해서 구제품, 밀가루나 설탕이나 강냉이가루나 이것이 내 앉은 자리에서 막 밀려온다 이 말이죠. 그 밀려오는 것을 밀가루나 강냉이나 우유가루, 분유 그런 걸로 보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라고 보자 이 말이죠. 우리.

 

나는 지금 공부하고, 나는 오늘도 착하게 오늘도 반듯하게 살게 하는데, 여기 비가 줄줄 오는데 바깥에 와서 니 자리 내 놔라. 하더라고요. 뭐야 당신! 하니까 나는 근본이거든. 뒤에 줄이 있는데 뭡니까? 줄이 아니고, 파이프다. 그 무슨 파이픕니까? 너 자리를 차지할 나의 의와 나의 공로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자비가 막 뒤의 약속이라는 파이프를 통해서 우리한테 쏟아지고, 쏟아지니까 더 이상 너의 몸의 너의 근본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더 이상 너의 몸이 근본일 수 없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거는 누구의 작품이냐 하면, 아브라함 몸의 작품이에요.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있습니다. 누구냐? 이삭이 생겼어요. 창세기 21장 2절에 보면. 아들이 이삭이 생겼는데 그 이삭은 누구 작품이 아니냐 하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두 부부의 작품이 아니에요. 얼마나 특이합니까? 이것은 비 오는 날 창문가에 서 있는 어떤 아저씨에요. 이삭이라는 게.

 

아버지. 너 누구야? 니 누구야? 너 누군데 웬 애가 내 배에서 태어났어. 그러니까 사라가 배가 불룩해지면 사라 자기애한테 태교시키고 모차르트 음악 듣고 이러면 안 돼요. 물어야 돼요. 니 누구야? 내 배를 차는 니는 누구야? 이거는 내 남편 아브라함과 아무 상관없이 태어나는 너는 누구란 말인가? 이 수상한 놈. 니 누구야? 그게 이삭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도 그래요. 나는 남자를 몰라요. 그런데 배가 불러와요. 발로 팍팍 찹니다. 니는 누구니? 너는 누구야? 내 허락도 없이 내 배에서 자라나고 있는 넌 누구야? 애가 하나님의 약속인데요.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게 뭔가 문자로 되서 우리보고 믿으라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안에서 잉태합니다. 그게 신약에 보면 성령이 와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 있고,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는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 임신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관계가 된다 이 말이죠.

 

이것은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일 단계부터 십 단계까지 첫째, 둘째, 세 번째 시간에 이야기했던 것, 내 몸이 나의 근본이다. 나는 신이고, 예수고 다 치우고 나는 외로워 못 살겠다. 내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게 종교를 관계없이 나는 붙어살란다. 내 몸 편하면 행복이고 그게 선이고, 내 몸 불편하면 그게 악이고, 불행이고. 사람 사는 게 그거지 딴 게 뭐 있노? 그저 몸 편하고 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그게 사는 보람이지. 무슨 종교라는 게 내 몸뚱아리 좋아라 하는 게 종교지.

 

근본 누구 아는 놈 있나? 알고 싶지도 않고. 그게 일 단계, 이 단계잖아요. 근본이 있더라도 알고 싶지도 않고. 내가 아는 것은 내 몸이 지금 불편한가, 내 몸이 지금 행복한가? 그것만 하면 돼요. 그걸로 족하다 말이죠.

 

그런데 특이한 사건. 누군가 방문해요. 약속이라 해서 글자 약속이란 한글이 막 머리띠 해서 떡 보니까 “ᄋ” 또 보니까 “ㅑ” 그리고 “ᄀ” 뭐고? 이거. 보니까 “약”? 하나, 좀 있으니까 “ᄉ” 뭐야? “ㅗ” 뭐? “ᄀ” “약속” 문자를 나무로 만들어서 뒤통수 때리는 식이 아니고, 약속으로 하는 것은 어떤 분으로 어떤 어르신네로 오는 거예요.

 

신이시여, 저 황혼을 지으신 신이시여. 신께서는 너무나 장엄하시고 위대하십니다. 하는데 뒤에서 톡톡 아저씨. 제가 약속이거든요. 치우고. 니는 인간 아닌가. 오, 신이시여. 내 영광을 받으소서. 내 기도를 받으소서. 어허, 아저씨. 내가 약속이거든요. 내가 하나님이 보내준 약속이거든요. 니는 인간이야. 저리 가고. 나는 내가 상상한 신을 믿고 있어. 아주 나는 신앙심이 나는 좋아. 아주 좋은 거야. 신이시여, 자비로우신 신이시여. 이래 나와요.

 

이슬람교의 문제가 뭐냐 하면, 중보자가 없어요. 마호메트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일 뿐이지 중보자가 아니에요. 사람이 하나님 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보통 사람이에요. 부처도 마차가지에요. 하나님은 결국 저기 있어요. 우리 상상력으로 통해서 관념상으로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가까이 와버렸단 말이죠. 아주 특이하게 와버렸어요. 그게 하나의 약속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지금까지 한 것, 한번 아시는가 질문 하나 들어갑니다. 질문 하나 해 볼게요. 사라가 아기를 낳아서 이름이 이삭인데, 그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두 부부가 의논해서 예상한 아이입니까, 아니면 그냥 하나님의 약속으로 들이 밀은 겁니까? 밀은 거죠. 그때부터 그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이 주도권을 쥐는 하나님이 약속이 거기서 주인 행세하는 아주 특이한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아빠 말을 잘 들을까요, 안 들을까요? 사라가. 사라가 아니지 참, 죄송합니다. 이삭이, 아들이 부모 말을 잘 들을까요, 안 들을까요? 안 듣지. 왜냐하면 이삭의 끈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삭의 운명은 그 부모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뒤에 매달려 있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 이삭의 운명은 결정되는 겁니다.

 

지금 제가 보려고 하는 것은 그거에요. 성경책 안 가져왔나? 창세기 22장, 우리교회라 하면 남는 책 많아서 볼 건데.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어떻게 합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제사 드리고 죽이려고 데리고 가지요. 세상에 어느 부모가 지 자식, 귀엽게 자란 자식을 왜 죽이려고 합니까? 그게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놈의 자식은 내 말 들어야 될 자식이 아니고,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줄 그러한 자식으로써 이 아브라함 가정에 파견근무하고 있는 겁니다. 아주 특이해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한국교회 기존교회한테 배운 건 뭐냐 하면, 내가 알아서 열심히 신앙 생활해야 그래야 내 구원은 내가 챙긴다. 내가 구원되고 안 되고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전부다 자기, 나에게 달려있다. 내가 내 구원의 근본처럼 여겨지고 나한테 달렸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성경에 보면 정반대입니다. 니는 손떼도 너 구원은 너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너에게 안 달려있다는 겁니다. 너를 찾아오신 분에 의해서 달려있지, 내가 얼마나 봉사하는가 거기에 달려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찾아오신 분이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약속했는가? 무슨 약속을 가지고 우리에게 새끼손가락 걸어서 약속했는가? 그게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겁니다. 아까 열 단계에서 마지막에 십 번째가 뭐라 했어요.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옳지.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이 말이죠. 내가 근본일 때는. 가끔 천재적인 게 있어요. 가끔은 종종 가끔 그래요. 늘 그러면 좋겠는데. 내가 근본 같으면 내 운명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나의 운명은 나한테 달린 거예요. 그런데 나에게 누가 들이닥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분은 나의 대체물이에요. 나는 내 근본의 자리를 그 사람한테 비어주고 그 사람에게 뒤에 쏟아지는 약속에 의해서 우리는 종속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운명이 그 사람에게 달려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을 관찰해야 돼요. 이삭이 어디로 가지, 이삭이 어디로 가는지, 이삭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야 된다 말이죠.

 

이거 십자가마을에서 한 연극인데 도저히 오늘도 한번 해야 되겠어요. 우리 똑똑한 우석이 나와 봐라. 이거는 말로 하는 것 보다 행동 보여주는 것이 훨씬 여러분에게 잘 새겨들을 겁니다.

 

자, 우석이가 내 아들이라 하고 김대식 성도님이 하나님이라 합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 내 자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서울대학 법대 수석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그저 색시 하나 잘 만나게 하시고 훌륭한 색시 만나서 나중에 국가와 교회를 위해서 일등 되게 해 달라. 이렇게 기도하거든요. 항상 기도의 근거는 뭡니까? 내 몸에 낳은 내 자식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느냐 하면, 일단 내 자식을 뺏어버려요. 하나님한테 가게 해요. 저 가서 붙어봐라. 붙었죠. 이래 놓고 하나님이 내 보고 이야기합니다. 어이, 니 쟤를 위해서 기도해라. 이미 내 자식은 아닌데. 내 자식이 아닌 자식을 위해 기도하라. 이 말이죠.

 

그럼 우리는 뭐냐? 이근호 목사 강의하고 난 뒤에 반응이 뭐냐 하면, 그럼 목사님, 기도할 것 없겠네요. 맨 날 반응이 이거야. 하나님은 기도하라는 거예요. 근데 내게 아닌데 왜 기도합니까? 내게 아닌데 왜 기도합니까? 목사가, 조금 더 있어라. 내 보내줄게. 목사가 자기 교회 교인 같으면 기도하는데, 그 교인이 다른 교회 갔는데 그거 왜 기도합니까?

 

나의 자존심과 관련 없는데. 그 교인이 있으면 나한테 헌금 할 거고 내가 수입이 더 보장되고, 내 장래가 보장되는데. 가버리면 돈 몇 푼 안 되는 사람이지만 가버리면 내 돈 뺏기는데. 장사 안 되는데. 내가 미쳤다고 기도해줍니까? 기도한 값을 어디 나올 게 있어야지.

 

하나님은 가게 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우석이가 간 곳을 가서 아하, 내가 얘를 당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얘를 보냄으로써 바로 그 자리에 내가 가야 될 천국이 거기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들어가.

 

하나님께서는 내 위치를 이동하게 만들어요. 나는 내 몸이 근본이라 하는 근본 자체를 위치 이동시켜서 나를 찾아오신 분이 어디로 가서 사흘 만에 부활했는가 보란 말이죠. 어느 지점에서 사흘 만에 부활했는가 보란 말이죠.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이 들썩들썩 거립니다. 하나님께서 어이, 아브라함아 이삭은 지 갈 길을 가야지. 어떻게요? 니가 잡아라. 누굴 말입니까? 이삭을 잡아야지. 아니 사람을, 생사람을 죽입니까? 내 명령이다. 이삭은 죽도록 돼있는 거예요. 원래 이삭이 태어날 때부터 뒤에 약속이라는 이 줄이 있어요. 이것은 하늘나라의 근본입니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앞당겨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떤 운명 길을 가는가? 미리 앞당겨 맛보기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삭을 보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거 내 자식이다. 하나님, 안 됩니다. 이거 내 자식입니다. 내가 얼마나 과외 시키고, 영어시키고, 캠프 보내고 얼마나 애썼는데 안 됩니다. 내 자식입니다. 빨리 안 죽이나? 니가 니 육체로 태어난 자식이가? 아닙니다. 그럼 니가 의논해서 태어났나? 아닙니다. 그럼 그 자식 내꺼 맞네. 맞습니다. 그 자식은 니 말 듣는 게 아니고, 그 뒤에 약속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빨리 내 시키는 대로 해!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데리고 죽이려 갑니다. 아빠 어디로 가는데? 모리아 산에 간다. 왜 가는데? 하나님께 제사하러 간다. 그런데 제사하는데 그 나무는 뭐고? 뭔데? 불쏘시개 할 거. 칼도 있고. 아빠 하나 빠졌네? 뭐가 빠졌는데? 제물이 빠졌네. 그건 말이야. 별들에게 물어 봐. 그건 약속된 하나님께서 알아서 주시겠지. 하고 데려갑니다.

 

데려가고 꽁꽁 묶어 놓습니다. 얘가 어린아이기 때문에 칼 보면 도망칠 가능성이 많아요. 꽁꽁 묶어서 칼을 들고 단숨에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단숨에 죽입니다. 그때 멈춰! 멈춰! 중간 쯤 와서 코 15센티지 그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14센티? 그건 내 안 재봐서 모르는데. 죽이는데 멈춰! 이미 죽은 걸로 간주하고 대신 수양을 잡아서 하고 그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그 자리에서 살아납니다.

 

아브라함아, 진짜 이제 니는 니 근본을 이삭한테 양도하고, 이삭이 하나님 뜻인 줄 니가 믿는구나. 그때부터 아브라함을 자기를 믿는 게 아니고, 자기에게 찾아온 이삭, 하나님께서 집어넣어준 침투시킨 이삭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4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되었습니다. 그분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앞으로 믿어야 될 사람들은 똑같은 식으로 믿지 아니하면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럼 이 시대는 뭐냐? 누가 죽었다가 살아났는가를 조사해 보세요. 누굽니까? 이 세상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누구에요? 누구지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 그렇지.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자신이 내 몸이 근본이라는 것을 예수님한테 양도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습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라 그분이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그 약속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분 따라 그분을 믿게 되면 그분이 가신 길 가게 되기 때문에 우린 이미 죽어도 다시 주님과 천국의 부활의 몸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근본이.

 

이제 우리의 근본은 내 몸이 아니고, 우리의 근본은 하늘나라에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무슨 자냐 하면, 승리자가 되죠. 그렇지 않습니까? 승리자가 됐다면 쓸데없는 경쟁에 휘말려 들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게임에 대해서 우리가 신경 쓸 이유가 없어요.

 

만약에 근본이 내 몸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걸 잠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안다 하시고. 외부에서 올 때는 낯설게 낯선 인물로 와서 내 자리를 대체할 대체 인물로 오시는데, 그 뒤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끈이 있어서 우리 자리에 앉자마자 그분 뒤에서 약속이 쏟아져서 그분의 의, 그분의 승리, 그분의 마귀 이기심, 그분의 자비, 용서가 와르르 쏟아져요. 우당탕탕 소리 내면서 쏟아져서 내 자리를 덮치면, 우리는 거기서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고, 부활이 되고,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 된다하는 이야기를 방금 했습니다.

 

밖에 계신 분 누구십니까? 특이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오는 거예요. 외부에서 우릴 구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게임이나 경쟁 같은데 그것 가지고 인생 걸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증거하면 되지, 내가 상대방을 이길 필요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것만 하고 첫째 시간 쉬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전히 내 몸이 나의 근본이다. 이렇게 나오면 여기서 우리는 뭐가 생기느냐 하면, 경쟁이 생기는데 이게 상당히 피곤해. 피곤한 경쟁이에요. 왜 피곤한 경쟁이냐 하면, 내 속에 내 몸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 몸 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여기 욕망이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욕심이죠.

 

이 욕망은 자극, 새로운 자극에 대해서 목말라 해요. 날마다 새로운 자극에 대해서.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거기서 뭐가 생기느냐 하면, 차이가 생겨요. 나는 이래 사는데 저 사람은 양반 저래 사는구나. 그만큼 차이가 생기죠. 그 차이를 겨냥해서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여기서 뭐가 발생된다 했습니까? 지난 시간에. 다 잊어버렸죠.

 

그게 뭐라 했습니까? 운동. 뭔가 삶의 목표, 또는 삶의 동기 또는 비전, 희망, 소망. 이런 게 차이가 지게 되면 거기서 운동이 생겨요. 여러분들 바람이 부는 이유를 아느냐? 바람은 기압의 차이에 의해서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불지요. 여러분, 물이 왜 떨어집니까? 높은 위치에서 낮은 위치로 떨어지게 돼있어요. 거기서 에너지가 나오는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면, 거기다가 팔랑개비 같은 걸 돌려서 전류를 통해서 보면, 우리가 있는 에어컨이라든지 전기가 발생되잖아요. 희한하죠.

 

물이 그냥 흐르는 줄 알았더니 거기 힘이 생겼단 말이죠. 떨어지는데 앉아 있으면 이게 마사지 되잖아요. 폭포. 폭포 떨어지는데 있으면 마사지 되잖아요. 에너지가 있잖아요. 현재 욕망은 에너지에요. 프로이드에 의해서 욕망은 에너지인데, 이 에너지가 막 치게 하고, 에너지가 발생되니까 남을 때리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에너지가 새로운 자극을 향하여 운동하는 에너지에요. 이게 내 몸이 내 몸 위주로 간다는 게 아니고, 내 몸 자체가 그래요. 아, 이해를 잘 못하시는데 쉽게 들어가겠습니다.

 

방금 제가 어떤 낯선 분이 와서 우리를 그냥 공짜로 구원한다 하지요. 우리는 구원 문제에 이미 승리자기 때문에 세상에 가서 경쟁할 필요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 있잖아요. 구원받고자 하는 내 몸. 이 내 몸은 가만있는 게 아니고, 새로운 자극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운동하려 하고 진보하고 발전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실패한 것을 빨리 보상하려고 한다 이 말이죠.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점을 익히 아신다는 점을 우리가 같이 좀 알아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시니까 쓸데없이 욕망을 줄인다든지 나는 욕심내면 안 돼. 나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돼. 이런 식으로 자기 조절에 나서지 마시라 이 말입니다. 또또또 슬슬 흥분하는 타이밍이 됐다. 내가 흥분하는 거 보니까. 원래 흥분 좀 하면 쉬면되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잖아요. 이루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다 이룬 걸 아는데 왜 우리가 욕심을 내지.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몸이. 예수님은 다 이루었더라도 내 몸이 내 욕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내 욕망은.

 

여러분,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감정을 어떤 성경말씀 전체를 달달달 외운다고 욕심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거는 한국교회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든 말든 내 몸의 욕망은 중구난방 지 마음대로 로켓처럼, 얼마 전에 포항에서 불꽃놀이 했답니다. 한 50분 간 했다며 유리가 이야기했던가. 이야기했지요. 그렇게 재미있었다면서 50분 동안. 운전하면서 좀 들었는데, 하여튼 들었는데.

 

내 몸의 불꽃놀이에요. 불꽃놀이. 어디로 튈지 몰라요. 예수님을 본받아서 나는 아주 겸손하게 살아야지. 나는 욕심도 내지 않아야지. 하면서 가다가 백화점에 옷보고 어머나, 미치겠다. 저거 사고 싶은데. 사고 싶은 데가 아니라 사고 싶은 것이,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내 몸이 갖고 있는 주특기에요. 이걸 어떻게 절제하고 조절하고 죄 안 져야지,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목사님, 우리 보고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흥분하지 말고 찬찬히 이야기해 보세요. 내 몸이 어떻게 해서 죄인이냐를 알아야 돼요. 목표를 정해서 하면 된다. 마시고, 왜 나는 죄인인가? 왜 나는 죄인인가? 그리고 남편 보고, 왜 내 남편은 죄인인가? 아들 둘이지만, 내 아들 둘 다는 왜 아주 곱빼기로 죄인인가?

 

이미 구원받았기에 이미 구원받은 입장이기 때문에 이미 천국 가는 것이 예약된 입장이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내 몸이 어디로 튄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재미나게 보는 거예요. 어, 내 몸이 오늘은 나이트클럽으로 튀는구먼. 그거 재미있드나? 한 두 번 가보고 재미없으면 그만 가지. 그만 가고 그 다음에는 저 경마 쪽으로, 거기 가도 재미없을 걸.

 

도대체 이 몸은 뭐, 잠간 새롭다 하면 몰두하다가 두세 번 해보면 에이, 이것도 흥미 없고. 주여, 내 몸이 재미없습니까? 차라리 나이 많은 사람 죽는 게 낫지. 내 살면 뭐 합니까? 하는 그 순간 강도가 와서 죽인다 하면, 어머, 살려주세요. 아저씨. 이래 된다 말이죠. 방금 죽어야 마땅하지. 하면 그러다 막상 또 하면, 아니야 살아야 돼. 갑자기 그 어떤 사람이

 

그러니까 내 몸은 내가 표현이 안 돼요. 내가 종잡을 수 없어요. 용수철처럼 여기 하면 여기 툭 튀어나오고, 저기 하면 저기 툭 튀어나와요. 뭐,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요? 어느 세월에 안 미워해. 언제 우리가 한 순간도 안 미워해본 적 있습니까?

 

형제를 사랑하란 말은 아하, 내가 이 정도로 사랑할 줄 모르는 죄인 중에 괴수이구나. 그러니까 어떤 낯선 분이 찾아왔지. 특이하게. 날 따라와요. 해서 가 보니까 십자가 통과해서 사흘 만에 부활한 코스로 가는구나. 야, 저것이 내가 근본이 아니고, 저분이 나의 근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거 특이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10분 쉽시다.

 

 

5강

 

 

지금부터 두 번째 저녁 마지막 시간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첫 번째 시간에 운동이란 차이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바람 부는 것도 물이 떨어지는 것도 차이에 의해서, 높은데서 낮은 데로 혹은 낮은데서 높은 데로 갈 수도 있고, 하여튼 여기에서 인간의 육의 운동이 일어나지요.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을 소망해서 내 몸을 여기다 밀어 넣는 거예요. 지금은 A라는 수준이지만 B라는 수준까지 높여야겠다.

 

안 오신 분이 있네요. 오시면 다시 설명하면 되니까 --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월급을 100만원 받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200만원 받는다. 그러면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지요. 한 사람은 일반 직원이고 한 사람은 계장이다. 사장님, 나는 평생 직원으로 살렵니다. 100원짜리로 살렵니다. 이런 사람 없어요. 이번 승진 심사에서 계장되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요.

 

이게 뭐냐 하면, 우리 속에 하나의 운동으로 작용하는 겁니다. 100만원 월급에서 200만원 으로. 이게 바로 자극 받아서 우리 몸이 운동하는 거예요.

 

저쪽 자리에 누가 앉아 계셨더라? 아, 예. 오시면 다시 하면 되니까.

 

돈 문제도 그렇고, 또 외모도 그렇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키가 150Cm인데 옆에 있는 친구는 160Cm란 말이지요. 그러면 주사를 맞든 키 커는 운동을 하든 굽 높은 신발을 신는다든지 해서 여기에 또 소망이 생기잖아요. 동생은 쌍꺼풀이 있는데 나는 없어서 수술을 하려고 운동, 소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움직이라는 것은 자극을 받아서 그 차이를 알고 그 차이 폭을 메우려고 시도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교회에서 어떤 신자가 성경을 하루 2장 읽는데 목사님은 하루에 10장 읽더란 말이지요. 그 폭만큼 더 나아가야 이것이 성화되고, 이것이 하나님께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으로 봅니다.

 

기도를 하루에 1시간 하는데 김 집사님은 하루 10시간 하더란 말이지요. 우리교회와는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들으세요. 1시간 하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이만큼 높아져야, 자극 받아서 높아져야 된다. 어떤 사람은 미국에 목회하러 가는데, 어떤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 가더라. 미국에 가면 태평인데 선교를 가려고 하면 나이지리아라든지 아프가니스탄이라든지 위험한 지역에 가야지-- 여기에서 뭐가 생깁니까? 저렇게 해야 더 훌륭한 인격체가 되는 어떤 자극을 받아서 여기에서 운동이 생기는 겁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게요. 운동이란 어디서 생겨난다? 차이에서 생긴다. 그런데 우리가 차이라는 것은 현재 한 달 수입의 차이일 수도 있고, 키가 작다든지 쌍꺼풀이 있다든지 얼굴이 예쁘다든지 이런 외모의 차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격 -나는 성격이 굉장히 급한데 저 사람 성격은 얼마나 좋은지 나도 저 사람처럼 기도 많이 해서 화도 안 내고 느긋하게 되어 볼까. 자꾸 어떤 나보다 더 차이나는 높은 목표에 대해서 자극을 받아서 여기에서 사람은 운동을, 노력을 시도하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것이 교회 내에서도 나는 성경을 2장 읽는데 어떤 사람은 5장 읽는다. 그러면 3장만큼 더 소망해서 자극 받아서 키우려 하고, 나는 하루에 기도 5분 하는데 어떤 사람은 1시간동안 하더라. 1시간동안 하니까 인품이 저렇게 달라졌구나. 하고 더 나아가고. 자꾸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 저나 여러분이나 뭔가 생각한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도록 자극 받는 것이 외부에서 올 수도 있고 내가 찾아갈 수도 있어요. 그것이 우리의 모든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이렇게 일 할까요, 안 할까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도 이렇게 일을 해요. 이거 전체가, 예를 들어서 현재 나는 월급이 100만원인데 200만원 받고 싶다고 할 때, 200만원 받는 것도 나고 100만원 받는 것도 나니까 내가 그대로 나에게 옮기지요. 내가 쌍꺼풀이 없는데 쌍꺼풀을 한다. 현재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나고 쌍꺼풀 한 것도 나지요. 내가 돈 주고 남 쌍꺼풀 할 일은 없는 것 아닙니까. 너 쌍꺼풀 하니까 기분 좋다. 이런 것은 없단 말이지요.

 

키가 작고 큰 것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 기도 많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헌금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 모든 것이 나는 그대로 있는 채 나의 품위만 더 향상될 때 이 차이가 뭘 만들어 내는가 하면 나의 모든 움직임, 운동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합니다. 이것 전체를 뭐로 보느냐 하면, 한 자로 ?육? 따라해 봅시다. ?육? 신약 성경에 나와요. 이것 전체를 육이라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지요. 하나님은 육 밖의 세계, 무슨 세계입니까? 영의 세계죠. 영과 육이 차이가 납니까, 안 납니까? 차이 나지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요? 영에서부터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예요. 육이 천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영에 계신 분이 육의 몸을 입으사(로마서 8장 3절), 육신의 몸이 되사, 우리 육 속에 운동을 일으키면서, 바람을 일으키면서 찾아오는 겁니다.

 

우리는 교회 가서 내가 하나님 찾아 가겠다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전도해서 찾아 가겠다고 시도하지만 그렇게 찾아가 봐야 이 아래쪽에 있는 육은 육일 수밖에 없어요. 뭘 해도 이건 육이에요. 이 육의 경계선을 못 벗어나는데 고맙게도 육이 되실 필요도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영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을 입으시고 친히 육으로 오시면서 ?나는 영이다.?고 이야기해요.

 

육으로 오시면서 자기는 영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것을 영적 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영적 육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흙에 속한 사람은 육이지만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은 사람은 영이 되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육에 속했지만 나중에 우리가 부활할 때는 영의 몸, 예수님이 갖고 있던 그 몸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좋아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증거가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성령이 잉태하여 마리아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아까 시간에 이야기했지요? 마리아가 자기 아기보고 뭐라고 한다고요?

 

?너 누구야! 너. 내가 의도하지도 않게 임신을 한 너는 누구야?? ?나, 영인데요.? ?영이십니까?? ?왜 오셨는데요?? ?육을 영으로 바꿔치기하기 위해서 왔는데.? ?아이고 그렇습니까.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이런 짓거리는 결국은 육이 영 되는 것이 아니고 육이 육의 한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기도 하지 말란 말입니까? 기도를 한 번 해 보세요. 해 보면, 기도를 한 2시간 하면 3시간 기도하는 사람이 등장할 걸요. 또 약을 올립니다. 2시간도 기도한 거라고. 아이고 참.

 

다음은 금식이다. 한 10일 해 보세요. 40일 금식하는 사람 나옵니다. 백날 해도 육의 약만 살살 오를 뿐이지 여러분들이 구원 받는데 별 도움이 안 돼요. 그저 자기 오기 부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제가 이번 시간에 이야기할 것은 영이 육으로 올 때 어떻게 오시느냐? 이걸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 말씀드리고 편히 같이 주무시기 바랍니다.

 

영이 육으로 올 때 어떻게 오는가 하면, 창세기 4장을 봅시다. 8절을 누가 한 번 읽어 보실까요?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육이 하나님과 관계있는 사람을 쳐 죽일 때, 예수님은 내가 오는 것은 아벨과 같은 계열로 온다. 아벨과 사가랴의 피. 같은 계열로 온다 이 말이죠.

 

영이 이 땅에 와서 나는 영이다. 이렇게 하면 참 좋겠는데, 그분이 오실 때는 우리 육의 노력에 의해서 억울한 죽음을 당해요. 나는 말씀대로 살았다. 나는 율법 지켰다. 이거 누가 이야기 했습니까? ?나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며 율법에는 험이 없는 자라.? 누가 이야기한 겁니까? 바울이 사도되기 전에 사울이란 이름을 가졌을 때에 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율법 다 지켰다. 날 보고 죄인이라고 하는 놈은 내가 용서할 수 없다.? 이 사울이란 사람이 가는 곳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우리가 육적인 자극을 받아서 지금보다 더 한 급수 높은, 더 훌륭한 인격자가 되려고 애쓰고 힘쓰는 그런 짓 할 때마다 누가 점점 더 모독을 받고 무시당하냐 하면, 공짜로 영생을 주신 분이 우리한테 무시를 당해요.

 

신판 21세기 어머니는 이렇습니다.

 

?석봉아!? ?네, 어머니.? ?불을 꺼라.? ?아니 어머니 왜요?? ?너는 글씨를 쓰고 나는 떡을 썰게.? ?알겠습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불을 켜라.? ?글씨가 그 따위가 뭐냐? 내 떡을 봐라.?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떡을 가지런히 썰 수 있습니까?? ?내가 집 앞 떡집에서 떡을 주문했다.?

 

그 후 5년 뒤에 다시 어머니와 석봉이는 만나서 재대결을 합니다. 이번에는 역전이 되었습니다. ?석봉아,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쓸 수 있느냐?? ?컴퓨터로 뽑았습니다.? ?그렇구나. 우리의 행함이 아니고 그저 주시는 은혜구나.? 이게 모이면 교회입니다. 이게 교인들입니다.

 

끼리끼리 경쟁을 할 이유가 없어요. 봉사 경쟁, 헌금 경쟁, 전도 경쟁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 덕분으로 구원 받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 편히 주무실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밤에.

 

그런데 놀랍게도 평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평등하게 만들어요. 이게 무슨 엉뚱한 논리를 끄집어내십니까? 이러는데. 하나님은 너무나 공평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공평한가?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떡 집에서 떡이 와요. 불 끄고 난 뒤에 주문을 한 거라. ?떡집이죠? 빨리 좀 보내주세요. 아들 글쓰기 전에 빨리 오세요.? 불을 켜 보니까 떡이 너무 잘 썰어진 거예요.

 

이처럼 외부의 근본 되시는 분이 우리의 모든 책임을 다 해결하시고 그냥 영생을 주신다는 점에서 공평합니다. 제 말 잘 들으세요. 그런 점에서 공평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많은 불공평을 주시고 이 불공평 속에서 하늘나라의 공평을 믿을 사람이 누구냐를 찾습니다. 이거 이해되십니까?

 

많은 불공평을 주셔서 그 불공평 가운데, 이게 불공평이 아니라 너무나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라고 그걸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대표적 인물은 거지 나사로. 나사로가 천국 가면서 연금을 받았습니까, 보험을 든 게 있습니까? 유산을 남겼습니까? 죽을 때도 밖에서 개들이 와서 핥고, 앞에는 부잣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고 죽을 때도 아파서 죽었어요. 건강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불공평합니까?

 

나사로가 가난해서 구원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떡집에서 떡을 주문해서 구원 받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 이름이 뭐냐? 나는 하나님만 바란다. 그런 뜻이거든요.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만 바라면 거지 나사로처럼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지요. 이 몸에 뭐가 부글부글 끓는다고 했습니까? 다 잊었나? 이야기해 보세요. ?욕망? 이 욕망은 무엇에 환장한다? 새로운 자극에 환장하지요. 이것은 내가 말려도 안 됩니다. 못 말립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백날 담배 끊으라고 해도 냄새만 맡아도 피우고 싶어서 환장을 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은 어떤 위협을 하고, 술 마시고 들어오면 아파트 문 안 열어준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술 먹는 장면만 나오면 딱 한잔만 먹고 끊을게. 하고 백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술 끊으나 안 끊으나, 담배 피우나 안 피우나 천당 가는데 아무 지장 없다. 괜히 나의 차이, 나의 욕망의 운동 때문에 그렇다면 이것 뭐 안 피워도 되겠네. 피우나 안 피우나 마찬가지면 안 피워도 되겠네. 이런 생각이 들면 안 피우게 되고, 술 안 마셔도 되겠네. 이러면 또 안마시게 되는 거예요. 안 마시다가 15년 뒤에 마실 수도 있고. 안 피우다가 26년 뒤에 피울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 말은 뭐냐? 네 마음대로 사세요. 어차피 떡집에서 주문해서 그것으로 구원 받는데, 그게 무슨 떡입니까? 요한복음 6장에 ?나는 하늘에서 온 떡이다.?고 했습니다. 이걸 두 자로 “약속” 이라고 합니다.

 

낯설게 등장한 예수님 뒤에는 뭐가 있더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더란 말이지요. 그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한테 들어오게 되면, 우리 현재의 몸을 내가 주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욕망을 누른다고 됩니까? 세상 전부가 자극인데. 마귀는 뭐라고 합니까? 돌이 떡 되게 해라. 예수님은 지금 굶어서 먹을 것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돌이 떡 되게 해라고 약 올리고, 메시야가 지금 자기 사람 만들기 위해 설치고 있는데 뛰어내려 봐라. 네 따르는 사람 많을 건데. 하루아침에 스타 되는 거야 또 내게 절하면 세상 영광을 다 줄게!

 

이 욕망을 어느 인간이 이겨냅니까? 못 이깁니다. 이길 생각 하지 마세요. 아 내 욕망이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면 돼요. 그러면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지금까지 목사님 강의대로 하면 네 마음대로 살면 구원은 이미 주문해서 온 것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잘 하는 짓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질문 하고 싶어서, 여러분 가운데는 없는데, 이 방송 듣는 사람 가운데서 노리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무엇을 오해했는가 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안 들어오고 우리 바깥에서 잔소리만 늘어놓는 분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예수님은 아벨처럼 뭐가 돼요? 피해자의 모습으로 온다. 피해자의 모습으로.

 

이제 이것만 하고 진짜 마치겠습니다.

 

아벨은 졸지에 얻어맞았지요. 예수님도 사람들의 죄 때문에 죽었잖아요.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 지신 몸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그래 내 마음대로 살자. 내 마음대로 살아도 천당 가는데. 라고 하는 순간 이러한 나도 주체 못하는 내 욕망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었던 그분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요.

 

예수님이 내 바깥에서 잔소리만 하시는 분이 아니고 성령을 통해서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미안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야, 참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는데 내가 쓸데없이 왜 욕심을 부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은혜 받아놓고 내가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 되지. 그것이 바깥으로 삐져 나가면 그것이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온유가 나오고, 화평이 나오고, 자비가 나오고, 형제 우애가 나오고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아이고, 남한테 사기 좀 당해도 할 수 없지 뭐. 주님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까짓 돈 몇 푼 잊어버리지 뭐. 이런 온유가 막 나오는 거예요. 저놈을 이겨야지 하는 것은 내 욕망이에요. 예수님 오늘은 좀 참으세요. 저놈은 내가 꼭 꺾어야 합니다. 이러다가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때문에 피를 흘렸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갉아서 뭐하노. 이미 나는 구원 받았는데 하면서 난데없이 용서하는 마음이 듭니다.

 

내 욕망은 목 졸라 죽여야 돼. 이것이 내 욕망인데, 이 욕망마저 잠재우시는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이 승리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내 뜻이 아니고 주의 뜻으로 용서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 마음이 생겨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지요.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 봅시다.

 

경쟁할 필요 없다. 그 다음에 증거하면 된다. 이게 성도의 삶이에요. 경쟁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내 속의 욕망이 경쟁을 부추기죠. 이겨라! 너는 언제까지 100만 원짜리야, 200만원 되어야지. 차이를 향하여 달려가야 해. 그래야 네 인생이 보람이 있어. 라고 자꾸 경쟁을 부추겨요.

 

경쟁할 마음이 있는데, 또 다른 마음이 있어요. 그게 무슨 마음인가? 그런 것 할 필요 없이 너는 거지가 되어도 구원 받았어? 라는 이미 승리했다는 승리의 기쁜 소식이 내 안에 있어서 구태여 경쟁할 필요 뭐있어! 어느 자리에 있던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았음을 증거하면 돼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권사 투표 두 번 떨어지고, 남편 장로 투표에서 세 번 떨어질 때 더러워서 이 교회 안 다닌다. 이러지 마시고. 그것도 하나의 경쟁이거든요. 집사보다 장로가 높다고 생각하는 그 차이만큼 욕망이 발생해서 따라가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미워하는 최 집사가 최 장로 되거든요. 그러면 장로로 올라가지 못한 집사는 부끄러워서 교회 못 다닌다. 이렇게 하시는데, 그런 경쟁하면 몸만 피곤해요.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것은 내 욕망의 소리인데, 그 욕망 때문에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내 욕망의 힘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내 때문에 죽은 것임을 알아서 ?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이 자체가 이미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남하고 붙어서 져도 괜찮고 이기면 더 좋고. 아무 상관없어요.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우리는 부활되기로 예약된 사람이란 것을 생각하시고 오늘 밤도 평안히 잘 주무시기 바랍니다.

 

그럼 내일 봅시다.

 

6강

 

마지막 날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10-11절 봅시다. 신약성경 249페이지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아멘.

 

주의 영이 거한다고 되어 있지요.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성도는 혼자 사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누가 붙어사는데 붙는 분이 어떤 분인가 하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신 분입니다. 이분은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분의 영이 임해야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혼자 똑똑하고 혼자 잘났고 신앙생활 잘 하는 것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사람 속에 누가 있어야 돼요. 그 사람 속에 누가 들어와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면, 우리가 평생 동안 어떤 짓을 했느냐를 묻지 않고, 우리 속에 박혀 있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을 너희 몸도, 11절 마지막에 ?살리시리라.? 이 살리시리라는 말 앞에 뭐가 붙느냐 하면, 당연히 죽어야 돼. 가 붙거든요. 당연히 죽어야 되는데, 이상하게 살리시리라. 산다는 희망, 소망이 여기에 붙습니다. 살리시리라. 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살리신단 말이지요.

 

여름 휴가철이 되어서 가야산 계곡에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살리시리라 에 해당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 혜택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요새 건강보험 많이 들잖아요. 어떤 사람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계곡에 차가 쳐 박혀서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다치고 했는데, 만약 이 차에 50명이 탔다면 다 보험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고 보험 들어 놓은 사람만 여기서 혜택을 보지요.

 

다 혜택 보는 것 아니듯이, 여기 로마서 8장 11절에 나오는 살리시리라의 혜택을 보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혼자 똑똑하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세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그 영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살리시리라의 대상이 됩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자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마라톤 선수가 1등으로 달리고 있는데, 어떤 치마 입은 미친 남자 하나가 달리는 선수에게 달려들어서 혼란을 겪는 순간 다른 선수들이 앞질러 가서 결국은 3등을 했습니다. 브라질 마라톤 경기에서 이런 일이 있었지요.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죽고 살아있으면 그냥 살면 되는데, 주님에 의해서 난데없이 성령이 찾아와서 꽂힌 사람은 마라톤 끝까지 살리시리라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늙어 죽기 이전부터 느긋하지요. 기분 좋지요. 왜냐하면, 딴 사람은 아이고 이이고 죽었다. 이렇게 끝나는데, 성령이 임한 사람은 아이고! 아이고! 할 것도 없고 살리시리라가 있으니까 죽는 것이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란 말이지요. 로마서 8장 11절에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과는 스스로 좀 달리 보는 그런 마음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똑같이 놀게 아니라 나는 너와는 다르다는 그런 의식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리시리라고 하면, ?이제 살았으니까 수련회 끝냅시다.? 이렇게 나오겠는데 뭘 알아야 되는가 하면, 어떻게 해서 죽을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리시리라의 대상체가 되었는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왜 알아야 되는가 하면, ?나는 살았다. 살았다!?고 하면, 왜 갑자기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면 몰라, 그냥 살았데. 이래서는 안 되거든요.

 

이런 논리와 이런 하나님의 방식에 의해서 나는 살리심의 대상이 되었다. 라고 남에게 예수님 하신 일을, 하나님 하신 일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내용물을 우리가 갖고 있어야 됩니다.

 

처음에 교회 오는 사람들(남자들)은 이유가 있지요. 까닭이 있어요. 그게 뭐냐? 이번 참에 담배도 좀 끊고, 술도 좀 작작 먹고 사람답게 한 번 살아봐야겠다. 이런 노림수를 가지고 교회 오는데, 술 끊고 담배 끊는 것이 자기에게 도움 되지 싶지만 그게 인생의 다가 아니거든요. 교회 안 나오고 술 끊은 사람이 천당 가는 것 아니잖아요.

 

교회도 안 나오는데 술, 담배, 커피까지 끊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 천당 갑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인생의 마라톤에서 뭘 끊고, 뭘 안 끊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살리시리라가 보장이 되어야 됩니다. 이게 보장 되어야지 살리시리라가 없는 이상은 나, 인간 되었지. 짠! 하고 자랑만 하면 안 되거든요.

 

자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살리시리라가 되려면, 진짜 영을 받았는지 스스로 확인도 해보고, 아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하셨기에 내가 공짜로 그냥 살림을 받았구나. 아 기분 좋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입장에서 우리가 살리시리라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그림으로 한 번 그려 보겠습니다. 말로 하면 아침에 잠이 오니까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덤프트럭을 그려보겠습니다. 덤프트럭은 덤프가 있어야 되니까 그리고, 이 앞에 덤프트럭은 짐칸이 휙 들려서 짐을 내려야하니까 이것도 있고, 앞에 창문이 있고 범퍼도 있고, 바퀴가 8개가 있고, 운전석이 있고 이것이 덤프트럭인데.

 

이 덤프트럭이 뭐하는 거냐 하면 쓰레기 치우는 차입니다. 여기에 2층 빌라도 있고, 여기는 차도 있고, 자기의 학력이라든지 자식이라든지 자기의 장기라든지 자기 가게, 사업채, 직장 이런 것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귀하게 보는데 이것은 전부 다 쓰레기입니다.

 

이 쓰레기가 냄새를 팍팍 피우면서 우리를 너는 죽으리라 쪽으로 몰고 가요. 그런데 고맙게도 무거운 덤프트럭이 이것을 싣고, 이 분이 누구냐 하면 의인입니다. 의인. 우리는 뭐냐 하면 죽을 죄인입니다. 나는 내 가게가 중요하고, 내 차가 중요하고, 내 아파트가 중요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 보기에는 평생 동안 힘쓰고 애쓰고 땀 흘려 모은 돈으로 구입한 것이고 하겠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에요.

 

이 쓰레기만 쥐고 있다가는 그냥 죽으리라로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성령이 오셔서 이런 것들을 덤프트럭에 실어서 가는데, 이 덤프트럭이 의인입니다. 죄인이 의인 속에서 구원을 받는 거예요.

 

이것 쓰레기라고 해서 속상해 하거나 기분 나빠 하지 마세요. 이것 보고 기분 좋아야 돼요. 이 쓰레기를 담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이 덤프트럭보고 우리는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 되지,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을 왜 쓰레기라 하느냐? 이렇게 기분 나빠 하시면 안 됩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게 왜 쓰레기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평생 동안 힘들여 모은 재산과 자식, ?자식까지 그렇습니까?? 하는데 욥기 1장에 보면, 욥이 아들 7명에 딸 3명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이상적인 가족을 구성했어요. 남이 부러워했습니다. 요즘은 사는 게 힘들어서 애를 하나 낳고 둘 낳고 하지만, 만약에 재산이 수백억 되면요 여자들의 재미가 애 낳고 또 낳고 하는 것이 재미지요. 사는 재미에요.

 

어느 누가 그런 얘기 했다고 해요. 아르바이트 해보면 공부하는 게 제일 쉽다고. 그만큼 세상에서 돈 버는 일이 힘들거든요. 여자도 벌고 남자도 벌고 다 힘 드는데, 남자 혼자 벌어도 적당히 버는 것이 아니고 엄청나게 벌어서 여자는 그냥 집에서 애나 낳고 키우는 게 그게 사는 재미잖아요. 장난감이 따고 있습니까? 애 같은 장난감이 어디 있습니까? 까불면 까분다고 예쁘고, 재롱부리는 것도 예쁘고, 커가는 것도 예쁘고. 재미없으면 또 낳으면 되거든요. 그러면 재미있는 것이 또 커잖아요.

 

여성의 몸 구조는 애 낳기 전문가로 만들어졌어요. 근육은 남자에게 있지만 여자는 근육보다 지방이 많아서 애 양육하는데 적당하게 되어 있어요. 여자가 아기도 낳고 해야지 아기도 못 낳고 크레인 운전사가 되어서 놓은 곳에 올라가서 일하고 하는 것을 장한 여인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애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참 아름답단 말이지요.

 

그런데 욥기에 보면 아들 7명, 딸 3명이 하루아침에 다 죽습니다. 기가 막히죠. 마귀가 와서 다 죽여 버립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 마귀가 와서 다 죽이고, 막대한 재산 다 사라집니다. 쓰레기 비운 거예요. 그러니까 욥이 뭐라고 합니까?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제가 어제 생생하게 우석이 가지고 보여줬지요. 내 품의 자식일 때는 자식을 위해 기도가 잘 되다가 만약에 우석이가 주님 품으로 가면 내 것 아닌데 뭣 하러 기도하나. 당장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쓰레기인 것을 모르고 자꾸 내 품에 내 안에서 내 것으로 처리하려고 하지 마시고 이미 천국에서 날아온 커다란 덤프트럭이 쓰레기인 것을 아시고 그냥 뚝 던져 뒤에 실으세요.

 

나중에 수련회 끝나고 난 뒤 집에 갈 때, 여러분의 짐을 차 트렁크에 싣지, 여기 가야산에서 하나 둘 이고 지고 들어서 집까지 가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냥 싣고 가는 거잖아요. 우리 인생을 로마서 11장에다 그냥 실으세요. 내가 훌륭한 교훈 지어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진리에다 내 인생의 짐을 그냥 실으세요. 싣는 것도 못합니까? 그냥 싣게 되면 운전사가 알아서 쓰레기는 비우고 미리 준비하신 것을 다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왜 쓰레기인지 여기에 대해서 지금부터 설명을 하는데, 약간 어려워요. 약간 어려우니까 덤프트럭은 기억해 놓으시고, 이제 이것은 지웁니다.

 

로마서 8장 3절을 봅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하나님께서 이 인간 세계에 누굴 보내시는데, 어떤 분을 보내시는데 이 분을 인간세계에, 우리의 진 명목, 우리는 우리가 어떻다는 것을 잘 모르거든요. 잘 모르는데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포함시키는 분을 무슨 몸, 우리가 무슨 몸으로 되어 있습니까? 8장 3절 읽었는데, 어떤 육신의 모양?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인간 세계 전체가 죄 있는 육신인 것을 아예 기정사실로 간주하시고 우리 속에 그분을 합류시켰습니다.

 

성경 그 많은 구절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구절이 몇 개 안 돼요. 정말 중요한 대목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를 볼 때 장점을 오래 기억하고 단점은 지우려고 애를 쓰거든요. 우리는 우리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지 않아요. 그나마 가능성 있고 훌륭하고 좋게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 시각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는 너에게 적합한 육신의 모습은 바로 죄 있는 육신의 모습 이외에는 없어요.

 

로마서 8장 3절은 이상한 거울입니다. 보통의 경우 거울을 보게 되면 빛에 반사되는 내 모습이 그대로 좌우로 바뀐 채로 그대로 보여지는 그런 식인데, 이 성경이란 거울은 오늘도 한 번 다듬어 볼까? 하고 거울을 보면 으악! 하고 놀래요. 내 모습이 내가 예상한 모습이 아니고 죄인 된 육신의 모습이 그 앞에 해골로 등장하는 거예요. 참 희한한 거울이에요. 집에 이런 거울 하나씩 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습입니다. 이상하다. 내가 저렇게 죄 있는 모습이 아닌데. 안 되겠다. 거울이 이상하나. 여보, 당신도 한 번 비춰봐라. 거울이 뭐 별 것 있나.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지. 하고 아내가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으악! 하고 괴성을 지릅니다. 이상한 거울이 다 있네. 어떻게 내 모습이 --- 이게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이에요.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은 그냥 약간 일그러진 정도가 아닙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은 그 마지막은 뭐냐? 십자가에서 저주 받는 모습. 손발에 못 박히고 창에 찔리고 가시 면류관 써서 피가 범벅이 되어서 흘러내리고, 얼굴은 총체적으로 일그러졌고,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께 심판 받고, 저주 받고, 버림받는 그 자태가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의 진면목입니다. 다른 모습 찾지 마세요. 화장을 아무리 해도 화장발 안 받습니다. 창에 찔려 피가 흐르고,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는데 화장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진짜 아파요.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독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우리 죄를 가져갔더니만 저 양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저렇게 얻어터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말입니다. 누구든지 죄 있는 자들은 저렇게 얻어터져야 된다는 것을 대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에서 일그러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입니다.

 

그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우리 속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현재 우리 자신이 우리를 쓰레기로 안 보는 것에 대해서 진짜 우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금요일 시작부터 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늦게 오신 분들은 못 들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제가 첫째시간에 이야기한 것이 뭐냐 하면, 창조의 하나님, 근본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근본이 뭐냐? 이 문제부터 이야기했습니다. 어제 제가 그런 예를 들었잖아요. 마리아가 아기를 임신했을 때, 처녀인데 어느 날 배가 불러와요. 마리아가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이지요. ?너 누구야? 나는 남자도 모르는데 왜 네가 뱃속에 있어?? 아기가 하는 말이 ?내가 너의 근본이거든. 너는 너 자신이 근본인 줄 알지. 아니야. 근본은 너 외각에 있었어. 너 바깥에 있었던 거야.?

 

근본이 마리아 몸에서 잉태해서 자라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본도 모르는 채 살아가기 때문에 무엇에만 관심이 있는가 하면 자기 몸밖에 몰라요. 자기 몸이 전부에요. 그래서 여기서 제가 10단계를 이야기하는데 처음부터 참석한 사람은 그만 해라 이제. 많이 먹었다. 한 두 번 하는 소리도 아니고 이제 식상하다고 하지만, 가야산 밑에 내려가면 또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평생토록 우리가 이렇게 살 테니까 두고두고 다시 한 번 검토해 봅시다.

 

첫 번째, 근본에 대해서 우리는 뭐로 일관합니까? 모른다. 내 몸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면 되지 내 몸은 어디서 왔고 그것 알아서 뭐하는데. 모르겠다.

 

 

 

 

두 번째, 이게 중요해요. 중요하다고 여러 번 얘기해도 여러분은 안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두 번째가 중요해요. 따라해 보세요. 알고 싶지 않다. 90평생을 살면서 내 근본에 대해서,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그 자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알고 싶어 하면 궁금할 텐데, 아예 알고 싶지 않아요. 알고 싶은데 모르겠다는 것이 아니고 아예 알고 싶지 않아요.

 

왜냐? 이 몸을 추스르기도 분주하니까. 60개 조의 세포가 밥 달라고 난리를 치는데, 집에 가면 애들이 밥 달라고 난리를 치는데 지금 그것이 더 문제지 언제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런 한가한 소리, 시간이 남아돌아 처치 못할 경우에 잠시 상상해 보는 그런 것을 지금 바쁜 시간에 어떻게 할 수 있냐는 것이지요. 그런 것은 아예 알고 싶지 않아요.

 

세 번째가 뭐냐? 인간은 자기 몸이 전부인데, 이상하게 자기 몸은 외로움을 타요. 곁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분명히 이상해요. 이것이 철학적으로는 규명이 되지만 이걸 이야기하려면 말이 길어지니까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사람들은 분명히 자기가 최고예요. 자기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기 밖에 몰라요. 그런데 이상스럽게 자기 밖에 모르면 끝까지 자기 밖에 모르는 쪽으로 가야할 텐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외로움을 타요.

 

미술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 어제 잠시 TV를 보니까 학력 위조한 사람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사람 이름이 뭐예요? 신정아. 예, 신정아 그 사람이 미국 예일대학교 박사학위 땄다고 자기 엄마가 마을에 플랜카드 걸라고 해서 걸었어요. ?우리 신정아 예일대학 박사?라고 해서.

 

그런데 그 엄마에게 제일 섭섭한 경우가 뭔가 하면, 자기 이웃이 다 죽었을 때. 왜 그런가 하면 자랑할 데가 없거든요. 플랜카드 걸면 뭐합니까. 자기만 보는데. 사람은 이상스럽게 뭔가 잘 한 게 있으면 꼭 나팔을 불어야 돼. 참지 못해요. 노래 잘하는 아줌마에게 노래방에 가지 말라고 하면 그건 고문입니다. 노래 잘하는 아줌마는 하여튼 1년 내내 노래방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려요. 명절날 친척들과 노래방에 가서 칭찬 받기를 원하는 ---

 

이 세상에서 제 혼자 살면 자랑할 것도 없고 재미없어서 못 살아요. 이상스럽게 사람은 외로움을 타요. 그 이유를 철학자들은 이제 알아요. 그러나 옛날엔 몰랐어요. 사람이 왜 외로움을 타는지. 그걸 좀 설명해 드릴까요?

 

사람이 왜 외로움을 타느냐 하면 타인을 위하여 내가 살기 때문에. 자기가 이만큼 성과를 이룬 것을 남한테 보고를 해야 돼요. 사람이 집에 혼자 있으면 발가벗어도 괜찮아요. 지가 혼자 사는데 명품 내복 입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옷을 입어야 돼요. 여름인데 겨울옷 입는다던지 거건 미친년 되죠. 철 지난 것 입어서 월남바지 입고 돌아다니면 그건 진짜 신고감이란 말이죠. 파티에 청바지 입고 나온다던지 이건 안 좋다 이 말입니다. 결혼식에 드레스 입어야지 추리닝 입고 있으면 그건 말도 안 되잖아요.

 

사람은 남의 욕망, 현재 철학가들이 여기까지 알아요, 내가 어떤 인간이 돼야 하는 것은 남이 내게 어떤 것을 기대하느냐가 결정하는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말은 나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뭘 요구하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맞춤인생이 내 인생입니다. 남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나, 남이 요구하는 인생 = 내 인생입니다.

 

남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인생은, 마음 맞는 자기들끼리만 어울리지, 사람들에게 안 옵니다. 특히 노처녀들. 너 올해 시집갈래, 안 갈래? 이런 소리 들으면 다음부터는 추석이나 설날은 배낭 지고 여행이나 가지 같이 안 어울립니다. 아예 친척들 잔소리 듣기 싫어서 가버려요.

 

부모님은 왜 부모 말 안 듣냐?고 하고, 자녀는 내가 부모 말 들어야 할 이유가 뭐 있어요. 하고.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고 하면, 엄마는 내게 해 준 것이 뭐 있는데? 하고 대꾸합니다. 공부할 때 나는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비 벌었다. 엄마가 내게 해 준 것 뭐 있는데?

 

현대 젊은 사람들은 외로운 것을 알아요. 알아서 그 옆에 누가 붙어야 돼요. 귀찮아요. 이제는. 싱글이 되어서 철저히 혼자 살기 훈련에 연연합니다. 그래서 외롭지만 안 외로운 것처럼 폼을 내면서 살아요. 그래서 집에 개나 고양이 또는 금붕어, 좀 특별한 사람은 파충류 종류, 악어 비슷한 그런 것도 키우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외로울 때는 뭐가 필요하냐? 사람의 정이 그리워요. 나를 비판하는 사람 말고, 잔소리 하는 부모 말고, 그냥 따뜻한 정, 뭘 해도 용납해 주는 애정, 우정, 인정. 이것이 전부 정(情) 아닙니까. 이 정으로 사는 거예요.

 

이것까지 정리해 봅시다.

 

첫 번째, 근본은 모른다. 두 번째, 알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외롭다. 정으로 살고 싶다. 그런 사람끼리 모여서 같이 만나려면 상대방의 정신세계, 종교영역, 그들의 세계관에 무조건 동의해야 돼요. 이것을 수용해야 됩니다. 동의하면 그 때부터는 ?우리는 친구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겁니다.

 

남편도 친구처럼, 아내도 친구처럼, 심지어 며느리도 친구처럼, 시아버지도 친구처럼. 위아래도 없고 전부 친구로 변하는 거예요. 한마음이죠.

 

친구가 되면 이것이 진리가 되고, 8번에 이 진리가 뭡니까? 종교가 되고, 9번이 뭐예요? 이 종교에 의해서 죽고 난 뒤에 구원 받을 걸. 이렇게 미래까지 보장 받고, 10번에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이게 나의 확정된 운명이다.

 

이 전체를 한 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이것을 ?육?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기억나십니까? 이게 육이란 말이지요. 자기 몸이 근본이에요. 자기 몸이 근본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자기 몸이 신이기 때문에 자기 몸을 죄 있다고 간주하면 안 돼요. 만약에 자기 몸을 죄 있다고 하면 1단계부터 전부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쓰레기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간에 자기 몸만큼은 완전하니 손대지 마라.

 

밤 12시에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우란이가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창가에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 쓱 지나가더란 말이지요. ?밖에 그 누구세요?? ?나 근본이거든.? 갑자기 들이닥쳐서 내 이런 세계, 사람은 80, 90이 되어도 이것밖에 몰라요. 예수 믿고 안 믿고 관계없이 평생 이 조시로 가요. 그냥 계속 가는 거예요. 그냥 가는데, 바깥에 뭔가 어른거리면서 난데없이 누가 찾아온 거예요. ?그 누구십니까?? 할 때 그분이 ?나는 너의 대체인물이다. 네 자리를 내가 차지해서 앉아야 돼. 너의 몸을 근본이라고 여기는 그 자리에 바깥에서 온 내가 차지해야 된다.? ?당신이 뭔데?? ?내가 너의 진짜배기 근본이다.?

 

이것이 골로새서 1장 16-17절입니다. 그 내용이 뭐였습니까? 세상 모든 만물은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 졌다. 이분이 우리의 근본 맞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내 몸밖에 모르기 때문에 내 몸을 근본으로 삼고 이런 열 가지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을 몰라서, 심지어는 알고 싶지도 않고, 외롭다는 식으로 정으로 살고 정으로 죽고 이런 쪽으로 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이웃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전부 4, 5번 아닙니까. 내 인생 깨뜨리지 마라. 우리 가정은 보통 가정 아니다. 이것 깨면 안 돼. 그리고 친구를 잊어버리면 안 돼. 이런 것은 전부 내 몸 위주거든요.

 

그런데 바깥에서 어떤 낯선 인물이 찾아왔는데, 그 인물 뒤에 줄이 있었지요. 그 줄이 어디까지 이어졌습니까? 하나님까지 이어져 있지요. 이 줄을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 그 하나님의 약속을 달고 우리에게 쳐들어 온 겁니다. 그 약속 중 하나가 아까 보았던 로마서 8장 10-11절. 그 약속이 뭐였습니까? 살리시리라. 그리고 약속에 투입된 게 뭐예요? 그리스도의 영이 너희 속에 임하면 죽을 너희 몸도 살리시리라.

 

이 성경 말씀이 근본입니다. 알아도 우리는 버릇을 못 버립니다. 내 몸 위주로 가는 것. 내 가정 위주로 가는 것. 내 친한 친구 많은 것.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것밖에 몰라요. 나에게 잘 해주면 천사고 나에게 못하면 악마고. 모든 것이 내 기준이에요. 어디 나를 건드려.

 

욥처럼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다.? 이런 말 잘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죽였구나. 이제 하나님 안 믿는다. 어디 감히 내 식구를 건드려. 이렇게 되지,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다.? 이런 말이 잘 안 나온다고. 왜? 내가 근본이니까. 내 몸이 근본이니까.

 

그런데 외부에서 낯선 약속이 와서 죽을 너희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단 말이지요. 그러면 어째서?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 왜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가느냐? 그것은 외부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투입되는가를 아셔야 됩니다.

 

그걸 아는데 이번 시간에 누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을 보냈는데 그것이 어떤 몸이라고요? 죄 있는 육신의 몸을 보내서, 내가 스스로 위장하고 있는 나의 정체를 폭로하게 됩니다. 야, 내가 쓰레기였구나! 죄 있는 육신의 몸이 가장 적합한 내 모습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안 오고 천사의 모습으로 왔다면 우리는 천사되려고 애를 썼을 거예요. 예수님, 당신이 천사입니까? 나도 한 천사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기 위해서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니까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괴물이에요. 십자가 진 모습을 우리는 피하고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십자가에서 주님이 보여주시는 내 모습과는 너무 격차가 심해요. 그래서 내 쪽에서 회피해요.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따로 있는데, 타인의 욕망은 따로 있는데,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 야, 넌 참 그림을 잘 그려. 너는 예일대학교 박사야. 이런 걸 위해서 나는 정신 우울증까지 걸려가면서 박사학위 사기 친다고 애를 먹었는데, 실제의 신정아는 예일대학 박사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저주 받아야 될 자가 바로 신정아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자기를 속일 필요도 없고 남을 속일 필요도 없지요. 혼자 있으니까. 그런데 남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끊임없이 거짓말해야 되고 속이는 짓을 평생 동안 해야 됩니다.

 

연세 많은 아버지께 아버지, 많이 편찮지요? 애들아, 내가 늙어서 빨리 안 죽어서 너희들이 고생한다.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이런 소리 다 거짓말입니다. 추석되기 전에 전화를 하면 애야, 내려오지 마라. 차 막히고 복잡한데. 해서 추석에 안 내려가면 삐쳐서 전화하면 말도 안 해요.

 

앞으로 저나 여러분이나 어른 되거든 애들한테 솔직하게 합시다. 와라, 바쁘더라도. 이래 이야기해야지 안 와도 된다. 길 복잡한데. 이러면 진짜 안 오고 스키장에 가버립니다. 그러면 자기만 손해라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밖에 모릅니까? 하거든 그 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나는 죄 있는 육신의 몸이거든.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좋은 것 기대하지 말고 내려와라.

 

죄 있는 육신의 몸은 이렇게 사는 게 편해요. 너는 설거지도 못하나? 나는 죄 있는 육신의 몸이거든.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고. 그러면 아까는 왜 잘 했나? 잘 해줄 때는 고마운 줄 알아라. 원래 나는 그런 인간 아니거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 십자가에 못 박게 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인간도 쓰레기 아닌 인간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폭로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시선에서 우리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예쁘니 이런 가상적인 자기 거울을 보지 마시고 십자가를 보게 되면,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신 거예요.

 

우리는 천사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나타난 모습은 죄수복을 입고 왔어요. 아니, 메시아인데 왜 죄수복을 입었습니까? 너희들이 죄수거든. 그러면 이 세상은? 교도소거든. 우리는 몰랐는데요. 당연히 몰랐지. 너는 너밖에 모르는데 알 수가 있나.

 

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하는가 하면, 자기 몸에서는 자기 의가 나와요. 이것이 로마서에서 주제가 되는데,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요. 이것은 마귀가 그렇게 집어넣어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잘난 맛으로 안 살기.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5분만 더 하고 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뭘 안 했기 때문에 강?/span>

 

 

7강

 

 

지난 시간에 살리시리라 이야기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의 영 때문에 산다. 예수님의 영이 있는 자는 안 죽습니다. 혹시 장례 치루더라도 그게 이야기 끝이 아닙니다. 드라마 끝이 아니에요. 그 사람 죽었다. 그래서 지옥 갔다. 그게 운명의 끝이 아니에요. 성령이 있으면 성령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살려야 됩니다. 왜? 우리가 이뻐서? 아닙니다. 우리가 참해서? 참하고, 사랑스러워서?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말 안 들어요. 성령하고 예수님하고 계약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은 자를 기어이 죽어도 살리시리라. 라고 서로 협정이 되어 있어요. 협정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성령을 자기가 노는 것처럼 착각하는데,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착각해서 그래요. 성령님은 우리의 창조주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하고 싶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성령님이 살리시겠다고 하면, 나 지옥갈래. 백 날 해도 소용없습니다. 천당가야합니다. 천국가야 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성령은 우리와 의논하지 않고, 우리의 대리자가 있어요. 누굽니까? 예수님과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에요. 우리에게 예수님의 믿음이 온 것도, 우리가 덤프 트럭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어떤 두 분의 어르신네가 의논해가지고, 띵동 계십니까? 덤프 트럭 왔는데요.

 

그 분 두 분, 사실은 세 분이지만, 그 분 두 분이 의논해가지고, 우리 달랑 천국 데려 가려고 덤프 트럭 보내신 겁니다. 죄의 육신의 몸을 보내서. 자꾸 신앙 생활 본인이 하려고 하지 마세요. 신앙 생활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때가 되매 아들 보내고, 때가 되매 성령 보내셔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우리와 같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오게 되면,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이상하다 빠진 사람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지고... 강의하기가 주저되는데... 아이들말고 어른들 중에서... 하여튼 계속 해보면, 들어오면 다시 하면 되니까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내 생각만 해요. 내 생각, 내가 죽어서 어떻게 가고, 내가 죽어서 좋은 나라 가려면 내가 지금 뭘 해야 돼? 내가 이렇게 예수 믿어야 구원받았겠어? 그러면 예수 믿어주지 뭐. 전부다 내가 믿어요. 내가 믿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다 해요.

 

욥기를 지난 번에 강의했는데, 욥기를 보게 되면, 하나님이 폭풍 속에서 욥을 만나기 전에 보면, 욥기에 ?내가?라는 말이 무지 무지하게 많이 나와요. 내가, 내가, 내가 뭐 잘못 했는데? 내가 어떻게 했다고 고난 받는데? 내가, 내가, 내가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딱 오시니까, 입을 막아버리고, 제가 이제 말 안 하겠습니다. 저는 말 안 할 랍니다.

 

저는 말 안하고 행동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고 죄를 뒤집어쓰고, 나는 내가 를 너무 많이 말 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신경 안 써도 될 것을 내가 너무 나 자신에게 신경을 너무 많이 썼습니다. 알아서 다 해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내가 바보같이 미처 모르고 말이죠.

 

황무지 비 올 때, 알아서 물 뿌립니까? 내가 안 나서도 황무지에 비가 오고, 악어를 움직이는 것도 욥이 안 나서도 하나님이 악어를 움직인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세상에서는 내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자극을 받는 대로 자극대로 움직이는 본능에 불과해요. 본능. 토끼 쑤시면 토끼가 반응하잖아요. 지렁이 밟으면 꿈틀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그냥 따지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본능 위주에요. 아무리 선한 군자라고 해도 성질 건드리면 폭발하게 되어 있어요.

 

아무리 자기가 예수 믿고 뭐 하겠다고 해도, 죽인다고 하면... 밥 먹고 살 길 없으면 절에 가서 밥이라도 해 줘야죠. 절에 가서. 안 그러면 이슬람 성전에 가서 청소라도 해야죠. 밥 먹고 살 길이 없으면 주일에도 일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고, 내 느낌대로, 필 대로, 본능대로 그렇게 살아요. 평생 동안, 성질나면 주먹 나오고, 좋으면 헤헤거리다가 다 갖다 받치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요.

 

내가 알아서 생각하는 예수는요, 우리 몸을 위한 가상 예수에요. 진짜 예수는요, 죄의 몸을 가지고 찾아 오신 분이 진짜 예수에요. 예수 한 30년 믿었던 동안에는 예수님은 천사와 더불어서 머리에 면류관 쓰고 우아하게, 우아하게 영광스럽게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30년 헛 생활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성령이 오게 되면, 너와 함께 끌어안고 죽는다고 나 완전 죄 몸 되었다. 저주 받은 몸 되었다.하고 피 흘리는 모습으로 왔을 때 저게 바로 예수님의 진 명목이고, 저게 본 모습이다. 로마서 8:3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저게 바로 로마서 8:3이야. 죄의 몸으로 오셨구나. 왜? 우리의 죄를 대신 가져 간다고 저런 수모을 당했구나. 그것이 진짜 그 다음부터, 그 때부터, 진짜 예수님 알아채기,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교체를 해요. 내 몸 중심으로 상상했던 예수님, 하나님을 십자가 중심으로 십자가 아픔 중심으로 바꾸기 하는 작업을 성령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지금부터, 지금부터 그림 들어갑니다. 그림. 다시 이야기하지만, 우리 이야기 아닙니다. 우리는 내 밖에 몰라요. 우리 이야기는 뺍시다. 우리 이야기는 빼고, 하나님 하고 하나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 들어갑니다.

 

요단강이 있는데, 예수님이 들어갑니다. 물속에 들어갑니다. 그 때 구름이 있고, 구름 사이가 갈라지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사람이라.?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지목했다. 지목한 자, 다른 말로 내가 택한 자, 내가 택한 자. 내가 택한 자.

 

이는 내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지목한 자. 내가 택한 자. 라고 해 놓으시고, 택한 자이기 때문에 성령이 와요. 야~ 이거 알아야 합니다. 미리 택하시고, 차후에 성령 보내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나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하나님 말씀 다 지키겠습니다. 얼마나 내가 말씀대로 실천에 옮겼는지 하나님 깜짝 놀라지 마세요. 내가 얼마나 양심이 곱고, 이 성경 말씀 달달 외웁니다. 내가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그거 아닙니다. 그거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이 택했다는 것은 니하고 뭐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뭐가 오느냐? 성령이 와 버려요. 성령이 주님께 어떻게 왔습니까? 비둘기같이, 비둘기같이.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하니까 그 때부터 예수님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 로마서 8:10-11 말씀대로 하면 예수님 안에 누가 들어있다? 하나님의 영이 들어 있는 분이기에 예수님은 죽었다가도 몇 일만에? 사흘 만에 살아 나셔야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 왜 하필이면 예수님은 죽고 난 뒤에 왜? 이틀도 아니고, 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사흘 만에 살아나십니까? 그것은 약속입니다. 약속이 그래요. 약속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대로 된 대로 실행 할 뿐입니다.

 

자 지금까지 한 것을 다시 해 봅시다. 다시 해 봅니다. 모든 신앙생활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우리는 가만 있는데, 파도가 밀려오면 파도에 휩쓰려서 천당가는 겁니다.

 

여러분 괴물 이라는 영화 본 적 있습니까? 괴물. 한강에 나타난 괴물 영화 나오죠. 거기 중학생이 도망치다가 뭐거? 괴물 꼬리가 있어서, 꼬리가 휙 감아가지고, 여 중생을 감아가지고 자기 쪽으로 쑥 들어가 버리죠. 그 괴물 꼬리가 성령입니다. 말이 잘못됐다. 성령이 괴물 꼬리와 같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괴물이 성령이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 성질대로 삽니다. 성질대로. 우리는 뭐 배우고, 성경 배웠다고 이대로 안 살아요. 우리는 밑에서 올라오는 성질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이 안돼요. 감당이. 감당이 안 됍니다.

 

총각들에게, 처녀들에게. 너희들은 꼭 예수 믿는 총각, 처녀 만나야 된다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예 그러면 더욱 좋지요.하고 그 뿐이에요. 중요한 것은 사랑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종교고, 하나님이고, 까짓것 좋아하면, 좋아하면 서로 사랑해 가지고, 그냥 서로 만나서 바바바박~ 방전이 일어나면서 사는 거예요. 둘이 그렇게 살죠. 좋아가지고.

 

그러니까 이것은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내가 뭘, 종교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그 부분은 누가합니까? 그 부분은 누가 해요? 괴물이 합니다. 괴물이. 여러분 천당 가는 것이 쉬운 줄 압니까? 천당에 가서 똑똑 문 열어 주세요. 문 열고, 이런 거 없어요. 천국에서 괴물이 와가지고 혼쭐나야 돼요. 그래야 구원 받는 겁니다.

 

다시 이야기해서, 로마서 8장 뭐라고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죽을 몸도 우리는 마지막에 사는 대상이 돼요. 괴물이 우리를 지목해서, 너는 택한 백성이다. 다음에 뭐 온다고요? 성령 온다고요. 예수님이 우리의 먼저 모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해 놓고, 성령이 오게 됩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돼요.

 

그 운명이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를 대표해서, 너희들도 똑같이 이렇게 된다고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첫 열매로써 폼 잡으신 거예요. 나 이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봐라 부활되잖아. 그 다음 차례는 네 차례다 이 말이에요. 그것을 부활의 첫 열매라 이르게 함이라. 그림으로 그리면, 두 번째 시간은 길게 안 합니다. 잠 잘 시간 없을 거예요.

 

나무가 있는데, 열매가, 사과 나무인데요. 사과 나무. 사과 나무에 첫 열매가 맺혔어요. 첫 열매가 달렸어요. 첫 열매가. 사과가 빨갛게 익었어요. 그러면 이 나무 자체가 사과나무라면, 열매 이거 하나만 맺고 끝납니까? 아니죠. 그 다음에 다른 열매 또 맺히죠.

 

첫 열매가 있다는 말은 두 번째 열매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첫 열매가 누구냐하면, 바로 예수님 부활이에요. 그 다음 차례는 누구입니까? 우리보다 먼저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이 그 다음 나오고, 마지막에 누굽니까? 다 열리는 것은? 살아있을 때 믿은 사람이고, 마지막에 우리 후손들 믿는 사람이죠. 이래서 우리는 부활의 열매의 한 통속이라는, 한 식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조상들이 나와요. 아브라함이 이래 했고, 모세가 이래 했고, 야곱이 이래 했고, 나오는데, 전부다 괴물 만났어요. 괴물. 전부 하나님의 괴물 만나가지고, 노아가 방주 만드는 것도 자기 아이디어가 아니고,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받치는 것도 자기 아이디어 아니고, 모세가 공주의 아들 됨을 포기하고 고난 받기를 원한 것도 자기 생각이 아니고, 자기 욕구가 아니고, 전부다 와서 뭔가 낚아채듯이 주님께로 데려 가더라 이 말이죠. 데려 가거든요.

 

지금까지 어디까지 이야기했냐면, 예수님이 내 택함 백성이다 지목 당하고, 그 다음에 성령님께서 예수님에게 임하셔서 예수님은 성령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야 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 사람으로 살아가야 될 운명을 우리보다 앞서서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자, 그러면 좀 더 진도 들어가 봅시다. 이것은 여러분 안다고 하시고, 일단 아는 겁니다. 아는데, 그 다음에 문제가 성령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그것을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을 성령께서, 성령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이거 이야기하고, 두 번째 그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몸에 들어오시는가? 오셔서 우리를 살리시는가? 이거 두 가지 이야기하고 수련회 전체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0분씩 걸릴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대로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내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그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이냐? 예를 들어서 안식일 날, 안식일 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날 일을 하셨어요. 일을 하셨다고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하셨다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하느냐?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요한복음 5장입니까?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연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신의 자비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여러 명 있었는데, 많았어요. 많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중에서 38년 된 병자에게까지 찾아갔어요. 물론 거기에는 39년, 40년 7개월, 42년 있을 수고 있고, 사람은, 인간은 고질병이 있잖아요. 50년짜리가 있는데, 그냥 아무 이유 없어, 아무 이유 없어. 무이자. 아무 이유 없어. 그냥 내리는 거예요.

 

그냥 가가지고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 날, 해 가지고, 어이 일어서세요. 했다가, 일어 서세요. 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옆에 사람들이 안식일 날 일했다고, 쉬어야 하는데 일했다고, 그렇게 닦달을 내네요. 그러니까 하시는 말씀이 안식일이라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 혼자 일해서 득을 보는 날이 안식일이라는 거죠. 너희 일 하지마. 내가 일 한 것으로 충분해. 그것이 원래 창조 때 근본의 일입니다. 창조 때.

 

처음 창조 때요,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뭐했습니까? 사채 놀이 했습니까? 트렉터해서 농사지었습니까?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따 먹기만 했어요. 따 먹기만. 모든 과일을 따 먹기만 했어요. 이게 근본이에요. 힘들어 이마에 땀 나고 힘들에 일하는 것은 에덴 동산 시절이 아니고, 거기서 추방된 이후에 우리의 팔자였습니다. 여러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번 추방된 것은 영원한 추방이라, 다시 우리 힘으로 못 돌아갑니다. 못 돌아가기 때문에 하늘에서 괴물이 와가지고 우리가 그 낙원으로 가는 거예요. 십자가 강도가, 아니, 십자가 옆에 강도가 사실 부자였다면 강도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부자가 무슨 남의 집에나 가가지고, 티브이 부치고 ------ 하겠습니까?

 

전부다 강도가 강도짓 하고, 사람 죽이는 것도 전부다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결핍이고, 모든 것이 내 몸을 하는데, 가만 놀면 안 되는거예요. 부지런히 뭘 떨어야 뭐가, 돈이라도 한 푼 버는 거에요. 아껴야 되고, 풍족하지 못 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으로 영생 얻지 못하고, 그냥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아파서 쓰레기 취급받고, 천대받고. 이게 에덴 동산에서 근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젠 믿을 놈은 주먹 밖에, 자기 주먹 밖에 믿을 놈이 없어요. 살아도 내 힘으로 살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잘 나야, 내가 잘 나야 내가 산다. 그런 자기 밖에 모르는 오기만 남았어요. 오기만.

 

따라서 그러한 심보. 그것이 육인데, 아까 봤죠. 파리 머리 한 거. 전부다. 이거 육 아닙니까? 육인데. 이젠 외부에서 근본, 근본. 근본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뭐가 밀려온다? 두 자로. 뭐가 밀려온다 했습니까? 하나님의, 하나님의 낙원 약속, 천국. 약속이 밀려오는 거예요. 약속이 밀려 오니깐, 잘 들어보세요. 약속이 밀려 오니까, 예수님은 성령에 따라서 땅에 속한 것에 니가 마음 너무 뺏기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식으로 이렇게 하셨습니다. 누가요?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이 낙원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이 땅이 천국이 아니고, 이 땅에 네 전부를 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 땅은 심판 받아야 할 땅이고, 하나님이 따로 하늘 나라를 마련해 놓았으니까, 내 나라는 이 나라가 아니고 내 나라는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 차이를, 그 차이를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알려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첫 번째이고, 첫 번째는 이 땅이 영원한 땅이 아니다. 두 번째는 그 땅에서 우리가 벗어나는 방법도 우리에게는 있다? 없다? 없다는 거예요. 없으니까 내가 왔잖아. 내가. 내가 왔잖아. 내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말이죠.

 

네 힘으로 고생된다, 어렵다, 힘들다, 못 살겠다, 돈 보태 주세요. 축복 해 주세요. 하는데, 축복해봤자 매 그 따위로 살건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떠나자, 떠나자 이 말이에요. 내가 길이요. 길은 뭐 하는 길입니까? 길은 뭣 때문에 있는 거예요? 떠나기 위한 길 아닙니까? 떠나기 위한 길. 자기 집 돌 거면 무슨 길이 필요합니까? 떠나기 위해서.

 

길이요, 진리요, 이 땅에 진리가 없다는 말이죠. 생명이요. 이 땅에 생명이 없다는 말이죠. 영원한 생명이 없단 이 말이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주는 떡을 먹으면 너는 영생을 얻고, 내가 주는 떡을 안 먹게 되면 그냥 너는 멸망해서 그냥 가 버린다 이 말이에요.

 

사람들이 떡 주니까 오해 한 거예요. 이야, 떡이다. 먹고 살자. 그것은 내가 준 떡은 너희들 육을 위한 떡이고, 육을 위한 오해하는데, 진짜 내 떡은 그런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한 떡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데리고 왔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그 떡이 진짜 떡이다.

 

그렇다면 그 떡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죄 값을 치러야 되요. 죄 값을 치러서 죄 없는 채로 가져야지. 죄 있는 채로 하면, 하늘 나라에서 데모합니다. 파업합니다. 이랜드 봤죠. 데모합니다. 전경 동원되고, 골치 아픕니다. 천국 아닙니다. 골치 아픕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는 없애버리고, 쓰레기니까 없애 버리고, 예수님이 자신의 의를 놀랍게도 우리가 한 적도 없는 우리 의로 넘겨주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첫 번째는 뭐냐? 떠나자. 두 번째는 내가 너의 대속물이다. 대속물. 대속물이라는 것은 대신 해서 희생. 대신 희생물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세상 죄를 엎고 지고 가는, 엎고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세상 너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는 짐이 가볍죠. 대신 짊어지고 주께서 대신 하나님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로 달려가는 그 일을 성령을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떠나자, 내가, 내가 대신 죽어가는 희생물이다, 라고 이 두 가지 이야기하면서 갔습니다.

 

떠나자 할 때 제자들 아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너의 죄를 위해서 대신 희생당한다 할 때 전부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엄마야~ 다 도망쳤습니다. 잡히면 죽는다. 다 피해라. 다 도망쳤어요. 예수님 홀로 남았습니다.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뭐라 했습니까? 제자들은 자기 몸이 근본이기 때문에, 뭐가 싫다? 외로운 것이 싫어요. 홀로 죽는 것을 싫어해요. 다 자기들끼리 도망가가지고, 뭉쳐서 고기 잡는다고, 낚시한다고 돌아다니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못 살아요. 아직 성령이 거기까지 역사 안하니까. 예수님께 혼자 해 가지고, 홀로, 홀로 배심원이 되셔 가지고 오셨습니다.

 

자,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거 약 15분 걸렸는데, 이제 1분 하고 마치겠습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속에 들어오느냐? 성령께서 성령의 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젠 성령은 자기 할 일 다 했어요. 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떠나자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죽었으니까 너 모든 문제를 내 속에는 영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편 배달부로써 택배로 딱 포장을 해 가지고, 우리 속에 집어 넣는 것, 이것이 성령께서 하실 일입니다.

 

여러분 자칫 오해하면, 목사님, 우리 맨 날 떠나자. 뭐하자. 회사 사표 내 버리고, 떠나자! 떠나자! 이래 됩니까? 우리도 대속물이다. 너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게. 이래 합니까? 그것은 누가 할 몫이냐 하면, 그것은 이미 누가 해야 됩니까? 이미 예수님이 다 했어요. 우리 안 해도 되요. 우리 뭐만 하면 되냐면, 죽을 때까지 내 몸은 내 몸이다. 나는 감정대로 산다. 하면 성령께서 아저씨 그만 떠나시지요. 떠나시지요.

 

그 일이 좀 안 돼지요. 안 되는 이유가 예수님 그동안 잊어버렸잖아요. 대속물을 잊어버렸잖아요. 나를 깨우치기 위해서 사업 잘 안 되죠. 괜찮아요. 경쟁할 필요 없어요. 당신 이미 구원 받았어요. 그것을 일깨워주는 식으로 성령이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 성질 그대로 갑니다.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가요. 뭐 이래 수련회 했다고 인간 달라지는 것 없습니다. 저는 기대도 안 합니다. 저도 기대도 안 하는데, 여러분들이 기대... 성령께서 다 이루었다 이 말이죠. 너보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보고. 우리보고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남이 다 해 줬다는 거예요. 남이 다 해주고, 그분의 마음이, 그분의 영이, 예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 행동보고 구원한 것이 아니고, 우리 속에 박혀 있는, 예수님이 행하신 그 박혀있는 침투함, 컴퓨터 칩, 그 반도체 칩보고 죽을 우리 몸을, 예수님의 자기 숙제이기 때문에 자기 숙제하기 위해서 살려 버립니다. 살려버립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로마서 8장 4절에 봅시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이고, 그게 아니고,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뭘 지키면, 우리 율법이잖아요. 죄와 사망의 법. ?하나님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건 율법이거든요. 이젠 율법대로 우리는 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율법은 살아봤자 우리는 내 몸의 한계만 들어날 뿐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법이 등장합니다. 뭐냐?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법이 우리를 덮쳐버립니다. 덮쳐버리면 우리는 뭘 해도, 대속물이 필요한 죄악 된 행위구나를 알게 됩니다.

 

내가 선교사다. 선교지에 가서 죽었다, 선교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선교라는 행위를 통해서 내 죄가 밝혀지고, 그 죄는 바로 예수님의 대속물이, 이런 죄 때문에 대신 죽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겁니다.

 

뭘 해도, 선교사가 되던, 일반 직장을 가도, 뭘 해도 새록새록 우리로 하여금 율법이 아니고 성령의 법이, 예수님의 법이 나를 살려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러한 하나님의 숙제물이 저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 허락도 없이 누가 침투했어요. 그리고 반도체 칩처럼 우리에게 박혀있습니다. 보니까 예수님의 자기 숙제였고, 자기 영을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특징은 내가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몸 가지고는 구원받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똑같은 죄수복을 입고, 육신의 몸을 입어서, 우리의 죄를 다 해결하사, 우리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우리의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이 이미 다 처리가, 이야기가 끝난 상태로 이미 너의 죄는 이미 여기서 완결 된 거예요. 완결 된 거예요.

 

여러분 회비 냈잖아요. 회비 냈는데, 잠시 후에 나갈 때, 집사님, 제가 낼께요. 가가지고(가서), 호텔 프론트 가서 내지 마세요. 이미 해결 했어요. 회비 냈으면 끝난 겁니다. 가만, 가만... 내가 낼께요. 돈도 없는 게 나서지 마시고. 해결했어요.

 

새삼스럽게 우리가 천당가기 위해서 헌금하고, 기도하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거. 그것은 주님을 모독하고, 성령을 모독하는 겁니다. 뭘 해도, 아~ 이런 부족 때문에, 이런 육적인 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미리 알아서, 알아서 다 처리 해 주셨구나.

이런 사람만이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