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일사일언] 사기냐 사업이냐

好學 2010. 6. 29. 21:04

 

[일사일언] 사기냐 사업이냐

 

예전 방송작가 시절에 썼던 시시한 코미디 한편을 소개한다.

무예의 고수 둘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둘은 서로의 소문 무성한 내공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팽팽한 긴장이 이는 순간, 한쪽이 무의미한 손동작을 한다. 놀란 상대는 머릿속으로 그것의 의미를 분석하고 다음 수를 상상한다. 그리고는 역시 허세를 담아 공중에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이 상상력을 잔뜩 동원한다.

비디오는 마주본 채 우스꽝스럽게 허공을 휘젓는 두 사람이, 오디오는 둘의 상상력 넘치는 생각들만 방백(傍白)처럼 들려온다. 한참을 그러던 둘이 잠시 후 서로 이겼다고 자위하며 각자 길을 간다.

시시한 코미디라 방송을 타진 못했지만, 이 장면은 내가 그 이후로 ‘사업’이나, ‘사기’ 같은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떠올리는 장면이 되었다. 새 일을 시작한 요즘, 업계 사람들과의 대화에 ‘사업가 기질’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대화 속에서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내가 가진 게 1인데 10까지 만들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는 게 ‘사업가 기질’이라면, 가진 게 1뿐인데 10 이상으로 보이게 하는 술수를 ‘사기꾼 기질’이랄 수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사업가와 사기꾼의 공통점은 둘 다 ‘상대의 상상력을 이용하는 싸움꾼’이라는 사실이다. 적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기 위한 전략이나 허세가 등장하는 건 필수다. 그런데 이런 일에 능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의 상상력 대신, 상대의 판단력에 직접 소구하는 단순하나 묵직한 사람들이다. 새 일을 시작하고 보니, 간혹 이런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