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신학]바울의 生涯와 神學

2. 바울의 활동

好學 2010. 5. 23. 00:16

 

2. 바울의 활동




1


바울이 태어난 해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죽은 해도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생애의 연대를 확정하는 유일한 단서는 사도행전 18장 12절에 있는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總督)이 되었을 때” 라는 말입니다. 이 해를 판정하고, 성서의 기사에 따라 바울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위로 계산해서, 연대적(年代的)으로 추정(推定)하는 방법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위의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이었던 해를 추정하기 위해 많은 학자가 노력했으나 다이스간 교수의 고증에의하면 갈리오의 착임은 기원 51년의 여름 중간이고, 바울은 50년 초에 고린도에 와서, 51년의 여름 늦게 고린도를 떠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학자의 설에 의하더라도 1,2년 또는 2,3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대개 이 정도로 생각해도 좋겠지요.

 

이 계산에 입각해서 소급하여 따져보면, 바울의 회심(回心)은 기원 30년 내지 33년으로 추정되지만, 그 때의 그의 나이를 알 수 없으므로, 그가 태어난 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회심의 때가 25세쯤이었다 하면, 그는 예수보다 10세 아래의 같은 시대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생전에 만난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결정적 사건은, 그가 어느 땐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경험이었습니다.

다소에서 태어난 바울은 소년 시대 몇 해 동안을 예루살렘에 와서, 율법학자 가마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가마리엘은 헬레니스트적인, 자유스러운 사상 경향을 가진 학자였으나, 바울 소년은 의식적으로 열심인 바리새파였습니다. 당시 겨우 독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기독교회에 7인의 집사가 선출되었는데, 그 한 사람 스데반은 특히 성령의 힘에 충만하여 이스라엘의 민족사와 모세 율법에 대해 새로운 세계사적 해석을 내리고, 예수가 대망의 메시아로 오셔서 시대를 일신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인 긍지를 해치고 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유대인의 맹렬한 반감을 초래하였으며, 급기야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어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박해의 주동자의 한 사람이고, 스데반을 처형할 때는 하수인의 옷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대박해가 일어났는데, 바울은 기독자의 집집에 침입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그들을 체포하고, 투옥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스스로 자원해서 대제사로부터 첨서(添書)를 받아, 시리아의 다메섹으로 가, 거기 피난하고 있던 기독자들도 포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근처에 갔을 때 홀연히 하늘에서 빛이 나와 그를 둘러 비치었으므로, 그는 정신이 아뜩하여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는 예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사울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바울은 로마식 이름이고, 사울은 유대 이름입니다. 같은 한 사람이 두 이름을 갖는 것은 당시 흔히 행해지던 습관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비친 흰빛으로 바울은 사흘 동안이나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의 읍에 들어가, 그곳에서 아나니아라는 한 사람의 기독자의 방문을 받고 자기가 “이방인, 왕들, 이스라엘의 자손 앞에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갈 선택된 그릇”이라는 자각이 주어졌습니다. 이 자각을 갖게 되자, 그는 곧 “아라비아”로 피해갔습니다. 이 “아라비아”란 시나이 반도의 아라비아가 아니라, 다메섹에 가까운 동방의 사막 지방일 것입니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각을 가진 직후, 먼저 황야에 인도되어 40일 낮과 밤을 사탄의 시험을 받았듯이, 바울도 회심하여 예수를 믿고,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각을 갖고 새 활동의 생애에 들어가기에 앞서 황야에 피해가 기도의 밤낮을 보내고, 앞으로의 전도 생애의 대방침에 대해 신중히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온 바울은 즉시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했습니다. 듣는 사람은 모두 놀라,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람이 아닌가?” “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잡아 제사장에게 넘겨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고 말했지만, 바울은 그런 비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힘을 주어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논증하여 유대인을 설복시켰습니다. 마침내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노해서 그를 죽이려고 계략을 꾸몄으나, 그것을 안 제자들이 밤중에 몰래 그를 바구니 속에 넣어 성읍의 돌벽에서 달아내려 피신시켰습니다. 잡으러 한 자가 쫓기게 되고, 박해하던 자가 박해받는 몸이 되고, 예수의 적이었던 자가 예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일신상의 180도의 전환일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세계의 역사도 180도의 전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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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에서 회심한 뒤 약 30년에 걸친 바울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에 전하기 위한 불요불굴의 활동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5회의 예루살렘 방문과 적어도 3회의 대전도 여행을 하였습니다. 곧 그의 활동 방향은 예루살렘 방향과 희랍-로마 세계의 방향 둘이 있었지만, 그 주체는 후자고, 전자는 다만 후자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예수가 생존 중에 선택하신 12사도의 한 사람인 베드로 및 예수의 형제 야곱을 중심으로 기독교회가 점차 형서되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아직 유대교와 완전히 분리하지 못하고,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팔레스티나는 말하자면 베드로들의 전도 구역(傳導區域)이었습니다. 새로이 예수의 사도로 소명(召命)을 받은 바울은, 이 기정(旣定)의 전도 구역을 침해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이 놓은 기초 위에는 집을 짓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너른 세계가 그의 전도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틴은 베드로에게 맡기라. 나는 희랍-로마의 이방인 가운데서 일하리라. 이것이 바울의 사명관이었습니다. 그는 각자의 활동 영역에 있어서 행동의 자유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습니다. 곧 그는 예루살렘과 분리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이에 대하여 반기(叛旗)를 들려고는 터럭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함께 예수의 복음 전파를 위해 힘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특이 이방인 전도를 위해 소명을 받았다는 바울의 입장은,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이것을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도 지역의 협정보다 더 중대한 사항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은 우선 유대교도가 되지 않아도, 이방인 그대로 직접 기독자가 될 수 있다.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말 한대로,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에 들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이 경우에는 신체에 할례를 받는 것이, 유대인으로서의 민적 취득(民籍取得)의 필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유대교에 들어는 갔더라도, 원래가 희랍인이니까, 유대인으로서의 율법을 지키는 데 충분히 철저하지 못하고, 말하자면 자유파인 것이 자연스러운 경향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방의 고을 고을에 가서 전도할 때는 대체로 그 토지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주로 말했으나, 청중 가운데는 이렇게 유대교도가 된 희랍인이 적지 않아, 바울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은 이들 가운데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도, 또는 유대적인 기독자들은 이들 이방인 신자의 율법에 대한 자유스러운 태도를 비난하고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무엇보다 힘을 기울여 싸웠던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신앙만으로 누구든지 구원받는다. 즉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 거기에는 인종적인 구별도 민족적인 구별도 없다. 유대인도 희랍인도 똑같다.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 할례를 받아 유대교도가 될 필요는 없고, 유대인으로서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유대인은 유대인 그대로, 희랍인은 희랍인 그대로,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이 주장의 관철에서 비로소 유대교는 그 굳은 민족적 껍질을 깨치고 그 속에 담긴 영원한 진리로 세계적인 표현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의 복음에 의하여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되고, 인간이 직접 하나님과 상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는 민족적 제약을 타파하고,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바울의 활동과 싸움에 의하여, 기독교는 지역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세계 종교로서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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