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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Love Leper(한센인 공동체 이름)"라는 자활원을 건설하고 있는 석류정(52세) 선교사 |
ⓒ 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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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잘 발병하지 않은 한센병은 관심의 대상에서 차차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구상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센병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NGO 추산 약 600-80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환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알 수 없는 보균자들은 파악이 되지 않아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센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사회적 냉대와 멸시, 가난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인도 정부의 한센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지만 인도 정부는 그 실상마저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 정부로부터도 관심 밖인 한센병과 한센인, 그리고 그 자녀들의 구호활동과 자활활동을 돕는 한국인이 있다. 인도에서 'Leper's Father(한센인의 아버지)'라 불리며, 그들을 위하여 'Love Leper(한센인 공동체)'라는 자활원을 건설하고 있는 석류정(52세) 선교사이다. 1월 9일(수) 밤, 인도 델리 국제공항까지 마중 나온 석 선교사는 우리 일행과 함께 비까네르로 가는 버스에 동승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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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한센인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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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 금지'라고 써져 있는 인도의 어느 한센인 마을 표지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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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선교사가 인도 한센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인도에 배낭여행을 오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스리랑카 취업자들이 본국으로 돌아 간 다음 그들이 한국에서 믿었던 신앙을 재교육하기 위하여 인도 옆에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에 선교사로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구 시내에 있는 한센인 마을인 '애락원'을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얻은 수익금 일부를 아시아, 아프리카 등 해외 한센인들의 재활과 정착을 위해 사용하자는 결의에 따라 석 선교사가 인도에 대한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고 한다.
"2005년 4월 인도에 와서 한센인들의 상황에 대하여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인도 정부에 그 상황을 문의 했지만 한센인들에 대한 상황에 대하여 인도 정부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인도 코친에 있는 국립병원을 찾아 갔는데, 마침 한센병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의사를 만나 한센인 공동체인 자활원 세 군데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한센인 자활원이라고 해도 정부에서 한센인들을 강제적으로 격리시켜 놓은 곳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표지판이나 세워 놓았지, 병원이나 자활 시설 등은 거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1년 동안 인도 전역에 있는 한센인 공동체를 찾아 다녔습니다."
한센인들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고, 마치 인도 현지인들이 인도지역 한센인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선교하는 예수전도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단체도 목사 1명에 한센인 자녀 몇 명이 봉사하고 있는 단체로 경제적 대책이나 지원 등은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석 선교산는 인도 한센인 봉사활동을 위하여 그들과 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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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전도단과 함께 펼치고 있는 한센인 공동체 구호활동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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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날 한센인 공동체에서 산타가 된 석류정 선교사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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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예수전도단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같이 했던 목사 1명은 다른 선교활동을 위하여 빠지게 되고, 석 선교사가 한센인 자녀 몇 명과 함께 한센인 공동체인 자활원을 한센인들과 함께 만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60여 가족의 한센인들이 천막에서 생활하면서 공동체 자활원을 꾸며가고 있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석 선교사는 인도 마트야 프라데쉬주 정부로부터 땅 70만㎡를 임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 땅은 콩과 옥수수 기타 어떤 작물도 잘 자랄 수 있는 옥토로 더욱이 아무데나 파도 물이 나오고 전기시설을 끌어오는 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한센인들이 자활하기에 너무 좋은 땅이었다고 한다. 시가로 쳐도 2억 원이 넘는 돈인데 정부에서 임대해 주지 않으려면 공시지가로 팔아 달라고까지 애원하였다고 한다.
석 선교사는 지난 3년 간 주지사를 세 번이나 찾아가 설명하고 한센인들의 자활원에 대하여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드디어 2007년 12월에 200가정 이상과 500명이 넘는 한센인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주 정부로부터 50년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임대 허가를 받았단다.
"정부에서 한센인들의 공동체인 자활원을 짓도록 무상으로 임대해 준 것은 인도 역사상 처음입니다. 앞으로 한센인들이 살 수 있는 집도 짓고, 한센인 자녀들은 병이 없지만 한센병 자녀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냉대 받고 사회에서 격리되고 때로는 사창가로 팔려가는 안타까운 현실인데 학교를 지어 한센인들의 자녀들을 10학년까지 가르칠 생각입니다.
그리고 3천만원 정도를 들여 양계장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목축업도 할 생각입니다. 사지가 성성한 사람들은 농사와 목축업, 팔과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은 모이 정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급하기는 하지만, 우선 한센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많이 구입하여 그들을 낫게 하렵니다. 한센병은 디티에스라는 약을 3개월만 제대로 먹으면 다 나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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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가다 만난 아이의 옷을 입혀 주는 석류정 선교사 |
ⓒ 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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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맨발로 걷고 있는 어느 한센인의 모습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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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센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한센인 자녀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냉대받는 그들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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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구 '애락원' 이전 과정에서 착복 의혹이 밝혀지면서 검찰에 고발되었고, 법인이 관선으로 되면서 착복 의혹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어서, 지원받기로 되어 있던 10억 원 정도의 금액이 묶이게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석 선교사는 자활원 공동체를 꾸려가기 위하여 한국, 캐나다, 미국 등 각 교회에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애초에 지원하기로 했던 대구 '애락원'이 재판이 일찍 끝나고 잘 해결되어 빨리 지원해 주기도 바라고 있다.
'다음카페'인 '아름다운 사람들의 작은 모임(cafe.daum.net/opensociety623)'에서는 인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하여 자활원을 건설하고 있는 석 선교사를 돕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센병 환자 가정 중에 절실하게 도움이 요구되는 집을 선정하여 회원들 중 원하시는 사람에게 일대일로 결연을 맺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우리 돈 2만원 정도이면 한센인 5명의 가족이 한 달 동안 최하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금액으로 매월 2만원을 성금으로 내줄 사람을 중심으로 결연을 맺고 있는데, 현재 약 30여명 정도가 결연을 맺고 있지만, 앞으로 200여 가족으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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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날 한센인 공동체에서 글들과 함께 즐거운 노래와 게임 |
ⓒ 석류정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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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류정 선교사가 꿈꾸는 한센인 공동체 마을의 모습 |
ⓒ 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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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였고, 아들과 딸이 각 한 명씩 있는데 대학에 다니고 있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몸소 실천했던 체 게바라라고 말한 석류정 선교사는 우리의 곁을 떠나 한센인 자활원으로 갔다.
떠나는 석 선교사는 현재 한센인 공동체인 'Love Leper(한센인 공동체)'를 건설하는 꿈을 갖고 희망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 속에는 해결해야 하는 경비 문제가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안심하라고 당부한다.
"지금 나와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평생에 단 한 번도 돈을 주고 옷을 산 적이 없고, 먹는 것은 하루에 짜파티(밀가루로 부친 손바닥 만 한 부침개) 네 장이 전부이죠. 평생을 살아도 고기 한 점 배부르게 먹어 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내 것이라고는 가느다란 뼈다귀와 검고 질긴 살가죽뿐입니다. 그나마 손과 발은 문드러지고 떨어져 나가 그 형체마저 우스꽝스럽거나 아주 혐오스러울 만큼 슬픈 사람들이죠.
이 세상에서 가난과 질병을 없애 달라는 기도를 한다면 그건 만용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도전하고 시험하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병고를 지고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즐겁게 그들 곁으로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