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주일예배]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만 더

好學 2009. 11. 11. 00:20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만 더
 

 

(One More Night With the Frogs, 1956년 8월 17일, 휴 파일 목사)

 

“모세가 파라오에게 말하되, 내게 영광이 있나이다. 내가 왕과 왕의 신하들과 왕의 백성을 위해 어느 때에 간구하여 왕과 왕의 집에서 이 개구리들을 멸하고 그것들이 강에만 있게 하리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하매,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될지니 왕께서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없음을 아시리이다.”(출 8:9-10)

 

흉년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그곳에서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고, 400년 동안이나 고센 땅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파라오)이 통치하면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박의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올라가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지도자를 이스라엘에 보내셔서 그들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땅위에 임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개구리 재앙이었습니다.

 

어디에나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침실에도 개구리, 부엌에도 개구리, 거실에도 개구리, 빵 반죽 통에도 개구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이스라엘 백성) 가는 것을 네가 거부하면, 보라, 내가 개구리로 네 온 지경을 치리라.”(출8: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빵 굽는 오븐을 여는 이집트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갑자기 개구리가 튀어나오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맙니다! 한 친구가 안락한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젖히는데 그 안에도 그의 잠자리 친구가 되려는 개구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마리는 그의 옷에 올라가 앉아 있고, 주머니 속에는 뭐가 있을까요? 역시 개구리입니다! 개구리들이 발가락 사이에 끼어 짓이겨지며, 학교로 가는 이집트 소년들의 발길에 채이는 걸 보십시오! 궁궐에도 개구리, 더러운 오두막에도 개구리. 작은 개구리, 큰 개구리! 개굴개굴 우는 그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다 먹을 정도입니다! 집안에도 개구리, 뜰에도 개구리 - 수백만 마리의 개구리들이 서로 앞 다투어 자기들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강에서 나옵니다. 수많은 개구리들이 죽임을 당한 뒤 악취 나는 산 무더기로 쌓아 올려진 광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파라오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 모세를 불렀습니다.

 

“주께 간구하여 개구리들이 나와 내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 내가 백성을 가게 하리니 그들이 주께 희생을 드릴 것이니라.”(출8:8)

 

모세는 틀림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드디어 파라오가 결심을 한 것입니다. 마침내 파라오가 개심 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내가 왕과 왕의 신하들과 왕의 백성을 위해 어느 때에 간구하여 왕과 왕의 집에서 이 개구리들을 멸하고 그것들이 강에만 있게 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파라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내일 그리하라!”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아니 ‘내일’이라니, 그건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답이 아닙니까? 개구리가 그의 음식에도, 침대에도, 옷에도,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에 널려 있어서 그와 그의 백성들은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듣고 언제고 그 개구리들을 즉시 없애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결정은 오직 파라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개구리와 하룻밤만 더 지내게 해 주시오!” 어떻게 그는 그토록 지긋지긋한 개구리들과 함께 하룻밤을 더 지내고자 했을까요?

파라오는 죄인이자 죄인들의 유형이었습니다. 그는 순종하지 않고, 자만하며, 육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스도를 벗어나 길 잃은 사람, 즉 오늘날의 많은 죄인들의 좋은 표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그에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죄인들처럼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개구리였습니다. 개구리는 그의 죄 때문에 생겼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죄 때문에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난, 의심, 무거운 짐, 고통, 질병, 슬픔, 두려움, 혼란, 절망, 비탄의 개구리들. 이것들 모두가 다 우리의 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까?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슬픔과 어려움의 개구리들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우리의 죄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 때문에 생겨나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개구리들을 제거하시려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파라오와 같이 우리들 대부분은 “내일 제거해 주십시오! 부디 하룻밤만 더 개구리와 함께 묶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내일’이라고 말했으나, 성령님께서는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3:7-8)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파라오는 ‘내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오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내일 무엇을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너무나 잘 씁니다! 어떤 크리스천에게 가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라고 설교해 보십시오. 그는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자신이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속받은 존재인 것도 인정합니다(고전6:20). 그는 성화되고 성령 충만한 삶만이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참 된 예물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항복하기로 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영적인 승리자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내일!’입니다. 그는 언제나 ‘내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룻밤만 더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만 더 패배하여 황폐케 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도록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품을 떠난 배교자에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청해 보십시오. 그는 대개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형제님, 저도 확실히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 이후로는 슬픔과 비참함밖에 없었어요. 저는 이제 이런 비참한 생활에 진절머리가 나요. 주님과의 교제를 끊은 뒤로는 아픔과 슬픔, 어려움과 패배만을 겪어왔어요. 저는 하나님께 돌아갈 거예요!” 이에 당신은 기뻐서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하십니다. 자,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같이 기도드립시다.” 그러면 그 배교자는 말합니다. “저, 형제님, 지금 당장은 안 되고요, ‘내일’ 하겠습니다.” 그는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을, 그의 육적인 욕망과 함께 하룻밤을, 타협하고 흥청망청 마셔대면서 하룻밤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깃발을 내어 던지고는 하룻밤을, 즉 더러운 개구리와 함께 이 세상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의 뉴욕에서 열다섯 살 된 한 소년이 거리 밑의 하수구 통 안에 살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다툰 뒤 집에서는 더 이상 자기가 필요한 존재가 못된다고 느끼며 낡아서 내버려진 큰 하수구 통에서 살기로 하고 그곳에다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가 낡고 더러운 매트 위에서 자고, 음식을 끓일 수 있는 버너가 하나뿐인 조그만 석유난로에서 요리를 하며 하수구 통 안의 쥐들과 이 주일을 지낸 뒤에야 마침내 경찰들이 그를 발견했습니다! 경찰이 그를 집에 데려 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애야, 네가 집에 돌아오기만 했다면, 난 그 다음 날 바로 너를 용서했을 거다!” 많은 배교자들은 죄 많은 세상의 하수구 통에서 두 주가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많은 경우에 거의 일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를 용서하시고 그의 눈물을 입맞춤으로 씻어주시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오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9)

 

길 잃은 죄인 역시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을 더 지내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승리자는 말합니다. “왜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당신의 짐을 들어주실 것이며 당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 같은 말에 종종 그 죄인은 여러분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는 구원받으려 하지만 끝에 가서는 ‘내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9장에서 늘 미루기만 하는 ‘내일 사람’(Tomorrow men) 셋을 만나셨습니다.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대담무쌍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시자 더 이상 그 사람으로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를 위해 희생과 궁핍한 생활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최상의 잠자리’에서 ‘하룻밤 더 즐기는 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59절). 그러나 그는 “주님, 내가 먼저 무엇 무엇을 하게 허락하시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문제는 바로 ‘내가 먼저!’에 있었습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지내게 허락하시옵소서.” 물론 그의 아버지가 정말로 죽었다면 그가 자기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한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남자의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즉 계속해서 ‘하룻밤만 더’ 개구리와 함께 지내려 했습니다. 이 구절의 요점은 다른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부모님이나 다른 친인척들에게 더욱 헌신하는, 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탈출하여 쉬기 위해 주일(the Lord's Day)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예전에 자기들의 육신적 욕망을 채워 주던 농장으로 되돌아가 빈둥빈둥 지내기 위해, 자기들의 영혼은 메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주의 날에 먹고 잡담이나 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무엇 무엇을 하게 허락하시옵소서!” 저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이 주님께 순종하기 전에 자신들의 부모님 혹은 어린 자식들 혹은 사랑하는 이들을 말 그대로 무덤에 장사지내야만 했던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사람에게, “죽은 자들이 자기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이 세상이라는 영안실과 묘비에서 ‘하룻밤만 더’ 지내기 위해 자기의 옛 고향으로 되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는 자들만을 사용하실 수 있으며 진실로 회개하는 자들만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자원했던 세 번째 사람은,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그러나’가 바로 그의 문제였습니다. 휴즈(Walter Hughes)는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보통 교회 주변에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양 우리에 온 것이 아니라 염소 우리에 와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 ‘그러나 사람들’은 목사님에게 가서 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에 정규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성도로부터 혹은 죄인으로부터 늘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사람은 말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여기서 우리는 또 ‘내가 먼저’라는 아주 익숙한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과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단숨에 예수님을 ‘주님’(Lord)이라고 부르고 나서는 “내가 먼저…”(me first)라고 애원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내 가족과 작별하는 것을 허락하시옵소서.”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 남자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그의 가족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만약 그의 가족들이 그를 보았더라면 곧장 달려가서 그에게 금방 내렸던 결정을 번복하라고 종용했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 남자와 같은 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주여, 제가 주를 따르겠나이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방종함을 허락하소서. 하룻밤만 더 컨트리클럽에서, 혹은 놀음판에서, 혹은 무도회장에서, 혹은 선술집에서 보내게 해 주소서.” 비록 그들이 ‘하룻밤만 더 개구리와 함께!’라고 말하지만 그 ‘하룻밤’은 끔찍하고 끝없는 밤 즉 ‘영원히 어둡고 캄캄한 밤’으로 계속해서 연장되고 맙니다.

 

저는 창세기에서 리브가라는 여인이 이삭의 아내가 되기 위해 아브라함의 종과 즉시 떠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했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을 매우 좋아합니다. 사실 리브가와 마찬가지로 우리 죄인들은 모두 과거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의 이삭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야겠다는 결정을 단숨에 내려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오랜 여행 끝에 드디어 리브가에게 이르렀습니다. 리브가는 그 사람과 그의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도록 했으며, 이 충성스러운 종은 자신이 마침내 자기 주인의 아내가 될 처녀를 제대로 찾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브가와 그녀의 가족은 그 종이 이삭의 막대한 재산을 보여 주는 보석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런 것들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기 위해 떠나야 했고 떠나기 전날 밤에 리브가의 어머니와 그녀의 큰 오라비 라반은 이마를 맞대고 의논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들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이것 좀 봐라, 얘야, 리브가가 이 일을 서두르게 할 순 없어. 아직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아침 신문 사회면에 낼 사진도 찍지 않았잖니!” “맞아요, 어머니, 그리고 리브가처럼 혼수 상자나 웨딩드레스 하나 없이 결혼하는 처녀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그들은 이삭의 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기들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처녀 리브가가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더 지내게 하십시오. 그 뒤에 그녀가 갈 것입니다.”(창24:55)

이처럼 신앙이 없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은 종종 죄인으로 하여금 단숨에 그리스도에게로 가지 못하도록 부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더 이상 머물기를 거절하자 그들은 리브가를 구슬려 자기들과 함께 머물도록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했습니다. “리브가야, 이 사람과 함께 갈 거니?”(창24:58) 그때 리브가는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가겠습니다.”(I will go)! ‘만약’도, ‘그리고’도, ‘그러나’도 없었습니다. 기회주의적인 태도도 없었습니다. “가겠습니다!”, “일어나 예수님께로 가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더 이상 개구리와 함께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께서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리셨다면 저는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플로리다주 어떤 마을에 있는 제일침례교회(the First Baptist Church)에서 이 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주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가 개구리에 관해 설교하던 그 날 밤에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다른 교회에서 온 영리하고 매력적인 소녀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의 어떤 동아리 모임의 회장이었습니다. 그날 밤 예배를 드린 뒤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해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날 밤 교회를 나서며 그녀는 제게 눈을 반짝이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게는 더 이상 개구리와 함께 지내는 밤은 없을 거예요!” 저는 그녀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녀의 고백을 믿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왜 여러분이 개구리와 단 하루도 더 지내서는 안 되는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하려 합니다!

 

첫째, 개구리는 내일 떠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기회가 항상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한 젊은 부자 관원도 구원을 얻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는 그것에 아주 근접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탐욕이라는 암이 그의 영혼을 먹어버렸습니다. 그는 예수님께로부터 돌아서 버렸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 그 다음날도 슬픔, 비참함, 불행, 허전함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개구리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주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표를 샀습니다(욘1:3)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그러나 요나는 깊고 푸른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즉 하나님의 방법 대신 요나 자신의 방법으로 하룻밤을 더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은 항상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나운 비바람을 보내셨습니다. 그 낡은 배는 삐거덕거리고 신음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고 흔들거렸습니다. 요나가 바다에 내던져지기까지 그 배는 확실히 부서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삼킬 커다란 고래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역사상 최초로 고래 잠수함을 탄 승객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래 뱃속이라는 이상한 배 안에서 지중해 행 여행을 했습니다. 그 안에서 요나는 토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고래가 느꼈던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실로 배교자는 너무나 메스꺼운 존재라 고래조차도 요나를 더 이상 참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요나는 성경에서 가장 소화가 안 되는 사람으로 불린다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주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래를 해변으로 끌어 올리셨고, 마침내 고래는 요나를 자기 뱃속에서부터 끌어 올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단추를 누르셨고, 고래는 쉼을 얻었으며 요나는 배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자기에게 가라고 말씀하셨던 니느웨를 향해 마른 땅위로 달려갔습니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그같이 많은 슬픔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방법대로 행했을 때는 개구리가 떠나지 않았고 다른 많은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저는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시에 있는 교도소를 처음 방문했던 것 - 수감자로서가 아니라 단지 방문자로서 - 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선교 단체에 속한 여성 회원들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자 죄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월요일마다 그곳에 내려갔고, 그 날 아침 저도 감옥에 있는 여인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을 따라 갔습니다. 그들이 우리보고 여자들 감옥에 가게 될 거라고 얘기했을 때, 저는 매춘과 악으로 얼룩진 세월을 지내고 이 세상에서 버림을 당한 더럽고 늙은 사회의 낙오자들, 추한 노파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옥이 온통 십대의 소녀들로 꽉 차 있는 걸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가장 어린 소녀는 열네 살이었으며 평균 나이는 열일곱 정도였습니다. 거기서는 ‘나이든’ 여인이래야 겨우 이십대였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그전 주말에 무도회장 주변에서 음란 행위를 하다가 잡혀왔습니다. 열다섯 살 먹은 한 아름다운 소녀는 자정 무렵에 대략 열 명의 선원들과 함께 있는 것이 발견되어 잡혀왔습니다. 제가 한 소녀에게 어떻게 그런 생활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물어보자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실은요, 목사님, 전 춤추는 게 좋아요.” 그래서 그들은 거기 있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더럽고 누추하며 낡은 감방으로 더러운 침상이 놓여 있고, 빈대 및 쥐들이 밤에는 그들의 발밑에서 돌아다니고 공중 화장실에는 문도 없고 고약한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우리는 그 소녀들에게 설교한 뒤 크리스천이 되도록 권고를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으며, 그들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고, 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바르게 시작할 수 있게 하실 수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과 용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실 수 있다고 우리가 말하자 그들은 단지 히죽 히죽 웃고 고개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죄의 맛을 보았고 그들의 옛 육신은 그런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했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만, 싫어요! 제발 우리가 쥐와 빈대와 하룻밤을 더, 더러운 감옥에서 하룻밤을 더, 개구리들과 하룻밤을 더 보낼 수 있도록 이대로 내버려두세요!” 그러나 개구리들은 다음 날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소녀들은 여전히 감옥에 그들의 죄 속에 비참함 속에 감금된 채 있었습니다!

 

플러(Charles E. Fuller) 목사님은 “구식의 부흥 시간”(Old Fashioned Revival Hour)이라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기 남편을 교회로 데려갈 수 없었던 한 크리스천 부인은 그 방송을 듣고 있었고 자기 남편이 집안 어디에 있든지 들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라디오의 음량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 복음 설교에 너무나도 화가 난 그녀의 남편은 마침내 부엌에 있는 의자를 집어던져 그 라디오를 산산조각 내 버렸습니다. 그는 플러 형제의 목소리를 잠시 동안 멈추게 할 수는 있었으나 자기의 영 안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설교를 멈추도록 라디오를 부순 것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비참함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개구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떨쳐 버릴 수 없었고 예수님을 모셔 들여 결국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 분은 또 다시 라디오 하나를 구입해야만 했습니다!

많은 죄인들은 자기들이 모든 일을 바르게 한 뒤 교회에 다니겠다고 말합니다, “목사님, 참으로 저는 똑바로(혹은 올바로) 되었을 때 크리스천이 되겠어요.” 혹은 “믿어도 돼요, 목사님, 우린 모두 똑바로 되자마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러한 죄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교회에 오는 것은 단지 그들이 판자처럼 곧고 뻣뻣하게 되었을 때 즉 그들 모두 송장이 되어 똑바로 되었을 때뿐입니다. 그들은 약 2미터 길이의 상자 안에 담겨진 채 교회 안으로 굴러들어 옵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꽃들이 쌓여진 채 예배당 앞의 상위에 올려집니다! 비록 그들은 이제 똑바로 되었으나(straightened out) 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만일 여러분도 일들이 모두 똑바로 되고 개구리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신다면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에게 모두 맡기십시오. 그분에게 모든 일을 내맡기시고 당신을 위해 똑바로 펴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전보다 더욱 더 굽어지게 될 것입니다! 개구리들은 내일 떠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 여러분이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도 더 지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또 있습니다.

개구리 대신 더 나쁜 것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개구리 다음에 이, 파리, 메뚜기, 악질, 불, 어둠, 그리고 마침내는 이집트 각 가정에 맏아들의 죽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비극이여! 오, 죄인의 비참함이여! 개구리들이 그들을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만으로 인해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는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모든 교만한 자가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사2:11) 그 날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죄 위에 떨어질 것입니다. 개구리보다 더 나쁜 것이 올 것입니다! 많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탐욕입니다. 돈과 물건들을 사랑하는 것! 성경은 이에 대해 여전히 크게 외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러 꿰뚫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돈에 미친 사람들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가정과 건강과 자기들의 자녀들과 도덕과 하나님조차도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개구리들을 견뎌내고 있으나, 어느 날인가 더 나쁜 것이 개구리의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저녁 부흥회 전에 한 아름다운 농장에서 식사대접을 받았습니다. 거실 탁자에는 곱슬머리를 가진 예쁜 남자 아기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안에는 아기의 조그만 발바닥에서 타닥타닥 나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그 부모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 같았으나 슬픔의 기색이 있었습니다. 집은 훌륭했고 창고는 인상적이었고 거의 새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교회 목사님께 들은 바로는 그 사람들은 서로 잘 지냈고 돈도 잘 벌었고 농장도 번창했지만 그 곱슬머리 아이가 거의 우상이 되어 더 이상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매우 바쁘게 되었고 모든 일은 너무나 순조로웠으며 그 결과 자기만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병이 찾아 왔으나 여전히 불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비극이 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을 때 창고가 불탔고 그들의 어린아이는 그만 그 불꽃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 아이가 창고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결국, 그 부모는 절망을 안고 대단히 낮아져서 하나님께로 왔고, 그들의 삶을 내놓고 교회에 나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로 이것은 얼마나 두려운 대가입니까! 그들은 한 때 자신들이 개심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바로잡고 네 타락함이 너를 꾸짖으리라. 그런즉 네가 주 네 하나님을 버림과 네 속에 나를 두려워함이 없는 것이 악한 일이요, 쓰라린 악인 줄 알고 주의하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렘2;19) 오, 저는 당신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더 나쁜 것이 개구리의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릅니다!

시리아의 벤하닷 왕과 늘 함께 있던 것은 술이었습니다! 그는 대형 천막 안에서 술을 마셔 크게 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포도주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날뚜에 하는 것이라.”(잠20:1)고 말씀하시지만 죄인들은 그분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술꾼들은 항상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마침내 시리아 군대는 패배했고 그 뒤 벤하닷 자신은 결정적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부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쁜 것이 옵니다. 여러분은 술과 동행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라이스(Bill Rice)가 시카고 시에서 데뷔 파티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사교계에 나온 여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한 밤 중에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엉뚱한 모험을 하기 시작했고 새벽 3시경에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함께 놀다가 그곳에서 큰 낭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곰들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교계에 처음으로 데뷔한 여인”은 회색빛을 띤 크고 늙은 곰을 향해 철장의 막대 사이로 자신의 팔을 내 밀고 흔들어 댔습니다. 그러자 그 곰은 갑자기 그녀의 팔에 달려들어 앞발로 그녀를 철장의 막대에 밀어붙이고는 짓누르면서 그녀의 손과 팔로부터 고기를 떼 내 씹기 시작했습니다! 그 곰이 그녀의 팔을 어깨까지 깨끗이 먹어 치웠을 때에야 비로소 술 취했던 그녀의 친구들은 앰뷸런스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깨까지 팔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평생토록 ‘개구리를 대신해서 더 나쁜 것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빈 소매를 가혹한 기념물로서 달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더 이상 개구리와 하룻밤도 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일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27:1)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2:3) 최근에 미국은 ‘갑작스런 죽음의 땅’으로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에만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831명의 영혼이 영원한 세계로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621명은 고속도로에서 참사를 당했습니다. 저는 최근에 조지아주 아틀란타시의 한 일간 신문에서 미국인 가운데 약 400-500명이 해마다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을 읽고 놀랐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면 누구든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내일이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지금 당장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기꺼이 여러분을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지고한 뜻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께서는 어느 누구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사악한 자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분은 “내 영이 항상 사람과 함께 다투지는 않을 것이라!”(창6: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장 단순히 믿음으로 그분께 온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몫을 모두 다 이행하셨습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분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미 피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오늘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요3:36) 그렇지만 당신이 회개하고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 3절을 보십시오.

테네시주에 사는 어떤 부인은 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목사님과 다른 분들께 자신이 부흥회 때 앞으로 나아가 믿음을 고백해야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공중 앞에서 믿음의 서원이나 약속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예배 시간에 앉아 있었고 복음도 들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손도 올렸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오후 저녁 식사 시간에 그 교회의 목사님은 긴급한 호출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그 날 아침 늦게 병원에 실려 갔고 오후가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채타누가시에 사는 열여섯 살난 소년은 타이어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타이어가 그의 얼굴 앞에서 터졌고, 이틀 뒤 그들은 그 소년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버밍엄시에서는 한 부인은 자기 잔디밭을 걷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TV 안테나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순식간에 그녀의 앞마당에 그녀를 묻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피츠버그시에서는 견인 트럭의 중간 부분이 구부러지면서 강철로 된 막대기 뭉치가 집을 꿰뚫어서 두 명의 여인이 즉사했습니다. 어저께 지금 제가 부흥회를 인도하러 와 있는 잭슨빌 교회의 목사님은 지난 해 12월 여객기가 활주로에 닿기 전에 추락해서 17명의 영혼을 영원 속으로 보낸 곳의 초토화된 현장을 보여 주셨습니다! 미국은 참으로 ‘갑작스런 죽음의 땅’입니다.

제가 플로리다주의 한 도시에서 목사로 있을 때에 구원받지 못한 어떤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부인은 죄인인 남편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날 정도로 술을 마셔대는 술꾼으로서 난폭하고 거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그를 보러 갔습니다. 그는 그때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진 않았지만 그 다음 주일에는 교회에 왔습니다. 훌륭한 안내원들이 그를 앞쪽으로 앉혔습니다. 몹시 더운 날도 아니었고 코트도 걸치지 않았는데 그는 셔츠가 몸에 달라붙을 정도로 땀을 흘렸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괴로운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고 그는 설교가 끝날 때 기도를 받기 위해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왔습니다. 그는 비참한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으나 끝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교회를 나설 때, 저는 문에 서서 부디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당신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강권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고 그가 믿음 안에서 주님께 요청하기만 한다면, 그분께서 그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 그가 알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다시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나중에 구원받으려고 했습니다. 마귀는 대개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피하려 할 때,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약속을 해도 된다고 속삭입니다. 그는 그날 밤도 그 다음 주일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보러 갔으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더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저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술을 마셨으며 전보다 더욱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장교들을 태우고 자기가 사는 곳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공군 기지로 차를 운전해 갔습니다. 그것이 그의 일거리였습니다. 그는 빨리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멧돼지가 튀어나왔고 그는 그것을 피하려고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차 오른 쪽 앞바퀴가 교량의 받침대를 들이받아 차가 밑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핸들이 즉시 그를 관통했고 그는 즉사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내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내일’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할 때입니다.”

성령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