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주일예배]

제자도에 관한 말씀 8.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

好學 2009. 11. 8. 13:10

 

제자도에 관한 말씀 8.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

 

 


마가복음 11:12 - 25절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성경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항상 좋은 결과를 생각합니다만 본문에서의 기적은 오히려 저주가 일어난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줄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도 나타냅니다.

 

1.위선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


나무 가운데는 열매가 없는 것도 있고 열매를 맺지 않고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없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위선, 거짓, 외식을 나타냈기 때문에 저주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잎사귀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었다가 베다니로 가셔서 쉬시고 그 다음날 길거리에서 본 무화과나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때가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고 했으니 4월경이 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본래 6,7월경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보신 때는 열매를 맺기에는 아직 이른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때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하셨습니다.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무화과는 잎사귀가 나기 전에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잎사귀가 있다는 말은 이미 열매가 맺혔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만 아니었다면 예수님은 그 나무에 저주를 내리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마치 열매가 있는 듯한 잎사귀가 예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도 이와 같이 안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먹으면서 약대는 통째로 삼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구제하고 금식하고 기도도 한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라고 칭하는 네가… ” 라고 하면서 저들을 저주하며 저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고 했습니다(롬 2:17 이하).
선을 가장한 위선자, 악을 감춘 외식자들이 이 세상에 득실거릴 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저주를 내리신 것처럼 이 사회에도 저주를 내리실 것입니다.

 

2.유명무실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사람이나 물건은 모두 자기의 이름 값을 해야 합니다. 포도나무는 포도열매를 맺어야 하고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나무는 하나님의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름은 그럴듯한데 이름에 걸맞는 열매가 없다면 그 사람 또한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또한 자기의 자리 값을 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길가에 심기어져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자리에 어울리는 기대와 약속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민족, 국가, 사회, 가정, 교회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있는 자리의 자리 값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분한 자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일꾼으로 부름 받은 자로서 주어진 사명에 죽도록 충성하지 못한 것을 크게 회개해야 합니다. 충신은 항상 자신의 불충을 생각하지만 간신은 항상 자신이 충성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3.신앙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는 뿌리로부터 말라서 죽어버렸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믿고 기도하면 응답하시리라는 것은 누구나 논리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절). 비록 자기에게 손해가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착실히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죄는 그대로 마음에 두고 아무리 큰 소리로 기도를 해봐야 하나님은 그 기도를 물리치십니다(사 1:15).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회개한 자의 깨끗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따라서 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사람의 안일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오늘도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의 뜻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할 때 산이 뽑혀서 바다에 던져지는 기적도 일어나게 됩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진실해야 합니다.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은 찾고 계십니다. 위선자는 득세하는 것 같으나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외식자는 무화과나무처럼 기적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됩니다. 유명무실한 자는 결국 밖에 던지어져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이름에 합당한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구한 대로 받고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