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 인간은 언제부터 경제활동을 했을까?

好學 2009. 5. 26. 08:46

 

1. 인간은 언제부터 경제활동을 했을까?

 

 인류문명은 농경(農耕)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곳에 정착(定着)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인간은 토기를 만들고 집을 세웠다. 이러한 기술(技術)의 발달(發達)은 인류문명 발달의 기원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소아시아의 토로스 산맥에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거나 식물을 모아 먹으며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키가 작았고 지저분한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했으며 피부도 거칠었다. 동물의 가죽과 식물의 줄기로 몸의 중요부위만 가린 사람들의 까만 피부에는 여기저기 긁힌 흉터자국이 나 있었다.
 
이들은 산중턱에 움막을 짓고 살거나 비바람과 사나운 동물들을 피할 수 있는 산 위쪽 동굴에 살았다. 마실 물은 강에서 퍼왔고 남자들은 창으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1만여 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동굴 벽화나 무덤서 나온 도구들을 통해 상상해 볼 수는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불렀다고 생각해 보자. 깊은 산속에는 그들 외에 다른 사람은 거의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 부족(部族)은 마을을 이루며 살며 어쩌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인간이 아닌 자’ 혹은 ‘이방인’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저녁, 부족 사람들이 모두 모닥불 가에 모여 앉았다. 남자들은 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고 노인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자들은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동물 가죽으로 덮인 바위 위에는 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임의 부족의 주술사(呪術師)였다.
 
“큰일 났어.”
 
동물 뼈로 만든 활을 어깨에 건 남자가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손으로 쥐고 말했다.
 
“도대체 사냥을 나가도 잡을 동물이 없어. 숲이 점점 비어가고 있는 거야. 이제는 토끼도 눈에 잘 안 띈다니까. 가을이 되기 전에 어서 여기를 떠나야 해.”
 
모닥불 앞에 아기를 안고 서 있던 젊은 여자가 어두운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남자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 몇몇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 그만 여기를 떠나야 해."
 
모닥불 가에 서 있던 젊은 여자는 갑자기 돌부처라도 된 것처럼 우뚝 섰다. 사람들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주술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인간에게 악귀가 씌인 게 틀림없어. 그래서 신(神)들이 동물들을 밖으로 내몰고 강에 있는 물고기를 없앤 거야.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지. 그자가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어.”
 
주술사는 그렇게 말한 다음 모닥불 가에 서 있던 젊은 여자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바로 저 여자 때문에 우리가 저주(咀呪)를 받은 거야! 네가 신의 뜻을 어떻게 여겼는지 어서 솔직히 말해라!”
 
주술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젊은 여자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긴긴 겨울밤을 배고픔에 시달리게 될까 두려웠어요. 우리 아기가 쫄쫄 굶고 지낼 게 걱정되었어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도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저기 뒷간 있는 곳에 밀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히 알지. 우리가 밀을 먹고 눈 똥에 섞여 나온 밀알이 뒷간 근처에 자라는 거잖아.”
 
젊은 여자가 말을 이었다.
 
“어느 날 가만히 보니까 거기서 자란 밀을 낟알에 많이 매달려 있었어요. 저는 그것을 열심히 모아 땅에 심었지요.”
 
“뒷간에서 나온 밀에서 낟알을 모으다니.”
 
남자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더러워. 그래서 우리에게 재앙이 내렸구나.”
 
“그런데 봄이 되니까 제가 밀알을 심어 둔 곳에서 새로운 밀이 자라고 있었어요. 모두들 가 보면 아시겠지만 밀이 빼곡하게 자랐어요. 곧 밀을 거둘 수 있을 거예요.”
 
주술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신의 뜻을 어겼다. 바로 너 때문에 우리 부족의 살림이 이렇게 어려워진 거야. 세상이 생겨난 이래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신이 선물한 것만 먹고 살았지. 짐승, 물고기, 풀, 열매, 과일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제가 밀을 기른 신이 주신 선물이에요.”
 
젊은 여인이 억울해 하며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두어라! 너는 감히 신이 할 일을 나서서 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니 네가 기른 밀을 모두 불태워라.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
 
주술사가 한번 내린 결정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 젊은 여인이 애써 일군 밭은 망가졌고 가을이 되자 사람들은 먼 길을 떠났다. 길은 험난했다. 추운 겨울을 간신히 넘기고 봄이 왔지만 들판은 황량하기만 했다.
 
다름 해 겨울은 더 추웠다. 높은 산에는 눈이 사람 키만큼 쌓였다.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따뜻한 봄이 왔을 때는 처음에 떠난 일행 가운데 겨우 절반만이 살아남았다.
 
새로운 터에 움막을 지은 사람들은 다시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았다. 젊은 남자 한 명이 벌떡 일어섰다. 새로운 주술사였다. 지난 겨울 눈 덮인 산에서 늙은 주술사가 추위와 굶주림을 못 이겨 죽었기 때문에 젊은 주술사가 되었던 것이다.
 
늙은 주술사의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물려받은 새로운 주술사는 신의 뜻을 거슬렀다던 젊은 여자를 가리켰다. 2년 사이, 여자의 머리카락은 허옇게 색이 바래 할머니처럼 보였다. 팔에 안고 있던 아기는 그녀가 걱정했던 대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끝내 죽고 말았다. 주술사가 여인을 향해 말했다.
 
“일어나라.”
 
여자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일어섰다.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내려졌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2년 전 그대가 심은 밀을 뽑아 버린 것에 대한 죗값을 우리는 톡톡히 치렀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 우리는 그대가 가르쳐준 방법을 따르겠다. 전에 그대가 했던 대로 땅을 씨앗에 뿌리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다가오는 추운 겨울에 우리가 굶어 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주술사의 말에 따라 여자는 사람들에게 씨앗을 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큰비가 내리기 전에 땅에 있는 잡초를 뽑아내고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다른 잡초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밭을 열심히 돌보았다. 밭 주위에는 바람이 불어도 씨앗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여자들은 집에 남아 농사를 짓고 나자들은 오랫동안 내려오던 전통대로 사냥을 나갔다. 첫해의 수확은 보잘것없었다. 사람들은 거둔 곡식 가운데 일부는 갈아서 먹고 나머지는 다음해 봄에 뿌리기 위해 햇볕에 말렸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냥을 하고 풀을 뜯어 먹던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식량을 점점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되어 겨울에 죽은 사람이 줄고 부족의 인구가 불어났다. 씨앗을 심어 곡식을 기르는 방법을 처음 알아낸 여자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지혜로워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그녀를 곡식과 열매의 신으로 받들어 모시며 존경했다.
 
이것은 약 1만 년 전 터키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농사(農事)를 짓기 시작했던 이 시기를 우리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라고 부른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쇠를 다룰 줄 몰라 돌을 갈아 도구(道具)를 만들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생활방식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定着)해 살면서 밀농사를 짓고 보리와 기장을 심었다. 또 말, 소, 양, 염소, 돼지를 가축으로 길렀다. 황소에 쟁기를 매달아 밭을 갈기도 했다. ‘농업(農業)의 발명’, 이른바 신석기혁명(新石器革命)이 일어난 것이다.
 
신석기혁명은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신석기혁명의 시작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어쩌면 누군가가 농사를 지어서 굶주린 부족을 구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원전 8000년경 터키 동부, 이라크, 이란,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서남아시아의 ‘비옥(肥沃)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는 중국 일부지역에서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멕시코와 미국에서도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었다. 새로운 농사법은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력기원전 100년에서 서력기원후 300년의 삼한 시대에 벼, 보리, 기장, 피 등을 심어 길렀다.
 
농사를 짓기 전 인간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구한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1만 년 전부터는 불을 피우고 도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았다. 어쩌다 사냥을 많이 하는 날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날에는 그냥 굶어야 했다.
 
그때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듯 시간이나 목표를 정해 놓고 일을 할 줄을 몰랐다. 그들은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몸을 움직였다. 살아나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마다 자연 속에서 위험과 부딪히며 살았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거나 오래 훈련을 하는 기술을 익힐 수 없었다.
 
그런데 농사라는 것은 농부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식량을 얻을 수 있는 ‘경제활동(經濟活動)’이었다. 그러므로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단순히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라 최초의 경제활동을 한 셈이다.
 

니콜라우스 피퍼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비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