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신학]Jean Calvin의 신앙

[스크랩] 칼빈의 초기사상 연구 [헌 사]

好學 2009. 11. 5. 13:32

 

칼빈의 초기사상 연구 [헌 사]

 

- 프랑스 왕 프란시스에게

 

 

지극히 위대하시고 지극히 영명하시고 지극히 기독교적인

프랑스 왕 프란시스 폐하에게

존 칼빈은 주 안에서 평강과 문안을 드립니다.

1. 이 책이 쓰여진 배경

칼빈이 처음 이 책의 저술에 들어갔을 때는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에게 받칠 어떤 것을 쓴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단지 그의 목적은 어떠한 기초적인 사실들을 전달함으로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이라도 가르칠 목적으로 기록한 초보적인 안내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그들’이란 총칭으로 사용됨)의 격노로 이 건전한 교리서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질 못했다. 그래서 칼빈은 자신이 가르치기에 착수한 사람에게 교훈을 주고 동시에 왕에게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무척 가치 있다고 생각하였다. 더불어 칼과 불로써 왕의 영토를 교란시키는 그들이 불같은 성화로 반대하는 교리의 속성을 왕에게 알게 하려고 하였다. 그 교리는 다름 아닌 모든 질서와 시민의 정부를 전복하고 평화를 깨뜨리고 모든 법률을 폐기하고 모든 신분과 재산을 박탈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려는 것 외에는 어떤 다름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 박해받는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탄원

칼빈은 모든 신자들의 공통된 주장, 즉 그리스도 자신의 주장을 기꺼이 붙들고 가련한 교회가 잔인한 살육에 의해 피폐되고 추방을 당해 유배 중에 있으며 혹은 협박과 공갈에 압도당하여 감히 입도 열지 못하는 형편임을 왕에게 알린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땅위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진리가 어떻게 그 영예로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 왕국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서 온전하게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걸려 있을 때 왕은 진지한 태도와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칼빈은 주장하고 있다. 즉 이러한 문제들은 왕이 듣고 인지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왕국을 통치하는데 있어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롬 13:3)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칼빈은 이야기한다. 만일 왕이 왕국을 통치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면 그는 왕의 법도를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자기 왕국이 하나님의 홀, 즉 그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 않는데도 지속적으로 번영하기를 바라는 자는 스스로 속고 있는 자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비참한 죄인이며, 천하고 미미한 존재들인가를 잘 알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나(고후 10:17-18)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공로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딛 3:5).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우리의 연약함 뿐인데(고후 11:30; 12:5,9) 사악한 그들에게는 단지 고개짓으로 그것을 인정하는 것조차도 커다란 불명예가 된다는 것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우리의 교리는 기가 꺾임이 없이 세상의 모든 영광과 능력들 위에 우뚝 솟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대적들이 우리가 거짓되이 하나님의 말씀을 핑계삼아 사악하게도 하나님을 더럽힌다고 소리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왕은 자신이 소유한 분별력을 발휘해 우리의 고백을 읽어보고 그것이 얼마나 악의에 찬 무고이며 파렴치한 말들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칼빈은 이야기한다.

우리의 고백은 사도 바울이 말한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한다(롬12:6)는 말씀처럼 우리의 해석은 이 믿음의 규칙에 의해 의거해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 자신에게서 모든 영광돌릴 기회를 제거하여 그분 안에서 우리가 영화로워지는 믿음인 것이다(고전 1:31; 고후 10:17) 칼빈은 왕에게 자신의 주장을 검토해 보고 만일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에 두기”(딤전 4:10) 때문이며,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는 것이 영생”(요17:3)임을 믿는 사실을 발견할 수 없거든 우리를 사악한 자들 중 가장 사악한 자들로 여기라고 간청한다.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 중의 어떤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곤장을 맞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조롱을 당하면서 끌려 다니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추방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도망을 다녀야만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에 찌들리고 무서운 저주를 받고 중상모략을 받기도 하고, 가장 치욕스러운 취급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면 우리의 대적들 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종교를 등한시하고 멸시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3. 대적자들의 비난에 대한 논박

- 새로운 것, 불확실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과 기적들의 가치

대적자들은 우리의 교리 공격하기를 그치지 않고 비난하며 명예를 훼손하여 우리의 교리가 증오와 의심의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들은 그것을 “새롭고” 또 “최근에 생성된”것, “의심스럽고 불확실한”것으로 비난한다는 것이다.

먼저 그들은 “새로운”것이라 부르면서 하나님께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새로운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칼빈은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두 다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새롭다 하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또한 “불확실성”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우리 교리의 불확실성을 조롱할지라도 그들이 만일 자신의 피로써, 또한 그들 자신의 생명의 대가로 그들의 교리를 인쳐야 한다면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공포나 심지어 하나님의 심판대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과 다른 정반대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칼빈은 이야기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또한 기적을 요구함으로써 부정직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복음을 날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행하신 모든 기적들이 확정해 주고 있는 진리의 복음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칼빈은 설명한다.

 

4. 교부들의 종교개혁의 가르침에 반대한다는 부당한 주장들

게다가 그들은 부당하게도 교부들이 우리를 반대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만일 교부적 권위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면 승리는 오히려 우리쪽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교부들은 현명하고 우수한 글들을 많이 썼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 교부들이 썼던 훌륭한 글들을 사악한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설명하거나 혹은 왜곡 시켜 해석하면서 우리를 교부들의 대적이요, 교부들을 멸시하는 자라고 몰아치고 있다고 칼빈은 말한다.

우리는 만물이 우리의 것이며(고전 3:21-22) 우리를 섬겨야 하며, 우리를 주관할 수 없으며(눅 22:24-25) 우리는 모든 일에 예외 없이 순종해야 하는(골 3:20참조) 그리스도 한 분에게 속해 있다(고전 3:23)는 것을 항상 기억할 정도로 교부들의 저술에 정통해 있다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나 구별을 준수하지 않는 자는 종교에 있어 어떤 확실한 것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이 거룩한 사람들도 많은 것을 몰랐으며 종종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서로 의견이 대립되기까지 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어떤 애매한 문제를 판단할 때 분명하고도 명백한 성경의 증거 없이 이편이나 저편을 드는 것은 경거망동이라고 단정한 분도 교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없이 수많은 제도들, 교회법들, 그리고 교리적 결정들을 제정했을 때 그들은 이 한계를 망각하고 있었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5. 진리에 반대되는 “관습”에의 호소

비록 그들은 “관습”에 호소하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우리로 하여금 관습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를 아주 부당하게 취급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사람들의 판단이 정확하기만 하다면 관습은 선한 사람들에게서 찾아져야만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종종 그 반대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이 제대로 처리되어서 보다 나은 것이 다수를 기쁘게 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적인 악이 종종 공적 오류 혹은 악에 대한 일반적 동의를 야기했는데 그것을 이제 선한 사람들이 법률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의 사회에서는 공적 실수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그의 영원한 진리만이 청종되고 준수되어야 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그 진리는 세월이 많이 지나갔다고 해서, 혹은 어떤 관습이 오래 지속되었다 해서, 혹은 인간들의 음모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없는 것이라고 칼빈은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대적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예들을 제시하게 버려 두라고 칼빈은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하게 한다면 우리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칼빈은 확신한다. 비록 많은 세대가 동일한 불경건에 동의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심지어 삼 사대까지 보복하실 만큼 강하시다(민 14:18; 출 20:4 참조)고 칼빈은 이야기한다.

 

6. 교회의 본질에 관한 오류들

그리스도의 교회는 살아왔었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한 살아 있기 때문에 사악한 그들도 교회가 잠시동안 생명을 잃었다든가 혹은 우리가 지금 교회와 갈등하고 있다든가 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억지로 인정하게 할만큼 심하게 우리를 압박하지 못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육안으로 교회를 보지 않으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결코 한정시킬 수 없는 한계 내에 교회를 두려고 하는 점에서 진리로부터 멀리 이탈하고 있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첫째 그들은 교회의 형태는 항상 드러나 보이고 관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이 형태를 로마 교회와 그 계급제도와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리는 교회가 어떤 가견의 외형 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외형은 그들이 바보스럽게 흠모하는 저 외적 장엄함 속에 담길 수 없다고 칼빈은 확신하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아주 다른 표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는 것과 성례를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7. 개혁교리 때문에 야기되는 소란들

우리 교리의 전파가 수많은 소요와 소란과 다툼들을 불러 일으켰으며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가져다준 해로운 결과들을 열거할 때 사악한 그들은 충분히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칼빈은 이야기한다. 그러한 악들이 부당하게도 우리의 교리 탓으로 돌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사탄의 악의 탓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한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사탄도 반드시 활동한다고 칼빈은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 교리들과 구별하는 가장 확실하고 믿을 만한 표지라고 칼빈은 주장한다.

거짓 교리는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며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받아들이고 세상이 박수갈채와 함께 청종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깊은 흑암 속에 잠겨 있던 수세기 동안 인간들은 이 세상 주관자의 농담거리와 농락거리에 불과했단 것이라는 것이다. 사악하고 반역적인 무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여 일으키는 폭동이나 흥분을 일으키는 분파들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를 향해 들끓고 있는 모든 소요들와 소란들과 논란들 속에서 이런 종류의 환난들이 그리스도께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롬 9:33; 벧전 2:8 참조; 사 8:14)이며 “많은 사람이 폐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으셨다”(눅 2:34)는 말씀을 생각하며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칼빈은 이야기한다.

 

8. 왕은 거짓 고소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을 조심하소서

: 무죄한 자들은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칼빈은 그의 헌사의 마지막에 가서 우리 대적들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려고 애써 만든 거짓된 고소-예를 들어 우리가 나라들을 전복시키려는 모의를 꾸미고 있다는 것, 우리가 방탕한 죄악들을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다는 것-에 조금도 동요하지 말 것을 간청한다.

악의로 충만한 자들의 속삭임들만이 왕의 귀를 가득 채워 피고인들은 자기를 위해 변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단지 저들의 미친 듯한 격노만이 왕의 묵인 하에 투옥, 채찍질, 고문, 절단형, 화형 등으로 나타난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볼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인내로 기다리며 주의 손이 때가 되면 틀림없이 나타나 가난한 자들을 사악한 자들의 환난에서 건져 주시고 그들을 멸시하는 자들을 처벌할 것을 우리는 기다린다고 칼빈은 말한다.

 

출처 : The King Dom
글쓴이 : KINGD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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