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삼위일체론 3
/ 김재성 교수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IV. 반삼위일체론자들과의 논쟁
칼빈의 삼위일체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반삼위일체론자들과 벌인 논쟁을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필자가 영문으로 쓴 논문에서 자세한 내용과 세밀한 참고문헌을 찾아볼 수 있으므로 이 논문에서는 개괄적인 것만 소개하고자 함. Jae Sung Kim, "Calvin's Controversy with Anti-Trinitarianism," the 8th Asisa Calvin Studies Conference, Seoul. January 24, 2002. 신복윤 박사 은퇴기념 논문집, 「칼빈신학과 한국교회」(수원: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2002)에 게재함. 칼빈의 파악한 삼위일체론은 고전적인 교부신학의 연구를 통해서나 당대 로마 카톨릭의 모순에서 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피를 말리는 이단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더욱 견고하게 발전되고 형성되며, 조직되었다. 따라서 칼빈의 삼위일체론 이해는 격렬한 토론 부분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칼빈의 삼위일체 신학이 사변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목회현장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하나님을 믿는 진실된 교회임을 입증하는 핵심적인 교리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논쟁의 주제보다도 진지하게 대응하였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하나됨을 강조하였으므로 양태론적 유니테리언으로 공격을 받았는가 하면, 일부 유니테리언들로부터는 삼신론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끈임없는 논쟁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견고히 세워나갔다는 점이다. 그가 제네바 종교개혁자로 활약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그를 위협한 사람들은 이단적인 삼위일체론자들이었다.
IV. i. 제세례파에 대한 논평
칼빈이 로마 가톨릭에서 회심한 후, 처음 신학적인 비평논문을 쓴 대상은 16세기에 널리 퍼져나간 재세례파들에 대한 것으로, 「영혼의 잠에 관하여」(Psychopannychia, 1534년) 라는 글이다. Henry Beveridge, trans., John Calvin, Tracts, vol. 3 (Edinburgh: 1851): 413-90. 칼빈은 한 친구로부터 재세례파의 한 그룹에서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므로 이것을 논박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펜을 들었다. 동시대의 성도들이 가진 문제점 즉 인간 영혼은 사후에 잠을 자고 있다거나, 영혼의 멸절을 맞이한다는 등 형이상학적인 불안감과 절망감에 빠져들지 않도록 바른 지침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삼위일체와 관련해서 재세례파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곡해를 밝히 드러내고자 칼빈은 그의 초기 저술에서 이미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삼위일체론의 첫 출발점이자 강조점은 하나님의 "인격" (person) 이라는 개념이며, 이를 왜곡한 재세례파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George H. Tavard, The Starting Point of Calvin's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2000), 177. 하나님의 인격이라는 주제는 중세 신학에서 논란이 많았는데, 보에티우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격을 이성적 본성 안에 있는 독특하게 구별되는 본질로 생각하였다.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하나님의 인격성 (personhood)이란 상호교류할 수 없는 속성으로 생각하면서 (immutability), 본질로서 실재하기보다는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질서 (order of existence)라고 가르치는 부류가 있었다. 12세기의 성 빅터의 리챠드와 13세기 둔스 스코투스 등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신성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에 결코 상호 교통할 수도 없고, 함께 나눌 수도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 안에도 세 차원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계시가 그 핵심이라고 하였다. 계시된 로고스의 아버지는 아들도 아니요, 성령도 아니며, 성부는 오직 성자의 아들됨이라는 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나오심을 통해서 비쳐질 뿐이다. 이것은 중세 말기의 신비적인 명상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칼빈은 특히 제세례파들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서 이해를 잘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내주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의 차원을 강조하였다.
IV. i. 삐에르 까롤리의 고소와 칼빈의 논쟁
소르본느 박사 출신으로 스위스 개신교 진영에 가담한 삐에르 까롤리 (Pierre Caroli, 영어로는 Peter)는 1536년 봄 뇌사뗄의 개혁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여 여러 종교개혁자들과 사귐을 가진 후, 그 해 11월에는 로잔의 수석목사로 부임하였다. 이 도시에는 칼빈이 일생동안 가장 절친하게 우정을 나눈 삐에르 비레가 종교 개혁진영의 지도자로 있었다. 그런데 까롤리가 로마 가톨릭의 옛 습관을 따라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가르치고 시행한다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William Nijenhuis, "Calvin's Attitude towards the Symbols of the Early Church during the Conflict with Caroli," Ecclesia Reformata: Studies on the Reformation (Leiden: Brill, 1972): 73-96. 까롤리는 자신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온 것은 로마 가톨릭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아무런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점차 수세에 몰리자 자신의 로마 가톨릭적인 잔재를 변호하기 위해서 칼빈과 파렐 등을 터무니없는 말로 공격하는 야비한 수법을 폈다.
1537년 2월 17일 첫 번 째 토론장에서 도리어 칼빈의 신학사상이 아리우스주의라고 공격하였다.
Confessio de Trinitate propter calumnias P. Caroli in Calvini Opera IX:703-710; Calvin's letter to Caroli, in Calvini Opera XI: 72-75. Pro Farello et collegis eius adversus Petri Caroli calumnias defensio Nocolai Gallasii which in written by Calvin in 1545 and addressed to a wider European public, in Calvini Opera VII:289-340. Cf. Eduard Bähler, Pierre Caroli und Johannes Calvin in Jahrbuch für Schwizerrische Geschichte xxix (1904): 41-167. W. Walker, John Calvin: The Organizer of Reformed Protestantism, 1509-1564 (New York: Schocken Books, 1906):195-202. Bernard Roussel, "François Lambert, Pierre Caroli, Guillaume Farel- et Jean Calvin (1530-1536)," in Wilhelm H. Neuser, ed., Calvinus Servus Christi (Budapest: Presseabteilung des Ráday-Collegiums, 1988), 35-52. 김재성,
「칼빈의 삶과 종교개혁」(서울: 이레서원, 2001), 250-255. 그리고 아다나시우스 신경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서명을 해야만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통신앙을 가진 개혁진영의 목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한 개인이나 한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어떤 신경이나 신앙고백이라도 성경을 능가할 수 없으므로 어떤 특정한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맞섰다. 사실 까롤리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인격들 사이의 구분과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가 인용한 근거문서들은 칼빈이 작성했다는 확증도 전혀 없는 것들이었다.
Calvini Opera, VII:316, 318. Jean-Fançois Gounelle, Défense de Guillaume Farel et de ses collègues contre les calomnies du théologastre Pierre Caroli far Nicolas Des Callars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4).
칼빈이 아리우스주의자라는 비난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지만, 한번 퍼져나간 불명예스러운 호칭은 칼빈의 초기 사역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말았다.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정죄된 아리우스를 따르는 자라는 오명을 입게 됨으로써 칼빈이 당한 치명적인 상처는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종교개혁 초기에 유럽 각지역에서 막 피어오르던 칼빈의 명성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었고, 이를 불식시키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초기 사역에 실패하게 되어 1538년 봄에 쫒겨 나게 되는 것도 이런 불명예스러운 인신공격이 널리 펴져 있음을 부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까롤리와의 논쟁은 칼빈의 강력한 요청으로 몇 차례 더 지속되었다. 2월 28일, 3월 1일 연이은 회의에서 칼빈은 이미 발표한 제네바 요리문답 31항과 33항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천명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초판 제 2장 신앙에 관한 풀이에서 이미 삼위일체를 믿는 신앙을 고백한 바 있었으나, 까롤리는 의도적으로 이런 문서들에 담긴 칼빈의 증언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까롤리는 새로 발표된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들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초대 교회에 만들어진 세 가지 신앙고백서들 (사도신경, 니케야 신경, 아다나시우스 신경)에만 서명을 하라고 주장하였다.
두 번째 논쟁에서 칼빈은 자신의 입장이 왜 아리우스주의자 아닌가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나는 당신이 어떻게 내가 아리우스를 따르는 이단이라고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소이다. 나는 내가 이미 공개적으로 표명한 증언들을 살펴보라고 권하는 바이며,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고히 주장해온 나의 입장을 아무런 어려움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나의 저술들은 모든 사람이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정통교회들이 나의 신앙과 내 견해에 동의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술이나 마시고 팁을 주는 일 외에 과연 어떤 글이라도 남긴게 있소이까? 당신이 관련된 것이란 고작 싸움하는 일 뿐이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를 아리우스주의자라고 고소하는 것이요? 나는 그러한 정당치 못한 의심을 나에게 던지는 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깨끗이 해소시킬 것 입니다. Calvini Opera VII: 309.
칼빈은 이 논쟁이 끝난 후 (1537년 8월) 쮜리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왜 자신이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서명하지 않았는지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문서가 비신앙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떤 한 개인이 만든 신앙고백이나 문서에 서명을 강요하는 것은 한 개인의 신앙을 강압적으로 무시하는 폭거라고 반박하였다. 더구나 로마 가톨릭은 그러한 행위를 교회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 자체의 권위를 짓밟는 것이라고 항변하였다. Calvini Opera, X:120f
마지막으로, 5월 31일 파렐은 결정적으로 까롤리의 부도덕을 증언하였다. 칼빈의 강력한 발언이 있은 후, 칼빈의 입장은 정통개혁주의 신학임을 천명하게 되었고, 까롤리는 설교를 금지 당한 후 6월 6일 다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나타나지 않고 몰래 도시를 빠져나가서 로마 가톨릭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 후에 다시 그를 모르는 개신교 교회에 일시적으로 가담하였다가, 또 다시 로마 카톨릭으로 회귀하는 등 일생 동안 세 차례의 반전을 거듭하였다. 최종적으로 1543년 멧츠의 로마 가톨릭 설교자로 복귀하고 말았다. 1545년 칼빈은 「삐에르 까롤리의 중상모략에 대한 반론」(Pro Farello et collegis eius adverseus Petri, Caroli calumnias)을 저술하여 다시금 아리우스주의자드라는 불신과 오해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초대 교부들의 문서를 철저히 섭렵한 칼빈이 아리우스의 어떠한 신성도 그리스도에게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오직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상을 과연 칼빈이 받아들였다고 상상조차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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