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삼위일체론 2
I. 서론
기독교 신학사에서 수많은 논쟁이 얽혀있는 삼위일체론의 정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신학자는 요한 칼빈이다. 그의 삼위일체론은 중세말기와 종교개혁 초기에 하나님에 대한 여러 이단들이 분출하는 가운데서 가장 성경적인 하나님 이해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삼위일체라는 매우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매우 딱딱하고 차가운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삼위일체를 접근하는 그의 신학적인 설명들은 목회적이요, 실천적이며, 성경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올바른 복음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에게도 큰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칼빈의 개혁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균형잡힌 안목을 열어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단순히 칼빈의 삼위일체론에 담긴 내용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그 형성과정을 중점적을 조명해 보고자 하며, 이를 근거로 하여 과연 기독교 신학사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의되어온 여러 주장을 뛰어넘어서 무엇인가 새로운 독창성을 가진 것이냐의 여부를 다루고자 한다. 지금부터 약 일 백여년 전에 칼빈 탄생 사백 주년을 기념하여 주옥같은 칼빈연구 논문을 펴낸 워필드 박사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이야말로 기독교 교리사의 기념비적인 장을 열어놓았으며 새로운 발전이라고 극찬한바 있다.
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Calvin's Doctrine of Trinity," Calvin and Augustine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74), 198: "... not only a Biblical proof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argued with exceptional originality and force, but also of a strongly worded assertion and defense of the correctness and indispensableness of the current ecclesiastical formulation of it."
그런가하면, 그 후로 약 오십 여년 후에, 유럽의 대표적인 칼빈학자 프랑소와 방델은 칼빈은 당대 여러 종교개혁자들의 삼위일체론에 관한 이론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평을 내놓았다.
François Wendel, Calvin: Origin and Development of His Religious Thoughts, tr. Phillip Mairet (1950; N.Y.: Harper and Row, Inc., 1963): 169: "Although devoid of originality, this trinitarian doctrine constitutes an essential part of the theology of Calvin." For Wendel, Calvin just follower of Martin Luther and Bucer on the matters of the Trinity. (I translated this book into Korean. Seoul: Christian Digest, 1997).
이제 다시 오십여년이 지난 후에 그간의 칼빈학자들이 내놓은 연구업적을 근거로 하면서, 특히 필자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을 이해하는 핵심은 여러 차례의 논쟁을 통해서 형성된 과정을 주목해야만 한다는 것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II.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삼위일체
II.i. 삼위일체론을 다룬「기독교강요」의 구조분석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에, 그는 기독교 개혁신학의 초석을 놓은 많은 신학적 저술을 통해서 교회가 고백해야할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관하여 매우 주목할만한 교리들을 남겼다. 중세 시대에 변질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와 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였다.
성경을 통해서 발견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칼빈으로 하여금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만들었다. 칼빈이 다섯 번의 개정을 거듭한 후 펴낸 1559년 최종판 「기독교강요」 제1권을 분석해 보면 저자의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처음 열 두 장에 걸쳐서 칼빈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과 거짓된 신을 대조한다. 그리고 제 13장을 삼위일체에 할애하고, 그에 기초하여 14장부터 18장까지 창조와 섭리을 다룬다. 따라서 초반은 기독교 인식론과 신론의 기초작업을 한 후에 삼위일체론을 제시한 것이고, 삼위일체론을 다룬 후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두 가지 중요한 사역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강요」제 1권 13장을 다시금 상세히 들여다 보면, 먼저 삼위일체론을 다루는 칼빈의 주요 관심이 초대 교부들의 용어에 대한 비평적 논의에 있음이 드러난다 (2-6항). 그리고 칼빈은 그리스도의 신성 (7-13항)과 성령의 신성 (14-15항)을 다루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과 구별됨 (16-20항)을 설명한다. 마지막 부분 (21-29항)은 반 삼위일체론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매우 논쟁적이다. 하지만, 칼빈의 그 어떤 교리라도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특히 삼위일체론은 불과 40여 쪽에 불과한데, 「기독교강요」제 1권 13장을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Westminster, 1959), I.xiii.1-29. [hereafter Institutes]. 120-159.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그의 목회와 삶의 현장에서 일생 동안 수없는 논쟁을 해야만 했던 주제였다. 우리는 표면에 나타난 교리해설에 그쳐서는 안되고, 그 이면에 흐르고 있던 논쟁들을 주목해야 하고, 칼빈 자신의 연구를 돌아보아야 한다. 더욱 확실한 것은 「기독교강요」의 첫 문장에서부터 삼위일체 교리가 전제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론에서 다루어진 부분을 살펴보자.
II.ii. 신지식의 두 가지 기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칼빈의 저술을 속에 일관되게 강조되어 있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가까이는 중세 스콜라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첫째로, 1536년에 발표한 「기독교강요」의 첫 관문이자, 항상 자주 인용되는 그의 유명한 문장, “우리가 갖고 있는 참된 지혜의 총체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I.i.1)는 선언 속에 담겨있는 바, 경건과 신앙 (pietas et religio)이 철저하게 근저에 있는 것이다.
Institutes, I.ii.1: "that reverence joined with the love of God which knowledge of his benefits brings about." I.xii.1."the knowledge of God does not rest in cold speculation, but carries with it the honoring him."
칼빈이 추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변적이요, 회의적인 지식을 추구하였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단순한 이성적 확신을 갖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속성들이나 본성에 대해서 합리적인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뜨겁고 감격에 찬 존경심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바르게 예배하기를 소원하였다.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합당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의 태도라는 것이다. 교부들이 사용했던 ‘경외심’ 혹은 ‘신앙’을 의미하는 헬라어 ‘εύσέβεία’가 신약성경에 사용되었음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을 모르던 무지 속에 살던 자들이 미신숭배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을 갖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신비이다. 철저한 경외심과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Institutes, I.xiii.17.
두 번 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칼빈이 기본적으로 강조하면서 지속적으로 서술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는 물체가 아닌 영적인 본질이므로 사람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성격’ (intrinsically incomprehensibility of God)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Institutes, I.v.ix;"Consequently, we know the most perfect way of seeking God, and the most suitable order, is not for us to attempt with bold curiosity to penetrate to the investigation of his essence, which we ought more to adore than meticulously to search out, but for us to contemplate him in his works whereby he renders himself near and familiar to us, and in some manner communicates himself." I.xiii.1, 21.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가질 수 없으며, 하나님이 자신을 아시는 것처럼 알 수 는 없다. 칼빈은 1539년 개정판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이라는 용어를 첨가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제한성과 한계를 보다 철저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우리가 갖고있는 가장 참된 지혜를 갖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다 (잠1:7). 지혜란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 설명은 「기독교강요」의 총주제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바로 하나님의 존재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으로 직결된다. 하나님의 존재는 사람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창조주로서 신의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사람의 상상이나 개념이나 탐구범주를 넘어선다.
따라서 칼빈은 중세 시대 라틴계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본성을 풀이하고자 자주 사용했던 질문인 ‘하나님은 누구인가?’ (quid sit Deus)라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의문에 답하는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본질과 위엄에 관한 부당한 호기심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합당하게 하려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qualis sit Deus?) 다시 말하면, 앞에서 규정한 두 가지 기본 전제에 근거하여 볼 때에,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활동하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주시고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만을 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요17:5)로서, 성육신하심으로서 계시된 신성만이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Institutes, I.ii.1. I.vi.4.
칼빈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간의 제한성과 신성에 대한 불가이해성은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면, 하나님은 자신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 주신 자기 계시와 자기 증거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조그만 계산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대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규정할 수 있는가?” Institutes, I.xiii.21.
성경에 계시하신 바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내용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신 것이다. Institutes, I.xiii.2:“he also designated himself in a special way by which he may be known and by which he can be peculiarly distinguished; for he proclaims himself as the One in such a way that he presents himself to be contemplated distinctly in three Persons. Unless, we hold fast to these it is merely a naked and empty name of God, without the true God, that flutters ion our brain." 믿음의 방식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보여준 것이 바로 삼위의 인격적인 구분이며, 하나님은 한 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아니고서는 다른 방식으로는 하나님을 알려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자신을 이름지으시고, 풀이하여주신 계시를 떠나서는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다. “삼위일체” (Trinity)는 그저 그렇게 하나님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참된 하나님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 인격이 하나의 참된 하나님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유일한 계시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라는 확고한 개념을 위해서 칼빈이 자주 인용한 두 사람은 이레니우스와 힐러리 (Hilary of Poitiers, 315-368)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레니우스는 무한하신 성부께서 그의 아들 안에서는 유한하게 되셨다고 쓴 바 있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주 작은 계산능력 속에 자신을 낮춰주셔서 측량할 수 없는 영광으로 압도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되어진다.“ Institutes, II.vi.4. 성부에 의해서 성자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알려 주신 것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그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마 11:27, 고전 12:3, 고전 2:9, 눅 10:22). 특히, 이 말은, ”우리는 그의 말씀의 지도를 벗어나서 다른데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말씀을 지도를 벗어나서는 그분을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바로 그 동일한 말씀을 떠나서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Institutes, I.xiii.21. 힐러리는 라틴어로 헬라 교부들의 신학서적을 번역한 걸출한 서방 신학자였는데 이로 인해서 서방교회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신학의 형성에 큰 공헌을 남겼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한계 안에서 믿음으로 받게 되는 지식은 “삼위일체”라는 것인데, 이것은 한 분 참되신 하나님은 실재적으로 본래적으로 삼위라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것으로는 전혀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지식을 떠나서 달리 생각해서는 안되는 바 하나님은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이신 참된 한분이시다. 이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존재의 실재와 인격을 생각할 수 없다. Institutes, I.xiii.20: "when we profess to believe in one God, under the name of God is understood a single, simple essence, in which we comprehend three persons, or hypostases."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정확하게 증언하는 바를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한 존재 안에 세 인격들이 있으며, 성경이 말하는 대로 여러분이 증거하는 것이 공허한 말을 이기게 될 것이다.” Institutes, I.xiii.5.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셨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러한 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나타난 삼위일체 교리의 기본적인 원칙들이요 강조점들이다.
III. 칼빈과 고전적 삼위일체론
칼빈은 니케야 신조에 관한 설명, 초대교부들의 다양한 주장들, 갑바도기아 신학자들과 어거스틴의 차이점등 삼위일체 신학의 다양한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Institutes, I.xiii.5: "What are the formulas employed by the councils and excused by Hilary? With what great freedom does Augustine sometimes burst forth? How unlike are the Greeks and the Latins?" 서방 교회와 헬라 정교회의 두 전통은 서로 다른 기초 위에서 서로 다른 체계를 세웠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III.i. 초대교부들의 삼위일체론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신학은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정점되어있는 동방신학과는 너무나 다른 기초 위에서 삼위일체론을 구성하였다. 오리겐과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본성을 성부의 위격을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토양에서 나온 동방신학의 특징은 존재론적 삼위일체론, 혹은 본체론적 삼위일체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보이지 않는 성삼위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인간이 표현할 때에, “삼위일체”라는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여 왔는데, 이런 용어들이 가장 성경의 표현을 잘 드러내는 신학적인 술어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적합하게 사용된 것이냐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어 왔었다. 이점에 대해서도 칼빈은 매우 솔직하게 용어적인 혼란들의 실상을 직시하였다.
칼빈은 초대교회 삼위일체 신학의 형성과정을 거쳐서 사용된 ‘위격’ (hypostasis)라는 용어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차이를 드러내려했던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의 용어들을 채택하고 사용하였다. 그리고 ‘휘포스타시스’의 라틴어 번역이 ‘수브스탄티아’라는 것도 그대로 초대교회처럼 채용하였다. 칼빈은 고전적 삼위일체론에 담겨진 종속주의의 잔재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칼빈의 전체적인 관심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동등성을 극대화하는데 있었다. 그는 어떠한 종속적 암시라도 못마땅하게 여겼고,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방신학의 경륜적 삼위일체 교리를 발전시킨 신학자는 스토아 철학과 로마 법률의 영항을 입고서 자라난 터툴리안 (Tertullian, 196-212에 활약함) 이었다. 그는 라틴어 ‘수브스탄티아’ (substantia)라는 용어를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hypostatis)에 해당한다고 확신하였는데, 스토아적인 의미에서 보면, ‘통합적 실재’ (corporeal reality)라는 뜻이었다. 이 용어를 가지고 최초로 삼위일체 교리를 다루었던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설명하고자 했으나 분명하게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Louis Berkhof,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s (Edinburgh: Banner of Truth Turst, 1937), 83.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삼위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또 다른 법률용어인 ‘페르소나’ (persona)를 사용했는데, 원래 이 단어의 뜻은 오늘날의 인격이라는 뜻보다는 ‘mask’ (가면)이라는 뜻으로 연극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서 출연할 때에 쓰였다고 한다. 후에 이 용어는 점차 뜻이 확대 되어서 ‘개인적으로 구별된 실재’ (individually distinct entity)를 의미하게 되었다. 아직 충분하게 위격과 본질을 구분하여 설명할 수 없었던 터툴리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자의 특수한 역할, 즉 극중에서 역할이 서로 다른 인물과 같이, 독립적인 권능을 수행한다고 풀이하였다. G. W. H. Lampe, "Christian Theology in the Patristic Period," in A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ed. Hubert Cunliffe-Jones (Edinburgh: T & T Clark, 1978), 86. 칼빈은 헬라어 ‘프로소폰’ (prosopon)이라는 단어를 라틴어로 ‘페르소나’ (persona)라고 번역하여 사용되는 것도 받아들였다. 동방신학자들이 격돌한 논쟁에서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초대 교부들의 신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 (250-336)와 아타나시우스(296-373)가 격돌한 니케야 종교회의였다. 안디옥 학파 (300-484까지 활동)의 아리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입은 바 있었다. Rowan Williams, Arius: Heresy and Tradition (London: Darton, Longman, and Todd, 1987).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본체라고 설명되었으므로, 삼위일체 신학에서 ‘동일본질’이라는 대목이 논쟁의 대상으로 등장하였었다 아리우스는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위격들의 구분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성자는 피조물이라는 이해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할 자이시면, 그는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소유한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였다. 니케야 종교회의 (325년 제 1차회의)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임을 선언했다.
세 번째 고전적 삼위일체론의 전개는 갑바도기아의 교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가이사랴의 바질 (329-379), 그의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Gregory of Nazianzus, 329-390), 바질의 동생인 닛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 330-395)등은 삼위일체 신학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381) 아폴리나리우스의 이단설을 척결하고, 성령의 신성을 확고히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동방에서 발전된 이런 내용들은 포이티어스의 힐라리 (Hilary of Poitiers, 315-368)에 의해서 라틴어로 소개되어서, 어거스틴의 서방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유출과정에서 셋으로 확대되어지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삼위일체는 공히 영원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의 ‘우시아’는 하나이며, 삼위는 휘포스타세스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 서로 달리 보이는 외적인 위격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원인관계에서 그 발생과 기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Gregory of Nyssa, Against Eunomius I:42. John of Damascus, Expostion of the Orthodox Faith, I:8. "우리는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한분 성령을 믿사오니 그는 성부에게서 나와서 성자 안에 머무신다.“ J. N. 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London: A. & C. Black, 1977), 240-264. G. L. Bray, "The Filioque Clause in History and Theology," Tyndale Bulletin 34 (1983):91-144. C. Stead, Divine Substance (Oxford: Clarendon Press, 1977). 그래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begotten)하고,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 (proceeds)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요1:14, 15:26). 그리고 이런 관계에 대한 표현들을 곧바로 각 위격의 속성들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성부는 무출생성 (unbegotten)을 그 존재의 속성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출생 하는데 이것이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결정지었다고 보았다. 성부는 무출생적이다 (unbegotten, agennétos).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했다 (begotten, gennétos).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했다 (proceeds, ekporeuetai). 하나님의 ‘우시아’가 하나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세 위격은 하나의 신적인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설명을 첨가하였다. 위격들의 상호점유, 혹은 상호교류, 상호순환으로 번역되는데, ‘페리코레시스’ (perichoresis)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써큐민쎄시오’ (circuminsessio)로서, 삼위일체의 각위가 구별되더라도 신적 본질의 완전한 현시임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세 위격은 모두 다 전능하며, 전지하고, 영원하다. 하지만,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신적인 ‘우시아’ (본질)이 ‘휘포스타시스’ (위격)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라고 간주하는 잠재적인 경향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각 휘포스타시스의 신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상호점유설을 주장했지만, 역시 신적인 본질을 중시하는 존재론적 삼위일체론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성부의 위격 안에 신적인 ‘우시아’를 위격화 시킴으로서 상호 점유론에서 주장했던 위격들의 동등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오리겐을 이미 오래 전에 배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부우위론으로 해석될 요소들은 여전히 바실의 글에 남아있으며, 그 후 헬라 정교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칼빈은 이러한 입장의 모호한 부분들을 더욱 선명하게 주장하였으니, 성자는 자유의사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물론 성자는 성부의 보냄을 입고 오셨고, 보냄을 받았다. 성경적인 증거와 용어사용에 주의를 기울였다 하더라도 ‘출생’과 ‘발출’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추상화하는 경향은 결코 환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관계’로부터 ‘속성’이 나온다면, 성부의 무출생성에서 과연 어떤 속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삼위가 모두 영원하시는 속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성부의 무출생성만을 주장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분이요,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성자와 성령의 위격도 똑같이 무기원적이다. 낳으심과 나오심은 기원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Donald Macleod, The Person of Christ (Leicester, IVP Press, 1998), 201.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은 아직 성경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던 초대교회 형성기의 혼란을 수습하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었으나, 후대의 학자들에게 해결할 과제를 남겨놓는 미완성의 패러다임이었다. 휘포스타시스들의 상호점유를 인정하면서 동등성을 강조하는 측면과 신성의 원천으로서 성부 수위성을 주장하는 그들의 주장 사이에는 여전히 미해결의 장이 남아있다. 서방신학의 삼위일체론은 어거스틴에 의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어거스틴은 ‘영’과 ‘사랑’을 동일한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질은 영이자,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은 거룩한 사랑의 인격화 (the personification of holy love)라고 인식하였다. 요한복음 4: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을 의미하는 설명이다. 요한일서 4:16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기능하시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영’을 삼위일체의 제 3위에 해당하는 성령의 이름으로 간주하지 않고, 신적 본성에 대한 하나의 명칭으로 취급했다. 성부는 사랑하는 자 (Lover)이며, 성자는 (Beloved)이고, 성령은 사랑 (love)이다. 따라서 성령의 자리가 매우 불분명하게 규정되었으며, 위격과 본질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였다. 칼빈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채택하고 주장한 용어들과 그 신학이 지닌 약점과 오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한가지만을 집착하면 그것은 곧바로 온전한 균형을 놓쳐버리게 되어서, 삼위일체의 경우에 핵심적인 내용을 왜곡시키게된다는 힐라리의 지적을 칼빈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III.ii. 중세의 삼위일체론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중세시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었음을 간과해 버리는 경향이 많다. 오늘날 종교개혁의 신학을 깊이 파악하지 못하는 복음주의자들과 에큐메니칼 신학자들이 피상적으로 신학을 하고 있기 때문이요, 서로의 입장차이를 축소하려는 의도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중세의 삼위일체 신학은 고전적 유신논증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사변적인 주장을 하는 삼위일체론과 신비주의자들의 왜곡된 신론으로 압축될 수 있다. 사변적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처음 들여온 것은 안셀름이었고,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형성된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정점에 달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에서는 주장되고 있다. 은혜와 자연의 영역을 대비시킨 토마스 아퀴나스 (1226-1274)는 감히 하나님에 대한 물질적 존재증명이라는 연구를 탄생시켰다. 아퀴나스의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성을 서로 혼합하여 모든 진리를 논리적으로 입증하고자 노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할 수 없는 실재는 은혜의 영역으로 교회가 베푸는 성례전을 통해서 전달된다고 보았다. 또 하나는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 유명론이 대두되어서 진리의 개체화에 치중하게 되었다. 아퀴나스의 신론은, 존재의 유비를 통해서 이 세상이 존재들보다도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있다는 논증을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서의 ‘최초의 원인’을 신존재 증명으로 채용하되,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단서들을 사용해서 존재증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Anton C. Pegis, ed., Introduction to St. Thomas Aquinas (New York: Modern Library, 1945). F. Copleston, Aquinas (Hammondsworth: Penguin, 1955). E. Gilson, Reason and Revelation in the Middle Age (New York: 1953). 아퀴나스는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출생(generation)과 발출(proces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되 내용을 달리 규정하였다. 출생은 성부가 성자를 생산하는 것처럼 자신과 같은 것을 생산하는 것이요, 발출은 신적의지의 충동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삼위사이의 관계를 ‘아버지되심’(paternity), ‘아들됨’ (filiation), '발출‘ (procession) 이라는 용어로 풀이하고, 결국 삼위 사이에 존속적 관계 (subsistent relation)를 위격과 동일시했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은 성경적 사고를 벗어나서 철저히 철학적으로 변질했고, 추상화되고 말았다. 비철학적인 용어였던 '위격‘을 약화시켜서, 위격이란 본성의 한 측면, 한 양상으로서 본성 안에 존재하는 독특한 것으로 취급하고 말았다. J.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3: The Growth of Medieval Theology (600-1300)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59-61. 여기서 ‘출생’이나 ‘발출’이라는 용어들은 어떠한 인과율적인 요소도 첨가해서는 안되는 단어들이다. 칼빈은 이런 단어들이 혹시라도 인과율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까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성자의 존재와 성자의 행위는 일치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자가 아들로서 행위하시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성부에게 의존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성부와 연관을 지어서 자신을 아들로서 표현하는 것은 단지 성자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모든 것을 성부와 관련지어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을 정태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한 위격이 다른 위격에 대해서 의지를 강요하거나 주장할 수 없다. 각각의 위격은 ‘스스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들은 각 위격들이 기능일 뿐이지, 결코 위격들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세신학에서도 역시 성부 우위설을 피할 수 없었고, 성자와 성령은 신성의 근거인 성부에 비교해보면 모든 면에서 동등하신 하나님으로 취급되지 못했다. 스콜라주의 신학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삼위일체론은 매우 왜곡시켜 버렸다. 존재론적 삼위일체론에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논의에만 집중하면서도 각 삼위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다. 성부는 성경을 넘어서서 미신적인 형상이나 마귀적인 성상을 만들어놓고 부적당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Institutes, I.xi.6: "Whoever, therefore, desires to be rightly taught must learn what he should know of God from some other source than images." 따라서 칼빈은 중세 스콜라신학자들이 구분해 놓은 사변적인 항목들을 열거하지 않았다. 아퀴나스에 의해서 정립된 삼위일체 신학은 ‘한 본성’에 ‘세 위격’을 가진 하나님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심각한 문제는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이나 중세 시대의 것이나 비슷하게 ‘하나님의 본성’에 강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격들의 차이는 본성에 비해서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여기에는 신비주의적인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는데, 세상에 대한 거부와 포기로 이끌어가는 자연을 매개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토마스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이중 구조 (은총과 자연)라는 학문방법론보다는 그 이전의 고전적인 스콜라주의인 피터 롬바르드 (1095-1160)의 「명제집」(Sentences)을 읽고 교육을 받았었다. 점차 인문주의자들과 접촉하면서,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아퀴나스의 글이나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멀리 벗어나고자 노력하면서 성경연구에 집중하였다. 또한 중세 신비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본성을 초월적인 연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Gereal Bray, The Doctrine of God (Leicester: IVP, 1993), ch. 5. 중세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본성을 미지의 구름 속에 감추어버렸다. 끌레르보의 버나드, 윌리엄, 구아릭 등은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는 실재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동경하면서, 영혼은 내적인 깊이에 이르면 초월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신비주의자들과는 달리, 종교개혁자들은 황홀경적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영혼이 초월적으로 연합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만으로 충분하다고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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