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신약성경개론] 개관

요한 계시록:Revelation to John

好學 2009. 10. 31. 21:53

 

요한 계시록:Revelation to John

 

 

[영] Revelation to John (The apocalypse or revelation of St, John)

 

신약성경 최종의 글(책). 신약성경 중 유일한 독립된 묵시록(默示錄)

 

1. 본서의 명칭- 본서 처음의 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집필자(종 요한>(1:1, 2, 9-11)에 따라, 요한 계시록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2. 본서의 저자- 사도 요한의 저술임이, 18세기말까지는 이전의 전승(순교자 유스티누스Jus inus 100경-165가 제창) 따라 세베대의 아들, 즉 사도 요한이 쓴 저술로 이의없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19세기에 들면서, 계시록의 문체와 용어, 그리고 요한복음서와의 차이, 또는요한복음에는 묵시문학적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반대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에도 문체의 결정적 해결은 주어져 있지 않고, 사도요한이 아님을 논박할 확실한 것은 없다.

저자는 자기를 요한이라 칭하고(1:1), 또 사도 요한은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때 밧모섬에 유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본서가 밧모섬에서 받은 묵시인데 부합하며, 또 요한은 에베소에 있으면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7교회에보낸 본서의 사정도 이에 상응하며, 또 본서의 사상 및 용어에도 다른 요한 문서에 공통된것이 많아, 본서는 사도 요한에 의해 기록된 것이 오히려 의심할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를[말씀(로고스)] (19:13), [생명의 물] (7:17, 21:6, 22:17), [목자] (7:17), [어린 양] (5:12, 13)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 [증거] (1:2), [승리] (3:5, 21:7)등의 용어는, 요한복음서 또는 서신과공통하고 있다.

 

3. 본서의 수신자- 본서는 소아시아 서쪽 끝의 7교회에 보낸 것으로, 그러면서 이 교회는 7의 수가 말하듯, 온세계의 모든 교회의 대표이고, 온 시대의 모든 교회상의 축도로 봄이 적절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고금동서의 모든 크리스챤, 또는 특히 박해 중에 있는 교회에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본서의 기록 연대와 장소- 본서가 기록된 시기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rus 位 81-96)의 말기로 추정된다.

그 주요한 이유는, 본서에 나타나 있는 상황이, 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가 차츰 심해진 때, 특히 로마국권에 의한 황제예배(Imperial cult EmperorWorship)의 강요된 시기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는(13장 등)일이다.

이것은, 네로황제나 베스파시아느스황제의 치세보다도, 도미티아누스황제의 시대, 특히 그 후기에 적응하는 93-96년경이다.

기록장소는 밧모섬 또는 에베소일 것으로, 모두 소아시아에 있다.

 

5. 본서의 목적- 주 예수께서 본서를 기록케 하신 목적은, 당시의 그리스도인은 강대한 로마의 권력 아래서 박해를 받을 뿐더러, 현관(gorgeous)한 세계문화에로 유혹되고 있었으므로, 이것을 위로 격려하고 신앙에 굳게 서게함과, 오고 오는 시대에 있어서 환난과 박해와 싸우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최후 승리를 확신케 하려함에서이다.

 

6. 본서의 형식- 본서가 신약성경 중 가장 특이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누구나 일견하여 이것을 느끼는 일이다.

본서는 신약성서중 유일한 예언서로, 더구나 이미 보여진 묵시문학의형식에 따라 기록된 것이기도 하다.

묵시문학적인 것은, 구약의 제서에도 산견되는데, 본격적인 묵시문서는 전 2세기부터약300년간 걸쳐 출현했다.

에녹서 모세의 승천, 바록서, 제4에스라서 등, 이른 바 경외서가 그것이다.

정전에서는, 본격적인 묵시문화의 최고(最高)의 것으로 알려지는 다니엘서, 신약에서는 본서이다.

묵시문학에서는 즐겨, 상직적인 표현을 썼다.

본서에도, 3, 4, 7, 12, 24, 14만 4천, 666등의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로 씌어져 있고, 또, 책,용, 짐승 등 많은 표징을 써서 언뜻 보기에 기괴하다.

요한은 기존의 묵시문학의 기사를 이용한 점 많고, 또 이를 써서 지기에게 보여진 진리를 기재하고 있으므로, 본서의 이해 및 해석에는 이들의 묵시문학과 아울러 이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7. 본서의 특질- 본서의<계시>란 종래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보여주신다는 뜻인데, 따라서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금후에 있어서, 특히 그 재림하시는 때에 있어서 일어날 일의 비밀을 요한에게 계시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대분분은 미래의 세계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이 표징적으로 되어 있다.

 

8. 본서의 해석- 본서는 묵시를 표징으로서 기록한 것이므로, 개개의 부분에 이르러서는 무수한 해석을 낳고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견강부회(forced reasoning)의 것이 많은데, 대체에있어서 그 해석의 방침은 이것을 넷으로 구별할 수가 있다.

첫째는, 본서, 특히 그 4장이하를 훨씬 먼 미래의 일로서 해석하려는 것으로 미래파이다. 둘째는, 이것을 과거에서 미래에 걸친 역사의 축도로 보는 역사파이다.

셋째는 본서를 요한 당시의 일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즉 그 현재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세에서 보아 과거의 일에 속하므로, 이것을 과거파라 한다.

이 3자와 달리, 본서를 과거 또는 현재의 역사적 사실 또는 자연현상을 표징으로 하여 장래 일어날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의 원리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따라서 그 적용은 현재에서 미래에 걸쳐 어떠한 시대에도 관계하며, 그 완성은 세상끝에 있어서 기대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것을 영적 해석법, 혹은 원리적 해석법이라고 한다.

즉 본서의 내용을 이루는 여러 가지의 표징은 특정한 역사상의 일을 가리킨다기 보다, 그 뿌리에 가로놓인 원리를 보이는 것으로서, 이 세상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싸움터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사단의 박해 아래서 고난의 생애를 보내고 있으나 장차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세상은 심판 받고, 사단은 멸망하여, 새하늘과 새땅이 실현된 것을기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로마황제를 표징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일곱 왕(17:9)은 결코 로마황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땅위의 모든 권력자를 의미하며, 또 로마의 도시를 표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바벨론의 멸망(18장)도,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땅위의 문화의 멸망을 표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해석이, 즉 원리적 해석법이다.

본서는 그러므로 역사상의 모든 사실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 사실에 구애됨이 없이, 그 사실의 기초가 되는 원리를 알려주는 점에서 영원한 진리이며, 본서는 어떤 시대, 어떤 사람에게도 힘과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실로 요한에게 보여진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계시, 역사 철학의 계시였다고 할 것이다.

 

9. 본서의 내용- 본서는 서언(제1장)과 결어(22:6이하)를 제외하고 두 부분으로 대별된다. 제1부는 제2, 3장으로 소아시아의 교회에 보낸 서간이고 각 교회의 장점이 상찬되는가 하면, 단점이 책망되며, 고난에 견디어 승리를 얻은 자에 대한 보상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그 당시의 이들 교회의 실상에 대한 말인데 동시에 전세계, 전시대의 여러 교회의 대표들로볼 수 있다.

제2부는 제4장에서 제22장 5절에 이르는 주요 부문으로, 장래의 될 일에 대한하나님의 계시의 파노라마(Panorama)가 전개되어 있다.

처음에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예정의 계획에 대해 기록한 후(제4-5장), 어린양이 먼저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를펴서 그 중에 보여진 심판의 내용을 계시하고(6:1-8:5, 단 7:1-17은 중간 삽화로 된다).

이 일곱 책이 전개되어 일곱나팔로 되고 각각 많은 재난을 준다(8:6-11:19).

그리고 제7의 나팔에 있어서 예고된 최후의 재난이 오기 전에 제12 내지 14장에 있어서 교회의 본질과 이에 대적하는 두 짐승(제13장)과 복음과 심판에 대해(제14장)기록되고, 다음에 제15, 16장에 있어서 일곱 금대접이 쏟아져 최후의 재난이 인류에게 임한다.

제17, 18장에 있어서 이것이 설명되어 대음부 바벨론의 심판의 상세가 기록된 후, 제19장 이하에 있어서 최후로 하나님이 승리하여 그에게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시고 신천신지를 창조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내용 분해-

 

1부. 서언 1장

 

 

(1) 본서의 성질(1:1-3)

(2) 기자 요한의 인사(1:4-8)

(3)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1:9-20)

1). 이 책을 쓰게 된 동기(1:9-11)

2). 예수의 영광스런 모슴(1:12-16)

3). 예수의 명령(1:17-20)

 

 

2부. 일곱교회에의 서간(2-3장)

 

(1). 에베소 교회에(2:1-7)

(2) 서머나 교회에(2:8-11)

(3) 버가모 교회에(2:12-17)

(4) 두아디라 교회에(2:18-29)

(5) 사데 교회에(3:1-6)

(6) 빌라델비아 교회에(3:7-13)

(7) 라오디게아 교회에(3:14-22)

 

 

3부. 이후에 일어날 일(4:1-22:5)

 

-심판과 구원 및 새 하늘과 새 땅-

(1) 천상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4, 5장)

1).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4장)

2).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영광(5장)

(2) 일곱 봉인(6:1-8:5)

1). 제1-제6의 봉인(6장)

1 제1-4의 봉인(6:1-8)

2 제5-6의 봉인(6:9-17)

2). 하나님의 예정(삽화의 1) (7장)

1 14만4천명 인쳐지다(7:1-8)

2 인쳐진 자의 찬미(7:9-17)

3). 제7의 봉인(8:1-5)

1 봉인을 연 때의 광경(8:1-2)

2 나팔 전의 기도(8:3-5)

(3) 일곱 나팔(8:6-11)

1). 제1-6 나팔(8:6-9:21)

1 제1-4 나팔(자연계의 재난 8:6-13)

2 제5 나팔(제1의 화 9:1-11)

3 제6 나팔(제2의 화 9:12-21)

2). 하나님의 부르심과 복음의 전파(삽화의 2)(10:1-11:13)

1 펴진 책(성서 10장)

2 하나님의 도성에 관한 두 증인(11:1-13)

3). 제7 나팔(3인 화 11:14-19)

(4) 복음의 진전과 장래할 심판(삽화의3)(12-14장)

1). 교회의 상태(12장)

1 교회의 박해(12:1-6)

2 하늘에 있어서의 천사와 사단과의 싸움(12:7-12)

3 교회의 박해(12:13-18)

2). 교회의 적(敵)인 두 짐승(13장)

1 첫째 짐승, 지상의 왕권(13:1-10)

2 둘째 짐승(거짓 선지자)(13:11-18)

3). 복음과 심판(14장)

1 시온산의 어린 양과 속량된 자(14:1-5)

2 복음과 심판의 선언(14:6-12)

3 수확과 술틀의 이상(14:13-17)

(5) 일곱 금대접(15, 16장)

1). 준비(15:1-8)

1 승리자의 찬미(15:1-4)

2 일곱 금대접 준비되다(15:5-8)

2). 일곱 금대접 쏟아지다(16장)

1 제1-4의 대접(자연계의 재해 16:1-9)

2 제5-7 대접(16:10-21)

(6) 대심판(17, 18장

1). 정치적 권력으로서의 대음부(17장)

1 대음부의 모습(17:1-6A)

2 짐승의 비밀(17:6B-18)

2). 물질문명으로서의 대음부(18장)

1 바벨론의 괴멸(18:1-10)

2 바벨론의 상인 심판되다(18:11-17A)

3 바벨론의 해상 심판되다(18:17B-20)

4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선언(18:21-24)

(7) 하나님의 나라(19:1-22:5)

1). 하나님의 승리와 어린 양의 흔연(19장)

1 큰 군중의 찬미(19:1-10)

2 예수의 승리(19:11-21)

2). 천년왕국과 죽은 자의 부활(20장)

1 사단 결박되다(20:1-3)

2 천년왕국과 제1의 부활(20:4-6)

3 사단의 석방, 곡과 마곡의 싸움(20:7-10)

4 만인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20:11-15)

3). 신천신지의 출현(21:1-22:5)

1 신천신지의 광경(21:1-8)

2 새 예루살렘의 광경(21:9-27)

3 생명수 샘, 생명의 나무(22:1-5)

 

 

4부. 결어(22:6-21)

 

(1) 이 책의 가치(22:6-7)

(2) 천사에게 경배하려다 금지된 요한(22:8-9)

(3) 예수의 말씀(22:10-16)

(4) 성령과 신부의 말(22:17)

(5) 이 책의 절대적 가치(22:18-19)

(6) 마라나타(Maranatha-Our Lord, Come!)의 화답(22:20)

(7) 끝 인사(22:20)

 

10. 본서를 이해하는 열쇠 - 본서는, 이것을 그 주체와 그 중간에 개재하는 삽화로 나눔으로써 비로소 완전하게 이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

주체란 인류 특히 하나님께 대적하는 지적권력, 문화 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본서가 기록된 목적이며, 또 그 주요 부분이다.

주체로 보아야 할 것은 6,8,9장, 11장 15-19절 15,16,17,18장, 20,21,22장 1-8절이다.

즉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이고, 최후의 신천신지의 실현으로서 끝난다. 삽화에 속하는 부분은 마치 음악의 간주, 또는 조주같이, 한편에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동아넹 다른 편으로 하나님의 구원도 또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즉, 4,5장은 하늘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보좌의 광경이고, 어린양이 바야흐로 봉인을 떼려하는 것을 기록하여 인류의 구원도 심판도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보이고, 7장은 하나님의 예정을 기록, 10,11장은 성서와 그 증인에대하여 기록하고, 12,13장은 교회와 이에 대한 박해를, 14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전파에 의해 구원되는 자 있고, 사단에게 복종하는 자가 심판될 것을, 19장은 구원되는 자의 천상의 찬가, 즉 천상의 큰 무리가 환성하는 승리를 보여준다.

이같이 하여, 한편으로 심판, 다른 한 편으로 구원과 승리를 기록하여 솜씨 좋게 조립한 일폭의 살아 있는 그림 같은 것이 즉 이 계시록이다.

이 두 방면을 구별하면서 이것을 보화시켜 계시록을 연구함으로써 본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다.

 

11. 본서의 수의 표징적 의의 - 성경 특히 묵시적 문서에 있어서, 숫자는 각각 표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씌어 있음으로, 이것을 알면, 본서를 해득하기 쉽게 되고, 또 본서의 숫자를 문자대로의 의의로 해석함에서 생기는 오루를 막을 수가 있다.

즉 1은 절대 불가분, 2는 증거 또는 증인, 3은 천적인수, 4는 지적인 수, 7은 하늘과 땅과의 조화로 완전을 보이며 본서에 있어서 많이 씌어지고 있다. 10은 인간의 10지에 상당하고, 인간적 완전을 보인다.

12는 3과 4의 상승적(두 수를 곱한 값)으로, 12사도, 12지파 등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수이고, 24는 2에 12를 곱한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에 관하여, 14만4천은 12의 제곱을 천배한 것으로 천은 다수를 보인다.

기타 3년반은 7의 반으로 불완전 또는 유한을 보이고 6은 12의 반으로 사단의 나라에 관계를 가진다.

이상을 염두에 두고 계시록 중의 숫자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文獻]

F.C. Porter:The Messages of the Apocalyptic writers, 1905;

S.J. Case:The evelation of John, 1919;

R.H. Charles. The Revelation of St.John, 2권, 1920;

J.J. Veckwith:The Apocalypse of St.John. 1920;

H.B. Swete:Apocalypse of St. John. 1907;

J. Moffat:The Revelation of St.John, 1910;

M.G. Glazebrook:The Apocalypse of St. John, 1923;

G.W. Thorn:Visions of Hope and Fear, 1923;

J. Comblin:Le Christ dans I'Apocalypse, 1965;

T. Holtz:Die Christologie der Apokalypse des Johannes, 1962;

P.Prigent:Apocalypse et Liturgie, 1964;

A.Satake:Die Gemeindeordnung in der Johannesapokalypse, 1966;

內村鑑三:요한 계시록, 1908;

黑崎幸吉:요한 默示錄 1929;

默崎幸吉:新約聖書略解-默示錄, 1962;

佐竹明:요한 默示錄의 救援論의 一老察, 1964;

요한 默示錄,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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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사도):John the Apostle(인명)

 

[그] !Iwavnnh"(Ioannes)

 

[라] Joannes, Johnnes

 

[영] John the Apostle

 

히브리어 [요하난]의 그리스어형이 요안네스인데,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이다.

12제자로서, 12사도 중의 1인.

갈릴리의 어부 세베대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어업에 종사하고, 고용자도 쓴 부유한 가정의 사람이었다.

형제 야보고와 함께, 일찍부터 가정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로 되었다(마 4:21,22).

제자들 중에 있어서도, 베드로 및 형제 야고보와 함께 대표적인 인물이고, 예수의 생애의 중요한 장면에 동행하고 있다(눅 8:51,마 17:1,막 14:33).

본래 과격한 성격으로 [보아너게](우뢰의 아들 Boanhrgev")로 불리울 정도였으나(막 3:17), 후에는 요한복음및 그 서신 등의 관계에서, [사랑의 사도]로도 불리우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그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 13:23)라는 것이 그였다고 하는데, 이의를 말하는 이도 있다.

후에 그의 어머니 살로메도 예수의 선교에 이바지하게 되었다(막 15:40,41,16:1).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도, 요한은 베드로 다음 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행 1:13,3:12-26,4:13,19-22, 8:14, 25).

바울의 편지에 의해서도,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인물의 1인으로 말해져 있다(갈 2:9). 전설에 의하면, 그는 후에, 소아시아로 가서, 에베소에 정주하고,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 位 81-96 로마황제), 밧모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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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John(인명)

 

('Iwavnnh", John)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1]사도 요한이다.

세베대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의 형제이다.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요한계시록의 저자이다.

사도 요한에 대해서는 성경 기록에 의한 것과 전설에 의한 것을 구별하여 살펴 본다.

(1)복음서 이전:요한은 갈릴리 출신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정열적이고 용기가 있으며 호전적인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영향이 큰 유대 지방 사람들에 비하면 일반적으로 소박하고 편견도 적고 늠름하다고 한다.

12제자 중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전원을 갈릴리사람 중에서 택한 것은 흥미롭다. 요한은 갈릴리의 한 어촌에서 자랐다.

벳새다라고도 하고 가버나움이라고도 한다.

그의 가족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만도 네 사람 있다.

먼저 어부인 아버지 세베대(막 1:19,20)와 어머니 살로메(마 27:56,막 15:40)이다. 살로메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자매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녀도 열심히 예수를 따랐으나 그 아들들을 영광의 자리에 앉힐 것을 구하여 어머니다운 이기심을 보인 적도 있다(마 20:20,21).

야고보는 그의 형일 것이다.

요한과 더불어 사도로 택함 받았으나,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로 되었다(행 12:1,2).

그리고 요한 자신이다.

 

(2)복음 시대:요한은 처음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다음 예수의 제자로 되었다(요 1:30-).

즉, 갈릴리해변에서 아버지와 형제 야고보와 같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를 만난 것이다(마 4:21,막 1:19).

그 때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부르시니 그들 형제는 즉시 배와 부친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랐다.

바울과 같이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일도 없지만,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 하거나 또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곧 문자 그대로 일체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눅 5:1-11).

예수께서 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자 요한은 주님과 같이 동행했으며, 직접 훈도(薰陶)를 받았다(막 1:21,22).

또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마 10:2,막 3:17,눅 6:14) 그 중에서도 가장 예수의 사랑을 받았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와 더불어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다. 야이로의 딸 사건(눅 8:49-56), 산상의 변화(마 17:1-8),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막 14:32-42) 등, 그는 특별한 때에 주님 옆에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 최후의 만찬 준비 명령을 받은 것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것도, 십자가상에서 최후의 순간 주님께로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받은 것도 이 요한이었다(눅 22:8,요 13:23,19:26,27).

요한에게서 모순되는 두 가지 성격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내성적이다.

요한복음에서도 그는 거의 말하지 않았으며, 부활하신 날 아침 정경에서도 그의 소심할 정도의 신중성이 엿보인다(요 20:1-10).

사도행전에서도 그는 항상 베드로의 보좌역을 하고 있다.

둘째는 동시에 또 정열적이고 과격한 성격의 일면도 보인다.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의 촌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자고 제안하고(눅 9:54),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 내는 것을 금지시켰다(눅 9:49).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에게 `보아너게(우뢰)'란 이름을 붙였다(막 3:17).

그는 십자가까지 예수님을 따라가 그 최후를 지켜본 유일한 남자 제자이다.

그는 부활의 날 아침 베드르와 같이 무덤에 갔고, 그 후 몇 차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그는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요 21:23).

 

(3)사도행전 시대:사도행전에는 과히 등장하지 않는다.

성전에서의 기적(행 3장),사마리아인에게 성령 강림(행 8:14-25) 때 등장하나 모두 베드로의 보좌역으로서이다.

아마 그는 예수님의 유언을 충실히 따라 마리아의 시중에 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問)에서 앉은뱅이 거지를 고쳐 주었을 때, 또 예루살렘의 대중에게 기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증거를 했을때, 그 표면에 서는 이는 베드로였으며, 그를 붙들어 세운 이는 요한이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위협하여 앞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며 가르치지 말라고 경계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대담하게 대답하였다(행 4:19,20).

바울이 회심후 14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AD50년 경)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었던 야고보, 게바, 요한의 세 사람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했다고 갈라디아서 2:9은 쓰고 있다.

그 밖에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복음서의 기사, 혹은 전후 관계로 미루어 사도요한에 대해서라는 것은 1:35의 `세례 요한의 제자인 두 사람 중 하나', 18:15의 `다른 제자 하나', 13:22, 25, 19:26, 20:2, 21:20, 24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되어 있는 것 등이다.

 

<참고〉 전설로서 알려진 요한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당부에 의해 마리아를 보호함에 있어서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셔다가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보호했다.

요한은 바울의 활동에 의해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세력을 얻게 되자, 에베소 교회의 초빙을 받아 요한은 에베소에 갔다.

이 전설은 이레니우스(Irenaeus), 에베소의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등의 저서에 근거한 것이다.

이레니우스(제 2세기 말 프랑스 리용의 감독)의 `배이단'(排異端)에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세웠다.

요한은 그들과 같이 영주하여 트라야누스조(朝)에 이르렀다"(제 3권 제 3장), "주의 제자 요한은 전에 주의 품에 의지했던 사람인데, 아시아의 에베소에 살면서 일부의 복음서를 썼다"(제 3권 제 1장)는 기사가 있다.

폴리갑은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과 교제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 서머나 교회에서 아시아의 감독에 임명되었다.

요한이 트라야누스(Trajanus, 53- 117, 로마 황제, 재위 98- 117) 황제 때까지 살았다면 극히 고령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감독 요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사도 요한을 장로 요한으로 보는 이도 있다.

여하튼 전설에 의하면, 그 후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형되었다 에베소에 있는 요한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이 해설은 계 1:9"나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요한이 밧모 섬에 간 것은 묵상을 위해(와이스의 설), 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도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고령에 달할 때까지 에베소에 있다가 거기서 고요히 죽었다고도 하나, 이와 정반대의 전설도 있다.

그것에 따르면 "히엘라폴리스의 파피아스(Papias) 감독은 `주의 교훈' 제 2권에 요한은 유대인에게 피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운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제 9세기에 생존한 게오르기우스 하다르톨로스(Georgius Harmartolos)의 저서에 있다고 한다.

여하튼 이와 같은 전설이 있었다는 것은, 예를 들면 수리아의 교회력에 12월 17일은 요한과 야고보의 순교 기념일로 되어 있다는 것 등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사도 요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전설도 남아 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 로마 황제, 재위 81 96) 황제 때 박해를 받아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는 펄펄 끓는 기름솥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다고도 한다. 아폴로니우스는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죽은 자를 소생시켰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는 타락한 신자로서 강도의 무리에 빠진 자를 구출하기 위해 삼림에 들어가 마침내 그를 신앙으로 복귀시켰다"고 말했다.

그 밖에 세린사스의 이단을 극복하기 위해 소아시아에서 제 4복음서를 썼다거나, 노경에 이르러서는 자고새를 벗삼아 노는 것을 일삼았다거나, 또 입버릇처럼 "활을 늘 휘어 두어서는 안된다"느니 하는 전설도 있다.

그는 종종 교회에 부축을 받고 출석했으나, 나이 많아 말도 변변히 할 수 없게 되어 겨우 "젊은 아들아, 서로 사랑하라"은 말을 한데 불과했다고 제롬은 말했다. 그가 죽자,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고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21:23의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를 반영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