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신약성경개론] 개관

유다서:The Letter of Jude

好學 2009. 10. 31. 21:50

 

유다서:The Letter of Jude

 

 

영] The Letter of Jude(Epistle of Jude)

 

신약성경 중 장별없는 4통(빌, 2요, 3요, 유)의 소서간 중의 하나, 또는 공동서신(야고보,베드로, 요한, 유다) 중의 하나.

 

1. 본서의 저자- 본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1-)로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형제를 가진 유다는, 주님의 동생 유다외에는 없다.

본서가 단편인데도 불구하고, 베드로후서에 대부분 수록되고, 또 기원 2세기의끝 무렵에는 무라토라 단편( Muratorian Canon 현존하는 최고의 신약목록표),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0/60-220/22 카르타고 출생의 저술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150경-215경, 그리스도의 신학자) 등에 의해 정전으로 인정되어 있었던 것은, 저자가 주님의 동생 유다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대적 색채가 강한 것이라든가 서술이 단순하고 직절적인 것등도 유다를 저자로 보기에 적합하다.

또 자신이 주의 형제라는 것을 작위적으로 보이려하고 있지 않는 것이라든가, 그리 유력한 인물이 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유다를 저자로서하고 있는 것 등은, 이 편지가 위서가 아닌 유다의 글임을 보증하는 것으로도 해득된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가 주님의 형제 유다였다는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난점이 지적되고 있다.

 

(1) 아람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갈릴리 출신의 유다가 이 편지에 보여지고 있는 것같은 훌륭한 그리스문(-文)을 엮을 수 있었을까?

 

(2) 3, 17절에 의하면, 저자는 유다와 거의 동시대의 사람으로 생각되어지는 사도들보다도 후시대의 사람으로 생각된다.

주의 형제 유다서를 부정한 경우에는, 저자는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유다등 누가, 혹은 기타의 무명의 유다, 아니면 주의 형제 유다의 제자가 스승의 이름을 빌어 쓴 것으로 된다.

2세기 초엽의 동명의 예루살렘 감독의 작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서간이 절대로 주님의 동생 유다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곤란하므로, 전승따라주님의 동생 유다로 인정하여 무관하다.

 

2. 본서의 독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를 받는 이들에게](1-7)로 되어 있다.

특정한 지명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수신인의 주소에 대한 기술은 일반적인데, 수신 교회의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특수하고, 훈계도 구체적이므로,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몇 교회에 보내진 것일지도 모른다.

구약(5, 7, 11 절) 및 유대문서(9, 14)에 대한 언급이 많으므로, 독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 신도였다고도 추정된다.

그러나 방종한 생활(4, 16, 18절)은, 유대인보다도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인의 경우에 일층 타당하다는 견해에 의해(갈 5:13,고전 6:12-20), 독자들을 이방인 그리스도 신자로 하는 설도 있다.

양자를 포함하는 교회로 보면 온당하리라.

고전 9:5의 [주의 형제들]이 유다도 포함하는 것이고, 유다가 전도여행을 했다면 수신 교회는 그의 선교활동과 관계있던 교회 였을지도모른다.

이방사상과의 관련에서 생각하면, 팔레스티나 외에 있는 애굽지방의 그리스어의 유대인인 듯하다는 설도 유력하다.

 

3. 본서집필의 사정과 베드로후서와의 관계- 본서는 베드로후서 특히 그 제2장과 극히 유사하다.

아마도 베드로 후서가 먼저 기록되고, 본서는 이를 따라 기록된 것이리라.

즉 거짓교사들이 말하는 사설(邪設)과 그들의 음탕한 생활이 차츰 파급해 온 때문에 베드로가 이것을 경계할 필요를 느낀 것과 마찬가지의 필요를 유다도 느꼇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 독자의 방면이 전술한대로, 베드로후서의 수신인과는 방면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다는 동일한 문장을 주저치 않고 썼을 것으로 본다.

유다는 베드로후서의 자극에 의해 급히(3절) 이 서간을 기록했다.

 

4. 저작연대, 장소- 이상과 같다고 하면, 본서의 저작연대는 베드로후서보다 그리 오래지않은 시대, 즉 67/68년에서 70년경 사이리라.

그 장소는 불명이다.

다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의 제설이 있지만 확정적은 아니다.

 

5. 본서의 특색- 이는 묵시문학적인 색채가 강한 이단배격의 문서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도적 신앙으로 진리의 수호를 위해 신학적인 논박을 하지 않고, 이단자의 부도덕적 행동을 지적,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심판을 선고하고 있다(4, 10, 11, 13, 15 절).

또 신앙의 이해는 고정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3, 20).

따라서, 신학사상에 관해서는 많은 가치는 기대될 수 없다.

그러나 끝 부분의 송영(24-25)은 높이 평가되고 있고, 20-23절의 결말의 권고도 깊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또 이단에 대한 통렬한 부정의 말은, 이단과 싸우는 중에 있던 교회의 요망에 답한 귀중한 발언이었을 것이고, 윤리적 생활에서의 해방에 대한 부정이라는 이 편지의 근본적 메시지(Message)는 어느 시대에도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모세의 승천](9절-), [에녹서](14-15절)등의 위전에의 언급도 특징적이다.

 

6. 유다서에 있어서의 이단- [경건치 않은자](불신의 사람들)의부덕이 집중적으로 통렬하게 탄핵되어 있다(4,8,12,13,19,23절).

그들에게 있어서의 윤리적 생활에서의 해방은, 구원의 은혜에 관한 오해에도 기인하는 듯한데(4-), 육의 행위는 영의 사람에게는 상관되지 못한다고 해석하는 영육의 이원론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고린도전서(6:12,10:23)에 있어서 반영되어 있고, 목회서간 및 묵시록에도 나타나, 2세기의 그노시스파 카르포크라테스([그] Karpokrates [영] Carpocrates)에 있어서 극단의 형태를 취했다.

유다서에 있어서의 이단이, 이 같은 경향의 발전과정의 어느 계단 또는 어느 계통에 속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노시스주의의 맹아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또 이단을 말하는 사람에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정(4절), 꿈꿈(8절), 반항(8-), 지식의 자랑(10-), 영의 사람의 고난(16,19절)도 보여지는데, 베드로후서의 이단에 있어서의 종말 신앙의 부정은 나타나 있지 않다.

 

7. 본서의 내용 - 인사(1-2)에 뒤이어, 본서를 쓰게 된 동기가 권위에 반대하여 음행을 자행하는 이단을 말하는 거짓교사 경계에 있음을 말하고(3-4), 그리고 그러한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역사상의 사실에 의해 보여주고(5-16), 이것을 생각하여 각각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을 보여주어 장려를 주고(17-23), 송영으로서 끝마친다(24-25).

 

 

-내용 분해-

 

1. 인 사(1-2)

2. 본서 집필의 동기9사정)(3-4)

3. 거짓교사의 부도덕과 역사상의 실례에의한 훈계(5-16)

(1) 구약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판과 거짓 교사들의 부덕과 심판(5-13)

(2) 에녹의 예언과 거짓 교사들의 부덕과 심판(14-16)

4. 독자에 대한 장려(권고)(17-23)

5. 송영(24-25)

 

 

[文獻]

J.C. Beker:"Jude, Letter of," Interp. D., Vo1. 2. pp. 1009-1011,

J.B. mayor:The Epistles of Jude and II Peter, 1907;

M. Green:II Peter and Jude, 1968;

黑崎幸吉:유다서, 1962:

石井晴美, 유다서,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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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Judas(인명)

 

('Ioudav", Judas)

주 예수의 네 형제 중의 한 사람이다(마 13:55,막6:3). 유다서의 기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