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고사성어]故事成語

조명시리(朝名市利) 장욕취지, 빈선여지(將欲取之, 必先與之) 미봉(彌縫)

好學 2009. 9. 22. 08:46

 

 

 조명시리(朝名市利)  장욕취지, 빈선여지(將欲取之, 必先與之) 미봉(彌縫)

 

 

조명시리(朝名市利)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 朝:아침 조정 조. 名:이름 이름날 명. 市:저자 시.
 利:이로울 리. [유사어] 적시적지(適時適地). [참조] 일거양득(一擧兩得). 
[출전]《戰國策》〈秦策〉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市場]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 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는 어전에서 '촉(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도 쌓일 것이므로,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며 촉으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재상 장의(張儀)는 그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진나라는 우선 위(魏) 초(楚)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한(韓)나라의 
삼천(三川) 지방으로 출병한 후 천하의 종실인 주(周)나라의 외곽을 위협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정[九鼎: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그 
보물을 내놓을 것이옵니다. 그때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패업(패業)이라는 것이옵니다. 그까짓 변경의 촉을 정벌해 봤자 군사와 백성을 피폐
(疲弊)케 할 뿐 무슨 명리(名利)가 있겠나이까? 신(臣)이 듣기로는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툰다[朝名市利]'고 하옵니다. 지금 삼천지방은 천하의 저자이옵고 
주나라 황실(皇室)은 천하의 조정이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다투려 하지 않고 
하찮은 오랑캐의 촉을 다투려 하시옵니다. 혹, 패업을 멀리하시려는 것은 아니옵나이까?"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주] 장의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위(魏)나라 사람. 합종책(合縱策)으로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과 함께 수수께끼의 종횡가인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종횡의 
술책을 배움.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임을 받아 진나라의 
재상이 됨. 소진이 제(齊)나라에서 살해되자(B.C. 317) 6국을 순방, 유세(遊說)하여 소진의 
합종책 을 깨고 연횡책(連橫策)을 성사시켜 6국으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함. 
혜문왕이 죽은 후 참소(讒訴)를 당하여 위나라에서 객사(客死)함. (?∼B.C. 309).

 

장욕취지, 빈선여지(將欲取之, 必先與之)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장욕취지, 빈선여지(將欲取之, 必先與之) (장차 장)
(하고자 욕)(취할 취)(이것 지)(반드시 필)(먼저 선)(줄 여)(이것 지)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에 나온다. 노자(老子)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춘추(春秋) 말기. 진(晋)나라의 지백(智伯)이 대지주인 위선자(魏宣子)가 가지고 
있던 땅을 내놓을 것을 강요했으나 위선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위선자의 측근인 
임장(任章) 『정면으로 거절하지 말고 먼저 그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서(周書)
에 나오는「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도와주고 상대한테서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한다」는 말을 인용, 그를 설득했다. 위선자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임장의 꾀를 받아들여 
시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백은 훗날 실각하고 말았다.
 

미봉(彌縫)

-빈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그때그때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꾸며댐.
彌:더할 많을 미. 縫:꿰맬 봉.
[유사어] 고식(姑息). 임시변통(臨時變通).
[출전]《春秋左氏傳》〈桓公五年條〉

빈 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그때그때 임시 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꾸며 댐.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의 일이다. 환왕은 명목상의 천자국(天子國)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정(鄭)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莊公)은 날로 강성해지는 국력을 배경으로 천자인 환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왕은 우선 장공으로부터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상 실권을 박탈했다. 이 조치에 분개한 장공이 조현(朝見:신하가 임금을 뵙는 일)을 중단하자 환왕은 이를 구실로 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諸侯)들에게 참전을 명했다. 왕명을 받고 괵(괵) 채(蔡) 위(衛) 진(陳)나라 군사가 모이자 환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를 징벌하러 나섰다. 이런 일이 곧 천자(天子)의 자장격지(自將擊之)는 춘추시대 240여년 동안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윽고 정나라의 수갈(繡葛:하남성 내)에 도착한 왕군(王軍)은 장공의 군사와 대치했다.

 

공자(公子)인 원(元)은 장공에게 진언했다. "지금 좌군(左軍)에 속해 있는 진나라 군사는 국내 정세가 어지럽기 때문에 전의(戰意)를 잃고 있습니다. 하오니 먼저 진나라 군사부터 공격하면 반드시 패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환왕이 지휘하는 중군(中軍)을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경사(卿士)인 괵공(괵公)이 이끄는 채 위나라의 우군(右軍)도 지탱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니다. 이 때 중군을 치면 승리는 틀림없습니다." 장공의 원의 진언에 따라 원형(圓形)의 진(陣)을 쳤는데 이는 병거(兵車:군사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보병(步兵)을 뒤따르게 하는 군진(軍陣)으로서 병거와 병거 사이에는 보병으로 '미봉'했다. 원이 진언한 전략은 적중하여 왕군은 대패하고 환왕은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물러가고 말았다.

[주] 자장격지(自將擊之) : 남을 시키지 않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