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청소년과 함께 뒹굴 줄 모르면 가르치지 말라

好學 2009. 7. 27. 16:01

 

청소년과 함께 뒹굴 줄 모르면 가르치지 말라

 

1장 같이 먹고 놀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라 

 어른들은 변하기가 어렵지만 청소년들은 신체나 생각이 변화하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변화 자체에 익숙합니다. 

청소년기는 신앙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입니다. 

돈을 많이 들여도 변하기 어려운 데 투자하기보다 가능성 있는 데 투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른들을 위한 투자를 줄이고 청소년들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크게 투자해야 합니다. 

 청소년 사역은 관계가 관건입니다. 

사역자와 청소년들간의 마음의 벽이 무너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신과 같이 뒹굴고 놀던 사람이 가르치면 절대 졸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놀기 싫다면 가르치지도 말아야 합니다. 

관계형성이 안된 사역자나 교사의 가르침은 아이들은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청소년들은 진정으로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도 예배에서 청소년들이 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결코 프로그램이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는 경험이 없이는 어떠한 구원의 역사도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2장 청소년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가? 

 잘못을 지적한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변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지고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만지시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아이들만 데리고 사역한다면 그 사역에는 아무런 힘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아를 변화시키는 것이 능력 있는 청소년 사역입니다. 

교회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드나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청소년들의 모습만 보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교사와 사역자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 모델을 바로 사역자와 교사가 담당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3장 하나님 만난 가슴으로 가르쳐라 

 청소년들을 가르치기 전에 사역자가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뜨거운 가슴이 없는 사역자가 아이들을 가르치니 아이들이 변화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먼저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하나님 만난 체험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자하는 일은 귀한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프로그램만으로는 청소년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모델이 되는 사람의 삶과 관계를 통하여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전하는 예수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아이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늘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 낮고 낮은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학교로, 학원으로, PC방으로, 극장으로, 당구장으로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합니다. 

청소년이 있는 현장을 누비는 부지런한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4장 예수님과 청소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가 되라. 

 청소년 사역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가르쳐야 하며 일어섰다 싶은 아이들도 돌아보면 다시 쓰러져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청소년 사역의 열쇠는 인내에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보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심지 않으면 열매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청소년 사이를 잇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식화된 예배는 식상하기 쉽습니다. 

가끔씩은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찬양을 더 오래하거나 말씀 대신 다른 방법으로 은혜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의 예배는 성령님의 임재하심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이 시대는 청소년들에 재미있는 것들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무나 재미있는 것들에 누릴 수 있지만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청소년 사역에 있어서 “재미”도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세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재미없는 프로그램들로 어떻게 청소년들을 교회로 불러 모을 수가 있겠습니까? 

 

2부 청소년 사역,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5장 청소년 투자에 인색하면 경로당 교회 멀지 않다. 

 세상은 공부외의 것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모범생이고 좋은 학생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공부만이 하나님 주신 달란트가 아니요, 운동, 춤, 노래도 하나님 주신 달란트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공부 이외의 것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각자의 달란트는 무시한 채 목적 없이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사랑”, “믿음” 이라는 말 보다 의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며 ‘의리의 세계’를 동경합니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에게 접근할 때는 의리를 강조하며 관계형성을 하면서 동기부여를 하면, 아이들은 교회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교회의 회복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말로만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아이들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존중받고 아이들 위주로 생활하지만 교회에는 그 반대입니다. 

어른들은 좋은 장소에서 예배드리지만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곳은 교회의 후미진 곳입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게 되면 머지않아 교회에는 노인들만 남게 됩니다. 

 

6장 한 영혼을 변화시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한 영혼이 소중합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친밀함을 쌓아가고 진실한 관계를 맺음으로 마음의 벽을 없애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 영혼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사역자나 교사가 먼저 본이 되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으로 청소년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는 영혼의 변화입니다. 

영혼의 변화는 청소년들과 맞닥뜨림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역자는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은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의 말문을 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식사 중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화 없이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있으면 먼 나라 이야기만 할 뿐입니다. 

 지금 현재 내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부흥의 원동력입니다. 

자기 교회 보다 다른교회에 더 관심이 있고 다른 교회 아이들은 좋아하고 자기 교회 아이들은 별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다른 교회 아이들도 누군가가 교육하고 훈련해서 그렇게 된 것임을 간과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이야말로 앞으로의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7장 청소년 리얼 타임 트랜드로 커뮤니케이션 하라 

 청소년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청소년들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은 그들과 복음의 접촉점 마련을 위해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춤추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여야합니다. 

그들이 방탕함이 아닌 하나의 표현의 수단으로 춤을 추는 것이기에 그러한 춤을 통해서도 복음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맞닥뜨리며 문화를 이용하여 말씀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의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설교만 한다면 아이들의 마음을 도저히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소재로 설교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리얼 타임 문화를 통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8장 고3 우상숭배를 중단하라 

 교회에서는 고3을 특별예우 집단으로 대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3의 시기는 가장 크게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기에 영광을 받고 싶어 하시지 시간이 많은 대학1학년 때 영광을 받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고3 일수록 더욱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중요시 여깁니다. 

한국교회는 고3 때 교회보다 자기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들어간 이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교회학교 교사로 임명합니다. 

고 3때 하나님 일 열심히 하다가 재수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고 성공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한 자가 학생들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절대적인 가치관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대중문화 속에서 찾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왜 정당한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회에 모델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부모라 하더라도 위선적 신앙인일 경우에는 무력할 뿐입니다. 

청소년 사역자와 교사가 모델로 서서 삶을 나누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