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구원] 네 번째 만남 -예수를 믿으십시오

好學 2009. 7. 9. 00:35

 

 

네 번째 만남 -예수를 믿으십시오

 

 

네 번째 만남 -예수를 믿으십시오

이제까지 여러분은 예수가 누구 신지,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현재의 이 세상에서 어 떤 역할을 하는 분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이런 지식이 이 사회를 개혁하지 못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새로운 생활을 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면 이 예수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의 권세를 실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과에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대답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제안을 심각하게 생각하십시오,. 이 제안에 대해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그 순간은 당신의 생애에 있어 중대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1.요한 복음 3:16을 읽으십시오.

(1)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은 무엇을 가리키며 어떤 영역을 포함합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만을 사랑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시고, 그 들이 사는 자연과 그들이 속한 사회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가 이 세상을 위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남을 복습해 보십시오.)

(3) 당신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여기서 영생이란 하나님을 알고 그와 함께 하는 삶을 말합니다.)

 

2.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의미, 혹은 포함합니까?

(1) 로마서 10:9, 10

(2) 요한 복음 1:12

(3) 사도행전 2:38

 

3. 예수를 믿은 결과 개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요한 복음 5:24)

(1) 현 상태

(2) 미래와 약속

(3) 과거의 변화

 

4. 예수를 믿은 결과 그 주위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1) 가정(사도행전 16:30,31)

(2) 이웃(요한 일서4:11)

(3) 사회(마태복음 5: 13 ∼ 16)

 

5. 예수를 믿을 때 우리가 각자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 (베드로전서 2:9) 혹은 하나님의 자녀(요한 복음1:12)가 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순간 이미 그를 믿는 다른 사람들과도 관계가 맺어짐을 뜻합니다. 로마서 12:5 은 이 관계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6.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서로간의 관계를 맺게 되고 이들은 모여서 한 몸을 이룹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비록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교회들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은 자기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이 교회를 샀습니다(사도행전20:28). 성경은 예수와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합니까?(에베소서 5:23)

 

7. 이제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지금까지 배운 것을 복습 해 봅 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삶을 사셨으며, 이 세상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4)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당신 개인이 변하고 이 세상이 변하게 됩니다.

이제 이분에 대해 당신의 마음을 결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원하십니까?

예수를 믿으신다면, 그의 몸의 지체로서 교회에 소속되기를 원하십니까?

 

8. 이제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당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말해보십시오.


 

제16주 Q.T.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마태복음 18:1-6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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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세고, 변덕스럽고, 장난꾸러기이고,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떼를 쓰고 웁니다(childish). 그런데 하나님은 왜 우리가 그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을까요? 또 어린아이를 영접해야 예수를 영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어린아이를 사랑해야 천국에 간다는 말일까요? 또 어린아이가 자기를 낮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어린아이처럼 겸손하라는 말입니까?

그러나 사실 어린아이는 겸손도 교만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대신 어린아이를 표본으로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예수님도 어린아이였을 때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선생들 사이에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눅 2:46). 이제는 제자들이 이 어린아이로부터 배울 차례였습니다. 어린아이를 자기를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보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천국에 대해서나, 네 자신에 대해서나,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고(convert) 변해야 한다. 권력이나 명예욕이나 남을 지배하려는 생각은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 살 수 없는 이 어린아이를 보라. 약하고 키도 작아서 누군가가 부모로부터 떼어 놓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온전히 부모를 의지하고 아무 욕심이 없다.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고 명예를 탐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셔서 이 어린아이처럼(child-like) 자기에게 온전히 매달리는 사람을 찾고 있다. 천국은 사람을 계수하는데 끼어 넣지도 않은 이런 어린아이를 보살피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누가 크냐고 다툼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실족케 한다면 너는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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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상

1.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인가? 시131편을 읽고 내가 어린아이와 같은지 자신을 돌아봅시다.

여호와여 나는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으며/ 나에게 과분한 일이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니/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고요히 누워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히 여로와를 신뢰하라.

 


제17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성경:마가복음 6:35-44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4복음서에 이적이 서른다섯 가지가 나오는데 병 고친 것이 스물두 가지,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이 세 가지, 기타가 가지입니다. 그중 이 5병2어의 기적은 4 복음서에 다 나와 있는 기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적으로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10년 단위로 우리 나라의 과거를 돌아보면 60년대는 경제위기, 70년대는 안보위기, 80년대는 정치위기 90년대는 혹 도덕성위기, 인간성위기 또는 총체적인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위기를 극복하면 좋은 시기가 올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될까요? 원인으로써의 과거와 결과로써의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7년 풍년 뒤에 올 7년 흉년을 미리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만원짜리 한 장을 천원짜리 2장과 맞바꾸는데 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5병2어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는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돈이 없으니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태도를 취할 때가 많습니다. "내게 돈이 없다." "그런 시간이 없다", "내게 그런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 하고 핵심가치보다는 주변가치를 더 중히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여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계산에 의해 나온 대답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을 확신하고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인간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계산이 아니고 바른 신앙의 회복입니다.

군중들은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았습니다. 이는 질서를 회복했다는 말이 됩니다. 아마 오천 명이 다 먹을 양식이 눈 앞에 있었다 할지라도 서로 먼저 먹으려고 앞을 다투었다면 음식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사람도 밟혀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이 먹을 만한 양식을 예비해 주셨을지라도 인간들이 매점매석하면 한쪽에서는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음식은 다 배불리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눔

1. Q: 김 교수님은 어린애들을 기를 때 꼭 자기 전에는 침대맡에서 기도를 해 주었는데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는 지금은 그 일을 못하시게 되겠네요? (큰 딸은 서울대 교육학과 4년, 큰 아들은 서울대 자연과학대 2년)

A: 지금도 열한 시만 되면 전화로 기도해 줍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습관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 잘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제18주 Q.T.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경:로마서 8:28-30

요절: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바울이 말한 이 요절에서 몇가지 용어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우리가 알거니와 :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말입니까?

나)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됩니까?

다)부르심(소명)(살후2:13-14)을 입은자는 누구입니까? (택하심과 부르심)

라)모든것이: 모든것의 범위는 무엇입니까?

마)합력하여: 합력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선을 이루는 궁국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선한 결과가 보장됩니까?


 

2."모든것"의 범주는 현재와 과거, 미래에 나타날 일들,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 나타나고 접하는 모든 일들이 포함되는 것일까?

#(참고)고후1: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가)환난 중에서 위로받은 자만이 다른 환난 중에서 고통을 당하는 형제를 위로할수 있다.

나)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어야 사랑의 진가를 알고 남에게도 사랑을 전할수 있다.

다)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여기서 "환난"은 "모든것"의 범주속에 포함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3."합력"이 영어성경에는 WORK TOGETHER로 번역되었는데 원어속의 뜻은 상승작용(SYNERGY)이란 의미가 더 가깝다는 해석을 본적이 있습니다.

가)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선을 위하여 헌신할때 각자의 은사들의 산술적 합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승작용하여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는 뜻입니다.

나)한가지 원인이 다른 원인을 상쇄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도와서 그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게 하는 일이 (과학에서 나타나지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4.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곧 인간의 가장 지고한 선은 무엇인가?

가)하나님을 사랑하고(롬8:28)

나)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롬8:29)

다)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며(롭8:30)

마)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가 되는것(롬8:28)


 

5.어떤 종류의 선인가? 선은 사랑의 실천이다.

가)롬7:14-25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도다...." 바울은 7장에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 속에 7:14-25의 갈등이 계속해서 생길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승리의 생활을 할수 있는가(8:37)를 8장에서 가르쳐 주고있다.

가)선은 사랑으로 퍼지며 퍼질수록 더 큰 사랑으로 자라고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우리가 나눈 선(사랑)은 이디에서인가 언제인가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다)자식을 위해 밤샘으로 기도하신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기도는 온가족이 합력하여 기도할때 나타나는 효과는 그 기도가 이루어진 은혜뿐 아니라 그 기도자체가 자식들에게 상승작용으로 나타나 믿음의 상승작용까지 효과를 보게 됩니다.


 

6.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가)이것을 가능케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므로 가능한것입니다.

나)그러한 사랑만이 모든 상황들을 축복으로 변형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다)아무리 평범한 일들로만 가득 차 있는 삶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사랑이 있게 되면 그 평범한 일들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목적을 위한 수단과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라)아무리 큰 불행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사랑이 있게 되면 파멸같은 사건속에서도 결과는 선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마)바울은 이러한 사랑과 진실을 알고 28절을 쓴것이라 봅니다. 즉 "우리가 알거니와..."


 

7.롬8:35-39.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바울은

문제제기와 동시에 그 해답까지 완벽하게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넉넉하게 선을 이루기 위한 싸움에서 승리의 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제19주 Q.T.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이사야 41: 8-10

8.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니라 9.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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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에는 교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따뜻한 마음과 영이 맑으신 여전도사님이 계십니다. 이 전도사님을 통하여 많은 성도들이 신앙성장의 도움을 받고 또한 영육간에 어려움이 있을 때 용기와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같이 나누고자 하는 위의 성경구절은 얼마 전 저희 가정에 큰 염려가 있을 때 바로 이 전도사님을 통하여 저희에게 주신 말씀으로 제 자신이 어려운 학업과정에 있을 때 함께 하였던 말씀이었는데 그간 평탄한 생활로 잊고 지내다가 이번 기회에 깨우침을 받고 용기를 얻게 되어 여러분과 함께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희 가정에는 9살 짜리 아들과 7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희 부부는 하나님께 큰 감사와 남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결혼 후 별다른 이유 없이 8년이란 긴 시간동안 저희 가정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연로한 시부모님과 독자이며 장손인 제 입장을 잘 아는 아내로서는 심적 부담이 상당히 컷을 것입니다. 아내는 3개월의 시간을 작정하고 골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큰 아이를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둘째아이를 고대하였지만 다시 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소원한 둘째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아내가 심한 감기몸살로 태아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약을 복용한 후였습니다. 기쁨은 잠시 이 사실이 큰 염려로 다가 왔습니다. 의사는 거의 포기를 권유하였습니다. 기도도 잘 안 나오고 가족친지들의 위로도 큰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이런 근심의 초조한 시간이 몇 달 지나갔을 때 전도사님께서 찾아오셔서 저희에게 이사야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의 도우심으로 건강한 딸아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하는 말씀에 의지한 저희들의 신앙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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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대학에도 시장경제 개념이 유입되고 입학지원자 숫자가 줄어들면서 지방사립대학들은 위기감을 느끼며 큰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적을 갖고 주님의 이름으로 설립된 우리 한남대학교는 땅 끝에서부터 땅 모퉁이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대학구성원들이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선 "너는 나의 종이라" 하는 칭함을 받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함께 하사 빛을 발하는 좋은 대학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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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상

1. 나 자신은 하나님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르실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2. 나 자신을 어떻게 열어야(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나님의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나눔:

1. 이 교수님께는 8년이 큰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5명밖에 주지 않은 독일 정부의 "아데나워" 장학금을 받고 독일에 가게 되고, 8년 만에 독자이며 장손이었던 이 박사는 큰 아들을 얻게 되고, 또 8년 만에 둘 째 딸을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8년 뒤를 기다려 봐야 하겠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때 저는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서투른 도일어로 말하고 있으니까 한국말로 하라고 말했는데 그 해부터 독일어보다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요시하여 뽑자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2.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보호막을 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자가를 열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를 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열기 위해서는 소그룹 모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3. "나의 종"이라고 부를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우리 대학의 교수들이 몇이나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다. 들어 올 때는 다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명감은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20주 Q.T.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 43:5 , 사 62:12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한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저는 13년 째 대학에 있지만 이런 직장의 기도 모임은 처음입니다. 85년에 이 대학에 왔을 때 저는 대학에 오리라는 생?♣?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대학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 니다. 내게 무슨 자격이 있는가? 그런데 그 때 이 대학에서는 "신앙과 학문의 조화"라 는 주제로 어려 번 토의가 있었습니다. 신앙을 세 마디로 줄인다면 믿음, 사랑, 소망?琯?이 신앙과 내가 하고 있는 학문 사이에 무슨 연계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때 저는 희미하게 학문은 소망과 관계 지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점차 교수 생활을 진지하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학교가 매우 시끄러울 때였는데 학생들이 입은 살아 있으나 알맹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런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한 나머지 학부 학생들을 학문적으로 도와 줄 생각을 갖고 지금까지 11년 간을 제 연구실에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자라서 결혼도 하게 되고 선후배가 늘어나서 한 번 같이 만나게 되면 한

군단이 될 만큼 커졌습니다. 선배가 후배를 끌어 주기도 해서 단단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96년 영국에서 1년간을 공부하고 돌아 온 뒤 새로운 정신적인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수로서 자격이 없다고 학교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학자로서 자격이 없으니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의 결과가 인정 되지 못하고 몇 번 reject를 당한 뒤에는 심한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담배도, 커피도, 술도 끊고 월, 화, 수, 목, 금, 금, 금 하고 노력해 온 것이 학자로서의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연구실을 찾아 드는 학생들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학자로 자격 없는 사람이 무슨 학생을 지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도 하지 않은 새벽기도를 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저는 제 생각과는 다른 방향에서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때 시 43:5와 사 62:12(새로남 교회 목사님의 설교였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논문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많은 학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학회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을 닫으려 했던 학생들의 지도도 기쁨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 방에는 언제나 학생들이 득실거려 저는 시끄러운 가운데 공부하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비록 심혈을 기울려도 세상에서는 average 학생밖에는 기르지 못할지라도 선후배가 협력하여 사회에 풀려 나간다면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은 연구하는 교수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바친 보상 받을 수 없는 시간은 갈등과 괴로움을 가져옵니다. 이런 시점에서 오 교수님에게 붙들려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생각할 문제:

1. Q. 건강을 잃었다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A. 허리가 아파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회복을 위해 요가도 하고 별 짓을 다 했는데 결구 스스로 "게다라 춤"을 개발했습니다. 이 춤을 몇 분 추고 나면 좋아지는 것입니다. 영국에 가서는 그쪽 사람들을 몇 사람 모아서 "mad monkey dance"라는 이름으로 보급하였습니다.

2.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은 적건 크건 다 이런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설 교수님은 좀 시기가 빠른 것뿐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바친 시간은 하나님으로부터는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3. 대학이 교수, 연구 봉사를 기본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면 교수들을 일률적으로 "연구"라는 척도만으로 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척도는 대학마다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자로 재서 성실하게 교수하는 분, 열심히 연구하는 분, 학문을 사회에 적용하여 봉사하는 분 들을 공평히 다룰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4. Q. 연구에 뛰어나 교수님이 두 분 계시는데 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연구를 치중하면 학생 지도가 소홀해지고 학생 지도에 매달리면 연구할 시간이 없는데 어떤 갈등 같은 것은 없습니까? A.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보다는 완성하지 못한 논문에 먼저 매달리게 됩니다. "하나님 마감에 쫓겨서 그럽니다. 이 번 주만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이번 주가 다음 주가 되고 또 이 번 달이 다음 달이 되곤 합니다. 연구란 시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논문 100편 쓰기까지만 이 일에 먼저 치중하도록 용서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학생지도 때문에 갈등을 느낍니다.

5. 인간은 자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할 때가 가장 아름답고, 존경스러우며, 인격적 감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지도를 못하는 것 때문에 가책을 느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는 지혜의 권하는 말에 있지 않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교수님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보면 될 것입니다.

6. 교육 중심의 대학이라고 하지만 교수 평가는 연구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생각하면 학생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학과의 성격에 따라 교수가 전공에만 매달리지 않고 직장에 풀려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을 가르쳐 내보낼 교육도 중요합니다.